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판

 

공부. 이번 학기에는 기필코 공부가 하고 싶었다. 매번 공부를 하려다가 흐지부지 되고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공부가 무척 하고 싶었다. 나는 항상 움직이며 놀기를 좋아했고 책을 가만히 앉아서 읽는다거나 무엇인가를 조사하고 찾는 건 정말 못했다. 검색 능력도 별로 없었고 말이다. 이번 학기는 마음먹고 공부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공부를 했다. 내가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은 내 개인 프로젝트인 연구주제와 시민문화 워크숍에서 나온 몇 개의 내용들이었다. 기후변화에 관련돼있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공부했는데 일단 시민문화 워크숍에서는 ‘생태적 민주화’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이어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것은 사람들이 각자의 life style을 다시 생각해봄으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모든 생명을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 캠페인도 만들어봤고 사회적 이슈에 관련된 기사와 신문들을 찾아보고 이런 문제에 대해 주위사람들과 토론했다.

그리고 개인연구주제는 위에 말했던 정보들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조사하고 코펜하겐 기후협약에 대해서나 사람들에게 이 전의 방식과는 다른 life style을 권유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시할 거리도 생각하고 이해하기 편하게 간단한 정보의 글을 쓰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나를 더 ‘시민’으로 부각시켜주고 세계화의 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상상과 생각. 공연 팀.

오도리 (おどり 춤, 무용)

오도리를 하며 겪었던 문제들은 오도리가 무엇 때문에 만들어진 시간이었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도리가 만들어진 이유는 운동장이 없어지고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적어져 아직 10대인 우리들에겐 더욱 움직임이 필요했고 또 festeza가 연주하는 브라질음악의 댄스를 어느 정도 알면 더 같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 시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시작은 저랬고 오도리 시간을 가질수록 오도리는 작업장학교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festeza의 공연에 일부가 되기도 하고 작업장학교의 공연 하면 나는 festeza의 퍼커션 공연과 오도리가 떠오르게 된다. 이렇게 오도리의 의미와 범위는 넓어져가고 짙어져갔다.

문제는 변한 오도리를 어떻게 할까 이다. 움직이자는 의도에서 만든 오도리가 공연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면 편하게 해야 할 오도리가 책임감을 갖게 되는 시간으로 변하게 된 것이고 죽돌 들의 변하게 된 오도리에게 느끼는 생각들이 궁금해졌다. 내가 느꼈던 생각은, 나는 공연 팀이라서 진행 부분을 맡게 되었는데 배운다고 생각하는 디자인팀, 영상 팀과는 생각하게 되는 위치가 매우 달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디자인팀이나 영상 팀은 오도리 시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춤을 배우는 시간? 움직이는 시간?

일단 내가 느낀 생각은 진행자들(festeza) 사이에서 진행할 때 어떻게 흐름을 끊지 않고 코멘트나 진행에 더 도움을 주는 발언을 할 수 있었을까 와 춤추기 꺼려 보이는 죽돌 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까였다. 나는 딱히 어찌 할 수 없어서 “(장난스레)아 빨리 해봐”라고 하기보다는 그때그때마다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서 절대 권유처럼 들리게 “이런 식으로 해봐 그럼 더 그루브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라며 했던 게 있다. festeza가 디자인, 영상 팀에게 어떻게 보여 질까 민감해했다.

흐름을 끊지 않고 코멘트를 한다는 것을 생각했던 것은 내가 가끔 코멘트를 할 때 흐름을 끊는다는 얘기를 들어서이다. 나의 말투에 문제가 있었을까? 갑자기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홍조가 했다면 그런 얘기를 듣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팀 안에서 코멘트를 하는 것을 조금 더 조심스럽고 꼼꼼히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사북사태 그리고 과정과 결과의 조율.

