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워크숍을 통해서 나는 내 입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입장에 대한 고민은 내가 발을 들이는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내가 하는 행위에서도 '나의 입장'이라는 고민이 생긴다.
하승창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나만, 내 내면만을 돌아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 주위에 나를 둘러싼 세계와 생명에 대해 인식하고 되돌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꿈꾸는 세상’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그것에 따라서 어떤 시민이 될 것인지가 결정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셨다.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나를 둘러싼 세계와 생명’에 대해 조금씩 인식하게 된다. 모두 다 알고 인식하기에는 세상에 너무 많은 것들이 있지만 결코 나를 둘러싼 것들이 나와 관계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범위는 대개 나를 둘러싼 세계다. (나의 행동영역이 비록 내 주변이 될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나의 기억과 생각의 주제는 ‘나를 둘러싼 세계’가 된다. 그 세계를 인식하는 생각 속에서 내 내면을 돌아보는 일은 중요한 것 같다. 어떤 것을 인식하든 주체는 내가 되는 것이니까.
나는 내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이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나는 충분히 주체적인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매번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려는 연습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누구에 의해’가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이 주체가 된 적은 많지 않았다. 상황에 의해서 행동의 범위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고, 내 주관을 갖고 무언가를 해가는 것이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 자신에게, 내가 하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광범위할 수도 있는‘나’에 대해서 막연한 고민을 하고 있다. 답을 내기 위한 고민은 아니지만 앞으로 나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면 아직까지 머뭇거려지는 지점들이 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에 ‘나’가 들어있는 것은 중요하다. 문제의식을 느낄 때 역시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면 나에게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생각하고 행동하기까지 의식의 계기는 다른 것이 될 지라도, 생각과 행동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살고 있다. 이 과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나’에 대한 확신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주체성은 그런 확신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내가 고민하는 주체성과 주관은 결국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것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관계에서 많이 형성되는 것 같다. 아직 내가 하려는 것과 원하는 것에 뚜렷한 자신이 없는 나에게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내 것으로 받아드리는 것과 현재의 나를 받아드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 지는 더 고민을 만들어 가야하고, 그런 과정을 ‘나’로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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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문화 워크숍을 통해서 ‘시민’이라는 말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빗대어 고민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시민이다’라고 하기에 ‘시민’이라는 말은 나에게 너무 어색한 말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자신이 없다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다’라고 쉽게 말 할 수 없다. 나는 ‘디자인을 하겠다’라는 생각보다 디자인을 도구로 8개월 과정의 배움을 얻고, 풀어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하며 나는 내가 하는 것에 내가 했다는 행위가 묻어나길 바란다. 또 나의 행동이 어떤 쓰임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나의 일이 오로지 나만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연결된 관계 속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으면 한다.
“어떤 시민 한 사람의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하승창 선생님의 말이, 나의 생각을 생각에서만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며 그 행동을 영향으로까지 미치게 하려는 가짐이라고 생각했다. 그 가짐은 ‘무엇을 하려고 하고,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와 연관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시민의식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요번 시민문화워크숍을 하면서는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행동이 시민의식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조금 더 깊게 생각하게 되면서, 시민의식에서 더 나아가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에 더 중점을 두게 되었다. 시민은 의식을 한다는 것 자체에도 의미가 있지만 그 의식이 더 퍼지기를 바라는 행동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사실 나는 시민의식을 아주 큰일에서부터 가져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막연하고 쉽게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기후변화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양치를 할 때 컵에 물을 받아서 하는 아주 작은 행동도 시민의식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시민’은 그런 작은 행동에서 큰 행동까지를 퍼트리면서 어떤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로부터 시민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 의식을 나누면서 함께 의식하자, 관심 갖고, 행동하자는 생각이 더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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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사람의 개인이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기도 한 집단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나 한사람으로서 맺고 있는 관계의 가지는 수도 없이 많으며 그 관계 속에서 나는 한 시대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또 나와 이어진 관계를 인식했을 때 나는 내 밖으로 시선을 두게 된다. 내가 관계 맺고 있다고 생각하는 관계는 보통 나와 연결된 사적인 사람들과의 관계이지만, 시민문화워크숍을 통해 더 생각하게 된 관계는 내가 세상에 속해있다는, 나와 세상의 관계이다. 사적인 관계 역시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연관된 관계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내가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 순간 한 순간 내 현실을 받아드리려고 할 때는, 그 현실이 나만의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수많은 관계와 엮여있는 나 역시도 조금만 관심을 두지 않아도 내 현실과 다른 현실을 구분 짓게 된다. 내가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나와 먼 일이라고.
