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정신 Sprit in Art - (사) 한국 루돌프 슈타이너 인지학 연구센터


 

오이리트미는 생명 -력을 깨우는 것을 도울 뿐 아니라 그것을 형성한다.

내면적으로 활발해 질 뿐 아니라 몸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내면적인 움직임에 방향성을 부여한다.

자신의 발달을 위해서 방향성을 부여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직접 하고, 연습하면서,

머뭇거리다 극복하면서 우리는 방향 선택을 시도하고 시험한다. 우리는 그렇게 발달한다.

발달한다는 것은 하는 것, 연습하는 것, 끈기 있게 지속하는 것이다. p.39

집단 안에서 예술적으로 움직이는 훈련은

개인적인 솜씨나 숙달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섬세함과 듣는 능력을 더 요구하게 된다.

한 명 이상의 파트너와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훈련임이 분명하다. p.47

치유 오이리트미의 활동은 특히 유기체의 리듬을 이루는 신진대사와 순환, 호흡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기관과 유기체는 순환과 호흡을 통해 전체 유기체의 기능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기관들의 리듬, 신경기능, 신체와 정신적 저해요소는 치유 오이리트미 활동을 통해 정상화 될 수 있다. p.66


무용은 감정적인 (정서적인) 것 및 의지가 인간의 움직이는 동작으로 흘러나가게 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는데,

이렇게 하는 가운데 또 다시 이 물질세계에 있는 운동의 기능성으로서

인간이 소질을 갖추고 있는 것만을, 더 발생시킬 뿐입니다.

오이리트미에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도 일상적인 물리적 생활에서 인간 곁에 있지 않은 것,

즉 철두철미 창조를 통해서 영적인 존재로부터 반드시 있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p.121

다만 분명히 해야 할 바는,

오이리트미는 춤이 아니고, 동작하며 노래부르는 것이며, 춤과는 상당히 무언가 다른 것입니다. p.157 

움직임이 고요함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본디 고요함이 움직임에서 생겨난 것이다.

우리는 오이리트미를 배움으로써 태초의 움직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p.175-176

오이리트미 동작예술을 말하기에 앞서 서양지성사와 관련된 다른 무용예술에 관해 말하고 싶은게 있는데,

그건 서구의 합리주의 지성이 무용예술에도 영향을 미쳐서,

모든 신체동작 예술을 고도로 아카데믹하게 훈련된 무대예술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최근 테크노 강국인 한국에서도 신체기술적인 예술의 극치미를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학교교육분야에서는 과학적 접근을 위주로 교육과학화를 이루고 있는 실정입니다. p.191

산업은 그 발달이 이루어질 수 록 인간성의 상실, 공동체의 와해, 환경파괴를 초래할 것이다! p.218


발도르프 교육이란 것이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기도 하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의 느낌, 삶을 바라보는 시선,

나와 다른 에너지를 인식하며 내게 없는 것을 더해가기도 하며, 자신이 버릴 것을 알아가는

서로간의 관계에서 배우는 교육인 듯 합니다. p.259

무용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전 인류의 예술이다. 고대의 종교적인 의식이나 춤은 모든 문화와

삶 속에서 중요한 역활을 해왔다. 동작은 항상 집단성workship 을 표현하는 핵심적인 부분 이었으며

사회적 통합을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춤동작은 삶의 경험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인간과 미와 진리와의 상호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p.290

정직하게 말하자면 현대사회는 생활 속에서 동작을 만들어내는 기회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과거 시대의 그 문화적 삶을 통해 흐르던 영감의 어떤 부분을 잃어버린 것이다. p. 291

그 본성들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가르치도록 한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그 본성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오이리트미는 육체 자체가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오히려 육체가 도구로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p.292

시간이 지날 수 록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이러한 주변에 대해 온 몸으로 참여하는

모습은 줄어든다. 그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 주변 세계와 하나가 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  10대로 들어서면 더 상처 입기 쉬워지며, 어리둥절해 하거나 고립감을 느낀다. 진정 아동기는

종말을 고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성인기로 들어가는 새로운 방식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 는 있는가? p.296

팔 주위에서 '공기의 흐름 airness'을 상상하는 능력은 환자가 팔을 움직이고 힘차게 회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렇게 하면 특정한 신체의 움직임을 만드는 것에만 주목했을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p.300 

오이리트미에서는 인간의 움직임을 통해 영혼이 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적 근원에 대한 질문을 가지는 것이 오이리트미 예술을 배우기 위한 첫번째 조건이 될 것입니다. 

