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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NGOs
11개의 각기 다른 단체들. 마음과 의지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과 미션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났다. 세세히 들여다 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민죽과 삶을 위해 싸우는 그들 우리가 만났던 각 단체들간의 보다 긴밀한 협력과 움직임들이 있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 모든 단체마다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서 놀랐는데, 의식수준을 높히는 것 다음단계의 미션은 무엇일까? 그런점에서 이 단체들이 CDC와 LMTC의 청소년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고, 다음단계의 학습 공간으로 제시될 수 있을까? CDC 가기전 예상했던 것 보다, 규모나 시설면에서 학교태를 갖추고 있어서 놀랐다. 고학년이 될수록 학생수가 줄어가는 상황을 들었을 때, 학교의 입장에서 이들에게 현재의 학습이 앞으로의 삶의 설계를 위해 어떠한 준비를 돕고 있을까? 하자작업장학교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원한다고 가정했을 때, 10대들끼리의 교환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메솟지역(특히 NGO들)과의 협력관계속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점에서 이번 마웅저 선생님의 코디네이팅이 하나의 새로운 교류 방식을 제안했다고 생각한다. LMTC CDC와는 또 다르게 재학중인 학생들의 고민들을 좀 더 세밀하게 엿볼 수 있었다. KNU와 KED와 같이 캠프안에 주요한 기관들이 있는데, 그들은 LMTC의 학생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어른들, 단체일까? 세상과의 접속과 소통이 보다 제한적인 곳에 있지만, 그들각자만의 내실을 기르면서도 보다 확장적인 관계와 학습프로그램들이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그런점에서 캠프내의 기관 뿐만 아니라, 메솟지역의 단체와 활동가들과 CDC등의 또 다른 성격의 학교들과 네트워크한다면 어떤 그림이 만들어질까?라는 상상을 해봄. Zaw 헌신과 열정을 가지고 일하시는 모습에 놀랐고, 감동받았다. 특히나 다음세대와의 만남과 연결에 집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메솟지역내의 활동가들과 10대들의 만남, 한국과 태국을 오가며 활동하시려는 역할이 하자에서 말하는 'cultural animator'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문화 매개자로서, 활동가로서, "메솟에서, 아시아에서, 일하는 법"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 지역의 10대와 활동가와 작업장학교를 이어주신 "bridge". 이번 여행을 통해 생각해보게 된 키워즈. 지속성(vitality를 잃지않기), 역할(bridge, 작업자), 그리고 Road.(경계들을 잇고 위치하고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을 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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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의 "서정시를 쓰지 못하는 시대")
소설같은 현실, 영화같은 현실
평화로운 자연이 가져다주는 선물을 쉬이 응답할 수 없음.
강가의 물살 아름답지만 부서져버린 시간
TV와 같은 환타지. 현실과 현실이 마주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벽
그래도 마음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려하는 매개자 마웅저
촉수를 곤두세우고 각자의 위치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현실을 마주한다고 해서 그 현실의 '조건'에 발목잡히지 말고,
현실에 발 딛으며 지탱할 수 있는 힘을 기르며
그 다음 길을 가야 한다.
Country Road
합창하는 법을 배운다.
그 시간의 경험을 기억하고
그 시간의 힘을 믿으면서
다음을 만들어가야 한다.
Cultural animator들이 올 수 있는 동네
10대들과의 만남
예전에 부족찾기와는 또 다르게
문화매개자, 문화촉매자, 작업자들이 드나들면서
이야기를 생산해내고 다른 곳으로 배달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 웰컴. 강인한 물갈퀴.
-> 나의 너의 우리의 삶을 "웰컴"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때가 왔으면 좋겠다. 삶에 대한 막연한 긍정이 아니라
힘듦을 그저 극복하긴 위한 달콤한 말이 아니라
서로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환영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좋겠다.
"Welcome"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 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례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우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브레히트, 193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