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워크숍

/ 일주일에 한번, 휴일을 지내고 일주일을 시작하는 화요일에는 오후내내 매체수업을 들었다. 춤워크숍도 몸을 사용하고 공연팀에서도 몸을 사용하여 체력적으로 조금 힘겨워서 아쉬워지는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언제나 드는 아쉬움은 우리들의 체력과 컨디션이 평균적으로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이번학기는 더욱이 내 컨디션 조절을 잘해서 주변 죽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던 마음을 가지고 보냈었던 것같다. 춤워크숍시간도 나를 비롯한 죽돌들의 컨디션은 거의 대부분 저조했고 그런 상태에서 우리들은 평소보다 우리들의 몸에 더 주의를 집중하여 움직이고 나를 표현하고 서로와 같이 만나는 방식들을 배웠다.

춤 워크숍에서 처음으로 생각했던 것은 춤은 머리를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오던 춤의 개념은 자신 멋대로 움직이고 표현하는 것이었다. 춤에는 어떤 계산이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머리의 계산이 몸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까 나는 몸과 머리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춤 워크숍에서 반복되는 다리의 움직임조차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으면 제대로 반복해낼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하나의 움직임이 익숙해질 때 까지 의식해야 어느순간 조금 수월하게 몸이 움직인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또 그 상황에 맞춰 어디에 서서 움직임을 시작해야 그림이 좋을까생각하는 것도, 공간을 의식하는 것도 어쩌면 역시 머리를 써야하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춤 중에서도 즉흥춤을 해보았는데, 즉흥춤에서 우리는 한가지 정도의 제약을 두고 움직이는 것들을 해보았다. 그것은 제한일수도 특별한 연결일수도 있었는데 예를 들면 두사람이 만났을 때 한사람은 눈을 감고, 한사람은 눈을 뜨고 한손만 잡고 움직인다던가,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의 견갑골 사이의 등을 잡고 움직인다던가 하는 등의 움직임들을 하였다. 그런 활동들을 통해서 서로 만나서 춤을 추는 듀엣 사이에도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구나, 하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방식을 알게되면 신기하고 즐거운 반면에 더욱 상대와의 몸의 소통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평소 같이 지내는 죽돌들끼리의 소통이 아직도 어려움을 느끼는 나로서는 어떤 다른 소통의 방식이 해결책이 될수는 없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 같은 방식으로 만나더라도 모두의 성향, 미세하게 느껴지는 아우라가 다 달라서 매번 새롭게 마음을 비우고 상대에게 집중하여야 했다. 움직이면서 상대에게 집중하게 되면 자연스레 상대를 따라가게 되었는데, 그것은 배려이기도 했고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했다. 즉흥은 답이 없지만, 분명히 있는 상대와 같이 해야하는 실험이었다. 우리는 서로 어떤 동작을 할지 상상하고, 그공간을 상상하고 서로를 따라가고 이끌어야 했다. 상대를 이끌때에는 더 내상상속의 공간과 우리에게 집중하여 상대를 내가 있는 곳으로 확실히 이끌어야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어떻게 내가 있는 곳으로 이끌지도 의식해서 움직여야했다. 상대를 따라갈때에는 그 상대와 맞닿아있는 작은 몸의 일부분에 집중하여 그의 움직임에 대한 나의 상태를 몸으로 나타내주었다.

 

 

몸의 일부분이 연결되어있다는 것이 서로에대한 믿음을 좀더 강하게 만들었던 것일수도 있다.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낯선 환경. 적당한 긴장. 그리고 믿어야하는 어떤 사람. 그리고 내자신에 대한 어떤 확신.

서로 만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뿐 우리가 만나는 과정의 환경들과 그에 따른 생각들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움직임의 만남에서는 리더 와 팔로워가 매번 바뀌었다. 순간순간이었다. 리더든 팔로워든, 서로를 의식해야했다. 언제나 그 상대의 모든것이 믿음직스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같이였다. 누군가에대한 호기심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대한 호기심이기도 했다. 소통의 창구가 바뀐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줄수 있는지, 누군가를 끌어들일수 있는지, 상대에게 절반쯤 나를 맡긴상태에서 우리가 어떤 것을 같이 할 수 있을까.

소통은 어디에 의미가 있는것일까. 이번 춤 워크숍을 통해서 소통의 중요한 부분은 방식그자체에 있는 것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방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소통의 가치는 그 과정에 있는 서로에 대한 열렬한 호기심, 그 욕망, 그 집념에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희생에 그 가치가 있을수도 있고, 어쩌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결과에 상관없는) 창조력에 소통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모두 너무 감성적인 얘기일수도있다. 소통은 어쨌든 서로에게 배려하고 조금씩 양보해나가는 것이라고 나는 배워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알리고 어떤 결과를 얻는 것만을 소통이라고 할수 없을것같다. 어떻게 저쪽에 있는 사람을 내가 원하는 이쪽으로 끌어올수 있을지 연구하고 그 경로까지 상대를 고려하여 만들어두고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에 대한  촉각을 열어 두는 것이 소통일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를 돌이켜 보자면 나는 가끔 게을러지거나 감정이 앞서 상대보다는 내자신을 더 감싸주고 싶을때가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싶고 심한 말로 공격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의 소통이 마치 즉흥처럼, 나를 거친다음에야 손바닥으로 이어진 상대를 느낄수 있었던 것처럼, 좀더 시간을 둘줄 알고 서로의 기분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나자신이 정말로 알고자 하는 것을 알고 상대에게 물을 줄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춤워크숍에서 즉흥 움직임을 시작할때 내가 느끼는 누군가에 대한 긴장, 그리고 호기심같은 것들을 요즘은 평소의 생활속에서 느껴본적이 거의 없다. 곧 터질것같은 짜증, 스스로에대한 오만함, 회복될것같지 않은 것들에 대한 회피 뿐이었는데 이제는 즉흥움직임을 시작할 때처럼 어떻게든 될것이라는 여유와 같은것을 부리며 그냥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나의 생각들을 그에게 털어놓을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