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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세계를 구하는 [ 市 詩 時 施 視 翅 , 柴 ] 人들.
--------- 1. 영웅이 되고 싶었던 시민문화 워크숍의 이름이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는 떠오르는 상상은 곳곳에서 영웅이라 불리는 분들의 강연을 듣는 시간일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았었다. 세계를 구한다니, 어떤 일들을 해내고 있기에 그런 말로 소개되어질 수 있는 사람들일까 했으니 말이다. 한때 '사회적 발언력'을 가진 뮤지션이 되어서 대중을 선동하고 사회를 전복시키겠다는 생각까지도 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사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런 '혁명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영웅이 되어서야만이 가능했고, 그 때까지만 해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시민으로서의 역할은 쓰레기 안 버리기랑 촛불집회에 나가는 것에 그쳐있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시민이라는 개념이 모호했으며, 그나마도 이미 내 정의가 아니었던 '행정구역상의 거주민' 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당장에 내가 세계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한 영웅들이 아닌, 시민이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영웅은 누구일까? 2. 거대한 세계를 이끄는 작은 톱니 조원규 시인께서 '내면을 구하는 것부터가 세계를 구하는 것의 시작'이라고 하셨다. 각자의 시선으로 어떠한 문제 의식을 보고 느낀 것은 알고보면 비단 혼자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내가 그러한 이슈들을 접하게 될 때는 나의 여러 정체성이 가지고 있는 센서가 돌아가는 것 같다.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 청소년, 국민, 음악가, 병역 거부에 대해 생각해봄, 시민 같은 것들 말이다. 마치 다른 톱니바퀴와 맞닿아 돌아가는 톱니들 같은데, 내가 스스로를 구한다는 것은 이 톱니들을 명확히 잘 닦고 손질함과 동시에 다른 톱니바퀴들과 잘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web 2.0세대의 촛불에 대해 신영복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적이 있는데, web 1.0 때의 중앙서버로부터의 송신을 네트워크를 통해 그저 수신할 뿐이었던 것과 달리 2.0에서는 중앙서버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지식in, 블로그, 위키피디아 등의 자기 표현과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를 중시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개개인이 너무나 다른 이야기를 하고, 개별적인 움직임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촛불집회에 예를 들면, 80년대의 집회는 중앙의 집단에서 '무슨날 몇시, 어디에 모여서 어떤 구호를 외치면서 이렇게 할 것입니다.' 라는 통지를 하고 그에 맞춰져서 집회가 진행되었다면, 지금의 집회는 각자 생각과 할 말들이 있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동시 다발적 혹은 언제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가서 모일 수 있는, 그런 형태를 띄고 있다. 이것은 '다원화'로도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모두가 서로 다른 이야기와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1.0의 '군중' 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모른다. 이제는 대동단결이 아니라, 연찬이 필요하다는 하승창 선생님의 생각처럼 중앙서버로부터의 일방적 신호에 의한 군중의 집단행동보다는 개개인의 , 시민으로서 각자의 촛불을 들고 공통분모를 찾아가면서 여러 방향으로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연찬이 필요하다. 내가 스스로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인지할 때는 어떤 이슈나 현상과 내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들이 일어나는 곳은 이 세상, 사회 안이고 그 안에는 나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유를 가지고 엮이고 관계하고 있다. 하승창 선생님께서는 모두가 대동단결해서 획일적인 방식, 생각으로 밀고 나가기보다는 시민 개개인의 각기 다른 입장, 방식과 역할, 할 수 있는 일들을 나누고 이야기하자는 것이라고 하셨다. 어떠한 집단으로서 그려지기 전에, 분명한 시민으로서의 개개인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그림을 보다 세심히 그려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보고 말하는 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당장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그 중에서도 쓰레기 또는 여러 사회 이슈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이다. 하자센터 안의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자 텀블러, 손수건, 수저 주머니를 쓰자는 제안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나는 음악가이고, 나름대로 작업자 혹은 예술가이기 때문에 내가 경험하거나 생각하고 느끼게 된 것들에 대해 가사를 쓰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노래를 다같이 부르게 할 수 있는 그런 '마을의 음악가'를 꿈꾸고 있다. '진짜'를 노래하고 요구되어지고 강요되어지는, 그러한 의무감으로 부르는 게 아닌, 실존과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보고 말할 수 있게 되고 싶다. 그것이 내 언어가 되길 바라고. 