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마
18년 동안 단 한 번도 의원회의가 열리지 못했던 나라
정치적 탄압과 가난으로부터 수많은 난민들이 국경을 탈출하고 있는 나라
강제 노동 문제로 ILO(국제노동기구) 창설 50년 만에 처음으로 제재를 받은 나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악독한 군사독재정권이 집권하는 나라

동남아시아에 있다. 동쪽에 태국, 라오스, 북쪽에 중국, 서쪽에 인도, 방글라데시가 있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3배

전체 인구 수는 5651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30여개의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져있다. (2006년)

- 간추린 버마 역사
1886년~1948년 : 영국 지배 - 영국군에 맞서 싸움 (아웅산, 네윈)
1941년~1948년 : 일본의 버마 침공으로부터 꼭두각시 정부가 세워짐. 1944년 아웅산이 비밀리에 연합군과 접촉함. 1945년 일본군의 항복과 함께 1948년 버마 공화국 탄생
1948년~1962년 : 국민국가형성을 위한 과정에 들어감
1962년 : 영국으로부터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군사령관 네윈에 의한 쿠데타로 군사독재 시작
1988년 8월 8일 :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봉기(8888항쟁). 수많은 미얀마 민중의 사살과 구속 가운데 군부가 집권하게 됨.

- 버마인가
미얀마인가
한때 동남아시아에서 쌀 최대 생산국으로써 풍부한 지하자원과 곡물이 많았던 버마는 현재 군부독재로 인해 1인당 GDP가 $1500 정도인 가난한 나라. 국가의 이미지를 쇄신시키고, 소수민족들을 모두 통합한다는 명목으로 1989년 버마 군사정권은 일방적으로 국호를 미얀마로 변경하였다. 허나 민주화를 요구하는 버마 국내외에서는 미얀마가 아닌 ‘버마’로 불리우기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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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88 항쟁
1988년 3월 앙곤 공과대학생들과 동네 청년들이 시비에 붙었다. 이 중 시위진압 경찰에 의해 몇몇이 구타를 당해 희생되는 사건 발생. 이후 1988년 8월 8일 경찰의 강제 진압에 항의하며 전국적인 반독재민주화 요구 시위가 발생.

- 군부독재 치하의 버마 상황
SPDC - 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 - 국가평화발전협의회
* 군부에 의한 강제이주 및 강제 노동.
* 정부에 의한 강제 노동을 증언하고, 국제노동기구에 이야기했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 활동가와 주민들은 체포해 감옥으로 보내짐.
* 임신한 여성, 아이, 노인 등 약자들도 강제노동에 동원되는 상황.
* 군부는 폭력과 강간 방화 등을 일삼고 있다.
* ILO 자료에 따르면 미얀마에서 8만명 이상이 짐꾼이나 건축업부로 군부에 강제로 동원되어 급료도 받지 못하고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 있다고 보고 됨.
* 강제노동은 한 두달 외부지역에서 진행이 될 때도 있는데, 이들은 그 기간동안 집에 돌아올 수 없다. 이럴 경우 집에 있는 아이들은 방치되는 상황.
* 지뢰 등에 의한 희생, 말라리아 등 풍토병에 의해 많은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에 따른 치료나 보상도 없는 상황.

- 버마 민주화 세력의 조직과 현황
크게 3가지 : NLD, 학생운동, 소수민족운동.

 + 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전국민족민주동맹 - 정당이면서 전선운동의 성격도 있음.
대표적 인물은 사무총장 아웅 산 수지 여사. 버마, 태국, 호주, 미국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8888 항쟁 이후 재선거가 이루어져 아웅 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가 선거에서 이겼으나, 군사정권은 지금까지도 권력을 이양하기를 거부함. 아웅 산 수지는 현재 18년간 가택 연금 상태이다.

