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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작업장글 수 85
무용의 현대 – 미우라 마사시
산업혁명은 발걸음이 가벼운 젊은이들을 시골의 농경작업에서 도시의 공장으로 내쫓고 말았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공장에는 부모로부터 자식에게도 이어져오는 정겨운 춤 같은 것이라곤 찾아볼 수 도 없으며, 공장의 직공들이 가끔씩 토요일 밤 사교댄스로 여흥을 즐기는 것은 있지만, 그것은 시골에서의 포크댄스가 축제나 경사 때마다 춤추어져 사람들이 어릴 적부터 몸소 익혀온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때까지의 춤의 원천, 즉 일상 생활에 밀착되어 있었던 춤의 즐거움과 춤 추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남성의 직장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p. 24
다수의 기록에 의하면 시골 출신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다양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키와 체중이 다르고 손 발의 움직임도 다르고 호흡의 리듬도 다를뿐더러 기질도 다르다. 동일 노동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체를 획일화 하는 훈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규격품으로서의 노동자나 병사를 만들어내기 위한 학교교육과 의무교육도 시작 되었다. 공장, 군대, 학교라고 하는 이 세가지 요소는 미셸 푸코가 언급한 이 후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지만, 그것이 신체성의 단계에 있어서는 무용을 버리고 체육을 선택한 움직임이 되어버린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p. 25 – 26 끝이 없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때문에 갖가지 이데올로기와 결합 되어진 것이다. ‘ ‘ ‘ 인간의 올바른 정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 가지로 올바른 발육의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p. 28
춤은 체육이 아니다. 인간이 다른 이들과 얽혀 살아가는 존재인 한, 춤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끝없이 존속되어 가는 예술이다. 춤이 지금 주목 받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신체를 둘러싼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다시 한 번 ‘지금까지 왜 춤을 주목하지 않았나’ 를 묻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P. 32
무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악기가 타악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타악기는 오케스트라에 있어서는 오랫동안 경시 되어져 왔다. 대단한 연습을 해야 할 필요도 없이 누구든지 연주 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이다. P. 48
오늘의 발레의 전신이라고 해야할 오페라 발레를 완성시킨 것은 루이 14세의 음악가 장 밥티스테 륄리 Jean Baptiste Lully 였으며, 발레의 다섯 개 기본 포지션을 정한 것은 왕의 무용선생이라고 할 수 있는 피에르 보샹 Pierre Beauchamp 이었다. ‘ ‘ ‘ 그리고 이들 궁정무용은 유럽 각지의 민속무용, 즉 포크댄스로부터 온 것이다. P. 57 – 58
그는 발레가 사상을 담을 그릇일 필요는 없다고 말 할 것이다. 발란신은 살아있는 동안 춤은 춤인 것만으로도 아름답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꽃은 단지 꽃일 뿐이기에 사람을 위로한다. 그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하나의 사상이 될 수 밖에 없다. P. 95 – 96 에쉬톤은 우선 자신을 음악으로 젖게 한다. 듣고 들어서 마침내는 움직임이 되어 버리고 말 때까지 그 음악을 듣는다. P. 117
우주에는 고정된 중심 같은 건 없다고 아인슈타인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무대에서야말로 어울리는 말이다. 중심 같은 것은 없다. 어디든 중심이다.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무대 위의 인간도, 뒤에서도 앞에서도 볼 수 있었다. ‘ ‘ ‘ 나의 무대에는 솔리스트도 없으며 꼬르드 발레도 없다. 누구든지 솔리스트이며 꼬르 드 발레다. P. 133 그의 댄서들은 댄서 자신이면서도 동시에, 인류의 대표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춤춤으로써 인류를 대표한다. P. 147
양성구유는, 거의 마음의 상태이다. ‘ ‘ ‘ 나는, 그녀에게 어울릴만한 안무를 생각해내기 위해 그녀가 되며, 처음에는 내 것이었던 그 춤을 그녀가 춤 출 때, 그녀는 내가 된다. 즉, 안무를 할 때 나는 양성이 된다. P. 156
무용은 음악과 문학으로 갈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어떤 때는 음악으로 기울고, 또 어떤 때는 문학으로 기운다. P. 169
뛰어난 안무가는 스타를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교향곡을 완성시킬 순수한 음만을 요구할 뿐이다. P. 181 – 182
당신이 정말로 느끼고 있는 것, 그 느끼는 방식이라는 것은, 실은 당신의 창조방식이다. 역사와 같은, 그러한 것이라 해도, 당신이 느끼고 있다는 것의 일부분 이라는 말이다. ‘ ‘ ‘ 나는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언어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언어가 무용인 것이다. 그것이 나의 감각이나 우리들의 감각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다. – 피나 바우쉬 p. 201
