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봉 : 선을 긋지 않고 이어나가기

 

이번 학기를 지원하면서 ‘시도’를 해보자는 다짐을 했다. 그 계기는 길 찾기를 마무리 하는 평가테이블시간에 판돌들과 내가 그동안 흥미 있는 것에만 몰두했다는 얘기를 나눴던 것인데, 흥미가 있는 것에 몰두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흥미로 시작한 건 그저 흥미로만 끝났고 학습적인 부분으로 연결할 생각을 안했으며 흥미가 느껴지지 않으면 억지로 했다는 것이다. 즉 난 공부와 학습이 아닌 ‘일’로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나눠 움직였다. 얘기를 나누며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흥미위주로 움직이면 놓치는 것, 해보지 않은 것들이 늘어나고 ‘낯선 것’으로 받아들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관심도가 얼마가 되느냐는 다르겠지만 배우는 단계에서 선을 긋는 건 길 찾기를 들어왔을 때 하자에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는 지는 잘 몰랐지만 오히려 자유롭지 않고 공동프로젝트가 많기 때문에 하고자 하는 걸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양상의 말씀을 듣고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러 이곳에 온 게 아니고 여러 학습들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찾고자 하는 마음과 어긋나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야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자’하고서 임할 순 없는 것이기에 다른 프로젝트 속에서 ‘흥미 점’을 발견한 것을 가지고 학습으로 연결시킨다면 선을 긋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니어에 들어오며 학습계약서에 ‘시도’라는 키워드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며 움직이길 바라며 선을 긋지 않고 학습을 하고자 적었다. 난 얼마나 어떤 다양한 시도를 했던가?

 

공연 팀 : festeza

공연 팀을 너무나 들어가고 싶었던 이유는 공연 팀의 공연을 보며 나 또한 몸이 움직이며 신났고 악기들이 내는 소리가 쿵쿵거리며 마음을 움직이면서도 익숙했지만, 무엇보다 음악을 하며 즐기고 싶어서였다. 다시 말해 의무적으로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닌 당연하게 혹은 필요에 의해 연습을 하며 그 과정조차도 즐길 수 있고 싶어서였다. 또, 누군가 앞에 서면 긴장하는 나로선 공연 팀이 부딪힐 수 있는(팀원들과 맞추고 회의를 하고 악기, 노래 연습을 하면서 ‘재밌을 때만 하는’, ‘해야 하는’ 게 아닌 과정을 즐기는 시도를 할 수 있는) 이 두 가지의 연습 기회라고 여겼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신나는 음악, 내가 움직이는 음악을 혼자가 아닌 함께 하고 싶었다. 처음 기대했을 땐 연습시간을 많이 가지는 거였지만 우리에겐 연습을 많이 해서 퀄리티를 쌓아야 하지 않아도 됐다. 개인연습을 위주로 돌렸고 점심시간엔 파고지연습을 하면서 계속 공연준비를 했고 레파토리를 짰다. 레파토리를 짤 때 기존에 반복했던 곡을, 아님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곡만 짰기 때문에 변화, 새로운 시도를 못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새로운 곡을 하려면 ‘시간이 없을 거야.’ 하는 마음에 아이디어를 내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난 자연스레 기존에 나오던 의견에 치우쳐서 결정했다.

슬픔을 넘어서 노래를 하자는 페스테자만의 의미와 함께 즐기는 축제를 열자는 것을 생각하면서 공연을 한 적이 몇 번이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악기 연습을 많이 안 해서 팀원들과 합주할 때 부끄러웠던 적이 많았는데 그러다보니 공연 시작 전 우리의 의미를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보다 틀리면 어떻게 라는 걱정에 공연 시작하기 전 사로잡혀있었다. 그렇다고 공연을 하면서 억지로 그루브를 타거나 웃었던 적은 없다. 그만큼 공연을 하면서 신나고 팀원들과 눈을 마주하면서 즐겼다. ‘팀’이 어떤 것인지 festeza를 4개월 동안 하면서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것은 함께 하려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있을 공연, 준비기간 동안 함께 하려는 마음과 힘을 인식해서 지내려고 한다. ‘판’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지 맞춰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얼마 전에 들어서 지나간 것에 대한 후회라기 보단(분명 아쉽긴 하다) 교가를 만들었을 때보다 더 서로 참여하고 싶다.

