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를 반이상 할애하며 필기한 것들 정리해서 올립니다.
좀 더 정리하고 추가해서 다시 올릴게요. 에세이를 쓰기 위한 정리였어요.

 

노트 정리


FDB: Forum for Development in Burma

2004년 설립

민족 연합 중재, 시위 지원

요구 정책: SPDC에게 정치범 풀어달라고 요구, 타민족 차별하지 않는 것.

        UN은 SPDC에게 무기를 팔지 말아 달라.

        COE(진상규명 위원회) 설립 요청.

Burma에는 두 가지 교육이 있는데, 하나는 군사교육이고 하나는 지역사회 교육이다. 군사교육은 정부가 많은 지원을 하지만 지역사회 교육은 지원이 매우 적다. 미디어 상황도 좋지 않다. Burma 내에 선생님이나 노동자 등이 암암리에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군부 내 스파이도 계획 중이다. 시위 방법으로는 리플렛, 그래피티, 캠페인이 있다. 우리는 Burma의 모든 민족이 군부에 저항하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주의를 이룰 때까지 지원할 것이다.


ABISU: All Burma IT S ... Union

88년에 설립

Burma의 민주화를 위해 IT교육을 하고 있다. Maesot뿐만 아니라 Burma 내에서도 실행하고 있다. 청소년 교육에 힘을 쓰고 있고, 교육을 잘 다지고 싶다. 단체원 중 한 명은 IT교육을 받는 와중에 정치문제로 인해 국경을 넘었다. 다시 Burma로 돌아가 IT교육을 하고 싶다. Maesot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아직이다. Burma 10대들 사이에서 현재 컴퓨터가 유행하고 있고 점점 발전 중이다. 5년 전 군부가 만든 NBD 기업을 통해 단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관련 단체이기 때문에 사이트 내에서 담지 못하는 정보가 많았다. 그리고 G메일은 유료이고 군부가 현재 조종하는 기업의 메일은 무료이다. 하지만 주고받는 메일 내용도 검열이 되고 있다. Burma 내 인터넷은 98년에 만들어졌다. 2000년에는 홈페이지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다른 단체의 홈페이지도 만들어주고 있다. 2002년부터 G메일을 자유롭게 쓸 기회가 생겼다. 원래는 자격증 같은 것을 따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2003년 이후 블로그를 개설할 수 있게 되었다. IT교육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므로 돈이나 검열 등으로 인해 자유를 박탈당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이주노동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Burma로 돌아갈 사람, 해외로 가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일할 것이다.


Knowledge Zone

2000년 설립

이주노동자에게 영어와 Burma어, 태국어(노동, 경찰 매수), 컴퓨터를 교육한다. 16-25살이 있고, 하루 16개의 수업을 진행한다(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2007년 2월 샤크란(?) 항쟁 이후 미국에서 후원을 받아 설립했다.


Youth Connect

학교가 아니라 사무실이다. 돈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는 CDC를 위해 인턴쉽을 하고 있다. 직업이나 생계를 위하되 그 조건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굳이 대학에 가야 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면 한다.

Burma의 청소년들이 모두 학교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안에서도 영어를 잘하고 컴퓨터를 쓸 줄 알아야 대학에 갈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대학가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돈이 문제이다. CDC 아이들은 학생증이 있어서 당장은 안전한 편이지만 졸업을 하면 잡혀서 Burma로 강제 송환될 수 있다. 위장 결혼으로 국적을 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긴 하다. 취직 외에 공장 등에서 일할 수 있는데 위험하다.


