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쇼(주니어 1학기/공연팀)


하자에 들어오던 때가 생각난다. 공동체를 나오면서 가지고 있던 열정, 자신감, 기대, 생각, 하나하나 다시 한 번 새롭게 되새김질 해본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왜 하자에 들어 왔는지, 무엇을 하고자 왔는지, 하지를 들어오면서는 ‘~을 얻고자’ 해서 들어 왔다. 하지만 지금은 들어온 이유가 바뀌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로 질문을 바꿔 다시 생각해 본다. 길찾기 때를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니어의 한 획을 긋는 이 시점에서 그때를 회상하면서 그때의 마음가짐이나, 주니어를 하면서의 마음가짐을 되뇌고 싶기 때문이다.


주니어에 들어오면서 참 많은 것들이 4개월이란 짧다면 짧았던 길 다면 긴 시간 안에서 흘러갔다. 나에게는 정말 빨리 짧게 지나간 것 같다. 이 시간동안 하자 안에서는 정말 많은 프로젝트들이 진행 되어 왔다. 처음 주니어학기를 시작하면서 정말 이것들을 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간표가 빡빡하게 차 있었다. 그러면서 정말 바쁜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내 프로젝트를 보면 일정의 빡빡했던 만큼 열정적으로(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좀 그렇지만) 생활하지 못 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4개월이란 시간이 지나갔고, 난 지금 이번 해의 마지막이자 이번 학기의 마지막인 이 시점까지 왔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변화함으로써 삼라만상이 바뀌고, 그러면서 절대 불변의 섭리가 변화 하듯 시간이 지나면 우리들도 바뀐다. 그래서 솔직히 앞으로 내가 어떤 변화를 추구해야 할지 감이 안 온다.



시민문화 워크숍


주니어 1학기를 하면서, 어떻게 보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워크숍을 하면서 ‘시민’ 그리고 내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공동체란 것도. 솔직히 나는 ‘정체성’ 이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굉장한 거리감이 있다. 뭔가 나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을 정체성이란 한 단어로 말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큰 짐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웬만해선 ‘정체성’ 이란 단어는 거의 안 쓴다. 정체성이란 단어가 싫으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든가 혹은 이를 설명해 줘야 하는데 싫을 뿐이지 그 뒤에 받쳐줘야 할 것들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이 정체성을 다른 말로 꾸밀 수 있는 언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부딪쳐보기로 했다. 내가 왜 정체성이란 단어에 거리감을 느끼고, 다른 언어로 바꿔 말하려고 했는지. 시민문화 워크숍을 하면서, 柴에 의미를 두고 갔던 정선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나는 나로부터 시작되는, 나에 대한 고민이나 갈등이 너무 부족했다는 판단이 든다.



내가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시점은 조원규 시인의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와 ‘나를 구함으로써 세상을 구한다.’ 라는 말에서 시작된다. 그 전에 내가 시민으로서 해야 되는 실천이나 생각들에만 머무르고 있다가 조원규 시인의 강의를 들으면서 고민의 시점이 나로 바뀌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것 같다. ‘나를 구한다는 것.’ 처음에는 이 말이 어떤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러다가 해피 빈 권혁일 이사님 말씀과, 제닥(제너럴 닥터)의 강의 중 ‘내가 지금 한 없이 떨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 점을 찾아야 하는지.  이 말을 들으면서 지금 내 위치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도시에 나와서도 공동체에 계속해서 집착하고 있고, 그때의 나와 계속해서 비교하는 나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도시에 와서 새로운 환경이 주어졌을 때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함을 못하고 있는 나를 볼 때 마다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는 순간 낙담하고, 자기 비하에 빠졌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막연하게 내가 있던 공동체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도시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시던 어른들의 걱정들만은 정말 실현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약 내가 그 고민들을(걱정들을) 실현 시킨다면, 그런 생활을 한다면 나는 도시에 온 의미가 사라진다. 내가 하고자 했던 배움에 의미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고, 이 시점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내가 어떤 것들을 하고 있는지 내가 하고 이렇게 잘하고 있다고 그들한테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내가 이 공동체에 집착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내가 지금 있는 이 공간 안에서 어떤 공동체를 찾고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내가 지향하고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겠다.



그러면서 이번 시민문화 워크숍의 柴(섶 시)인으로 정선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우물 안에 있는 나를 끌어 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짊어지고 있는 우물을 내려놔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내 필터로만 거르고 그 안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필터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필터들을 통해서 거르고 거르면서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자신을 컨트롤해야 갰다. 좀 더 열정적인 자신을 생각해 보자.



