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들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참으로 오랜 시간이었다.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에도,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고민을 끌어안고 있기에도.


너무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저 영상이 하고 싶어 시작했던 학기였다. 낯선 곳에 가는 것보다 익숙한 곳에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았고 또한 아직 학생이라는 신분을 확인시켜 줄 곳, 소속감을 느끼게 해 줄 곳이 있었으면 했고, 이미 작업장학교가 내게는 그런 장소였다.

하나 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기 위해 모두들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럴 때에도 나는 혼자 멈춰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를 프로젝트들이 내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고 난 그것을 멀뚱히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내가 저것에 녹아들 수 있을지 보다는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하기 바빴다. 하지만 주변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니 나도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채 다른 사람들의 꽁무니를 쫒았다. 제대로 하는 것 도 없으면서 하는 척 했다. 남들과 똑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있으니 정말 내가 무엇인가 꽤 열심히 하는 듯 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허나 그러한 모습은 껍데기에 불과했음을 자각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의무가 되어버린 리뷰를 쓰며 알 수 있었다.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정리해 표현해 내는 글을 리뷰라 생각하는데 그것을 쓰려 할 때면 키보드 위에서 신나게 춤추던 손가락도 멈춰버리고 온갖 생각이 난무하던 머릿속도 새하얘진다. 머릿속엔 입력된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한 것이다. 이런 모습은 무언가를 얻어가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모르는 것을 좀 더 알고 싶음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배움에 있어 솔직하지 못한 자세가 문제였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말하고 부족함을 인정하며 좀 더 탄탄하게 채워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치부를 드러내는 듯 숨기기 급급했으니 학습함에 있어 그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나.

이런 나에 비해 다른 이들은 새롭게 배운 것들도 많았고 느끼는 것도 많았다. 그들은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생각의 깊이도 훨씬 깊었다. 단순한 언어인 나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표현의 언어들이 그들의 글에는 스며들어 있었다. 이렇게 조금씩 열등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와 동시에 약간의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나라고 그만큼 생각 못하고, 다양한 언어 구사하지 못하랴 싶었다. 하지만 마음만 앞섰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감조차 잡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그럴수록 답답함은 늘어가지만 내 모습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점점 자라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너무 쉬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해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나의 결과였다. 하지만 나의 잘못임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변명거리를 찾고 있었다. 얼마나 찾고 헤매든 다른 탓 할 필요가 없었다.

계속해서 다른 이들과 차이가 벌어지니 함께 대화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들의 대화가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다. 프로젝트에 완전히 빠져보지 않은 나에겐 시민이니, 시민됨이니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다른 이들에겐 굉장히 중요한 듯 보였다. 이런 모습이 지속되며 아예 나 이외의 사람들과는 소통이 단절되었다. 모두들 나랑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괴리감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런 자세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싶었다. 계속해서 무너지기만 할 뿐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손을 놓아버린 것인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왜 내가 작업장학교에 남아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끝까지 해보겠다는 약속 때문에? 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나가면 도대체 어떤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둘 다 맞지만 머무를지 나갈지 어느 하나 결정 내리기가 힘이 들었다. 물론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닌 것은 알지만 선택한 것이 어느 쪽이든 후회할 것 같기 때문이다. 최대한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었다.

이런 와중에도 무책임하게 모든 걸 시간에 맡겨버렸다. 그리고는 ‘아무 노력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순간이 있지. 그게 지금일거야.’ 하며 모르는 척 하기도 했다.

‘힘듦’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말 내가 힘이 들었던 것인가? 뭘 했다고 힘이 든다는 건지? 그저 해결하기 조금 어려우니 피하고 싶어서 엄살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든다. 무언가 제대로 해보려 단 한 번의 노력조차 하지 않고서 얼마나 좋은 결과를 바라고 있었나.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이제 와서 ‘생각보다 잘 안됐어요.’ ‘노력해봤는데 잘 안돼요.’ 라는 식의 말은 소용없다. 노력한 만큼 대가가 따라오기 마련이고 난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기 중간에 멈춰 다시 한 번 선택을 하려 한다. 이번에는 가볍게 생각하지도, 쉽게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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