BWU: Burma Women Union

88년 항쟁 이후 Burma의 많은 학생들이 국경을 넘었는데, 그중 여성들도 있었다. Burma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설립했다. 95년 7명의 활동가가 모여 시작했다. Maesot에서 7명뿐 아니라 다른 지부들도 만들어 공부와 연대를 시작했다. 5개의 지부가 있는데, Burma국경에 3개, 중국 국경에 1개, 인도 국경에 1개가 있다. 남녀 평등과 여성의 정치 참여, 여성의 지위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 여성, 시민 여성의 지식 발전, 청소년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길 바란다. 여성 교육, 도서관 운영도 하고 있고, 10대 여성이 원하면 인턴도 받고 있다. 교육 부분에선 정치를 주로 가르치고, Burma로 돌아가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다른 지역으로 가서 여성 인권이라는 주제로 토론활동도 하고 있다. 국제 연대를 하고 있다. Burma의 여성 및 정치 문제를 알리고 지지자도 구하고 있으며, 다른 여성 단체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FDB 포함). 또, 단체 활동을 보고하고 있다. 이주여성 인권에 대해 포스터, 보고서를 만든다. 격주로 잡지도 발간 중이다.

구조는, 총회를 2년에 1번, 대표 9명(지부 단체 포함)이 회의를 한다. 또, Burma와 중국의 국경지대에서 에이즈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단체 목표 중 하나는 여성이 함께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고 싶고, Burma 내 모든 청소년을 위해 교육을 하고 있다.

Q: 이후의 계획은?

A: 여성 중심 프로그램, 미래 국가의 대표/단체 대표 전문 여성을 양성하기 위해 진행 중이다. 청소년 교육에도 힘쓰고 있으며, 수용 인원이 적어서 다른 단체로 보낼 수 있도록 계획 중이다.

Q: 교육 프로그램 내용은?

A: 3개월 프로그램과 6개월 프로그램이 있다. 민주주의, 인권, 정치, 국가의 역할, 역사, 언론의 역할, 법이 무엇인지 교육하고 있다. 세계의 여성운동과 Burma의 여성운동 교육도 고민 중이다. 여성주의(Feminism)를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주의를 완벽하게 공부하도록 요구하지 않고, 사고방식 정도만 알리고 있다.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교육도 하고 있다. 2주짜리 프로그램도 있는데, 가정폭력과 여성공간 등의 교육을 포함하고 있다.

Q: 참여 조건은?

A: 단기 프로는 남녀 구분이나 조건 없이 진행하지만, 장기 프로는 Burma어 가능자, 중학교 과정까지는 공부한 사람, 공부하고 활동할 계획이 있는 사람, 함께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

Q: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찾아오는 경우에는 어떻게?

A: 프로그램, 토론회를 통해 홍보중이다. 그래서 연락처를 주고 서로 찾아가거나 온다. 폭력을 당하는데 만나기 힘든 여성들은 구제하지 못한다. 그 여성을 위한 쉼터도 있다. 가정폭력을 상담하고, 가족들과도 상의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여성을 데려올 수밖에 없다. 그 여성들에게는 교육(재봉틀 다루는 법)을 하고 있다. 해결 못하는 경우에는 다른 연대 단체를 통해 해결한다.

Q: 잡지를 보내는 곳, 홍보로 기대하는 바, 영향을 주고 싶은 것은?

A: 국경지대의 지부와 Burma 국내를 중심으로 보내고 있다. 이곳 이주민을 통해 전달한다.

Q: 위험한 활동인가?

A: 군부독재 안에서는 인권 얘기 자체가 어렵다. 첫째로 남녀 차별이 심하고, 둘째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건 법적으로건 얘기가 힘들다. 여성인권 관련해 군부가 계약한 것이 있지만 타국의 시선에 좋게 보이기 위한 겉치레일 뿐이다. 그 계약을 이용하여 몇 가지 요구하고 운동하는 게 있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 몰래 조사하는 일이 많았다.

Q: 퓨니가 한 말임

A: 단체에서 인턴을 한 사람은 활동가, 선생님으로 성매매 문제에 관심이 있다. 해결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 안에서 남녀 비율차가 있다. 노동여성의 권리는 남성과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Q: 프로그램 단기/장기 참여자는 계속 일할 수 있나?

A: 16-25세까지 제한이 있다. 계속 하고 싶어하면 다른 자리도 소개해준다. 약 2년간 함께 지내는데, 기간이 지나면 후원이 힘들어진다.

