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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은 내겐 '시간의 축적'이었다. 멈춰있는 시간.

 어느 순간부턴가 그 순간에서 멈춰서 있는 시간. 사실 이 '축적의 산'은 광부들의 땀이기도 하다. 본의 아니게, 엄청난 양의 폐탄으로 쌓아진 산. 이 산을 보면, 40년 간의 땀에 주눅이듦며, 이 산보다 몇배의 석탄을 소비했을 생각에 또 한번 놀란다. 어찌되었든, 지금 이 산 위에는 카지노가 있다. 난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현실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역 주민들은 "지역의 흐름이 변했다", "'멍'이 들었다"고 했다. 카지노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시간'은 이전 시간들에 대한 예의가 없는 듯 하다. (재개발도, 4대강도 똑같다)


나로서는 멈춰진 시간을, 아니면 그 2개의 나눠진 시간을 당장에 다시 돌아가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옳다 그르다라고 판단 할 만한 자료도, 위치도 아니었다.

이미 사북과 고한에는 엄청난 힘의 '새로운 시간'이 흐르고 있으므로.

그 새로운 시간의 힘이 건강한지 아닌지, 그 힘을 우리는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고, 과제로 남긴다.

이 과제는 매우 커다란, 긴 과제로 남을 듯 하다.

어찌되었든, 난 이 검은산이 내가 작업한 '검은 섬'으로 남아있지 않길 바란다. 

시간은 조화롭고, 잘 흘러야 혼란에 빠지지 않지 않겠는가.




벽에 문과 창을 내는..


 정선에서의 나는 섣불렀다. 내가 정선에서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해도, 그 짧은 시간에 어떠한 '시간'에 대한 물음과 작업물은 그저 맛보기 수준에서 나온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굳건한 사회의식과 지금까지 접해온 시대의 문제점들에 대해 굳게 믿고, '이것이 문제다'라는 식으로 '문제'들만을 거들먹거렸었다. 정선에서 또한 그 공간의 '사회적 문제'인 카지노(자본)을 발견한 뒤 망서림 없이 그 이야기에만 집중했었다. 이번 학기 동안, '사회 문제!'에 꽂혀버려 한쪽 눈만 뜨고 달리는 나를 보게 되었다. 항상 목적은 단순했다. '다같이 잘 살고 싶어서'. 그치만, 자꾸 복잡한 고리들을 섬세하게 보지 못하고, 그냥 '문제'로 1차적 인식 수준에서 뱉어내기를 반복해게 된다는 것이 보였다. 이런 생각이 든 뒤로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이 과정 중에선, 섣불렀던 1차적 '뱉어내기'를 반복해왔던 섭시인 나를 인정하는 것이 오래걸리기도, 힘들기도 했다. 




그래서 계속 'art in village 예술마을 고환사북'팀의 10년이라는 계획과 접근에 대해 생각하게되곤 했고, 정선 이후의 3명에 시인들과의 만남에선 주로 그들의 문제인식과 접근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해야 '맛보기'가 아닌 맛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떤 것의 맛은 다른 맛들을 알고, 그것들과 비교를 통해서 구분을 해낼 수 있다. 그래서 난 벽을 허무는 것이 아닌, 문과 창을 내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치만, 나는 여전히 '정선의 시간', '용산 참사와 자본'과 같은 내 눈에 보이는 거대한 고리들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또 여전히 시대의식만 키워가는 책들을 읽어가고 있었다. 학기 중반 정선을 다녀 온 후, 내 눈 앞에서 하자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나와 관계있지만 멀리서 벌어진 '사회문제'들과 균형을 잡지 못해 휘청거려왔다. 난 섣부르지 않기 위해선, 더욱 더 근거(논리)있게 비판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다'라는 것을 내가 확인하기 위한 학습을 했다. 불과 얼마 전에 발표한, 내 연구주제 또한 그러했다. 몇일 전 히옥스는 나에게 '80년대 사람 같다'는 코멘트를 하셨다. 이 코멘트는 휘청거림에 마지막 힘을 더해, 쓰러지게 했다. 섣부르지 않기 위해 했던 과정 중에 어떤 부분의 '시대착오'라는 오해를 생각해보게 했다. 학기 중간 점검을 하며 문뜩, '나는 나아가고 있는 걸까'라는 회의감이 든다.