그것은 스스로를 기반삼아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음악가로서 노래하는 것이 사회의 구성원, 시민으로서 하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며 모두가 각자의 관점에서 역할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형성되는 관계들을 '마을'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각자가 보고 있는 것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주변에서부터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 말이다. 마을의, 일상의 작은 변화라 눈에 띄지 않을지라도 주민들 모두가 움직인다면 그것은 정말 기대되고 신나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 톱니들을 가진 톱니바퀴들을 서로 맞물려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인재지변에 위협받고 있는 시대이고, 또 우리는 그것을 겪어내야 할 불행한 세대이다. 하지만 인재지변이기 때문에 넘어설 수 있는 희망도 우리에게 아직은 남아있다는, 그러한 '내면의 희망' 이 초에 불을 붙이고 톱니를 맞돌게 하는 게 아닐까. 3. From me to you 모두가 역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주변의 이야기를 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하지만, 내 주변은 어디까지인가? 마을은? 가장 크게는 세계를 마을로 보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다. 내가 아프기 때문에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일들이 점차 많은 사람들의 일이 되어가고 개인의 상상에서 그치는 게 아닌, 모두의 것으로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인데, 내 주변과 세계도 이런 인식의 확장과 같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세계, 마을, 음악가라는 단어를 자꾸 쓰다보니 어느새인가 동어반복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든다.
예를 들면 사람들에게 '노래를 같이 부르게 하고 싶은 음악가'와 '세계를 노래하는 마을의 음악가'가 서로 조금 다른 음악가가 있는데, 내가 음악가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무엇을 하고 싶은건지, 어떤 역할이 되고 싶다는 건지를 세심하게 정의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세계라는 단어는 더욱 그런데, 최근에 '보통 어떤 종류의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내가 보는 책의 종류가 너무나 적다는 것을 눈치챘다. 과학적인 내용의 책이나 시집은 잘 읽지 않고 소설은 그나마 좀 읽었지만 많이 읽는다고는 못하겠다. 이어서 들은 말은 '네가 말하는 세계는 너무 사회과학적이다.''였다.
세계에는 그 세계들을 볼 수 있는 각각의 '세계관'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들로 본 세계는 서로 다르게 보일 수 있고 세계관들이 교차한 부분들은 보고 있지만 내 관점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들도 있다. 지금까지 내가 말했던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한 세계 안에서만 쓰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우주'를 두고 해야했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집에서 발견해서 읽으려고 했지만, 예술을 보는 시각들에 대해 관심갖지 않은 내가 그 책을 본들 무엇을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미루기로 했다.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세계관, 그것을 보는 관점을 기르겠다. 세계관들이 나뉘는, 우주적 존재의 스케일을 탐구해보는 것이 앞으로 나에게는 필요하다.
지금도 계속해서 나는 공부를 하고 있고,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서 이야기할지 무궁무진하게 고민하고 있다. 내가, 우리가 전하는 것은 전체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변화이고 눈에 띄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로부터 너에게' 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작은 이야기들을 한다면 그것이 전체가 되는, 아주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재밌는 상상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스스로를 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구함'은 점차적으로 주변을 향해 처져나가며 그것은 어느새 '세상'이라고 부를 만한 크기에 닿고 있다. 그 이유는 내가 아프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여러 세계를 공유하고 있고 모든 것은 내 일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며 서로에게 사랑을 담아 말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가능성의 시작이라고 어떤 음악가가 말한 것이 생각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랑을 말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하며, 그것은 즉 실천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비범한 일만을 해내는 게 아니라, 나는 보잘 것 없어서 왜소한 잡목같을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유예하지 않고 당장에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꼭 누가 영웅이라고 불리기보다는, 市 詩 時 施 視 翅 ㅡ 이 6개의 '시' 를 동경하고 바라볼 뿐만이 아닌, 조금씩 나눠받은 '시'들과 함께 전부가 영웅으로 불릴 수 있는, 마을 변두리에서 작게 자라나기 시작한 柴인으로서. ----------- With Love, From Me To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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