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구하는 柴인들 - 두란
英雄本色
이번 학기 디자인팀은 시민문화 워크숍의 포스터를 만들었다. 포스터를 만들기 전에 우리는 시인들에 대한 공부와 그날 있을 주제, 시인들의 ‘시’에 대해서 생각나는 단어들을 마구 떠올리면서 전혀 생뚱맞은 얘기도 하거나 나온 단어들의 연관성을 찾아보고 ‘시’와 연결시켜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온 얘기들을 이미지화시키는 작업을 했다.그렇게 ‘시’의 의미에 대해 추적하고 왜일지를 생각하다 보니 문득 우리가 하는 얘기들이 사실은 같은 범주 안에 있고 결국은 비슷한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시간, 시대, 시민, 촛불, 돌봄, 마을, 시선 등. 단어자체는 다를 수 있어도 나오는 얘기들은 비슷하지 않았나. 그렇게 얘기를 하면서 반대로 우리가 만나는 시인, 그리고 ‘세계를 구하는’이라는 맥락을 생각할 수 있었다.
처음에 쓴 원고와 시민문화워크숍 회고 시간에 나는 시민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는 말로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건 지금까지 내가 배웠던 것들을 싹 무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내가 있는 이 마을에 대한 고민이 있는데, 나는 하자마을 전에도 다른 마을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배웠다. 이 두 마을은 완전히 다른 곳일까? 다른 곳임에는 틀림없지만 내가 그곳을 졸업하고 하자를 온다고 해서 거기서 배운 모든 것들을 접고 새로 시작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마찬가지로 볍씨에서도 시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볍씨는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작게는 동네가 될 수 있고 크게는 세계가 될 수 있다.)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광명에 자리하고 있고 광명시민들이 학교를 다닌다. 내가 살고 있는 곳, 삶의 터를 지키기 위해, 살기 좋은 곳을 만들기 위해 시위도 했었고 어려운 친구들을 돕기도 했고 그 외에도 많은 활동들을 했다. 나는 시민이 아닌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시민에 대한 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행동과 함께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 내 실천에 대한 정리는 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실천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되었고 하자에 와서는 ‘시민’이라는 말을 다시 들었고 공부했다. 말을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껏 자연스럽게 혹은 학교에서 했던 활동이나 그 안에서 내가 한 생각을 이제 조금씩 정리를 해보고 나아가는 단계였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인들에 따라서 시민의 등장은 조금 달랐다. 하승창 시인께서는 직접적으로 시민사회와 시민 됨에 대해서, 조 원규 시인은 시와 시인을 통해, 홍 성태 시인은 ‘기후변화를 살아가는 10대들에게’라는 주제로 실제적인 통계들과 생태적인 관점으로 본 지금 시대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권혁일 시인은 해피빈, 베푼다는 키워드를 통해, 제너럴 닥터의 두 시인은 단순히 의료가 아닌 의료의 문화를 만드는, 민욱은 예술과 예술가의 실존을 통해. 시인들을 만나면서 시민이 된다는 건 굉장히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연스럽거나 당연하다는 것 없이. 물론 어떤 때는 그런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에도 자기 언어로 설명을 하신다. 설명되어져야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하려는 것의 목적과 대상을 생각했을 때 필요성을 나도 7명의 시인들을 만나면서 생각했다.
스스로 ‘시민’이라는 말을 붙인다는 것과 그 말을 나에게 적용했을 때. 주제연구 공부를 하면서 책을 읽거나 얘기를 하거나 시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사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술가인 민욱이 ‘너의 현실에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라고 말씀하신 것, 하승창 선생님이 “시민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세상과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들을 생각해보면 일상의 사소한 일이라도 그게 그저 내 일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이라고 했을 때 가지게 되는 책임감과 앞서 말했듯 의식적으로 생각, 실천하는 것은 필요한 것이다.
나 자신의 시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결국 이 곳에서 살고 있는 나에 대해서 묻는 것이구나. 나는 어떤 시민이 되고 싶은 가.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 건가.
민욱이 중요하다고 얘기하신 것들 중 ‘관계를 주목하고 관계를 생성하는 일’이라는 얘기를 해주셨다. 관계. 관계는 굉장히 폭이 다양하기 때문에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다.
내가 만들고 포함한 관계는 단순히 너와 나의 관계였다. 여기서 너와 나란, 상대방과 나를 뜻한다. 난 많은 관계를 너와 나 사이로 읽었었다. 그러나 여러 시인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보는 과정에서 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앞에 말했던 곧 내가 하고 있는 것과 사회와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침에 버스에서 만난 내 옆 남자와 있었던 일,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아주 사소한 문제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땐 굉장히 사회적인 문제로 확 떠올라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문제를 느껴서 그 문제를 사진을 찍어서 이야기를 하든가 글을 써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남들에게 보여 지고 전달했을 때는 그 주제가 여러 사람들의 것이 되면서 더 커지기도 한다. 나라는 사람은 이미 많은 관계를 맺고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도, 보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그 하나하나에서 많은 관계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그것이 때로는 추상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그 관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의식적으로 그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영웅 ;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의 사람들이 해내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영웅을 생각하게 된 것은,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서였다. ‘구하는’이라는 말이 흔히 말하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을 연상케 했다. 그래서 시민문화 워크숍을 시작하면서 앞으로 만나게 될 시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은 그려놓았던 것 같다. 중요한 건, 영웅이 자칫 ‘우상’과 헷갈리기 마련인데, 우상은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을 신처럼 숭배하는 것을 말한다. 영웅은 내가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하면 될 수 있지만 스스로가 우상이 되기는 힘들다.
우리가 만난 시인들은 우상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하지 않는다. 그 분들의 관점을 통해 배우고 영웅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시민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기후변화시대라든가 사회속의 개인이 갖는 관계들에 대해 고민한다. 시인들은 그 고민에서 더 나아가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말을 전한다.
우리 모두를 柴인이라 할 때, 더불어 우리도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영웅’이란 말은 굳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영웅들이 있었으면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생각했던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은 우상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세상을 바꾼 것은 우상이 아니라 영웅이다. 학습의 과정에 있고 앞으로도 쭉 우리는 노력을 하는 것인데, 그럴 때 관점을 다양하게 하여 그 자기 이야기의 폭을 넓힌다.
개인 연구주제 발표를 하면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된다는 것도 결국은 이렇게 뭐든 빠르게 변하는 내 주위의 것들을 보고 기록하고 남겨두고 있음이고 나 자신뿐 아니라 나아가 살고 있는 사회를 지키는 것 같다.
나는 내가 개인연구주제로 공부하고 있는 ‘삶 디자인’이 다른 게 아니라 ‘삶’이라는 말이 주는 엄청 폭 넓은 의미 안에서 시인들도 ‘삶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삶 디자인이란, 신종 플루와 같은 것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외부의 것으로 나를 끌고 당기고 하는데, 그 흐름을 타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것. 상황을 객관적으로 눈을 기르고 보여주는 것 같다. 시인들은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삶에서 자기 관점을 만들어내고 그 눈으로 본 것과 관계들을 밖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난 ‘삶을 디자인’하는 것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고, 그것을 보이는 것으로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하고 있거나 하고자 하는 것에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계속 하는 것. 나도 그저 말로만 불을 켠다, 켜야 한다고 하지 말고 내가 하고자하는 것에서 불빛을 낼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