정선에 가서 공연 팀은 큰 트러블이 생겼었다. 트러블이 생겼던 날 저녁에 공연이 있었는데 그 생각을 못하고 정선 시장에 온 것이 새롭고 구경거리가 많아서 파고지 악기를 가지고 놀러 다니다가 공연 제의를 받아서 공연을 하려 했다. 그런데 그냥 노는 게 아니라 퀼리티를 따지며 공연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공연 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빠져줬으면 하는 말과 아쉽다는 말이 오가며 싸웠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기본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난 기본도 안 돼 있는 사람이던가? 하자를 들어온 지 벌써 2년째다. 나는 이 동안 무엇을 했나. 우리는 정선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결국엔 망쳤고 물론 연습도 부족했지만 연습할 시간이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생각도 못했다는 것이 내가 정말 기본도 안 되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한다. 과정을 너무 즐기다보니 판단력도 흐려지고 해야 할 일도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어린 애 같았다. 연습을 해야 했을 시간에 시장판에서 놀려다가 심지어 놀지도 못하고 싸우게 되는 팀이 정말 팀이 맞냐는 것이다.

리뷰 때 이런 말이 나왔다. "과정을 너무 즐긴 것이 아닐까?" 맞다. 너무 과정만을 즐기다 보니 이처럼 연습도 못하고 예술가들과 주민들과의 사이가 어떤지, 다른 친구들은 어떤 것을 보고 무엇을 했는지 하나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앞으로 과정과 결과를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까? 조금 자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프로젝트의 맥락을 이해하고 섬세해지면 과정 뿐 아니라 결과도 많이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시야를 항상 열어두어야 한다. 나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보고 서로 관심을 가져주면 결과나 과정의 즐거움을 느끼는 범위도 배가 될 것이다.

 

공연/연습

3,4개월 동안이지만 합주연습을 얼마나 했을까? 촌닭들이었다면 적어도 100시간 거.뜬.히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festeza보다는 열린 작업장 작업들의 분량이 많아지고 프로젝트도 다양해지며 악기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적어졌다. 그러니 자연스레 공연의 퀼리티도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공연을 할 때는 항상 만족스럽지 않고 흥도 별로 나지 않았다.(사실 공연한 횟수도 그리 많지 않다.) 이럴 때 나의 위치는 어떻게 되어야 했을까? 나는 3학기다. 밑 학기들에게 악기와 좀 더 친해져보라고 했어야 했나? 나도 그들도 각자의 개인 작업들로도 바빴을 텐데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너무 무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번 학기에 몇 안되는 공연을 할 때 별로 흥이 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공연을 너무 1차원 적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 같다. 내가 말하는 흥은 신이 나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공연의 느낌과 자연스러운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다. 1차원 적으로 본 공연은 무엇이냐면 예를 들어 낙동강 공연을 들어보자. 낙동강 공연은 할 때 나는 무엇에든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불평만 해댔다. 공연장 바닥은 온통 돌덩이고 관객들은 딱 앉아서 우리한테 해보라는 듯 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그래서 이 공연은 공연자인 내 입장에서 봤을 때 망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 뿐 아니라 ‘진짜 흥’이 나는 공연을 하기 위해선 관객도 봐야 하고 공연을 하는 이유를 생각하고 팀의 표정도 봐 가고 우리가 있는 장소와 시간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공연을 해야 했한. 하지만 흥이 나는 공연은 이번 학기에 아주 적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또는 festeza라는 이름이 해야 할, 우리가 할 공연은 생각하는 공연 팀이 만드는 공연이다. ‘상상’, ‘넓은 시야의 몸’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관객이 없는 공연

상상을 할 줄 알게 되면 ‘넓은 시야의 몸’도 자연스레 따라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객이 없는 공연이 아닐까 싶다. 관객이 없으면 관객을 상상하고 무대와 그 주위의 배경을 상상하고 왜 그 공연을 하는지 구성과 리듬, 브레이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상상하는데 더 없이 자유로울 것 같다.