개인 연구 과제



이번 학기 개인 연구 과제를 하면서 음악으로서의 나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음악가를 목표로 두고 있는 나로서는 현재 해야 될 고민을 이 시간을 통해 진지하게 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자에 들어오기 전까지 음악가란 나에게 있어서 밥 먹는 일 만큼이나 중요한 고민이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타를 쳤고, 그러면서 도시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랬던 마음이 도시로 오면서, 하자에 나오면서, 점점 다른 고민들이 생겨남으로써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현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더 뒤로. 하자에 들어오면서 내 고민이 사라졌다는 부정적인 말이 아니라, 지금 내가 직면하고 있는 이 상황이나 시점에서 어떤 고민을 먼저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서 그 전에 했던 고민들은 자연스럽게 뒤로 미뤄진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음악에 대한 고민이 지금 해야 하는 고민일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염두에 두고 있긴 하다.


나는 이번 연구과제의 주제를 성가로 잡았었다.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 성가는 생활이었다.  그때는 성가가 좋았고, 내가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 장르?(라고 말하면 안 되지만)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활의 한 부분을 자리 잡고 있던 나의 음악 세계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농사를 지으면서 성가/CCM 음악을 하면서, 작곡도 하고, 연주도 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그리고 이것들을 나 혼자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즐겁게 즐기는 그런 음악을 하면서 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퇴촌이 결정되고 나서도, 도시에 나가서도 공동체의 삶의 일부를 반영시켜 살겠다는 다짐도 했다.


하지만 도시에 오면서 앞에서도 말했듯이 다른 고민들이 생기고 고민들에 순위를 매기면서 공동체의 삶을 반영한 생활을 하겠다는 다짐도 조금씩 사라졌다. 이에 가장 주된 이유는 도시라는 공간이 내가 있던 공동체의 삶과 비슷한 생활을 유지시켜줄 만한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유혹에 휘둘리면서 유지를 못한 부분도 있지만. 그러다 보니 성가를 접하는 시간은 1주일에 한 번에서 두 번 정도로 줄었고, 집에서도 성가를 듣기보단 festeza의 음악을 듣기 일쑤였고,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성가란 부분은 그저 내가 음악을 배워온 경로의 한 부분으로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다가 개인 연구 과제를 하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으면서 내게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면다가 뒤로 쳐지고 있던 성가를 다시 한 번 봐야 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다시 한 번 보는 것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내 음악에 대해서, 그리고 좀 더 이론적인 부분까지 해보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래는 내가 하고 있는 이 과제를 festeza와 연관성을 찾아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못해봤다는 거다. 할 수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그때 나의 자신감이나 열정이 부족했던 것이 컸다. 내가 찾았던 연관성은 내가 하고자 했던 CCM 음악처럼 다 같이 즐길 수 있고 놀 수 있는 그런 노래를, 꼭 성가가 아니더라도. 여기서 내가 말한 ‘다 같이’ 라는 말의 의미는 ‘모두가 알 만한 노래를 찾아서 그 노랠 우리 방식대로 편곡하고 함께 부르면서 즐기자’ 이다. 이것이 내 개인 연구 과제와도 연관성이 있었기에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말만 하고 어떻게 하자는 의견이나 생각의 공유가 부족해서 하지 못했던 것이 좀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 학기에는 이런 부분을 좀 더 정리해서 이야기 해봐야겠다.



이번 연구 주제를 하면서 메인 타이틀로 달았던 것은 그레고리오 성가와 떼제 성가였다. 떼제 성가는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던 부분인데 한때 나는 가톨릭 공동체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떼제 성가는 그레고리오 성가와 같이 곡 자체가 기도이지만 가벼우면서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성가이며 이는 정말 내가 하고자 했던 음악이다. 그리고 그레고리오 성가는 예전부터 더 알아보고 싶었으며, 그레고리오 성가는 모든 성가의 기초가 되는 성가이기 때문에 필요성도 느꼈다. 성가를 연구하면서 굉장히 즐겁기도 했고, 새로이 알아가는 부분도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듯이 즐거운 시간이 있었다면 힘든 시간도 있었다. 정말 힘들었던 시간은 위에서 말했듯이 연구하고 공부할 때마다 계속해서 공동체 안에 있던 나를 지금의 나와 비교하게 되고 뭔가 공동체 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기분이 많이 들었다. 이런 부분이 연구 과제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 연구 과제를 마무리 짓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생각하는 것은 공동체 속 나와 하자에 있는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불편함 보다는 그 이전에 내가 공동체 삶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너무 과거와 현재의 비교에 취해 있고 그것에 자신을 내던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권혁일 시인께서 말했듯이 현재를 보고 현재 일에 투신하고 그 안에서 극복 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기억은 내 고민의 바탕이지만 그 안에서 힌트를 찾으려고 너무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본다면 이번 학기 동안 내내 해오던 고민에 쉼표를 찍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쉼표는 쉼표다. 마침표를 찍는 그날 까지 계속 가지고 가야할 문제이기는 하다.