...  따라서 오이리트미 예술은 삶의 예술이자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의미있는 정신적 과제의

실천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p.313

 

 

+리뷰
한국 루돌프 슈타이너 인지학 연구센터의 설립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담과 인사,
이야기들을 담은 오이리트미 특집편이었다. 오이리트미와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 발도르프 교육에 관한 이야기들또한

계속해서 거론되었다.


동작예술에 속하는 오이리트미는 우리가 말하는 언어를 동작화 하고, 내면의 움직임을 가시화 하여

마치 음악과 시가 움직임으로서 다시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예술이라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었다.

오이리트미는 1900년대 초에 시작한 굉장히 젊은 예술 중 하나인데, 현재는 예술, 교육, 치유 부분에서

그 활동들이 이루어 지고 있다고 한다.

오이리트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그들은 인지학과 슈타이너의 교육론에 관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루돌프 슈타이너께서 쓰신 오이리트미에 관한 글 또한 읽어보았는데, 지금으로서는 이 분이 참 어려운, 탐구,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라고 느끼고 있다. 말, 정신, 영혼, 내면, 이런 것들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연결되어 왔는지 글에 적혀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슈타이너 박사가 지향하는 삶이 나의 언어대로 표현하자면 ‘스스로 자신의 성장을 인지하고,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살며, 타인과 상호 교류하는 즐거움을 아는 삶’처럼 느껴졌고, 발도르프 교육이

현재의 모습, 현대사회에서 어떤 역활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오이리트미 또한 움직임으로서 그 역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에 관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곧 사회적인 관계맺음에 관한 연습이 될 수 있다는 것,

일상에서의 반복적인 리듬, 호흡과 순환이 삶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 특히나 눈에 들어왔다.

현재 즉흥춤 수업에서 진행되고 있는 함께 걷기나 타인과 공간을 인식해야만 하는 활동들이 위의 문장의 이해를 도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직 “인지학”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발도르프 교육 안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그것을 인식하고 또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면적 움직임에 집중하고, 동료들과의 만남 속에서 또한 배워나가는, 치열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진다. 알쏭달쏭한 것들이 많지만 동작, 움직임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무언가를 알아가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원래 교육, 예술, 의학계가 이런 모습 인건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인건지

아니면 정말로 발도르프만의 특수성이 있기에 이런 모습을 하고 있게 되는 건지 신기하고 궁금하게 생각한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비문명’과 근본적인 모습은 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발도르프 교육과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더욱 더 궁금해지고, 매력있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꼭 오이리트미를 배워보고 싶다. 

책 중간중간에는 오이리트미와 무용의 차이에 대한 설명들이 나온다.

무용은 테크닉적이고, 인위적인 형태를 가지고 발전해왔다. 있는 그대로의 몸을 통해 정서를 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이리트미는 몸이 보여지는 것을 위한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도구로 이용이 된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생명의 본질을 오이리트미 움직임의 흐름으로 느낄 수 있다고 책에서는 이야기 한다.

시와 춤의 가장 큰 능력은 “느낌”이라고 말씀하신 정영두 안무가님의 강연이 생각난다. 

이해하지 않고, 느끼는 것의 힘에 대해 말씀하시며 춤은 그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느끼게 한다는 것이 사실은 많이 다르다고 하는 오이리트미와 춤의 공통점이 아닐까?

혹시, 오이리트미에서의 “느낌”은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는 걸까?

보여지는 노래와 시는 대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해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중에 정말로 오이리트미를 추게 되는 날이 오면, 그 때에 이 질문을 가지고 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 알아볼만한 것: 서양지성사와 관련된 무용예술?

 

2013.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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