사람은 사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실은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발레를 예로 든다면 발레를 보는 독특한 시각, 즉 즐기는 법이 있고 사람은 그것을 배운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것이 자연스런 시각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P. 242
어떤 역사가가 이렇게 말했다. “문명은 건축으로 시작되고 무용으로 끝난다. 그 가운데에 문학이 있고 미술이 있으며 음악이 있다. P. 245
주어진 조건을 수용한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 자랑스러움이 유머를 낳는다. 비참함을 자각하는 것은 비참함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유머란 거리를 두고 세계를 바라보는 일의 별명이다. P. 270
어떠한 몸짓이라 하더라도 무용이 될 수 있다. 신체가 가지는 움직임의 모든 가능성을 추구하며, 그것을 구성해 보는 것, 구성함으로 인해 사소한 몸짓에 생각지도 못한 의미를 부여 하는 것, 혹은 부여하지 않을 수 없게 관객을 이끄는 것이다. P.275
일본 무용에 있어서 의상은 몸에 입혀지는 것 뿐만이 아니라 조종되어 진다. 춤추는 이는 소도구 한 벌을 등에 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그 소도구 한 벌을, 단 1분의 짬도 없이 조작하여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 ‘ ‘ 사람들은 춤추는 육체를 보는 것뿐만이 아니다. 육체와 의상의 절묘한 관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열연하는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파 드 듀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그 이유에서다. 의상은 때때로 꼬르 드 발레까지 생각나게 한다. P. 301 – 302
이해하기 쉽게 그려놓았다. 그래서 나 역시 그 내용들마다 안무를 함에 있어 참고 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음들이 몸에 자연스럽게 흘러들 때까지 음악을 듣고 그래서 그 음을 춤을 통해 보이게 하는 것이나, 의상을 이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누군가와 함께 추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거나, 사소한 동작들이 군무로 만들어졌을 때 낼 수 있는 힘이 엄청나다는 것 등이 있었다. 나에게 안무를 한다는 것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무대언어, 춤으로 만들었을 때에 알아야만 하고 또 필요한 여러 방식들을, 비록 글이지만 구체적으로 배워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이 방식들을 참고하며 또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은 내가 배운 예술에 대한 정의와 완전히 다른 정의를 가진 사람을 소개해주기도 하였다. 내가 아는 예술은 표현의 수단인데, 몇몇 안무가들은 춤은 춤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며 심지어 이야기의 노예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도대체 그럼 그들의 춤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되기도 하고, 춤- 예술에 관한 새로운 정의를 듣게 되어 새롭기도 하였다.
또 하나 흥미롭게 들은 이야기는 체육과 산업혁명에 관한 이야기였다. 산업혁명이 사람들의 몸을 어떻게 바꿔놓았으며 (이 이야기는 규율권력과도 연관되어 있는 이야기), 남자들이 왜 춤과 멀어졌는지 그리고 마침내, 현대인들이 생활에서 춤을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이해가 되는 맥락이었다. 몸을 깨우면서도 춤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남정호교수님과 함께 했을 때의 활동들을 참고하면서 재미있는 몸풀기 방법을 생각해보아야겠다. 그리고 우리학교에서는 오히려 남자들이 춤 추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생소한 이름들이 심지어 서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도 설명이 되어있어서, 그 헷갈리는 이름들 속에서 인물에 대한 이해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감탄하고, 몸으로 느꼈다는 작가의 말을 계속 읽어 내려가며 지금은 사라져버린 무대와 안무가에 대한 안타까움을 함께 느끼기도 하고, 클래식 발레를 제대로 보고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어렸을 때 본 무용공연들의 대부분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이제는 공연을 보러 갈 준비가 된 기분이 든다.
앞서 읽었던 “행동하는 정신- 오이리트미 ” 와는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몸을 움직일 때에 그들은 우주를 경험하고, 우주를 만든다고 한다. 단, 그 둘의 차이점에 있어서는 무용이 조금 더 물질세계에 있는 운동의 기능성을 띄고 있다는 것에 아직 동의하게 된다. 무용은 무용에 맞는 몸을 필요로 한다고, 나는 아직 그렇게 느끼고 있다. 사실, 오이리트미는 춤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고.. “보여진다, 몸을 훈련시킨다”를 아마 각각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을 거라는 예상이 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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