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에세이 _구나
'본 것'을 '들춰보는 것'
정선에 가기 전, 나는 ‘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하는 물음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떤 것을 본다는 것에 있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고, 보는 시야는 경험한 것의 범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정선에서는 이끌림에 의해 보이는 것을 쫓아다녔고, 내가 본 것에 대한 의미와 의도를 파악하는 과정은 갖지 않았기에 얼핏 생각나는 기억으로만 남게 된 것이 많다. 하지만 이제 본 것을 단순한 경험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고,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작업하고 싶기 때문에 나는 ‘본 것’을 구체적으로 ‘들춰봄'으로써 이것을 작업'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나는 ‘내 시선’이 있기를 바란다. 내가 본 것을 나의 의미로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는지, 나는 어떤 생각을 바탕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지 고민이 되는데, 그것은 내 경험을 통해 쌓일 수 있는 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러 보는 방식을 통해 나만의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무엇을 봐야할 지, 어떻게 봐야할 지 고민이 된다. ‘어떻게 봐야하는가’ 에는 보고, 듣고, 말하고, 표현하는 연습을 필요로 한다. 나는 시대 속에서 나의 생각을 진전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 아무리 나를 세상에서 빼놓고 싶다고 해도 나는 세상에, 변화하는 과정의 시대에 속해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무엇을 볼 지’보다 ‘어떻게 봐야하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이것은 '사라지는 것'이라는 개인주제 연구에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정선에서도 이 주제를 기반으로 정선 곳곳을 둘러보고자 했다.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광범위할 수도 있는 주제다. 어느 한 시점만이 아닌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포함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라진 것’과 ‘사라질 것’ ‘사라지는 것’같이 사라지는 것은 말을 조금만 바꿔도 비슷하지만 다른 관점이 될 수 있다. 정선은 이 세 가지 다른 관점과 과거, 현재, 미래를 한 곳에 담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정선에서의 과거는 내가 직접 본 것도, 들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곳에 남아있는 흔적으로 하여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흔적’은 나와 그곳을 이어주는 매개였다. 현재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그곳에 발을 들일 때는 조금 이상한 느낌마저 들었고,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이 그곳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선에 남아있는 탄광의 흔적들은 사라지고 있는 것들 틈에 끼어 어느 정도 기억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많은 기억을 갖고 있는 곳에 발을 들이는 것이 조금 조심스러웠다. 단순히 보는 것만을 가지고 그 공간에 대해 함부로 추측할 수 없었고, 느낀 감정으로 그 공간을 뭉뚱그리는 것은 너무 섣부른 생각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정선에서 ‘색’을 찾아다녔었는데 내가 본 색을 "정선의 색"이라 정의할 뻔했다. 단순히 보는 것에 압도되어 내가 본다는 것의 이유,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고 나의 주관적인 시선에만 머물러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의 시선에만 머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사람들은 내 주관적인 시선이 실제와 어떤 맞물린 점이 있었는지 질문을 던지면서 나의 생각들이 구체적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끊임없이 날아오는 “왜”라는 질문들은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기도 해서, 모든 것에 답을 만들어가기엔 벅차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생각으로 본 것을 들춰보려 하는 나에게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필요한 질문들이었다.
“나의 기억은 사회적 기억의 매개물 혹은 부가적 장치일 뿐이다” “기억속의 개인은 늘 사회적인 존재이며 개인과 사회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억의 주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이다”
-특별한 도시 공부 中-
이 문장은 개인 주제연구를 하면서 찾은 것이다. 나의 기억은 어떻게 보면 이 시대의 기억이다. 나의 과거는 기억으로써 존재하고 있고 나는 그 기억을 통해 여러 감정을 갖게 된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을 분리시키고는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으며 과거가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다. 주제연구를 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매일같이 변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는 시대에서는 사라지는 것들이 많으며, ‘사라짐’은 사라지는 과정에서 기억을 남길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억’을 중요한 키워드로 잡게 되었다.
