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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이 산은 내겐 '시간의 축적'이었다. 멈춰있는 시간. 어느 순간부턴가 그 순간에서 멈춰서 있는 시간. 사실 이 '축적의 산'은 광부들의 땀이기도 하다. 본의 아니게, 엄청난 양의 폐탄으로 쌓아진 산. 이 산을 보면, 40년 간의 땀에 주눅이듦며, 이 산보다 몇배의 석탄을 소비했을 생각에 또 한번 놀란다. 어찌되었든, 지금 이 산 위에는 카지노가 있다. 난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현실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역 주민들은 "지역의 흐름이 변했다", "'멍'이 들었다"고 했다. 카지노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시간'은 이전 시간들에 대한 예의가 없는 듯 하다. (재개발도, 4대강도 똑같다) 나로서는 멈춰진 시간을, 아니면 그 2개의 나눠진 시간을 당장에 다시 돌아가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옳다 그르다라고 판단 할 만한 자료도, 위치도 아니었다. 이미 사북과 고한에는 엄청난 힘의 '새로운 시간'이 흐르고 있으므로. 그 새로운 시간의 힘이 건강한지 아닌지, 그 힘을 우리는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고, 과제로 남긴다. 이 과제는 매우 커다란, 긴 과제로 남을 듯 하다. 어찌되었든, 난 이 검은산이 내가 작업한 '검은 섬'으로 남아, 하얀 불빛으로 씻겨줘야하는 '섬'으로 남아있지 않길 바란다. 시간은 '섬'처럼 동떨어지는 것이 아닌, 조화롭게 잘 흘러야 혼란에 빠지지 않지 않겠는가. 여전히 섣부른. 정선에서의 나는 섣불렀다. 내가 정선에서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해도, 그 짧은 시간에 어떠한 '시간'에 대한 물음과 작업물은 그저 맛보기 수준에서 나온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굳건한 사회의식과 지금까지 접해온 시대의 문제점들에 대해 굳게 믿고, '이것이 문제다'라는 식으로 '문제'들만을 거들먹거렸었다. 정선에서 또한 그 공간의 '사회적 문제'인 카지노(자본)을 발견한 뒤 망서림 없이 그 이야기에만 집중했었다. 이번 학기 동안, '사회 문제!'에 꽂혀버려 한쪽 눈만 뜨고 달리는 나를 보게 되었다. 항상 목적은 단순했다. '다같이 잘 살고 싶어서'. 그치만, 자꾸 복잡한 고리들을 섬세하게 보지 못하고, 내가 할 수 있는 1차적 인식 수준인 '자본의 문제'에서 뱉어내기를 반복해게 된다는 것이 보였다. 이런 생각이 든 뒤로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이 과정 중에선, 섣불렀던 1차적 '뱉어내기'를 반복해왔던 섭시인 나를 인정하는 것이 오래걸리기도, 힘들기도 했다. 나는 정선에서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시야가 '자본'이라는 고리만을 보고 있음에 충격을 받았었다. 난 또 다시 섣부름을 범하지 않기 위해선, 더욱 더 근거(논리)있게 비판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다'라는 것을 내가 확인하기 위한 학습을 했다. 불과 얼마 전에 발표한, 내 용산의 문제를 권력과 토건자본의 불순함을 중심으로 풀어간 연구주제 또한 그러했다. 몇일 전 그것을 본 히옥스는 나에게 '80년대 사람 같다'는 코멘트를 하셨고, 사이다는 '여전히 자본의 문제'로만 풀어간다는 코멘트를 하셨다. 난 이 코멘트에 또 다시 충격을 받았다. 섣부르지 않기 위해 했던 과정이 또 다시 섣부름을 만들어냈고,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시대착오'에 대한 부분들까지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기 중간 점검을 하며 문뜩, '나는 나아가고 있는 걸까'라는 회의감이 든다. 난 지금까지 중요하게 중심에 있었던 '시대의식'과 그것으로 인해 보이는 '사회적 문제'들을 조급하게도 '다 알꺼야!'라며 접근해왔었다. 때문에 지금처럼 나의 섣부름을 보게되면,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픽픽 쓰러지는 것 같다. 난 지금 내가 깨닳은 나의 '조급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행히도 이쯤되면 '기본이다'라는 확신이 선다. 문제를 다 알아서 기본이 아닌, 내가 의식적으로 그것들을 찾아나서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 눈이 '사회적 문제'들을 관찰하고 책임감을 갖기 때문이다. 내가 시민으로서 마땅히 관심을 갖을 수 밖에 없는 것. 나는 이제는 작별이 아닌, 내 안에 있는 많은 방들 중 한 방으로 위치시키려 한다. 그렇게 '다 알꺼야!'라는 조급한 태도를 반성하고 정리하며, 섬세하기 위한 노력으로 다시 일어설 것이다. 지금 나는 나를 돌아보며, 앞으로를 상상하려 한다. 좋은 질문을 남기는 이번학기 동안 매일 알게 되는 정보, 코멘트들을 내것으로 소화하기 위해선, 그것들에 대한 질문과 자기정의을 해야 했다. 예를 들어, '마을의 예술가'라는 새로운 입장이 내 귀에 들어왔을 때, 그것에 대해 쪼게어 <'마을'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선 생소한 그리고,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돌봄과 우정의 가장 기초적 공동체이고, '예술가'는 잘은 모르지만 사회적 책임감을 거부하며 굉장히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자연스럽게 시대의 문제들을 다루는 사람도 있어. 