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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로 다시 본 평등
View more documents from guest46fb0cd. 여성주의로 다시 본 평등 자급자족을 하던 봉건사회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근대 사회가 등장함에 따라, 일터와 집은 각각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으로 분리되었다. 이 말은 실제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구분되었다는 게 아니라, 공․사 분리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남성은 노동자의 모습으로, 여성은 모성의 담지자로 대변되기 시작한다. 여성에게 사적인 영역은 ‘불편하고 피곤한’ 곳이다. 가부장제의 틀 속에서 여성은 현모양처로서 지조 있고 단아하게 육아, 집안 일, 남편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한 때 대중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말은 이러한 여성의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남성에게 사적인 영역은 안락한 곳이다. 공적인 영역, 일터에서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함으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집에서 만큼은 쉬고 싶은 것이다. 남성은 사적인 영역에서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지만, 여성은 반대로 공적인 영역에서 프라이버시를 존중받을 수 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여성은 공적인 영역으로 진출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도 여성의 사회진출은 달갑지 않은 대우를 받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장 여성은 커피를 타고 복사를 하는, 이른바 ‘Miss Lee’의 역할을 해야 했다. 이것은 공적 영역에서조차 여성이 남성을 돌봐주는 행위자로만 간주되는 대표적 사례이다. 사적인 영역이 여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대중은 1)‘골드미스’라는 신조어의 등장으로, 여성이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대한 부분적 부정을 한 것에 긍정을 표했다. 하지만 골드미스가 아닌, 결혼한 직장여성의 경우는 어떨까? 만약 이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잘 하되 회사 일을 잘 못할 경우 ‘여자가 다 그렇지’라는 비판을 받고, 반대로 회사 일을 잘 하되 가사노동에 소홀할 경우 ‘여자가 왜 밖으로 나와서는’ 같은 야유를 산다. 그렇다고 회사 일과 가사노동 모두 완벽하게 해내면 몇몇의 인정을 받고 부러움을 사기는 하나, 남편이 여성보다 낮은 지위에 있을 경우 ‘남편 기죽이려고 나왔냐’는 이론에 짓눌린다. 이렇게 ‘뭘 해도 문제’인 상황에 여성들은 ‘남자도 가사노동을 하라’고 외치지만,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너희도 국방의 의무를 하라’는 반대 세력과의 분쟁이 일어난다. 하지만 여성은 이미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에 진출했다. 남성 또한 사적인 영역으로의 진출이 필요한 시기이다. 세계 인권 선언문에도 나와 있고, 한국의 헌법에도 나와 있듯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진다. 어디까지가 인간의 범위인가라는 질문이 어처구니없을 지도 모르겠으나, 사회에 나타난 큰 문제들은 이미 인간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의 식민지화 당시 위안부 여성은 일본군에게 있어 인간이 아닌 사적인 영역, 안식처로서의 역할을 해야 했다. 이 상황은 위안부 여성이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청소년인권을 강조할 때 두발자유 같은 문제제기를 하는 것 또한, 인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맥락에서 드러난 주장이다. 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대부분의 사회적 약자 계층은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범위는 강자와 약자의 대립구조에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강자만을 위한 인권의 범위가 넓어지지 않는 이상, 한국 사회만 보더라도 ‘발전’이나 ‘진보’는 어렵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 움직이는 역동적 가치, ‘인권’을 누구의 시각에서 보느냐는 대단히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남성에게 사적인 영역은 아첨과 경쟁 및 노동이 없는 안락한 공간이다. 때문에 남성에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은 구조와 원리 자체가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남성에게 사적 영역에는 프라이버시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나 법이 침입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남성은 사적인 영역을 소유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때문에 가정폭력 당시 법정에서 남성이 주장하는 것은 “집안일에 참견 마쇼”다. 집사람은 패도되는, 한 나라의 시민이 아닌 그저 자신이 소유한 ‘집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은 이러한 공․사 영역 분리 이데올로기가 적용되지 않는다. ‘남성을 돌보되 남성의 소유물’인 모순된 역할(예를 들면 Miss Lee)을 두 영역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에게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다. 남성 테두리 안에서만 주장되어 온 ‘개인’의 의미를 보다 넓은 시야로 확장해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다. 새로운 세계에 접했을 때 느껴지는 이물감 또한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것이 사실 의도적으로 감춰진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 대항하고자 하는 분노가 요동친다. 또한 분노에 대한 불평의 단계를 넘어 조사하고 알아간 후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것에서 무한한 성취를 얻을 수 있다. 여성주의는 삶을 행복하거나 편안하게 하지 않는다. 기존에 겪어온 이물감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과정은 불편함을 준다. 여성주의뿐만 아니라 지배규범 및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이 언어들은 삶을 수동적으로 ‘살아지게’ 만드는 게 아닌, 주도적으로 쟁취해나가는, 의미를 부여하도록 지지해준다. 또 이러한 일상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질문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도와주며,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대화는 일방적인 통보가 아니다. 대화는 나와 상대가 서로를 들여다보는 과정에 몰입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대화는 상대방을 무릎 꿇게 만들지 않고, 이해하려고 한다. 때문에 대화의 관계 속에서 나와 상대는 서로 갖고 있는 이야기를 조합하고, 수정하는 ‘재창조의 과정’을 갖는다. 여성주의는 남성 관점의 객관을 지우고 새로운 역사를 쓰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여성이 강자의 위치가 되어 인권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여성주의는 대화를 통해 지금까지 사회에 통용되어온 ‘상식’이나 ‘객관’을 부분화, 맥락화 하여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한다.
페미니즘 공부를 하며, 페미니즘 영화를 보며 다시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질문하게 되었다. 페미니즘 공부는 나의 일상을 맥락화하도록 도와주었다. 나로부터 출발한 불만이 사회의 큰 이슈가 되고, 문제로 나타났고, 나는 그 지점에 대해 지적하는 작업을 원했다. 때문에 내가 페미니즘 공부에 끌리는 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내가 첫 번째로 펼친 책은 <페미니즘의 도전>이다. 한국 사회 일상의 성 정치학을 제시한 이 책에서 나는 강자와 약자의 대립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수없이 ‘불평등하다’고 말해온 것들 속에서도 강자와 약자의 대립이 존재했다. 강자와 약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 ‘평등’을 지지하고 싶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평등이 ‘같아지는 것’, ‘동일시되는 것’이 아닌 ‘공정함’을 추구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하자 일곱 가지 규칙은 폭력을 지양하고 있다. 또한 죽돌들도 차별을 지양하고, 평등을 지향한다. 나는 내가 함께 작업하고 있는, 함께 ‘대화’하고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함께 소통할 사람들과 평등에 대해 나누고 싶다. 다음 연구주제는 여성 영화감독의 영화들이다. 여성 영화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또, 연구 내내 시나리오 쓰기를 병행하여 내가 찍은 10대 청소녀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 지금 사회에서 나를 포함한 청소녀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잘 담겼으면 한다.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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