내가 ‘세상과 나’의 관계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그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 '세계'는 나의 일상이 될 수도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차지하는 세상에서의 범위는 작지만 한 사람이 갖게 되는 역할의 힘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사회를 바꾸겠어!"하는 야망을 품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보고, 듣는 것이 어떻게 생각으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아가 나의 입장에 대한 인식은 더 고민해 봐야하는 지점이다.
어렸을 때 관계를 두고 자주 했던 말은 ‘공동체’였다. 그만큼 ‘공동체’라는 말은 지금까지 익숙한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익숙한 공동체라는 말에 가끔 의구심이 든다. 왜냐면 과연 내가 그 공동체 속의 한 사람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공동체 속에 나를 집어넣으려고만 했지, 내가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나’라는 사람으로 공동체 속에서 얼마나 존재했었나 의심이 된다. 그래서 거의 십년이 넘는 시간을 ‘공동체’라 부르던 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가 뭘까에 대해 다시 의문을 갖게 되었다. 어렸을 때 기억으론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다.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각각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었으며, ‘다름’이 모였기 때문에 다양함이 있었다. 하지만 공동체 속에서 서로가 부딪치는 지점은 언제나 다르기 때문이었고, 다름을 받아드리지 않아서였다. 한 공간에 있는 각각 다른 사람들은 다른 환경을 갖고 있다. 다른 것들이 모여서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함께 무언가를 지향한다는 것은 각각의 다름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일 수 없고, 같은 것만을 바라볼 수 없지만 그 과정을 겪으면서 소통하고, 관계 맺기를 하고, 자신의 욕구를 발산하기도 하면서 지향점을 만들어간다. 사실 이 나의 생각들은, 너무 구체적이지 않고, 시야가 좁은 생각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공동체는 무엇'이라고 자신하기 어렵다.
공동체나, 팀, 이런 명칭은 너무 쉽게 사용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했을 때는 정확한 내 생각을 말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그 모인 집단을 부르는 명칭이 정해지기 마련인데, 그 명칭 속에서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된다. 나는 지금 시점에 어떤 관계 속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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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표현하는 것과 나를 설명하는 것, 또 내가 속한 어떤 관계를 생각할 때 나를 먼저 염두에 둔다. 하지만 나를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는 소홀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나를 통해 무언가를 꺼내려는 행동에서는 늘 서툴다. 함께 어떤 관계를 만들고자 한다면 먼저 나의 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내가 공간 속 관계를 만들고자 한다면 나를 통해 나아가려는 나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나를 통해 무언가를 밖으로 꺼내 놓으려는 연습과 나의 사적인 어떤 것을 어떻게 공적인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연습 또한 필요하다.
임민욱 시인은 "예술가는 정치가 해놓은 세상에서 다른 언어를 갖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말씀을 하셨다. 예술가라는 입장에서 다른 언어를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다른 언어를 갖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은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시민의식’과도 연관되는 생각이다. 세상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생각을 자신을 통해 밖으로 꺼내 놓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이 그런 생각이었다. 내가 어떤 언어를 가질 수 있을 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언어가 있기를 바라고, 나의 기억과 나의 이야기를 내 밖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며 다른 사람과 나의 관계, 연결고리에 관심을 두었으면 한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인식하면서 내 내면에 머무는 생각들을 조금 더 크게 늘릴 수 있었으면 한다.
나는 내 언어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나만의 언어가 있지 않더라도 그 언어로 표현되기까지의 충분한 생각을 가져야한다. 다른 언어는 지금의 나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언어를 가질 수 있게끔 기존의 내 생각을 바탕으로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다른 시선을 가져보아야 한다. 나는 내 위치를 찾아 내 시점에서 먼저, 내 주변과 나의 관계를 인식하고 그 인식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의 관계로 나아가, 나와 연결된 다른 관계 속 상황에서 질문을 많이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고 싶으며 질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살아가면서 내 주관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