 

밀어주기, 협력하기/당겨주기

이번 학기에 누군가가 “누가 무엇인가를 잘 하려고 하면 너는 잘 밀어주면 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질투심이 좀 있는 편인 나는 이런 것을 잘 하지 못했고 밀어주지 못하고 계속 나나 밀자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우리 팀에서 밀어준다는 것에 흥미가 생겼고 아직까지도 조금의 질투는 느끼고 있지만 몇몇 사람들을 밀어주고 있다. 질투심이 있는 내가 왜 남을 밀어주게 되었을까? 나는 선행이라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나로 인해 남이 잘되는 것이니. 그리고 사실 뿌듯하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약간 약았지만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밀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큰 몫을 차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바라는 게 있는 친절이지만 누군가를 밀어주는 것은 팀 생활에 있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론 팀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팀워크, 협력이다. 밀어주는 것에 있어 반대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팀인데 왜 밀어주나. 협력을 해야지 밀어주는 것은 자기를 희생하는 느낌이 든다. 너네는 동료인데 그렇게 누군가를 밀어주다가 팀장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될 수도 있다.”라고. 사실 희생하는 느낌도 없지 않아 든다. 하지만 밀어줘야 하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밀어주는 부분은 마음속으로의 응원이 우선 첫 번째 인 것 같다. 그리고 의견이 있으면 살을 붙여주고 뒷받침해주는 것이 있다. 마음속으로 응원을 하다 보니 사실 ‘팀장(?)’이란 개념도 조금씩 생기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걱정이다.

당겨주기라 하면 끌어 내리는 게 아니다. 너무 혼자 앞서가지 않게 옆에서 같이 가자고 등을 붙잡는 것이다. 힘들어서 붙잡는 게 아닌 나중을 위해 에너지를 보충하며 지금은 같이 좀 천천히 걸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다. 당겨주는 것은 밀어주는 것보다 어렵다. 자칫 잘못하다간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작업장학교 사람들은 언제나 이 부분에 민감하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팀 생활에 있어 당겨주는 것을 멈칫할 순 없다. 좋은 팀, 좋은 관계의 팀원들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협력이 우선시 되어야 하고, 밀어주기와 당겨주기가 적절해져야 할 것 같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제는 눈치로 넘어갈 줄 알아야 하는 것

지난 학기, 어쩌면 지지난 학기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과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에 있어 무척 갈등이 많이 되었다. 예를 들어 연습 중에 갑자기 리듬이 바뀌었거나 몸동작이나 곡 구성이 달라졌을 때 나는 많이 짚고 넘어가려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유는 지지난 학기와 지난학기, 이번 학기가 나뉜다. 지지난 학기와 지난 학기에 계속 짚고 넘어가려고 했던 부분은 우리는 팀원이 꽤 많았고 연습을 할 때는 대형을 짜서 넓게 퍼져서 하기도 하고 한다. 그리고 더군다나 말을 할 때도 이따금씩 악기를 치기 때문에 잘 안 들리는 부분이 있어서 공유가 덜 됐다. 그래서 못들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해서 짚고 넘어가려했던 부분도 상당하다. 물론 내가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옳고 그름을 어느 정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그런 건 짚어줘야 한다고 매번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 외에 다른 팀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심해서 말을 하지 못한 것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지난 학기는 이렇고 이번 학기에 짚고 넘어가려 했던 것도 이유가 크게 다르진 않다. 우리는 회의를 하거나 레퍼토리 얘기를 할 때 촌닭들에서 알고 있던 지식이나 방식을 가져가려고 했던 부분이 있다. 근데 새 멤버가 들어왔지 않은가. 이런 부분 때문에 꼭 짚어주고 가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 마다 들려오는 말은 “오피 너는 이제 이런 건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줄 알아야 하지 않니?”라는 말이었다. 사실 나는 이해를 못하거나 그냥 넘어갈 줄 몰라서 짚은 게 아니었고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나중에 헷갈리거나 딴말이 나오면 안 되니까 했던 말이었다. 이런 것에 있어서 나는 항상 불만이 있었고 소심한 팀원들과 생각이 다른 팀원들과는 적이 된 기분이었다. 아직까지 이 일이 어떻게 끝난 건 아니다. 요즘은 연습도 별로 못하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서 잠자코 있는 건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고 내가 생각했던 말을 드디어 주저리주저리 써본다.