Q: 남성들의 반응, 단체간의 교류는?

A: 한 의견은 좋고 필요하다이고, 다른 의견은, Burma의 이런 정치적 상황에서 여성 인권을 왜 말하는지 질문한다. 여성만 받아서 여성은 이해하지만, 남성은 이해가 부족하다. 많은 단체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Q: Burma 내의 성문화는?

A: 어머니를 신성화한다. 문화의 문제이다. 여성의 힘이 약하다는 건 인정하고 있다(신체적 조건). 하지만 남성주의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필리핀 여성 인권회의에 다녀왔는데, 그 때 한국의 페미니스트와 대화를 하기도 했다.


HREIB: Human Rights Education Institute in Burma

인권 관련하여 활동하는 단체이다. 아동 노동, 국민 문제가 심각하다. 군인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해져 아동 징병이 늘어났다. 보고서를 통해 인권 상황을 알리고 있다. 여성, 아동인권, 개인인권, 고문, 개개인의 재산 갈취를 관여하고 있다.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군대에 간다. 아동징병은 아이들의 교육의 기회를 빼앗았다. 군인 퇴직은 3명의 보충 인원을 데려와야 할 수 있다. 도망친 아이를 위해 일자리를 마련하지만, 잡히면 다시 송환된다. 현재 국내에서 군대에 대한 여론이 매우 좋지 않다.


Back Pack Health Worker Team

98년에 설립했고 약 300명이 있다. 120명에서 많아진 것이다.

NGO는 전쟁 지역에 들어올 수 없다. 난민, 정글민, 노동자가 10만 정도이다.

15823명의 학생이 School Health Promotion 프로그램을 참여하고 있다. 양육을 위한 자원 조달을 하고 있고, 배달원이 3154명이다. 2시간마다 아이가 사망, 3시간마다 영양실조로 사망, 4시간마다 지뢰로 사망하고 1.5시간동안 죽는 사람이 있다. 말라리아 문제로 40%의 사람이 사망하고, 총 맞아 죽는 경우는 1%이다. 임산부가 조산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 출산 지식이 부족하다. 대부분 막을 수 있다.

이 팀은 의료기구 전달과 출산 돕기, 지속 가능한 교육을 위해 일하고 있다. 1년에 1000명을 대상으로. 깨끗한 물을 위해 수로 시설을 만들고 있지만 실제로 음식을 전달하기는 힘들다. 비타민 A/해충약을 주고 있다. 6개월마다 큰 회의를 하는데 그 때 그곳에 살고 있는 단체와 함께 메딕을 선택한다.

Q: 누가 들어오나?

A: 각 공동체의 추천으로 의료기술이 있는, 2-3년간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들어온다. 뽑지 않는다.

Q: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것은?

A: 한 팀이 2000명의 사람을 케어한다.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카운슬링을 하고 있다. 건강한 사회가 목표다. 지속 가능한 건강관리 대책 기구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기금 관련 노력과 방문자에게 소개, 정보 수집, 다른 기관과 연결, 필요약품 조달도 필요하다.


AAPP

감옥을 나온 사람이 2005년에 모여 만들었다.

100명의 작은 팀이 있다. 감옥 주변에서 상황을 알리고 있다. 사무실은 이곳 하나다. 감옥에 갇힌 사람과 그 가족을 돕고 있다.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도움을 주고 있다. 계기는, 88항쟁 전 8/3에 학생 시위에 참여했다. 상대가 총을 들었지만 투쟁했다. 그래서 3/21에 학교가 폐쇠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때 함께 시위한 사람들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고, 그것을 계기로 설립했다. 88항쟁 당시 연락 수단이 없어서 영국의 Burma 방송국 기자와 연락했고, 88항쟁 관련된 인터뷰를 했다. 이후 그 내용이 라디오에 들어가 항쟁 때 대학생이 모두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89년에 체포되었다가 96년에 나왔다가 2-3개월 후 다시 체포되었고 그 때부터 7년간 감옥에 살았다. 2002년에 석방되었다. 감옥 안에서도 민주주의 논쟁을 해서 에이즈 수용소로 보내졌다. 운이 좋게 여러 통로로 약을 구할 수 있어 지금까지 살고 있다.