근데 난 후자의 예술가가 좋아. 그럼 '마을의 예술가' 돌봄과 우정의 가장 가장 기초적 공동체에 속한 추상적이거나, 그 마을의 문제에 대한 작업을 하는 사람이야. 어? 나도 후자의 역할을 하는'마을의 작업자'가 되고 싶어.. 근데 예술은 도데체 뭐지?(알고싶어). 정선에서 정현씨가 틀어준, '앞산전'을 봤어. 근데 그 예술가는 자신과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자기자신의 상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예술을 하고 있어. 이것을 틀어준 정현씨의 의도는 뭐지?. 예술마을팀의 작업은 예술의 관점에서 정선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10년이라는 계획과 '마을의 예술가'라는 것을 강조하는데. 이건 모순아냐?. 근데 '예술가의 관점'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는거지?(알고싶어). '앞산전'의 작가는 그 마을이 아니라도, 어디서든 똑같은 작업을 할텐데?. 애매하네..등등>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예술'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정선의 사회적 문제,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 등. 너무나 큰 질문들이 '마을의 예술가'라는 한가지를 통해서 몰려오곤 했다. 그렇지만 이 질문들을 해결 할 새도, 예술이라는 것을 알아볼 틈도 없이, 서울로 돌아와 질문이 해결되지도 않은 체로 리뷰를 하고, 개인연구주제 발표 준비를 하게되고. 그러다보니, 나와 직결되어 스스로에게 '나의 이야기', '나의 언어', '나의 태도'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고, 회의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래서 정선에서 얻은 '마을의 작업자'에서 뻗친 가지들을 충분히 알아 줄 시간도 없이 학기 중간정리를 하게 된다. 이렇게 쌓이다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때문에 학기 중에 늘 버겁고, 안타까웠다. 그렇게 많은 질문을 해댔지만 어느 순간부턴 기억을 해내지 못하니, 나의 앎의 수동성을 깨우치며,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문뜩 나는 '좋은 질문'을 만드는 사람인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기 중에도 히옥스가 좋은 질문에 대한 언급을 하셨었지만, 나는 이제와서야 어떻게 하면 나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에게도 자주 질문을 했다. 대부분 '나는 왜 이것을 고민하나'처럼 의심의 질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계속해서 원점으로, 원점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양상은 이런 나에게 "너가 정말 너 자신에게 좋은 질문을 하고 있는거냐"라며, 꾸짖으셨다. 나는 나 자신에게 좋은 질문이 아닌, 나를 부정하는 나쁜 질문을 해왔다. 내가 왜 용산에 열이 나는가, 사실 내가 열이 나는 것은 '용산'만이 아니라, 내 눈에 보이는 구조적 부도덕과 부조리들이다. 사실 나의 이런 분노와 감수성에 대해 나 스스로가 던지는 '왜'라는 질문은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뚜렷하고, 명확한 답이 보이질 않았다. 답이라곤 '이러면 안되는거 잖아요.', '체제에 문제가 있잖아요'에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역사적 근거들은 내가 공부를 할 수록 조금씩 쌓여갔지만, '굳이 왜 니가?'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난 지금 이것을 과거시제로 써내려가고 있다. 나는 더 이상 내 '감수성'에 대한 의심을 해서는 안된다. 현재와 미래의 '어떻게'를 추적하고, 고민해야 한다. 나는 이것 또한 잊어선 안된다. 앞으로 나는 상황에 따라 '왜'가 아닌 '어떻게'를 물을 것이다. '어떻게'라는 질문은 '왜'와는 다르게 계속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묻고, 상상 할 수가 있다. 내가 어떻게 이 생각을 했지?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할꺼지?. 나의 '섣부름'에 한몫은 다양한 시각에서 묻지 않았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만큼 '자본'으로만 읽는 것. 난 '어떻게'와 함께 질문들을 항상 다양한 시각에서 던져야 한다.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의식적으로 생각해보기 위함이고, 다양한 시각에서 던지는 것은 다양하게 생각해보기 위함이다. 이제부턴 내가 하게되는 '질문'들을 의식적으로 '좋은질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볼 것이다. '좋은 질문'은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물음표에 응답하는 '어떻게'들을 어떻게든 기록해놓고, 느낌표로 쌓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런 질문과 쌓아감이 앞으로의 '어떻게'를 상상하고, 생각이 커가는데 도움이 되리라는 걸, 에세이를 쓰며 깨닳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질문'이 참 의미를 갖는 것 같다. 