 

자유로운 레퍼토리

우리는 자유로운 레퍼토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레퍼토리의 대부분은 촌닭들에서 하던 것이다. 근데 우리는 팀원도, 팀의 의미도 바뀌었다. 그래서 레퍼토리도 바뀐 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팀의 의미는 간단히 말해서 ‘슬픔을 넘어 축제를 벌인다.’인데 단순히 예를 들어 tristeza(슬픔이란 뜻을 가진 우리 팀의 메인 곡.)처럼 Flor de lis도 사랑 때문에 슬픈 마음을 넘기 위해 신나게 하는 노래로 편곡한다던가 동녘이가 개인연구주제를 바탕으로 작곡한 곡들을 우리 팀이 부르는 것이다.(동녘이가 작곡한 곡들을 보면 약간 우울하고 우리 팀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festeza를 가만 보면 촌닭들이었던 멤버가 넷 있는데 알게 모르게 촌닭들의 방식을 가져오려고 하는 것 같고 촌닭들에 없던 멤버 넷은 은근히 이런 방식에 따라오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틀을 깨고 festeza만의 레퍼토리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촌닭들에서 가져온 것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약간 얽매이는 느낌도 들어서 의식하자는 이야기다.

 

오디션

festeza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우리가 하는 곡들 중 보컬을 따로 맡아야 하는 곡들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촌닭들과 초반의 festeza는 어울릴 것 같은 사람 또는 하고 싶은 사람, 잘하는 사람으로 보컬이 정해졌다. 그런데 이제는 오디션을 본다. festeza의 최초로 새로운 문화가 탄생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기쁘다. 이 문화를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

 

공유

우리는 팀원 사이에 공유가 안 된다고 되게 여러 번 말했던 것 같다. 이유는 일단 공유를 하려면 타인을 봐야 하는데 보지도 않고 또 보여주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이런 벽을 깨부수고 친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공유는 우리가 친해지는 데 한 몫 할 것 같다. 작업장학교에서는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때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작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대부분 한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라던가 리뷰 얘기들. 물론 이런 이야기도 중요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환경의 이야기, 영화를 보는데 한명한명 와서 같이 보며 그 영화를 같이 즐기고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업장학교 사람들을 놓고 동료와 친구에 대해서도 좀 고민해 본적이 있는데 동료는 함께 일하는 사람을 말하고 친구는 가까이 사귀어온 벗이다. 작업장학교의 관계는 이 둘이 합해진 동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계화속에 사는 정치시민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

영화를 보고 노래를 부르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찾고 각각 찾은 기사들을 살피며 하는 수업을 가졌다. 영화는 재미있는 영화를 많이 가져오시고 생활영어를 배우고 빠른 대사를 catch하는 것에 있어 재미를 느꼈다. 사이트의 부분에서는 내가 검색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를 넓혔다고 생각한다. 다른 좋은 사이트를 알아내서 이 능력이 올라갔다고 하는 게 아니라 외국의 사이트에서 영어로 검색을 한다는 것은 언어를 뛰어넘은 검색이기 때문에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고 이 경험을 계속 가지고 가려한다.

글로비시를 가르치는 학원은 없을 것이고 우리가 보냈던 분위기 같은 시간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보낸 시간은 영어로 라임도 만들며 유쾌하게 보낸 생활 글로비시 자체였다.

 

 

시민문화

7명의 시인들을 만나며 정말 중요하게 느낀 지점은 시인들이 각자의 한자 시의 뜻에 말하는 부분 중에도 그들의 생각이었다. 조원규 시인이 하신 말씀을 예로 들자면, 자기가 보고 있는 길이 시가 아닌가? 하신 것처럼.

 

(내게 자극과 생각할 거리를 주신 말에 진한 줄로 표시.)

홍성태 : 민주화라는 것은 권력을 모든 사람들이 나눠간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합리화 된다는 것. 정상화된다는 것.

