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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나의 불빛이 이야기 될 때
홍조 처음 나의 관심은 시민이라는 말로 귀에 들어 오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했다. 그러한 수많은 정보들은 그대로 내 속으로 들어와 하루에도 여러 번 우리는 책임의식 내지는 고민의식 느껴야 한다며 아우성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市, 詩, 時, 施 ,視, 翅 만나며, 이제는 내가 시민/시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해야 만 하는지 그 궁금증을 넘어 내가 시민/시인으로 세계를 보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어려운 세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잘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런 개개인의 욕망, 욕구가 자연스럽게 경쟁을 일으킬 테고 그러면서 사회는 발전한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긴 사람만 집중조명을 받게 되고 또 우리는 다시 그 하나의 지점을 두고 서로 경쟁한다. 그렇게 세상은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잘 살 순 없을까? 더 있는 사람이 덜 있는 사람과 조금씩 나눠 갖고 살면 어떨까? 자연과 함께 살면 안될까? 고민은 철없다는 소리를 듣곤 했고, 세대마다 신세대라고 기성세대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보수적이게 되고 기성세대 의 입장이 되는 것처럼 없는 사람은 갖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은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생태계에서 인간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데서 균형이 깨지는 것처럼 세계의 균형도 이미 깨져버리고 있었다. 너무 하나의 가치만 바라 보는 경쟁 과정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가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부나 여러 단체에서 해마다 그 문제에 관하여 여러 가지 지원책을 마련한다지만,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근본적인 해결이 아닌 새 걸로 갈아치우는 듯 빠르게 덮고 가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더라는 더 나아졌다는 말은 듣기 힘들다. 그런 현실에 대한 사실은 나를 괴롭게 했다. 그렇담 문제에 대한 책임은 누가 갖고 있는 걸까? 이미 열심히 행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몫으로, 아니면 정책을 잘못 시행한 정부 탓으로 돌려야 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의 몫으로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라는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는 나에게도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역할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에 따른 역량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내가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며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힘을 얕잡아 보지 않고 나부터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곳에 대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이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시간에 만난 민욱 시인은 " 나에게 예술은 항상 함께 하는 삶을 발화시키는 첫 장이자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고 들리지 않던 것들을 들리게 만드는 것. " 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만난 시인들은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세계를 구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모두가 다 함께 잘 살기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 나에게 세계는 내가 삶을 유지하고 사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더 나아가서 내가 속해 있는 이 세계에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꿈꿀 수 있었다. 또한 시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생각하는 것으로 마을을 만든 사람들이었다. 저마다의 문제의식을 새로운 생각으로 디자인했다. 문제를 그냥 문제로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개선했으며, 보다 다양한 형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이야기 하신 것 같았다. 문제의 해결되는 것은 내가 정말 본질을 파악해서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때부터 하나 둘씩 생겨날 것이다. 시야는 넓게 가지고 움직임은 지금 주변부터 조금씩 확장하는 것이 그게 시너지 효과를 내고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의 의미를 갖고 산다는 것은 다른 서로의 삶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말일 것이다. 그 사람의 삶을 인정하고 경쟁이 아닌 함께 살기 즉 공존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그들이 나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내가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되는 것, 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불빛은 아주 작고 작지만 그래서 더욱 내가 어떤 이야기를 발명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 이야기는 보다 보여지지 않았던 시선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로써 시간의 한 지점을 잡아서 펼쳐 내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이야기 하며, 그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늘어나길 기대한다. 조원규 시인께서 “나의 시선은 불빛”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시선을 둘 때, 그 행위 자체가 불빛이 되어야 하고, 그 불빛은 바라보는 세상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 같았다. 작은 불빛이 모여 큰 빛을 만드는 것처럼, 어떤 의식적으로 초에 불을 밝히는 것뿐 아니라 내가 시선을 두는 곳에서 나의 생각도 밝히고 문제도 밝혀 누군가의 불빛과 함께 문화를 만든다면 세상을 구하는 일도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희미하고 미약했던 불빛이 여러 시인을 통해 힘을 얻었다. 시인들의 불빛을 본 나는 이제는 더 이상 강의를 듣는 학생으로의 입장이 아니라 같은 시인으로서 만나고 싶다. 모든지 머리로만 괴로워하지 않고 세상을 구하러 자아를 구하러 여러 사람에게 힘을 실어 주려 활활 타오르는 나의 시선을 꺼뜨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두어본다. ![]() When we meet a desert, make it a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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