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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하자작업장학교 청소년 시민문화워크숍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4차 워크숍 Art In Village 사북․고한 예술마을 프로젝트
Like A Rolling 柴 - 지난 11월 2일부터 8일까지 6박 7일, 정선에 다녀왔던 경험은 굉장히 특이하면서 특별했다. 이번 여행은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이라는 시민문화워크숍의 일환으로 사북․고한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공예술 프로젝트1)에 참여한다는 기획으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시인들’은 한 시민으로서 살아가며 각자 나름의 관점과 방식으로 자신이 속한 세상에 작은 변화를 더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때의 시는 여러 의미의 ‘시(市시민/詩시/時시대/施돌봄/視관점/始근본/翅날다)’를 의미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시(柴 섶)인’이라고 생각하며 이 여행을 맞이하였다.
동조하다. 폐광 후, 그 무더기 산의 머리 위에는 High 1의 주차장이 들어서고 이 마을에도 경제적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지역번영회의 결정에 따라 카지노가 유치되기도 했다. 광부들은 리조트에서 일하거나, 마을에서 자영업을 하거나 도시로 떠났다고 한다. 경석산은 40년이 지나고, 그 이후 자신의 몸 위로 풀과 나무가 자라는 것과 함께 그것들을 보고 겪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존재는 그 산과 직접 부딪히는 광부들의 모습이기도 했을 것 같다. 동원탄좌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폐광을 맞은 당시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선 느낌을 받는다. 있는 그 시간 그대로의 ‘보존’이었던 광부들이 사용했던 장비에 겹겹이 묻어있는 손때들이라든지, 오랜 쓰임에 살짝 닳기도 한 손잡이들, 심지어 사무실에까지 뻗쳐있던 전혀 의도치 않았던 ‘검정들’, 당시 사람들의 어록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꼭 그 당시의 사람이 되어있거나, 어떤 놀라운 전지적 능력으로 그 당시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석탄을 연료로 사용해 오다가 석유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석탄은 전보다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그 때문에 2004년 이후로 40년간 석탄을 캐오던 동원탄좌와 갱도는 폐광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광부 역사는 40년 정도인 셈이다. 그 사이에 경석산도 저렇게 거대하게 쌓이고, 동원탄좌의 검정들도 조금씩, 조금씩 묻어져왔겠지. 너의 시대를 노래해라 동원탄좌에 곳곳에 스며든 검정들, 손때, 언어들과 경석산. 그곳에서 있는 힘을 다해 살았던 광부들의 ‘흔적 그 자체.’ 흔적이란 것은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화장실 불을 키고 들어가려고 스위치를 보면 어느새 스위치 주변 벽지가 손때로 얼룩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과 같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았고, 내가 보고 있는 조금 닳은 손잡이들이나 검정들은 그저 자연스레 남겨진 삶의 자국이라고. 내가 동원탄좌와 경석산을 돌며 보고 빠졌던 것들. 그것들에는 광부들이 위험한 막장에서부터 직접 몸을 부딪쳐 온 세월과 장소가 있었고 그 흔적들이 말하는 사실들에 난 귀 기울였던 것이다. 나는 그 시대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보존된 시간을 체험하며 마치 내가 그 시대를 살고 있기라도 한 시선을 갖고 말한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웠다. 지금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는 내가 그 흔적들로 볼 수 있는 시간들, 또 그것들과 이어진 지금의 마을을 보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고된 광부들의 과거의 삶, 흔적, 그 때에 대한 애잔함과 현재 그리고 그곳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해 노래하기로 했다. 내 마음이 잔잔히 울렸던 것들에 관해서 말이다.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닿지 못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Like a rolling 柴 우리는 왜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의 제목으로 정선에 갔던 걸까-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과 이야기를 하며 나름의 역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었다. 그저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섶처럼, 잡목처럼 보잘것없이 비치더라하여도 우리도 각자 나름의 관점들을 풀어나가고 있고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하고 있다. 그것이 너무나 작고 천천히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의 변화들일지라도, 시인이 되어 세상을 구하고, 시대를 노래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작은 섶이 되는 것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市,詩,時,施,視,翅 의 여섯 시인들도 있지만 정선에 가서 마주하게 시작한 시인들은 7번째 섶(시柴)의 柴인들, 우리 자신들이었다.
2009.12.15 07:50:29
나도 반야랑 tck tck tck 영상 찍으면서 이곳에서 기후변화 얘기를 하는 게 맞는 걸까?란 고민 많이 했었는데... 근데 기후변화에 대해 책임을 묻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 정선 뿐 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책임이 있는 사람만 행동을 바꾼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석탄을 캐낸 것 보다 석탄을 소비하는 데에서 환경오염은 더 심각했을 것 같고.
난 한편으로 지금 현재 정선에서 마을 주민들과 기후변화에 대해 얘기를 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란 질문이 들었는데. tck tck tck 캠페인 영상을 만들면서 든 생각은 기후변화 문제라고 한 가지의 설명 방식만 있어선 안 되는 것 같아. 말하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조금씩 바꿔야 하는 것 같아. 10대에게 말하는 게 다르고, 정선에 말하는 게 다르고 등 등. 우리가 앞으로 기후변화 얘기를 '전한다'고했을 때 그런 부분도 생각해봐야 할 듯. 물론 동녘이 하고 있는 것 처럼 하자 안에서 부터 실천을 주도하는 건 좋은데 밖으로 얘기를 퍼뜨린다고 했을 때는 말이야.
2009.12.15 07:56:10
기후변화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발생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일에 앞서
우리 삶의 형식(존재양식) 자체에 대해서 문제삼아야 할 거라는 얘기를 자주 거론하였지. 그런 맥락에서는 개인 광부들에게 책임을 묻는 일 같은 것은 아예 생각할 필요도 없을 거야. 그러니 그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거나 하지는 않아도 된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생각해보면, 어리석고 또 어리석어 역사를 이렇게 가져왔대도... 그게 인간이란 존재이고 이제서야 겨우 우리 존재의 형식에 의문을 품어보는 것이 이미 매우 늦은 때라 해도 (그래서 코펜하겐에서 또 일을 그르치더라도) 그게 우리 인간이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희망적이냐 아니냐 하승창/홍성태 선생님 들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희망이 있다 하셨는데) 어쨌든 아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다행히도" 남아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알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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