민주화라는 것은 주권이 국민에게 가도록 하는 것인데 권리나 위치 등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합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눔과 합의 차이는 뭘까? 과자를 예로 들어보면 똑같은 양의 과자를 나누면 사실 문제가 있다. 과자를 먹는 사람 위장 크기도 다를 테고 식성이나 포만감도 다를 테다. 하지만 합해서 먹는다고 쳐보자. 적게 먹어서 아쉬워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불만을 가질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예로 들긴 했지만 뭔가 애매한 구석이 있다. 민주주의의 합과 차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홍성태 :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서서 우리사회와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생태적 입장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민주화를 넘어서서 생태적인 입장을 갖는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생태라 하면 단순히 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상태를 뜻하는데 인간이 주가 되지 않고 생물도 주가 되어 같이 세계를 정치하자는 것이다. 인간 말고는 말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생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어 할지 다 알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인간이 그의 개 이빨을 단련시킨다며 고양이를 잔인하게 물어뜯게 하는 동영상이 유포되었다. 그 인간은 겨우 벌금 500만원 형에 처했다고 기억한다. 고양이는 생물이 아닌가? 사람과 같은 생물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는 꼭 생태적인 입장을 가지고 생태적인 민주화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2012년이 되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리가 있다. 이 문제는 정말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이 초래한 것이라는 것이다. 생태적 민주화를 정면으로 맞부딪칠 우리들의 숙제는 무엇인가?

 

정치시민

민욱이 예술가는 또 다른 의미의 정치인이라고 하셨다.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하여 언어가 갖고 있는 또 다른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난 예술가 뿐 아니라 시민도 정치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별건가 우리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하는 게 정친데 사소한 행동 하나로도 이룰 수 있지 않나? 사람들이 각자 어떻게 각자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치를 할 것인지,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조원규 : 커다란 톱니바퀴가 있고, 여러 개의 톱니가 있는데 하나의 톱니에는 학생인 나, 또 하나의 톱니에는 아들인 나, 또 다른 것에는 기타를 치는 나가 있다면 상황에 따라 ‘시민’이라는 톱니가 부각되는 경우가 있고, 그럴 때 ‘시민’으로 자각하는 것 같습니다.

시민이란 사전적 정의로는 그 시에 사는 사람 또는 참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민은 좀 다르다. 눈과 입을 제대로 가지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시민이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시민에 있어서 저런 사전적 정의는 걸림돌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시민이 아닌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도리를 하는 사람. 사회는 지하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한 사람을 보고 용감한 시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건 용감이고 뭐고 사람이 해야 할 당연한 일 아닌가?

 

의지문제

 

개연연구주제

내 연구 주제는 코펜하겐 기후협약이었다. 나는 주제를 잡았을 때 국가들 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런 협약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 말할 수 있었고 이것에 관해 알기 위해 지구가 뜨거워지는 이유, 온실가스, 온실 효과, 현재 세계의 상황 등에 대해 공부 했고 시민문화 프로젝트와 같이 가져가며 ‘세계화 속에 살고 싶은 시민’이 되길 바랐다. 나만 공부해서 나만 되기보다는 내가 공부해서 상황들을 알려주며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런 건지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시도했고 아직 하지는 못했지만 남은 3,4개월 안에 하고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인터뷰는 상대와 실시간으로 얼굴도 맞대고 직접적인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자리여서 인터뷰라는 소통 방식을 택했고 인터뷰에 질문을 뽑게 되고 어떤 질문을 어떻게, 무엇을 생각하며 할까 하는 데에서 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도 키워나갈 수 있었다.

 

"Buy nothing day" campaign

학기 초에 학습계약서를 쓸 때 이번학기, 사회 이슈에 대해 “몸으로 생각한다”라는 표현을 가지고 퍼포먼스나 캠페인을 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약간 막막하던 중 우연인지 필연인지 네이버 웹툰 환경만화 “북극의 눈물”을 보다가 매년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 공식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Buy nothing day에 대해 알아보고 캠페인으로 포스터를 만들려고 디자인 팀 산에게 도움을 구했다. 캠페인을 한 이유는 공식적으로 지명되어있는 ‘소비 안하는 날’이 있는데 기왕이면 이 날 만은 소비를 해보지 말자는 것도 있고 핵심적인 의도는 소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산과 나는 바로 포스터 디자인 작업에 들어갔고 라벨지로 캠페인 포스터를 뽑아 사람들에게 이 날의 의미와 의도도 한 번 더 전달하며 몸에 붙이고 다니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 캠페인을 하면서 걸렸던 것은 우리가 이 날을 만든 사람들의 홍보를 하려고 하면서 했던 생각들을 홀랑 받아먹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진짜 의도는 소비를 하지 말자 또는 소비를 생각해보자는 의도와 그 날을 알리고자 했던 게 컸을 것이다. 근데 우리는 약하지만 이 의도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투신