'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시대와 맞물릴 수 있는 질문이다.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나의 시선’을 갖기 위해, 내가 경험한 것을 다시 들춰내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질문들에 내 생각을 붙여가는 과정에서 나는 ‘나의 시선’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그 시선이 나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머물 수 있길 바라며, ‘시대를 읽는 연습’을 하고자한다. 내가 경험한 것을 들춰보고 다시 표현하는 작업이 나에게 익숙한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 들춰내는 작업 또한 어떻게 할 것인지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자 한다.
정선에서와 내 주제연구로 가져간 시간과 기억. 이 두개의 맞물린 점을 찾아 어떻게 이어나갈 지, 어떻게 작업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어떤 것들이 사라지고 있으며, 그 사라짐은 나의 기억과 어떤 연관지점이 있는지를 다시 돌이켜보고, 찾아보고 싶다. 사라짐에 있어서 나는 내 기억을 어떠한 매체로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 것인 지에 대해서도.
정선에서 우리는 24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며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3개월의 중간 지점에서 이 시간은 무척 중요했고, 단순히 정선에서 본 것만을 나누는 시간이 아니라 지나가고 있는 시간의 중간 지점에서 서로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일부분을 함께 보냈던 시간과 여행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 날들을 통해 나는 함께 있을 때 나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생각은 일상과 여행 구분 없이 내가 늘 고민하던 것이었다. 나는 대개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의 말은 평소보다 더 적어진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나의 모습이지만 이제는 나의 그 모습을 ‘성격’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다함께 있을 때 의사표현을 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상태, 생각을 인지하기 위한 방법이고,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표현은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인지 ‘내가 이런 상태다’하는 표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말을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버렸다. 이런 상태의 반복으로 나는 나를 설명하는 것이 어렵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가 속해있는 곳에서 ‘나’를 알릴 필요성과 내 상황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이 연습은 나를 통해서가 아니면 할 수 없다.
나를 설명하고, 표현하고, 알리고,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을 통해서, 나는 ‘관계’에 대해 더 말 하고자 한다. 매번 내가 소속되어 있는 공간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지만, 그 속에 내가 있지 않으면 어떤 관계더라도 나의 관계로 가져올 수 없다.
함께 무언가를 할 때는 나의 생각에만 머물러 있는 것 보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관심 갖고, 서로의 생각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하다보면 정리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정리되기도 하며 내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나오기도 한다. 나는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는 질문을 만들어가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서로에게 질문을 만들어가는 관계를 바란다. 그 관계는 내가 나를 변화시키는 것을 시도하고자 하는 관계의 모습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나’ 먼저 그런 사람이 되고 있나 생각해보고, 고민을 혼자의 고민, 머릿속에서만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닌 나누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시민문화워크숍과 정선에서 몇 분의 예술가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꺼내놓으며 자신을 표현하고, 공간을 재구성했고, 꺼내놓은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며 일종의 매개자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사회의 흐름에서 다른 언어로 말하고자 했다. 내가 보기에 그분들에게는 무엇보다 예술이라는 것을 자신의 도구로 삼아 무언가를 계속해서 끄집어내려는 욕구 같은 것이 보였고, 철저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그분들 만나 뵈면서 나는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이 생겼다. 나는 자주 ‘작업 한다’는 말을 사용하는데 시인들을 만나면서 ‘나는 지금 어떤 작업을 해야 할까, 나는 어떤 작업자가 될 것인가, 예술가가 말하는 작업은 뭘까’ 라는 질문들이 생겼다. 지금의 나는 몇몇 프로젝트를 통해 작업을 한다. 작업을 할 때는 습작을 많이 해본 뒤 작업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앞으로는 내 작업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도 있었으면 한다. 혼자 작업을 할 때는 생각하고, 작업하는 것의 책임이 나에게 더 크며 내가 하려는 것의 구체적인 상상도 필요하다. 아직 나는 생각한 것을 표현하려는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작업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더 해야 한다. 아직 막연하고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작업과 더불어 내가 살려고 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까지 조금씩 더 만들어 가고 있다.
다시 한 번 더 나에게 말하면, 나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는 것과 다시 질문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그 필요한 점들을 메우는 연습을 하며 질문과 고민을 지속적으로 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의 시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 시선을 나만의 시선으로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그 시선을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던질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