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를 지원하면서 ‘시도’를 해보자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언제 어떤 시도를 하고자 하는 건지 그 시도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지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없었던 게 화근이다. 질문이 있어도, 발표를 할 때도 말 정리(내가 하고자 하는 표현을)를 잘해야겠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미루던 모습을 주니어 땐 꼭 정리되지 않아도 생각한 만큼까지의 내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도를 하겠다고 다짐했고 프로젝트에 어떻게 이어나갈지는 해보면서 감을 잡으려 했다. 지레 겁을 먹고 남한테 내 얘기를 한다는 것에 조심스러워지면서 ‘그래도 해보자.’가 아니라 ‘안 할래.’가 되어버렸다.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했던 것이다. 내가 욕심내보고 이끌어 가보고자 하는 학습들을 만드는 노력을 한 것이 아니었고 내 주위의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연 팀은 festeza라는 이름을 새로 만들고 이름의 의미를 부여했고 우리만의 음악을 만들기에 힘썼다. 정해진 틀이 아닌 새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지만 난 자꾸 정해진 틀 속에서 움직이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얘기를 나누는 과정이 즐거워서 했던 나의 최소한의 시도는 나온 의견에 동의하고 공감을 하고 선택하는 것이었다. 연습을 하거나 회의를 하면서 우리끼리의 논의가 부족했던 건 사실이지만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도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실은 서로 사인을 보냈지만 사인이 약하거나 눈치 채지 못했거나 무신경하게 넘어가버린 것일 수도.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을 7분 만났다. ‘판’에 대한 얘기는 모두가 했지만 홍성태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며 festeza가 많이 생각났고 나에 대해 고민했다. festeza가 만들고자 했던 판은 무엇인지 우린 그 판에서 놀고 있는 건지 홍성태 선생님 말씀처럼 ‘근원적인 기초를 가지고 안정적인 판을 만들’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을 바라보고 지금을 살아가면서 내가 만든, 만들고 있는 나만의 판은 있었는지,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다. 각자의 판을 버리지 않고 연결 지어 팀으로서 가지고 갈 수 있는 판을 만들 수 있는 재료로 사용할 수 있겠다.

 

프로젝트에 관심과 노력을 쏟고 아이디어를 내고 ‘시도’를 했던 건 보컬워크숍 속에서 제일 많이 일어났다. 각자의 목소리, 발성을 연습하며 합창을 하고 연습시간과 장소를 잡는 기본적인 준비과정을 자발적으로 했다. 허나 문제가 생겼다.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 부담스럽고 긴장되는데다가 평상시에 노래는 편한 사람들이 아니면 하지 못하는 나로선 혼자 입을 뻥긋하며 서서 노래를 해야 하는 게 매우 어려웠다. 아직은 알지 못하고 교류가 필요한, 때론 어색한 죽돌 들이 앉아서 내가 노래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는 게 매우 큰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했지만 떠밀림과 동시에 쿵쾅되는 온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도해보는 거야’ 라고 마음을 잡고 스스로를 밀어붙였다. 민욱씨의 ‘밀어붙이고 계기를 찾는다.’는 말씀을 듣기 전이었지만 스스로에게 그럴 용기가 있었고 변하길 원하는 마음이 강했기에 시도를 했다. 처음부터 많은 것을 바라진 않았어야 했는데 마음을 다잡은 척 합리화를 해버리고 다잡았다고 생각했기에 결국 노래를 부르던 도중에 거부반응이 커져 울음을 터트렸고 노래는 중단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삼아 내가 마음준비가 안됐을 때는 날 밀어붙이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다행히 모두 기다려줬다. 시간이 흐르면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시간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는 핑계로서 회피하려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번뜩 지나갔다.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이 온 것이고 더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부턴 내가 처음으로 불려 노래를 할 때도 종종 있었고 그 속에서 나름 마음을 가다듬는 연습을 했다.

 

개인 과제의 주제를 잡는 것에 시간을 너무 할애했고 이것도 저것도 놓치기 싫어 죄다 끌어 모아보니 엉망이었다. 히옥스의 도움을 받아 처음에 하려고 했던 ‘음악, 피아노’가 아닌 ‘질문’으로 주제는 방향을 바꾸었고 좀 더 구체적으로 나아가 나에게 불편한 질문, 대답, 시선(혹은 고민해봐야 할)에 대해 소통이 되지 않았을 때, 공감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답답함’으로 호소하는 것이 아닌 ‘내 얘기의 정리’를 하는 과정을 거치고자 했다. 그랬으나 점점 질문들이 늘어나고 그러다보니 해결된 질문들보단 꼬리를 물어 계속 질문만 생겨나고 대답을 하지 못하면 못 할수록 대답을 꼭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워졌다. 질문을 받았을 때의 상황이나 나의 얘기를 적어가는 게 아닌 ‘이건 이런 거고 저건 저런 거야’ 하면서 나름의 정리가 아닌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점점 방향을 잃었고 더 잃지 않기 위해 내가 하려고 했던 건 뭐였는지 되짚어 보니 ‘내 얘길 할 수 있었으면’이었고 왜 불편하고 대답을 하고자 하는 건지에 대한 기대치만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