감옥 안에서 24시간 중 15분을 나가는데 그 때 씻고 빨래하는 걸 다 해야 한다. 나머지 시간동안 불교 법도에 따라 가만히 있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가르치고 배웠다. 할 말이 없으면 했던 말을 반복해 시간을 보냈다.

Q: 감옥 내 강제 노동이 있나?

A: 상황이 나아져서 강제노동이 별로 없지만, 일반 수감자에게 노동을 시키고 돈도 주지 않는다. 정치범은 대항하기 때문에 노동을 하지 않는다.

Q: 감옥 내에 불평등은?

A: 때리는 건 물론이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고 있다. 태국어는 여자와 남자를 부르는 말이 다른데, 남자에게 여자 이름을 붙여 자신을 여자로 부르게 만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때린다. 책도 가져가지 못하고 TV나 라디오는 물론 없다. 24시간동안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밥을 주지 않거나 밥에 설사약을 넣는다.

공부를 쓰고 읽는 게 필요한데 종이와 펜이 없어서 비닐에 나무로 긁어서 썼다. 비누인형을 몰래 만들기도 한다. 개를 뒤에 세우고 위협해서 먼 곳으로 보내기도 한다. 또, 투명의자 같은 참을 수 없는 자세를 시킨다.

Q: 일반 죄수와 정치범의 차이는?

A: 같은 문제 안에 있지만, 일반 죄수는 어떤 요구를 하지 않고, 정치범은 요구를 많이 한다. 그래서 더 고통스럽다. 일반 수감자는 큰 공간에서 10-12명, 하루 몇 시간을 밖에 나와 있지만, 정치범은 10년형인데 10년이 지나도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의 기업 대우가 하는 건설 사업으로 단체 노동을 당한다.

70만 서명으로 석방을 요구했다. 80만이 목표였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파급효과가 매우 컸다.

Q: Burma 내 민주화 상황

A: 8888항쟁 전후 모두 군부가 통치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 안팎으로 계속 싸우고 있다. 하지만 8888항쟁 같은 걸 언제 일어나는 지 알릴 수 없다. 계획은 하고 있다. 그리고 작은 시위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07샤프란 혁명, 8888항쟁 같은 것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NLD 위원도 새로 바꿨다(보수에서). 지금은 학생 조직도 있고, 감옥 안에 2000명도 넘게 있었다.

Q: 기록의 중요성

A: 기록할 수밖에 없다. 군인에게 복수해야 한다. 아픔이 멈추길, 과거의 고통을 보여줄 것이다(역사). 대화가 필요하고, 화해가 필요하다. 싸움하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 다 같은 Burma 국민이다. 누구도 죽어선 안 된다. 어떤 선배가 있다. 16년간 옥살이를 했는데, 그 선배가 군인에게 돌을 던지거나 욕하지 말라고 했다.

Q: 가족과 만나고 싶을 때는?

A: 2주에 한 번 면회가 가능하다. 법적으로. 하지만 그 시기가 되면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다른 지방으로 보내버린다.


디스커션

PEACE

- Feminism (Fixed thinking)

- Human Rights: equal life for all people

- We: Living Together

- How to make peace together

+Can spread by Media

 Everybody can thinking, writing

 Everybody don't feel discrimination

 Everybody can study anything

+No war/weapon


TSYO: 팔라웅 연합. Ta'ang ... S Y Organization

99년에 설립했다. Burma의 불평등을 반대. 92년부터. 이때부터 지금까지 Youth Helper.