나와 너 민욱은 '어떻게 너의 현실에 살아갈 수 있을까'라며, 물음을 하는 '나'와 맺는 무한한 '너'들과의 관계 사이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을 풀어가고, 제시한다. 난 언젠가부터 내가 중요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작업)가 내가 있는 이곳 하자의 '너'들에겐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왔었다. 또한 정선에서 나의 이야기의 섣부름을 보게된 뒤론, 더욱 자신감도 없고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싶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두려워하곤 했다. 질문을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헌데 시인들을 만나며 멀리 사회적 문제들만을 바라보던 나에게 또한 '나의 마을(주변)'이라는 질문이 생겼었다. 나는 나의 일상인 이곳 하자에서부터 '나'와 '너'들의 이야기가 섞인 '우리의 이야기'를 고민하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란 '나'와 '너'들이 지키고 싶은 것들을 잘 가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그 '나'와 '너'들과의 관계 사이에서 내가 중요하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 또한 섞일 수 있길 바라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시인들'워크숍을 마무리하며, 물리적으로 나와 가까운 하자의 '너'들 또한 자신들의 흐름과 하자 밖의 거대한 흐름(제도) 대한 반문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작 커다란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이야기했던 나는, 내 주위에는 너무 무심했다는 것을 깨우쳤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회적 문제'들을 보는 것과 동시에 내가 서있고 몸이 있는 내 주변에서 시작하고, 성의를 쏟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렇게 '나'만이 아닌, '나'와 '너'들을 기본으로 '복잡한 고리'들에 대해 내 눈만이 아닌,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이 보고 있는 고리들을 나누다보면 섬세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헌데, 여전히 '너의 레퍼런스'라는 물음에 '이곳 하자'라고 명확하게 답하기가 조심스럽다. 내 섣부른 이야기가 하자의 '너'들과 섞일 수 있을지, 섞인 그 다음에 이야기가 상상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난 '기후변화'와 '시민'을 이야기하는 '너'들을 본 뒤로, 작업자로서의 첫 나의 마을에 대한 고민을 '이곳 하자'에서 만들어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난 이곳 하자의 '너'들과 '좋은 질문'을 나누며, 같이 나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다. 언젠가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좋은 물음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받은 질문으로 나를 생각하게 되고, 때론 나아가기도 하니까. 나에게 '왜'라는 것을 '어떻게'로 바꿀 수 있게 해주었던 것도 이 곳 하자의 '너'의 질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용산에 발을 내딪을 수 있었고, 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렇게 나도 다른 사람에게 생각의 폭, 전환을 줄 수 있는. '영감'을 줄 수 있는 질문을 하는 '너'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좋은 질문'이 생기는 것은 타인의 이야기를 성의있게 듣는 것으론 부족했다. 지금은 그 이상으로, 나 자신의 이야기에만 향해 있던 감각들을 타인에게까지 넓혀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성의'를 넘어, 공유하여 공부하고 감각까지도 쏟는 것. 그렇게 하여, 나와 너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풍성해지고, 영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지 싶다. 서로 다른 현실들을 살아왔지만, 서로가 원하는 현실을 제시하고 가꾸어 갈 수 있는 '하자작업장학교'가 떠오른다. 허물벽이 아닌, 그 벽에 문과 창들을 내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요즘 다시 '관찰', '학습', '작업'이라는 것에 다시 생각하게 된다. 관찰이라는 것은 '문제를 확인하고자하는 상태에서 하는 파내기'가 아닌 '열린 상태에서 보이는 것들을 능동적으로 잘 정리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학습'이라는 것은 '두서를 갖춰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변화)'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작업<내비치기>'은 내가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는 것을 손을 사용해서 정리해보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목적에 있다. 