지현+festeza

프로젝트에 관심과 노력을 쏟고 아이디어를 내고 좋아하는 것만(잘되는 것만) 부르려는 것이 아닌 ‘시도’를 했던 건 보컬워크숍 속에서 제일 많이 일어났다. 보컬워크숍시간 또한 festeza에 들어오고 싶었던 이유와 비슷했는데, 더군다나 ‘노래’는 힘들었다. 그동안 ‘난 노래 못해.’ 였는데 보컬워크숍이 시작되면서 ‘노래를 잘 하고 싶다.’ 혹은 ‘노래를 즐기고 싶다.’라고 바뀌며 발성연습을 하고, tristeza를 혼자 나가서 부르고, 곡을 직접 고르고, 파트를 나누고, 합창을 하고, 노래의 뜻을 생각하며 부르는 연습을 하고, 음정과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감이 생기면서 ‘자발적’으로 연습하고 참여했다. 처음엔 보컬워크숍이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강의식으로 진행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한편으론 더 걱정스럽기도 했다. 내가 의기소침해있거나 쓴 소리를 들었을 때 코멘트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만 진행되는 방식에서 지현은 매 주마다 한 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사실 festeza안에서도 잘 얘기 안하는 이런 부분을 보컬 워크숍 때나마 얘기를 하며 서로를 체크할 수 있어서 놓친 부분을 채운 것 같아 좋았다) 물어보셨고 서로의 얘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기교나 스킬적인 부분보단 곡을 이해하고 감정을 실어서 부르는 연습을 했던 것이 너무 좋았다. 그 이유는 festeza가 만들어지면서 ‘공연’이라는 경계 보단 함께 어우러져서 놀자! 하는 것이었는데 노래도 마찬가지로 실력이 출중해야지만 노래를 부를 수 있기보단(그랬으면 더 좋겠지만) 곡의 뜻을 이해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즐기며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festeza로서 딱 인 것 같아서였다. 시니어들이 같이 참여 못한 게 아쉽지만 우리가 서로 목소리를 듣고 각자의 목소리의 특색을 찾으면서 점점 어우러져가는 모습을 보며 이것은 몸의 악기, 마찬가지로 우리가 연주하는 악기소리도 점점 어우러지지 않을 까 하는 기대와 함께 노력하려 한다.

불편한 질문, 대답 & 불편한 상태

한 창 ‘질문’하기를 멈추게 된 얘기를 몇 번 했었는데 내가 ‘왜?’ 라는 질문할 때 뉘앙스가 문제였는지 아님 내가 왜 ‘왜?’라고 말하는 지의 앞 뒤 상황의 내용보다 질문부터 했기 때문인지 그 때마다 오해가 생겨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화가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거기에 이어서 이젠 반대로 질문공세를 받고 내가 화날 때가 많아졌다. ‘왜 대안학교를 다니니?’부터 시작해서 ‘뭘 배우는데?’, ‘그걸 왜 지금 배우는데?’ 등등 나의 학습에 있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닌 ‘뭣 하러 그러냐.’ 식의 말을 들으며 일반학교와 대안학교를 나누며 ‘넌 아직 어리니까 몰라서 그래. 내 생각이 옳아, 잘 들어봐’ 식의 문장 끝에만 물음표로 바꿔 질문인 것 마냥 ‘넌 어떻게 생각하니?’로 포장하며 사실 ‘그렇지? 내 말이 맞지?’ 하는 ‘질문이 아닌 주장’속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니 그러니까’로 시작하는 말을 하며 생각의 다름, 이해하는 부분이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다는 것에 존중을 안 하고 내가 계속 설명을 하려 들면 ‘아, 니 마음대로 해. 난 그저 도움을 주려고 했을 뿐인데 결국 니 선택이지 뭐.’ 하며 마지막으로 ‘그러면 너 사회에 나올 순 있어? 뭘 할 건데? 실력이 돼?’라는 마지막으로 ‘넌 못 버텨(해) 공격’을 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들었는데도 모두 같은 얘기였기에 ‘내 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얘기가 안 통하니 숨 막히게 답답해서 울어버렸기 때문이다. 개인연구주제로 그런 ‘불편한’ 질문들을 끌어당겨 답답함으로 회피하는 게 아닌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걸 연습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히옥스의 말씀에 도움을 얻어 ‘불편하거나 고민되는, 설명이 필요한(혹은 해결되지 않은) 질문, 시선, 대답들’을 연구하기로 했다.