시민문화 프로젝트를 하며, 정선에 갔다오며 나는 공부 방법을 하나 터득했다. 나를 투신하는 것이었다. 나를 작업장에 집어넣어서 못 빠져나오게 한다. 그럼 그 안에서 나는 이해하고 경험하며 차곡차곡 경험과 지식을 쌓아올려 결국은 이것들을 밟고 나올 수 있게 된다. 정말 마음에 드는 공부 방법이었다. 이런 공부 방법은 시민문화 베풀 시의 권혁일 이사님도 쓰셨던 방법이었다. 이 분에게 힌트를 얻어 나도 나를 투신해봤더니 실제로 나와 맞는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항상 그 잘난 의지 때문에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자비로웠던 것도 있고 봐주면서 한 것도 있었기 때문에 나를 밀어 넣어 버리는 방법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정선에 갔다 와서 한 1주 후엔가 정선리뷰와 시민문화 프로젝트의 많은 리뷰들(절대 짐스럽지 않은 뉘앙스를 풍김), 개인연구주제가 겹치며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 했는데 이 때 나를 투신하지 못하고 평소대로 작업을 했더라면 나는 아마 완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투신을 함으로써 내가 최선을 다한 게 되었다. 이 방식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방어/공격

왜일까.

난 계속 아침형 인간을 고집했었다. 아침형 인간이 되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았다. 11시부터 1시가 성장판이 많이 열려서 키가 제일 많이 크는 시간이라고 하고 12시부터 2시가 피부가 좋아지는 시간, 잠을 많이 자면 살도 빠진다고 한다. 미녀는 잠을 많이 잔다는 소리도 있잖은가. 근거가 없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런 논리들을 주장하며 나는 팀원들에게도 아침형 인간을 권유했었다. 그러던 내가 왜 갑자기 변한 걸까? 할 일이 많아서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아침형 인간을 계속 고집하던 건 나름 스스로를 방어한다고 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무엇이 나의 방어를 깨뜨린 걸까. 이번 학기에 내 방어는 두 번이나 깨졌다. 고백하건데 나는 거짓말을 무척이나 안했다. 그리고 지각도 거의 하지 않았다. 해봤자 15분? 그런데 어느 화요일 3시간 지각했다. 몸이 안 좋다고 핑계를 대며 늦잠을 잔 것이다.(솔직하게 말하는 거니 용서해주기 바람...) 이건 나의 굳건한 신념이었는데 이렇게 무너져버리다니 지금도 후회가 크다. 이것 말고도 내가 나를 방어하는 것은 눈에 보인 콘센트를 뽑는다거나 내 쓰레기는 스스로 처리하는 일은 잘 지켜졌지만 이렇게 가다간 언젠가 모두가 뚫리지 않을까 싶다. 일단 나는 내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방어도 의지 덕분에 여태껏 지켜온 것이다. 좀 더 다짐도 필요하고 내게 더 냉정해져야겠다.

 

 

남은 3,4개월을 잘 보내기 위해

머리말에 기재된 연구주제를 토대로 사람들과 인터뷰를 해서 다른 사람들은 이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고 싶고 처음에 썼던 “몸으로 생각하는 것”을 더 실행할 계획이고 계속 시민됨을 생각하며 세계화 속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싶다. 이 전보다 festeza라는 이름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진짜 동구가 될 수 있게 여러 가지로 관찰하고 생각해 봐야겠다.

어차피 3,4개월 후에 놀 생각이니 마지막으로 나를 투신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작업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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