팔라웅족은 북Burma 경계에 거주한다. 평화와 민주주의를 꿈꾼다. 성평등, 리더 양성, 민주주의 연방국가. 독재정권을 끝내는 것을 바란다. 민주기관, 국제 혁명, 세계 청소년과 여성 연합, 학생 및 청소년 의회, 발버둥치는 사람을 위한 협력 지지를 목표로 한다. 문화, 전통, 삶의 가치를 위해! 보존하고 격려하고 국가 정체성을 갖게 한다. 인턴쉽, 클리닉 등을 배워 Ta'ang으로 가서 활동. 군사 캠프가 자연을 파괴하는 것과 마약 살포를 막는다. 의료에 대한 인식이 증가했다. Ta'ang족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단체를 지지하고 Ta'ang의 땅과 환경을 보호하고자 한다.

댐이 3개 만들어질 건데 1개는 이미 건설이 되었다. 차 재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댐 지역은 전기가 있지만, 댐 때문에 이주한 지역에는 전기가 없다. 소수 민족을 위한 조치가 없어 일도 못한다. 여성들은 군인 마음에 들면 결혼해야 하고, 결혼 지참금을 받지도 못한다.

+PWO: Palaung Women Organization.

<프로그램 소개>

2000년에 시작. 팔라웅 여성의 정치 참여, 인식 변화, 1년에 3번 프로그램, 1번당 3개월, 연간 2번의 인턴(6개월). 성차별과 가정폭력 반대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Burma에선 플란치오라는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강간 여성, 가정폭력 여성, 성매매 여성을 위해 설립했다. 이주민학교 청소년을 위한 공간 교류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플란치오에도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이 있다. 청소년+여성단체 연합 프로그램을 통해 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문화 교육 운동 프로그램은 타국인에게 Ta'ang을 소개할 수 있도록. Ta'ang 전통 옷도 팔고 있다.

연구팀, 정보팀, 다른 단체와 연대한다. 그 결과 신문 잡지 보고서(2006, 2010)를 전달했다. 국내, 국제연대(PWO 중심, 여성연합 단체 중심)을 하고 있다. 활동가가 몰래 국내로 진입하여 정치 탄압에 대한 서명을 받기도 했다. 인권 탄압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보고서 내용>

2006년 보고서- 마약으로 인해 고통 받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달. 연구 해보니 마약 문제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그래서 2010년에 다시 발표할 것을 계획했다.

2010년 보고서- 지역 남자 대부분이 마약을 한다. 마약은 우리 지역에서 재배하지만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시민, 민족의 고통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UN 기관이 마약을 조사 중이다. 보고서를 내기 전 UN ODC가 먼저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군부와 상의했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우리는 몰래 지역에 들어가서 조사했으므로 더 자세한 내용이 있다. 군부는 마약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냥 겉치레일 뿐이다. 마약밀수 문제는 그 주민들이 마약을 복용하고, 가정폭력이 심해지고, 분쟁이 커진다. 마약 복용자는 정치, 인권, 교육에 대해 관심이 사라져 남자 복용자가 하루 종일 마약만 하다가 가정을 파괴한다. 마약을 이용하지 않는 남자는 스님밖에 없어서 결혼을 할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마약의 부정을 알면서 계속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62년부터 시작된 군부, 88년 이후 경제난이 생기며 차 재배로 먹고 살던 민족이 마약을 재배해야 했다. 차는 3년간 재배해야 하고 값도 싸지만(정부의 가격 조정), 마약은 재배가 쉽고 가격도 비싸기 때문이다. 그런데 SPDC는 마약을 하면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마약을 오히려 이용하고 있다.

2010년부터 다시 한 번 선거가 있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더 늘어난 마약 농사는 음모일 수도 있다. 돈을 벌러 가면 돈은 가져오지 않고 마약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마약 가게도 만들었다. 경찰도 마약을 한다. 마약상을 체포하는 것이 시급하다.

마약을 끊고 싶다고 하면 센터로 데려와 도움을 준다. 2005년 무장투쟁 포기 이후에는 그 지역에 가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UN에 기대가 커서 상의를 하고 부탁을 했으나 핑계가 많았고, 군부와 협력관계라 포기했다. 지식인 마약꾼도 있으나, 끊어야 하는 걸 알면서 끊지 못한다. 마약하는 경찰들이 우리를 돕기도 한다. 마약 문제는 국경이 없어서 화두가 되고 있다. 양곤 청년도 마약에 빠져 장난감이 되고 있다.