festeza


이번 학기 주니어를 하면서 공연팀에 들어와서 내가 어떤 음악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 것 같다. 공연팀을 하면서 정말 합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 이었는지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festeza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합주를 경험하면서 공동체에서 해왔던 한 몸 되기란 것과 비슷한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몸 되기란 손을 잡고 서로의 체온과 맥박을 느끼면서 공유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언제부턴가 자신의 맥박의 템포와 상대방의 템포가 일치한다. 그러면서 너와 나는 각각의 개인이 아니라 같은 한 몸임을 깨닫는 행위라고 알고 있고 그렇게 생각한다. 합주도 이렇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체온이나 맥박을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가 호흡을 맞추면서 여러 개의 소리를 하나의 음악으로 형성한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었고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가 가장 컸기 때문에 공연 팀에 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하고자 했던 음악은 서로가 함께 즐기고 놀 수 있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었다.


이번 한 학기 동안 페스테자에 있으면서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공연을 해왔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페스테자의 의미는 슬픔을 공감하고 이 슬픔을 뛰어넘어 축제를 열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음악을 함께 즐기자 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그 즐김에 대상을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번 낙동강 공연을 하면서 계속해서 사람을 의식하고 왜 그들과 즐기지 못 했을까 만을 생각했지만 그 곳에서 즐김 그리고 슬픔을 함께 나누고 축제를 열어야 하는 대상은 바로 낙동강이었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었다.



내가 페스테자에서 하고자 했던 음악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음악을 하고자 했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은 페스테자 의미에 포함된 부분인긴 하지만, 내가 말하는 함께 즐긴다는 것은, 모두가 알 만한 노래를 우리 식으로 편곡하면서 연주하고 같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그런 것을 말한다. 지금 페스테자가 하는 음악은 다 같이 즐기지 못하는 음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아리랑이었다. 강진에 갔을 때 모두가 아는 아리랑을 모두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공연이다’ 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뭔가 진짜로 다 같이 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런 것이 진짜 노는 게 아닐까? 하지만 모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공연 팀에 와서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것을 팀 안에서 공유하기 보다는 하고 싶다. 라고 내 생각에서만 멈췄기 때문에 팀 안에서 실현되지 못했다. 이번 학기 중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부분이 가장 아쉽다. 4개월 이란 시간을 마무리 하는 이 시점에서 페스테자는 지금까지 한 것들에 쉼표를 찍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poetry afternoon


이번 주니어를 하면서 가장 편안했고 내가 하고 있는 것을 가장 잘 들어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좀 더 내가 해보고자 했던 부분들을 이 시간을 통해서 연습하고 발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단은 의무가 아니었기에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깊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주목하고 그들이 원하는 곡 보다는 내가 들으면서, 연주해 보고 싶었던, 도전해 보고 싶었던 곡들을 위주로 연습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핑계지만 바빴던 하자 프로젝트 시간도 재껴가면서 기타연습을 했다. 하루에 1시간. 그렇게 연습하고 들려주고, 또 연습하고 들려주면서 내가 어떤 부분이 미숙한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곡을 들으면서 느낌이나 코멘트를 기대했었는데 그런 부분들이 잘 오가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어떻게 보면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런 것 일수도 있지만. 만약 다음 학기에 이런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죽돌들의 시선과 반응(코멘트)에 집중해 봐야겠다.