나는 맛보기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 이 '관찰', '학습', '작업'이라는 이 세가지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을 지속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관찰'의 학습에 많은 힘을 썻지, '학습'의 연장인 '작업'에 까지는 충분한 힘을 쓰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두가지 학습 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둘을 항상 나누어 놓았었다. 그리고 난 늘 전자의 학습을 택해왔다. 전자의 학습은 정말 중요했지만, 불편하고 어려웠다. 그리고 '혼자서'하는 학습의 시간이었기에 매번 섣부를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해온 학습 방식인, 사회문제인식에서 시작된 관찰과 그것을 <파내고> 바꾸기 위한 요구의 <이야기들만>이 주를 이루는 것이 아닌, 그 이야기들을 밖으로 내비치는 학습(작업)과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섣부른 '맛보기'가 아닌 맛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떤 것의 맛은 그 맛을 만든 재료들을 알고, 다른 맛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정선에서 난 나의 관점을 부정하며 '무엇을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하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하자로 돌아와 섭시인 나와 시인들을 비교하며, 질문이 변하기 시작했다. 내 눈이 보는 것을 '<어떻게> 말 할 것인가'로. 사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 한 볼 수 있는 사회적 문제와 고리들은 충분했다. 난 그 보이는 것들을 밖으로 내비쳐 체크받고, 알릴 수 있는 <어떻게>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했다. 짧지만 2달 동안 '(마을)판'과 '자기언어'를 갖고, 섬세한 문제인식으로 '자신들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3명의 시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내가 앞으로도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한다면 생각할 수록 복잡해 꺼려왔던 '복잡한 고리'들을 섬세하게 봐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론 진득하니, 섬세한 눈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기르는 과정 중에 그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문'을 내어 계속해서 밖으로 내비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언어'라는 것. 그것이 '매체'일 수도, 곧 그것이 바깥과 소통 할 수 있는 '문'이 될수도 있지 싶다. 그렇게 내 안에 섣부른 것들을 체크받고, 나누고 싶다. (그렇게 어떤 '시대착오'를 머릿 속에 넣고 있는 사람이 아닐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나의 첫 창(매체)인 '이미지'라는 것으로 지금까지 용산을 통해 쌓아온 이야기들과 만들어 갈 이야기가 밖으로 내비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싶다.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작업자'이고 '시인'이라고 떳떳하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입으로, 내 매체로 말해보기. 그렇게 머리와 손의 조화를 훈련하는 것. 그 훈련에서 나온 작업물로 스스로를 체크하고, 보는 이에게 영감이나, 움직임을 주는 변화들이 내가 있는 이곳 하자에서 해야 할 '학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일단에 항상 우선 순위에서 밀려왔던, 위에서 말한 '문'에 대한 학습에 좀 더 무게를 실어주고 싶다. 능력이 좋다면 두가지를 한번에 하면 좋겠지만, 또 다시 문제들을 볼 때의 '분노'와 '말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섣부름을 반복하게 될 것 같다. 앞으로 내가 갖고 있는 시대의식들을 잘키워나가는 것 또한 소중히 할 것이다. 무엇보다 섬세히보기 위해 노력 할 것이다. 그렇게 좀 진득하니 섬세함을 학습하며, 나의 '언어(매체)'라는 것에, '<어떻게> 말할까'라는 것. 일단에 이미지를 만지는 것을 좋아하고 작업 중인 나는, 이곳 하자에서 서툴지만 '이미지'라는 언어로 시작하여 계속 훈련하고자 한다. 그렇게 좀 나를 정리하며, 내가 즐거운 일을 하려한다. 지금처럼 중간 점검을 하며, 나를 돌아봤을 때 '회의감'만으로 했던 것을 무시한 체, 다짐만 있는 에세이의 마지막 이길 그리고 창(언어)을 갖은 '시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길 바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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