‘불편함’에 대한 마인드맵을 하고 질문을 리스트 업 하다 보니 대안학교에 관련된 질문이 제일 많았고 태도적인 부분이 두 번째로 많았다. 간디에선 우리 안에서 지냈기 때문에 외부에서 묻는 질문들에 그리 압박받지 않았는데 집으로 나온 뒤 위에 같은 사례가 많아서 힘들었다. 질문 하나를 놓고 두세 번 대답하면서 점점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았지만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지? 싶어지면서 방향을 점점 잃어갔다. 정리된 것을 가지고 말해보기를 주제로 삼았더라면 방향을 잡고 나아갔을 텐데 질문에 대답을 하는 ‘연습’을 위주로 주제를 잡았기에 어디까지가 연습인건지, 연습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건지, 대답에 질문이 생기고 또 질문이 꼬리를 무는데 힘들더라도 다 적어봐야 하는 건지, 적은 것들은 이대로 끝나는 건지 혼자 갈피를 못 잡고 다른 죽돌, 판돌들에게 내 학습상황에 대해 얘기하지도 않은 채 방향만 잃어갔다. 자연스럽게 개인연구과제 얘기만 나오면 움츠러들었고 해놓은 게 있으면서 설명하는 게 어려웠다. 연구주제 발표가 제일 힘들었는데 무엇을 보여줘야 하나 싶었다. 예를 들어 넌 대안학교에 왜 다니니? 라는 제일 엄청난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대답하려고 하는 건 이렇다 하면서 보여주기엔 주제들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해결된 대답들은 너무 적었다. 한데까지 보여주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팀이 발표하는 타이밍에 맞추지 못하다보니 점점 해야 하는데 하는 압박감만 몰려올 뿐 오히려 그 때부턴 아예 손도대지 않았다. 개인연구 과제를 하면서 내가 한 만큼이라도 나누지 않고 혼자 끌고 가려고 했던 점이 제일 아쉽다. 연구를 하고 나누면서 각기 다른 정보와 생각들을 나누는 것이 목표였는데 난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4개월 동안 날 돌아보면서 가장 생각나는 게 ‘개인연구과제’이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압박감속에서 고통스러워만 할 순 없어서 다시(당연하게) 질문들을 추가하고 나름의 대답을 적어보고 있다. 방학 동안 좀 더 제일 많이 나온 질문들(내가 대답하고자 하는 질문들이기 때문에)을 구체화 시켜보려고 한다.

 

Globish

globish를 이번 학기에 중점적으로 하고자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아침시간을 항상 도맡고 있었다. 난 리사와 함께하는 글로비쉬를 했는데 우리 반의 분위기가 시끄럽다면 시끄럽지만 자유롭게 질문하고 틀릴 걸 쑥스러워하기보단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영어’라는 벽보단 정말 ‘글로비쉬’의 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차근차근 배워나가서 이해하기도, 문장 만들기도 수월했지만 문제는 단어였다. 나오는 단어들을 다 못 외운 상태로 지나치는 경우가 잦아지자 스펠링은 당연히 틀렸고 단어의 뜻을 몰라 한참을 헤맸다. 이번 학기에 단어를 집중적으로 외워보고자 했으나 모든 단어를 통달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문장구조와 단어들을 조합한 스토리를 만들어서 워크북을 나눠주면 스토리를 통째로 외워 일주일에 한 번 시험을 봤는데 문장이 이어지는 과정, 문장의 뜻, 그 다음 올 말을 이런 식으로도 풀 수 있구나 하며 도움을 얻었다. 그것보다 난 문장구조숙제가 제일 좋았는데 내 것으로 만든다는 느낌이 가장 많이 들어서였다. 그걸 이용해서 대화 속에 집어넣으면 이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말이 된 것 같아 기뻤다. 4개월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배운 글로비쉬를 이용해 글을 써보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그것이 일기가 될 수도 있고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아직 글을 써보기 보단 워크북을 소리 내어 읽어보고 통째로 외워 시험도 쳐보면서 단어외우기에 힘쓰려고 한다.

밀어붙이고 계기를 찾는다, 판을 만든다, 카페+동네의원

아직 힘과 펌프질이 필요한 부분을 시민문화워크숍 중 민욱과 하승창 선생님이 다시 한 번 짚어주셨고 일을 병행하며, 그저 진단하는 것이 아닌 진료를 하는 제너럴닥터가 이상적으로 보였다.

카페와 동네의원을 함께하는 제너럴닥터는 일반 학교 대안학교와 같이 일반 병원이 아닌 ‘대안’병원인 것 같다. 의사의 머릿속에서 오가는 판단을 결론지어 말하는 것이 아닌 30분가량의 얘기를 통해 환자를 보고 근본적인 문제를 치료하며 글로 풀어쓴 처방전을 준다. 그저 마냥 신기했던 건 ‘어떻게 이런 생각을 병원에서 조차 했을 까?’ 이었다. 학교에만 학습에만 대안이 있다고 한정지어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병원이라는 차가운 냉기를 따듯함으로 바꾸고 마음의 청진기를 이용해 진료한다는 것이 이상적으로 느껴지면서 지금 사람들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부분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정적으로 틀을 만들어버려서 이런 제너럴 닥터를 보면 놀라운 게 아닌가? 싶어지면서 파생된 다른 생각은, 대안학교를 다니면서도 사고하는 방향을 늘리는 건 내 몫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나도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살 수 있을 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기를 이 두 분은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 또한 이상적이고 쉽지 않을 것 같음에도 이 사람들은 해내고 있었다. 환자와 의사가 구분 되고 병원과 카페가 구분되는 게 아닌 어우러짐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진단뿐만 아닌 정성어린 처방전과 대화로 진료를 하는 것이겠지. 모든 것이 내가 상상 속에서만 이루어질 줄 알았던 것을 실제로 나타내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서 상상을 하기 시작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고 싶다.

