하자작업장학교 청소년 시민문화워크숍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4차 워크숍 Art In Village 사북․고한 예술마을 프로젝트


Like A Rolling 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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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일부터 8일까지 6박 7일, 정선에 다녀왔던 경험은 굉장히 특이하면서 특별했다. 이번 여행은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이라는 시민문화워크숍의 일환으로 사북․고한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공예술 프로젝트1)에 참여한다는 기획으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시인들’은 한 시민으로서 살아가며 각자 나름의 관점과 방식으로 자신이 속한 세상에 작은 변화를 더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때의 시는 여러 의미의 ‘시(市시민/詩시/時시대/施돌봄/視관점/始근본/翅날다)’를 의미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시(柴 섶)인’이라고 생각하며 이 여행을 맞이하였다.


 11월이 시작되자마자 첫눈과 함께 온 매서운 추위를 맞았으며, 처음으로 탄광마을이라는 곳을, 카지노라는 것이 있는 곳을 가보게 되었고, 그 과정들에서 출발 전의 예상보다 훨씬 머리가 아픈 여행이었다. 나는 여행 전부터 밥 딜런(bob dylan)을 연구과제로 정하고 그 연구의 일환으로 노래를 만들기로 했다. 무엇을 이야기할지, 어떻게 쓸 지 고민했다. 그 때문인지 첫날 사북, 고한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두 사진 작가가 진행한 제임스 해리스(james harries)와 강제욱의 '사진 아뜰리에’는 눈에 들어오게 하지도 못한 채 그 시간을 보냈다. 


동조하다.

오전 프로그램이 끝나고, 이 예술마을 프로젝트에서 비디오 작업을 하고 있는 윤주경 작가를 만나 작품 ‘검은 산’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감상도 하면서 경석산에 오를 채비를 했다. 경석산은 석탄 찌꺼기들이 40여 년간 쌓여서 생긴 산이며 그 위에서는 조그마한 잡목(柴)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놀랍게도 산 정상에는 하이원의 주차장이 올라서있다. 여기 오기 전 이 ‘검은 산’에 대해 들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며 온갖 상상을 했는데 정말 마치 그곳은 일종의 바위산 같았다. 아니 바위산이 맞다. 다만 온통 회검은 색 뿐. 내 두 다리와 허파로 직접 맞부딪히는 느낌은 그 시간들에 대한 경이로움과 놀라움, 광부들의 노동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고된 노동의 ‘날 것’, 그 자체였다. 폐광되기까지 40년의 세월동안 광부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2억년의 돌들을 쌓아올렸고 어느새 그것은 산이 되어 있었다.  

폐광 후, 그 무더기 산의 머리 위에는 High 1의 주차장이 들어서고 이 마을에도 경제적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지역번영회의 결정에 따라 카지노가 유치되기도 했다. 광부들은 리조트에서 일하거나, 마을에서 자영업을 하거나 도시로 떠났다고 한다.  경석산은 40년이 지나고, 그 이후 자신의 몸 위로 풀과 나무가 자라는 것과 함께 그것들을 보고 겪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존재는 그 산과 직접 부딪히는 광부들의 모습이기도 했을 것 같다.


동원탄좌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폐광을 맞은 당시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선 느낌을 받는다. 있는 그 시간 그대로의 ‘보존’이었던 광부들이 사용했던 장비에 겹겹이 묻어있는 손때들이라든지, 오랜 쓰임에 살짝 닳기도 한 손잡이들, 심지어 사무실에까지 뻗쳐있던 전혀 의도치 않았던 ‘검정들’, 당시 사람들의 어록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꼭 그 당시의 사람이 되어있거나, 어떤 놀라운 전지적 능력으로 그 당시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석탄을 연료로 사용해 오다가 석유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석탄은 전보다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그 때문에 2004년 이후로 40년간 석탄을 캐오던 동원탄좌와 갱도는 폐광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광부 역사는 40년 정도인 셈이다. 그 사이에 경석산도 저렇게 거대하게 쌓이고, 동원탄좌의 검정들도 조금씩, 조금씩 묻어져왔겠지.