 지금 나는 앞으로를 상상한다. 지금까지 중요하게 중심에 있었던 '시대의식'과 그것으로 인해 보이는 '사회문제'들은 '시민'이라는 것으로 이제 확실히 기본이다. 내가 시민으로서 마땅히 관심을 갖을 수 밖에 없는 것. 이제는 작별이 아닌, 내 안에 있는 많은 방들 중 한 방으로 위치시키려 한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해온 학습 방식인, 사회문제인식에서 시작된 관찰과 그것을 <파내고> 바꾸기 위한 요구의 <이야기들만>이 주를 이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카메라, 이미지라는 매체에 많은 시간을 쏟으며, '나의 언어'라는 것을 갖고 싶기도하다. 헌데 나는 둘 정말 중요한 학습이지만, 이 둘을 항상 나누어 놓았었다. 그리고 난 늘 전자의 학습을 택해왔다. 전자의 학습은 정말 중요했지만, 불편하고 어려웠다. 그래서 매번 섣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행히도 이쯤되면 '기본이다'라는 확신이 선다. 문제를 다 알아서 기본이 아닌, 내가 의식적으로 그것들을 찾아나서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 눈이 '사회적 문제'들을 관찰하고 있다.   


요즘 다시 '관찰', '학습', '작업'이라는 것에 다시 생각하게 된다. 

관찰이라는 것은 '문제를 확인하고자하는 상태에서 하는 파내기'가 아닌 '열린 상태에서 보이는 것들을 능동적으로 잘 정리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학습'이라는 것은 '두서를 갖춰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변화)'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작업'은 내가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는 것들을 손을 사용해서 정리해보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목적에 있다. 나는 맛보기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  이 '관찰', '학습', '작업'이라는 이 세가지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을 지속할 것이다. 아직 더 쪼개진 작은 그림이 그려지진 않는다. 앞으로도 섣부를지도 모른다. 난 계속해서 다 같이 잘 살기 위해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을 것 같다. 그치만, 해답은 제대로 된 관찰과 '학습'이라는 것에 작업(내비치기)을 함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이 내 머릿속에 잘 쌓이고 있는지를 확인 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앞으로 사회문제들과 나의 일상(학교)와의 관계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할 것 같다.  


정선에서 난 '무엇을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하기 시작했었다. 다시 하자로 돌아와 섭시인 나와 시인들을 비교하며, 질문이 변하기 시작했다. 내 눈이 보는 것을 '<어떻게> 말 할 것인가'로. 사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 한 볼 수 있는 것들은 충분했다. 그래서 난 일단에 항상 우선 순위에서 밀려왔던, 위에서 말한 후자의 학습에 좀 더 무게를 실어주고 싶다. 능력이 좋다면 두가지를 한번에 하면 좋겠지만, 또 다시 문제들로 인한 '분노'와 '말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사로잡혀 균형을 잃게 될 것 같다. 짧지만 2달 동안 '자기언어'와 '판'을 갖은 3명의 시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나는 허물벽이 아닌, 그 벽에 새로운 문들을 내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내가 앞으로도 '사회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한다면, 생각할 수록 복잡해져 풀기를 꺼려왔던 '복잡한 고리'들을 섬세하게 보려 해야 한다. 그리고 기르는 과정 중에 그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문'을 내어 계속해서 밖으로 내비쳐야 한다. 난 앞으로 이 '문'에 대한 학습에 집중하려 하는 것이다. '나의 언어'라는 것. 그것이 '매체'일 수도, 곧 그것이 바깥과 소통 할 수 있는 '문'이 될수도 있지 싶다. 그렇게 내 안에 섣부른 것들을 체크받고, 나누고 싶다. (그렇게 어떤 '시대착오'를 머릿 속에 넣고 있는 사람이 아닐 수가 있겠지.) 이렇게 '판'을 기본으로 나눔을 통해 '복잡한 고리'들에 대해 내 눈만이 아닌,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이 보고 있는 고리들을 보다보면 섬세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난 내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싶어 자신감도 없고 두려워하곤 했다. 그래서, 질문을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나의 첫 창(매체)인 '이미지'라는 것으로 지금까지 용산을 통해 쌓아온 이야기들과 만들어 갈 이야기가 밖으로 내비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싶다.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작업자'이고 '시인'이라고 떳떳하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입으로, 내 매체로 말해보기. 그렇게 머리와 손의 조화를 훈련하는 것. 그 훈련에서 나온 작업물로 스스로를 체크하고, 보는 이에게 영감이나, 움직임을 주는 변화들이 이곳 하자에서 내가 해야 할 '학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내가 갖고 있는 시대의식들을 잘키워나가는 것 또한 소중히 할 것이다. 무엇보다 섬세히보기 위해.  그래서 좀 진득하니 나를 정리하며, 나의 '언어(매체)'라는 것에, '<어떻게> 말할까'라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이것이 창(언어)을 갖은 '시인'으로의 성장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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