어떤 판을 만드느냐에 따라 그 위에 세워지는 것도 다르다. 판을 만드는 것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졌던 나로선 아직 어떠한 판을 만들어야 할지 정해지진 않았지만 판을 만들기 위한 준비과정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 것 뿐만 아닌 내 주위에 것, 날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인식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기준점을 세워 살을 붙여야 한다. ‘근본적인’ 것을 ‘판’이라고 하승창 선생님은 말하셨다. 그럼 이미 나에겐 판이 있는 것인데 그 판을 어떻게 수리하고 어떤 것을 만들어갈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미 내가 지금 있는 것도 나만의 판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생각하고, 학습하고, 놀고, 먹으면서 꾸려져 온 나의 판을 새로 만들려고 하니까 어려웠던 것이다. 어떤 판을 만들어야 할지 하승창 선생님 얘기를 들으며 고민했지만 워크숍이 끝나고 리뷰를 손으로 적으면서 나에게 있는 판은 어떤 판인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4개월 동안 내가 일구었던 판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제정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판은 작업장학교 속에서도, 집에서도, 밖에서도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버려지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나에겐 펌프질과 준비성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들을 주재료로 판을 만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승창 선생님 얘기 중 그것이 가장 와 닿았던 것 같다.

밀어붙이고 나서 계기를 찾는다는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민욱씨가 하신 말씀 중 제일 나에게 의미 있었던 부분이다. 예를 들어 내가 예전에 영등포프로젝트를 왜 하는지 모르겠어서 대체 왜 하는 건가 싶어서 알고 나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했을 때 단지가 ‘우선은 나가보자’ 하셨던 말씀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 때 내가 단지말씀을 듣지 않고 끝까지 나가지 않았으면 하지 못했을, 보지 못했을, 듣지 못했을 것들이 너무 많아졌을 것이고 난 결국 끝내 왜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렸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해보지 않고선 모른다는 말이 나에겐 가장 필요한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우선 해보자는 시도와 마음가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얘기를 듣자마자 개인연구과제가 먼저 떠올랐고 그와 동시에 완성되지 않으면 보여주기 꺼려하는 어정쩡한 마음가짐이 떠올랐다. ‘완성되지 않으면’이라는 추상적인 말 속에 왠지 거부감이 느껴졌다. 한 것 까지만, 부족해도 여기까지만 잠시 멈추고 돌아보고 재정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시간, 과정 없이 어서 바삐 앞으로 나가기에 급급해서 방향을 자꾸 잃었던 것 같다. 이번 학기에 시도를 키워드로 잡은 이유도 흥미위주인 내 모습, 뭔지 모르겠으면 부딪혀 보려고도 하지 않아서였는데 민욱이 마지막 시민 문화 워크숍 시간에 그런 얘기를 해주시니 또 한 번 펌프질이 필요하다고 나에게 말씀해주시는 것 같아서 신선하지만 신선하지 않은 당연한 충격이었다.

 

4개월

돌아본 4개월을 반성의 시간으로 가지기엔 배운 것도 미처 깨닫지 못한 것도 많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 따라가기엔 내 속도로선 버거웠지만 그렇다고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인을 보내지 않고 그래도 따라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돌진한 것이 좀 아쉽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니 앞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기다려줘’ 하며 계속 그것들만 잡고 있을 순 없었다. 부지런히, 그리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것이 정말 시간의 문제인지, 나의 마음이 얼마나 열심을 다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문제인지 고민된다. 물론 속도의 문제도 있겠지만 내가 마음에 치우쳐서 학습을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가짐에 있어서라기 보단 정말 최선을 다하며 지내는 건지에 대한 의문과 반성을 가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책이 아닌 객관화시켜 바라봐야 한다. 4개월을 정리하며 내가 한 것, 못한 것, 안한 것, 노력했지만 되지 않은 것들을 바라보고자 했지만 아직은 어렵다.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된다. 앞으로의 학기를 시작할 땐 이것들로 인해 다시 죄책감으로, 마음으로 시작치 않고 학습들로 고민과 질문들, 나름의 대답으로 시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