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을 가기 전 나는 한창 매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사진을 찍는 것으로 개인연구주제로 해보겠다고 했을 때, 보다 많은 움직임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 장소가 시장이라고 결심한 이상 더더욱 그러하였다. 거의 매주 일요일마다 나는 구매하는 사람들과 팔려가기를 기다리며 판매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 구경하면서 움직였다. 때로는 나의 카메라 렌즈에 비치는 대상이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매체를 든 사람으로 어떤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런 고민 지점을 정선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 - 마을의 예술가를 만나고, 정선 5일장을 가고, 집중탐사를 하고, 무엇보다 사진 아틀리에 워크숍을 들으면서 - 을 통해서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신종플루에 걸리게 되면서 정선에 가는 준비를 함께 하고 그 곳을 경험한다는 상상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나로선 6박 7일간의 일정을 함께 해오지 못했다는 것에 많이 섭섭하고 서럽기까지 했다.

다른 죽돌들과 판돌들이 6박 7일간 정선에 가 있는 동안,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집에서 지내며 신종플루를 벗어나기 위해 씨름을 해야 했다. 한정 된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서 그랬던 것인지, 신종플루에 걸리기 전, 내가 고민해오던 매체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또한 하루하루 다른 죽돌들과 판돌들은 정선에서 어떤 것을 보고 들으며 생활하고 있는지 상상하며 함께 할 수 없다는 괴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2주간의 공백기를 가지고 나는 다시 하자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페차쿠차를 통해서 정선을 다녀 온 죽돌들의 다사다난한 이야기를 들었다. 죽돌들이 사진으로 기록한 정선의 모습을 보면서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어떤 카메라를 사용했는지, 어떤 각도로 찍었는지에 따라 다른 느낌의 사진이 연출된다는 것이 재밌었다. 정선이 얼마나 넓고 볼거리가 많았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죽돌들이 색깔 혹은 흔적과 같은 키워드로 정선을 바라보고 마을의 예술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만약 내가 정선에 갔었다면 어떤 사진을 찍고 어떤 볼거리들을 찾았을까? 매체에 대한 고민은 진전시킬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가지 못했던 사람으로서 들었던 생각과 함께 나는 학기의 중간지점에 이르렀고, 지난 4개월간의 시간들을 되짚어 본다.

- 공간을 넘나들며 나를 이야기하기

"이젠 고민과 걱정으로 나를 이야기 하지 말자. 생각과 질문을 가지고 움직이자." 8개월간의 긴 주니어 학기를 시작 할 당시, 말했던 다짐이다. 항상 무엇인가를 하기에 앞서 무수히 많은 걱정들과 고민들로 내가 그 일을 진척시켜나가는 데 있어 매우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고민과 걱정을 하는 시간이 아닌 생각과 질문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 생각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왔고, 어떻게 흘러갈 수 있을까?

주니어가 되면서 동시에 나는 디자인팀의 구성원이 되었고 거의 매시간을 한 공간에서 생활하며 지내왔다. 처음에는 내가 어떤 팀에 소속이 되고,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 낯설게만 느껴져 디자인 방의 문을 여는데 망설이곤 했지만 4개월의 시간 아래, 점차 이 공간과 디자인팀의 구성원이라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팀이라는 이름으로서 함께 공동 작업을 해왔다. 많은 수의 작업이 주어지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동안 시민문화워크숍 만다라 만들기 작업을 해오면서 팀과 팀의 구성원의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만다라 작업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시간보다 침묵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본격적이 작업물을 만들기에 앞서 어떤 요소들을 이미지화 할 것인지를 구상할 때 가장 침묵이 많이 흘렀던 것 같다. 그것은 낯설음에서 오는 것이었다. 팀으로 소속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으로 했던 큰 작업이었고 시각 디자인을 해본 적이 많지 않아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몰라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작업물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은 '함께' 라는 것이 꼭 중요시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함께 생각하고, 막히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지만 결국 함께 이끌어내는 것. 팀을 이루는 것은 각각의 구성원들이 하나의 톱니가 되어 무언가 만들어내기 위해, 일을 성사될 수 있게 함께 굴리는 것이고 서로를 업어가고 업혀가는 것이 그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팀 안의 구성원의 역할로서만 작용되는 것이 아니다. 전체에서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333마루는 나에게 있어 조금 낯선 공간이다. 전체가 모여 내 생각과 의견을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나는 나를 구성원이 아닌, 타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누군가에게 생각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일이 부담감으로 작용 되어 타인의 의견을 듣는 입장으로만 그 공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화요일 오후마다 가지는 poetry afternoon에서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는 일은 하나의 큰 시도이자 도전이었다. 또한, 이것은 내가 듣는 입장으로서 구성원의 역할을 하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나는 나의 매체로 소통의 장을 열었지만, 내 사진과 그 사진에 대한 나의 생각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하고 그 것이 전달됨으로서 다른 사람과 내가 비로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하지 못했다. 그렇게 사진을 보여주는 일은 나의 시도에 의해 시작되었다 시도만으로서 멈춰버렸다.

원래 문이란 것은 드나드는 역할을 하는 통로인데, 나에게 있어 문의 개념은 한정 된 공간에 갇혀있게 만드는 벽이다. 303 디자인 방의 구성원 따로, 전체 공간의 구성원 따로 나를 분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함께 굴러가기 위해 내가 하는 하나의 톱니역할도 작업장 주니어 죽돌인 전체 구성원으로까지 넓혀가야 한다.

나는 업어가고 업혀가는 것은 서로 끌어주고 맞춰가는 거라 생각한다. 개개인이 각자의 속도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속도를 나누는 것이고 일을 만들어 나가는 관계, 그것은 구성원을 넘어 좋은 동료관계인 것이다. 나는 그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싶고, 누군가가 나에게 자신의 고민을 가지고 찾아올 때 나의 이야기가 그 사람을 끌어줄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는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의 주관적인 표현과 의견이 필요하며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기에 내 앞에 놓인 벽을 통로로 만들어 나가며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 현재의 나는 어떤 넘나들기를 상상해보고 기대하고 있는지?

나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은 나의 매체로, 행동으로, 말로, 몸짓으로 할 수 있다. 그것이 단지 시도뿐만이 아니라 시도를 넘어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기를 상상해본다. 앞서 말했듯이,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다. 물론 그것이 "그래! 넘나들자!" 나에게 주문을 걸어도 지금 당장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나 스스로에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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