하지만 근면함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기타를 연주하건, 다른 프로젝트를 할 때건, 좀 더 집요하게 집착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지난 정선에 가서 내가 말했던, ‘나의 관심이나 느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부분들을 좀 더 깊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더 나아가 관찰에서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나의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부분을 항상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서 매 순간 상황에 참여해야겠다.



globish


주니어에 들어오면서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영어는 타민족의 언어이고 타문화를 알려면 언어가 소통되어야 함을, 소통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다.’ 주니어를 시작하면서 영어를 배우고 활용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타민족의 타문화를 보고 그들과의 소통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영어를 하면서 끝없이 던져지는 왜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어느 정도 정의를 내리고 싶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학기 글로비시는 하고자 하는 의지 혹은 열정이 없었기에 배운 거라곤 문법밖에 없게 느껴진다. 길찾기 글로비시 과정을 거치면서 나만의 정의나 기준점을 두고 싶었고 그것을 찾고자 노력했던 것처럼 이번 학기 글로비시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의미부여 하면서 움직이고 행동하고 실천하도록 했어야 했는데 정말 허술하게 했던 것 같다. 그와는 다르게 열정적으로 정말 열심히 나를 지도해 줬던 떠비, 토토, 리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기도 한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밖에 안 된다. 다시 그때의 의미들을 되새김질 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공부라도 잘 정리하고 주니어에 들어오면서 가지고 있던 질문들 지금의 위치에서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자신을 투신해라 라고 말씀하셨던 시인들의 명언들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그 안에서 어떻게 해 나갈 것이며 어떤 식으로 문제들을 풀어나갈지에 대한 나의 극복 점을 찾아라. 내가 지금 하자에 들어온 것이 하자에서 일반 학교처럼 무엇인가를 얻으려고만 온 것인지 아니면 이 안에서 내 판을 만들고 다른 죽돌 들을 초대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그 안에서 개발하면서 서로에게 얻는 것이 있는 그런 판을 만들어 나갈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각성해 보자. 그때의 초심을.



만들어 지는 과정


이번 학기를 마무하는 시점에서 학기 마무리도 중요하지만 나에겐 도시에서의 1년이란 의미도 굉장히 중요하다. 도시로 나온 지 벌써 1년이라니 정말 빨리 지나간 것 같다. 하지만

빠른 만큼 바쁘게 지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리고 한편으론 부끄러운 부분도 있다. 그만큼 내 열정이 부족했다는 뜻이기 때문인 것 같다. 1년의 도시생활은 내게 1년의 기한 만큼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생활을 하면서 독립이란 말을 사용하기에는 아직 많이 이르지만 초기의 다짐부터 시작해서, 생활부분, 나(정체성), 공동체, 시민, 활동, 열정, 등 정말 많은 것들을 고민하게 해줬다. 이 고민들의 밑 배경은 내 생활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한 1년은 공동체 안의 삶도 아니고, 도시에 나와서 도시에서의 생활도 아니고

많이 어중된 생활을 한 것 같다. 이번 1년은 도시에 있으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갖추기 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고도처럼 무엇인가를 끝임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단양에 있었을 때처럼 하루하루를 부활과 죽음이라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는 잘 살았다, 못 살았다. 의 이분법 적으로 별 고민 없이 결단을 짓는 것이 아닌

하루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러면서 이제는 홀로서기 즉 독립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 에세이를 쓰면서 이번 4개월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4개월을 하면서 항상 변화하려고 했던 내가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껍데기를 벗고자 했던 나는 다른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갑옷처럼 둘러싸고, 어떻게 보면 그 껍질로 거르고 거르면서 내가 원하는 것만 맛보려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변화를 하고자 하는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서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지금부터라도 내 필터, 껍데기를 내려놓고 나의 본 모습을 드러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도시로 나와서 생활한지 벌써 1년이 다 되간다. 도시에 나오면서 공동체 안에 계신 어른들이 내가 나간다고 했을 때 하셨던 걱정을 현실로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잘 지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공동체 지도 신부님께서 내가 도시로 나간다고 했을 때 ‘너는 아직 이제 뿌리를 내린 나무와 같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는 그 말이 아직도 나를 어린애로 보는 것 같아서 정말 싫었다. 하지만 도시로 나와서야 내가 아직 어린 나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나무는 공동체의 정신이나 모토가 아직 내 생활이나, 정신에 깊게 박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 상태에서 도시로 나간다면 분면 많은 유혹에 휘둘릴 것이라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걱정했던 부분들이 현실로 이뤄진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지금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그때를 회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로 나오면서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때의 열정이나 마음가짐을 상기시켜서 지금부터라도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중심을 잡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중심 안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실현해 나가면서 이번 학기, 해를 마무리 짓고 다음 학기를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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