너의 시대를 노래해라

문제의 ‘흔적’들을 목격하고 나서부터 계속 그것들에만 시선이 가고 신경이 쏠렸다. 흔적들을 통해 광부들의 삶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노래로 쓰고 싶었다. 그렇게 결정한 나는  계속 흔적들을 보고 느끼는 데에 주력했다. 그러자 스스로에게 ‘그들의 흔적과 삶에서 현재의 나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노래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이 들었다.

동원탄좌에 곳곳에 스며든 검정들, 손때, 언어들과 경석산. 그곳에서 있는 힘을 다해 살았던 광부들의 ‘흔적 그 자체.’ 흔적이란 것은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화장실 불을 키고 들어가려고 스위치를 보면 어느새 스위치 주변 벽지가 손때로 얼룩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과 같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았고, 내가 보고 있는 조금 닳은 손잡이들이나 검정들은 그저 자연스레 남겨진 삶의 자국이라고.

내가 동원탄좌와 경석산을 돌며 보고 빠졌던 것들. 그것들에는 광부들이 위험한 막장에서부터 직접 몸을 부딪쳐 온 세월과 장소가 있었고 그 흔적들이 말하는 사실들에 난 귀 기울였던 것이다. 나는 그 시대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보존된 시간을 체험하며 마치 내가 그 시대를 살고 있기라도 한 시선을 갖고 말한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웠다. 지금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는 내가 그 흔적들로 볼 수 있는 시간들, 또 그것들과 이어진 지금의 마을을 보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고된 광부들의 과거의 삶, 흔적, 그 때에 대한 애잔함과 현재 그리고 그곳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해 노래하기로 했다. 내 마음이 잔잔히 울렸던 것들에 관해서 말이다.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닿지 못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자신의 관점을 다듬다.

'검은 흔적들'에 대해 노래하려고 보니 갑자기 그것들이 모두 산업화를 뒷받침한 석탄들을 캐올렸던 흔적들이고, 이것들이 지금의 기후변화를 앞당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경석산의 과도한 철분 때문에 주변 시냇물은 녹냄새가 진동하는 붉은 색으로 뒤덮여져 있었고, 그 주변의 다량의 먼지와 철을 포함한 공기는 인체에 닿으면서 피부염 등을 일으킬 수 있단다. 나는 기후변화에 대해 관심가지고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사람인데 그런 경석산이나 그 석탄을 캐내었던 탄광들과 그 노동자에 대해서 어떤 눈을 해야 하는건지 생각해야했다. 
분명 탄광 노동자들이 캐낸 석탄으로 인해 기후변화가 가속화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물을 수는 없다, 이들 또한 삶의 끝자락으로 밀려 돈을 벌기 위해 탄광을 찾았고, 막장에서의 고된 노동과 진폐증에 싸우며 세월을 지샌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그들 개인으로서 거스르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흐름이었기에 나는 그들의 고된 삶에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지우기를 그만두었다. 


Like a rolling 柴

지난 6박 7일 동안, 우리들은 카메라를 들고, 연필과 수첩을 들고, 시를 쓰며 고한/사북을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나름대로 무언가를 열심히 관찰하고, 담고, 스케치하고, 움직이고, 글을 쓰고, 시를 지으면서 나름의 이야기를 찾아내려 분주히 노력했다.
 시대를 노래한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굉장히 울림 있는 말인 것와 함께 어쩌면 너무나 커다란 말이라 선뜻 다가서기가 퍽 조심스러운 말이기도 했다.

우리는 왜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의 제목으로 정선에 갔던 걸까-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과 이야기를 하며 나름의 역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었다.  그저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섶처럼, 잡목처럼 보잘것없이 비치더라하여도 우리도 각자 나름의 관점들을 풀어나가고 있고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하고 있다.

그것이 너무나 작고 천천히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의 변화들일지라도, 시인이 되어 세상을 구하고, 시대를 노래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작은 섶이 되는 것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詩,時,施,視,翅 의 여섯 시인들도 있지만 정선에 가서 마주하게 시작한 시인들은 7번째 섶(시柴)의 인들, 우리 자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