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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정선에 가기 전, 나는‘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하는 물음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떤 것을 본다는 것에 있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고, 보는 시야는 경험한 것의 범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정선에서는 이끌림에 의해 보이는 것을 쫓아다녔고, 내가 본 것을 다시 들춰내어 의미와 의도를 파악하는 과정은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본 것은 얼핏 생각나는 기억으로 밖에 남지 않은 것이 많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눈과 카메라에 의지해 봐왔던 것들을 다시 들춰내볼 필요성을 느낀다. 내가 봐온 대상들은 각각의 의미를 갖고 있고, 그것을 본 나는 기존에 내 생각을 기반으로 또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본 것을 단순히 본 것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기 위해 나는 ‘본 것’을 ‘들춰보는 작업'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정선의 풍경, 탄광의 흔적들은 지금까지 내 눈에 익지 않았던 낯선 풍경이었으며, 낯선 풍경 속에서 나는 새로운 것을 찾느라 바빴고, 그것을 카메라로 찍느라 바빴다. 그리고 내가 본 것들의 이유를 ‘이끌림’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끌림’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조금 조심스럽다. 단순히 ‘이끌려서 보았다’라는 설명은 나에게 턱없이 부족한 설명이다. 정선에는 나를 이끌리게 하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 이끌림이 어디서 오는지, 그것에 왜 내가 이끌리게 되었는지를 추적해볼 필요성을 느낀다. 나는 평소에 ‘이끌림’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이끌려서’라는 이유는 그 자체에서 더 나아가기 어려운 모호한 이유이다. 나에게는 뭉뚱그려진 생각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내 경험을 단순히 ‘경험’으로써 끝내고 싶지 않다.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고, 작업을 해보고 싶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정선에서 내가 보고 사진으로 찍은 것 역시 사진의 의미, 대상과 나의 관계,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를 의도하기 위함보다 단순히 찍고 싶은 것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었다. ‘왜’찍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해보지 않은 채로. 이 문장은 개인 주제연구를 하면서 찾은 것이다. 나의 기억은 어떻게 보면 이 시대의 기억이다. 나의 과거는 기억으로써 존재하고 있고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즐거워하기도, 아쉬워하기도 한다. 나에게 과거는 나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을 분리시키고는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다. 주제연구를 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시대는 매일같이 변하고, 급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된다. 그 속에는 사라지는 것들이 많으며, 사라지는 것은 ‘사라짐’으로 인해 기억되지 않는다. 또 '사라져가는 과정'이 아닌 '없애는 것'으로 생략되기도 한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장소에 과거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현재’에는 과거를 포함한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지금 현재에는 거의 ‘현대’만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억’이라는 것을 중요한 키워드로 잡게 되었다. 현재가 도시화, 현대화로 인해 생략되고 있을 때,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연결고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도구인 것 같다. 정선에서 느낀 시간, 내가 주제연구로 가져간 시간과 기억. 이 두개의 맞물린 점을 찾아 어떻게 이어나갈 지, 어떻게 작업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어떤 것들이 사라지고 있으며, 그 사라짐은 나의 기억과 어떤 연관지점을 갖고 있는지. 기억을 다시 돌이켜보고, 찾아보고 싶다.
정선여행은 모두가 함께한 6-7일 이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여행이 학교에서의 일상과 다르게 느껴진 것은 ‘6박7일’ 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24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며 함께 하는 시간과 개인적인 만남도 가졌다. 3개월의 중간 지점에서 그런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중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단순히 정선프로젝트를 하고, 하루하루 본 것만을 나누는 시간이 아니라 지나가고 있는 시간의 중간 지점을 정선에서 함께 나누고, 고민하고, 되돌아보고,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 내 일상에서의 고민들은 정선에서까지 이어졌다. 그 고민들 중 하나는 우리가 함께 모였을 때 나의 모습에 관한 것이었는데, 나는 대개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의 말은 평소보다 더 적어진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나의 모습이지만 이제는 나의 그 모습을 ‘성격’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다함께 있을 때 의사표현을 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상태, 생각을 인지하기 위한 방법이고,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표현은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의사표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생각은 생각대로 중요하다고 여기며 그것을 행동으로는 전혀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이 두려워서인지 ‘내가 이런 상태다’하는 표현조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말을 하지 않는 게 익숙해져버렸다. 이런 상태의 반복으로 나는 나를 설명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어렵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알리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내가 속해있는 곳에서 ‘나’를 알릴 필요성과 내 상황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이 연습은 나를 통해서가 아니면 할 수 없다. 그리고 굳이 '말'이 아니어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시민문화워크숍에서, 정선에서 몇 분의 예술가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자신에게 있는 무언가를 꺼내놓으며 자신을 표현하고, 공간을 재구성했다. 자신이 꺼내놓은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으며 일종의 매개자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사회의 흐름에서 다른 언어로 말하고자했고, 무엇보다 그분들에게는 예술이라는 것을 자신의 도구로 삼아 무언가 계속해서 끄집어내려는 욕구 같은 것이 보였다. 나는 '예술가'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그분들은 철저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그분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거리들이 생겼다. 내가 흔히 사용하는 ‘작업 한다’라는 말.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작업 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였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다시 ‘작업’을 한다는 것은 뭐고, 나는 지금 어떤 작업을 해야 할까. 나는 어떤 작업자가 될 것인가. 나는 몇몇 프로젝트를 통해 하는 것을 ‘작업’이라고 불렀고, 그때마다 작업을 했다. 작업을 할 때는 습작을 많이 만들자고 하며 최대한 많은 작업을 해본 뒤 작업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그런 프로젝트를 통해서보다 내 작업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면 하는데, 그러기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이 뭔지 갈피를 잡아야 한다. 주제연구 역시 내가 틀을 잡아가며 공부해야할 것이며, 어떻게 작업할 것인지 고민해 가야하는 것이다. 아직 막연하고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작업과 더불어 내가 살려고 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이며, 해야 하며, 어떤 시선을 던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들을 조금씩 더 만들어 가고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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