학생운동
1) 무장투쟁 - 전버마학생민주전선 (All Burma Students' Democratic Front, ABSDF)라는 단체를 중심적. 비록 무장투쟁을 하고 있지만 대화를 통해 버마 민주화를 달성하려는 아웅 산 수지와 NLD를 지지한다. 소수민족의 화해와 연대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2) 지하운동 - 버마전국학생연합 (All Burma Student Federation Union, ABSFU)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버마 내에서 지하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시위 조직, 유인물 배포, NLD 지지 등의 활동을 통해 학생들과 국민들, 그리고 정치인들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3) 정치운동 - 새로운 사회를 위한 민주당 (Democratic Party for New Society, DPNS)는 대다수 학생들이 참여해 만들었으며 90년 총선거 당시 NLD 다음으로 가장 큰 정당. 아웅산 수지에 대한 지지 운동, 그리고 다른 학생 조직들과의 연대 활동을 해옴. 90년 총선 이후 군부에 의해 해산되었으며, 현재는 국경지역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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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운동
버마엔 130여개의 민족이 있는데 그 중 버마족, 카렌족, 카야족, 몬족, 아라칸족, 친족, 카친족 이 8개 민족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함. 1948년 해방 이후 카렌족은 독립을 요구하는 무장투쟁을, 공산주의계열은 사회주의 이행을 촉구하는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군부 쿠데타 이후 대부분이 무장투쟁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들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은 독립 영웅인 아웅 산 장군 생전에 이루어졌던 협약을 준수하라는 것. 그 협약은 영국 식민주의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함께 투쟁할 것과 소수민족의 자치를 위해 공동을 노력할 것을 주된 내용. 하지만 군부는 소수민족들에 대한 탄압을 하고 있으며 가장 대표적으로 소수민족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 공식 언어는 오직 영어와 버마어뿐이다. 또한 자원 채굴에 관련된 것도 있는데, 풍부한 국가의 자원이 소수민족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으며, 오히려 자원으로 인한 강제이주와 노동을 당하고 있다.

- 글로벌학교가 만난 버마
글로벌학교에서는 두 차례 태국과 버마 국경지역에 현장학습을 갔다. 메솟 지역에 있는 멜라 난민 캠프는 거대한 정착 난민촌이다. 40000명이 거주. 외부인이 난민촌에 들어가기 위해선 태국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매일 아침 벤을 타고 멜라 난민켐프를 들어갈 때마다 우린 태국의 검찰을 받고 지나가야했다.

난민캠프 안에는 학교, 병원, 병원, 매점 등 최소한 의식주는 보장이 되고 있으나, 난민 신분이기에 언제나 감시를 받고 있다. 인터넷 사양이 굉장히 낮고, 9시가 되면 소등을 해야 하는 등의 약속도 있으며, 난민캠프를 나갔다 들어가는 등 외부와의 접촉이 굉장히 힘들다. 몇몇 죽돌은 내가 한국 국적을 가짐으로써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자유인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난민캠프의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는 것 중 하나는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 진행하는 제3국 재정착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2년간 1만4000여명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과 호주 등으로 떠났다.

처음에 간 현장학습을 통해 동시대에 살고 있지만 다른 삶을 사는 이들과 연대감을 느끼기를 큰 키워드로 생각했다. 직접 빗물을 받아 샤워를 하고, 비가 오지 않을 경우 물을 길러 수십 키로가 되는 거리를 걸어다니는 이들의 생활속에서, 우리는 이들의 물을 모자라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폐를 끼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었다. 바로 앞에서 가족이 죽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모습 또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민족주의적이며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한국의 학생운동과 북한 사태도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관심을 가졌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런 역사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때문에 대화를 하면서 굉장히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느꼈던 것 - 그들은 혼자가 아닌 우리로 항상 말하며 공동체적 의식을 보여주었다. 예를들어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꿈을 말할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 의사가 되고 싶다. 그래야 우리 민족들을 고칠 수 있으니까.
- 선생님이 되고 싶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는 민족들에게 이 현실을 알려야 한다.
- 음악을 좋아한다. 커뮤니티 싱어가 되고 싶다

이들과의 만남은 글로벌학교에게 굉장히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과연 이렇게 현장학습을 오는 것이, 도움이 될만한 것인가? 우리가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인가? 어떤 입장으로 무엇을 하러 가는 것인지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지고, 절대 쉽고 편한 마음으로 이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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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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