Ta'ang어 교과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마약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Ta'ang은 교육 문제가 심각하다. 교사 월급이 너무 작다. 초, 중학교는 있지만 고등학교는 정말로 찾기가 힘들다. 팔라웅 인권은 팔라웅 시민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국제 시민사회의 역할은 팔라웅을 계속 주시하고 지켜보는 것이다.



리뷰

1일

1. 지속적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

민주주의라는 확고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정체성이나 이야기를 갖는 게 힘들지 않을까?

2. 다양성과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니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구체적인 계획을 잡기 힘들어졌다. 내가 다양성과 창의성을 이야기할 때 어떤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었을까?

3. Exchange 때 배려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Idol 이야기에 기뻐하던 아이들을 보며, 매체에 노출된 상황에 놓인 한국의 아이들, 그 아이들이 꿈꾸는 아이돌과 CDC 아이들이 꿈꾸는 아이돌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아이들과 나눈 명함에 서로 이름에 붙이는 수식어를 뭐라고 쓸 수 있을지 질문하게 되었다.

4. 이방인이 되어 여러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이 무척 불편했다. 낯선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익숙한 곳을 벗어난다는 것. 문득 다시, 하자를 나갔을 때 관계를 맺을 사람들이 나를 낯선 이방인으로 느낄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하자의 7가지 약속이나 관계 맺는 방식(동료 작업자). 나는 이방인으로만 남는가? 철없는 두려움?


2일

Group Activity

꿈을 묻는 건 쉬웠지만 이유(과정)를 듣는 건 어려웠다.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Burma에 대한 정치적 견해보다 현재 Maesot의 환경에서 가질 수 있는 생각을 들었다. 좀 더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 없던 걸까?

ABISU

즐거운 대화를 나눈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 다양성이 없다는 점에, “공략하지 말고 낙후시켜라”라는 말이 생각났다. 먼 미래에 대한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얼마나 지속적으로 갈 수 있을까?

Knowledge Zone

치열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행운아들,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를 받았는데,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Burma보다 좋지만, 나는 대안을 선택했고 스펙을 쌓으며 살 수 있는데 굳이 대안을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불편한 진실을 알고, 그것을 개선하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쉽게 정리하기는 힘들다.


3일

Youth Connect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 그 상황에 맞춘 교육 방식

BWU

여성주의를 함께 하는 것 자체에서 기쁨이 컸다. 단체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Youth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 단체에서 6개월간 인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HERIB

현실의 벽이 눈앞에 보였다. 여기선 절망감이 많이 느껴졌고, 내가 뭔가 해야 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생각에서 멈추기 싫다. 그래서 내 자리, 내 위치를 정비할 필요를 느꼈다. 군사주의가 가져오는 트러블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은 계기가 되었다.

CDC와 토론

너무 환경이 주는 압박에 눌려있다는 생각을 했다. “We have nothing. But you are lucky. You have opportunity.” 그 압박에서 벗어나 얘기를 듣고 싶기도 했다.

정보임 선생님

기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많다. 하지만 시작했을 때 책임감과 의무를 갖는 게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다. 좀 더 현실적으로 내 삶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4일

-백팩

처참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 의료.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더불어 폭력 시위, 전쟁 피해,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곳 여성들이 받을 피해는? 아이들의 삶은? 누가 사람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해본다.

-AAPP

화해를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디스커션

인권 공부를 하는 아이와 이메일을 나눴는데(aungaung), 그 친구와 함께 연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공부한 맥락 안에서 이야기한 것. 하지만 나는 페미니즘 공부할 때는 그렇지만, 공부를 현실로 가져오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한번에 팍!을 바라는 건 물론 아니고). 누구의 기준에서 인간을 말하는지. 모두 다 같이 사는 게 가능할까? 모두 평화를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 진보나 발전의 의미를 다시 질문해본다.


profile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