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 홍콩, 메솟 정리 에세이 제목 미정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하자작업장학교의 모든 죽·판돌은 홍콩에서 진행된 MaD(Make a Difference) 컨퍼런스와, 마웅저 선생님의 도움으로 Burma와 태국의 국경지역 Maesot과 난민캠프 MaeLa에 다녀왔다. 이 장기간의 여행은 갑작스럽거나 운이 좋다는 수식어보다는, 자연스럽게 갔다는 말이 더 맞다. 나는 여행 전 Aung San Suu Kyi 여사가 쓴 글과 그녀의 활동을 보며, 국부의 딸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지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처한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상황을 Burma의 여자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Burma의 여성들이 처한 위기와 갖고 있는 생각들이 궁금했고, 난민 지역에 있는 청소년들은 어찌 보면 정부에 대항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한 자신들을 어떤 세대라고 정의하고 싶은지, 혹은 자신을 어떻게 부르고 싶은지 질문하고 싶었다. 두 가지 큰 질문을 껴안고 출발한 여행은, 홍콩을 기점으로 서서히 시작되어 Maesot에서 MaeLa로, 다시 Maesot으로 돌아와 다시 인천으로, 그리고 13000원짜리 공항 리무진을 타고 쌍문역에서 내리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집으로 돌아와 짐 가방에 쌓인 빨래를 세탁기에 탈탈 털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메일 확인이었다. How are you?나 I miss you로 시작한 이메일에 답장을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쳤고, 잠들기 전 불현듯 내가 원래 갖고 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내가 기대하고 있던 것, 상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Maesot과 MaeLa의 환경과 그곳 친구들의 생각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Maesot에서 우리는 마웅저 선생님의 연결로 CDC1)의 SAT2) 학생들과 함께 약 15개의 단체를 방문했다. Maesot 첫날 SAT 학생들과 갑작스런 인사를 하고 난 뒤 일정을 공유했는데, 그 때부터 Maesot에서의 일정이 예사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꽉 찬 행사와 방문 일정, 동선이 더 짧았다면 하루에 3~4개의 단체를 방문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웅저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이런 과감한 일정을 제시하였는지 궁금해졌다. 단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으며 BWU3)와 PWO4)에서 Aung San Suu Kyi 여사에 대해 질문할 것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실제로 BWU에 갔을 때 아웅산 여사와 관련된 질문은 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가 너무 좋았다. BWU는 다른 단체들과 다르게 특히 편했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2~3일만 머물러서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Burma와 한국은 현재 정부의 상태나 국민들이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성차별에 있어서는 유사한 점이 많았고, 하자 밖/책 밖에서 페미니스트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 나를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곳 일정이 끝나고 퓨니와 단체 대표 분의 이메일을 받아 적고, 주말에 기회가 된다면 꼭 들르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후 밖을 나오며 ‘이 단체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진로를 선택함에 있어서는 겁 많고 신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툭툭 생각을 해버린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어째서 BWU인가를 질문하기 이전에 ‘누구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큰 질문 안에서 ‘누구와 어디서 일할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질문을 뽑아내게 되었다. 나는 이 질문을 통해 일한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단체 방문을 통해, 5)LMTC 청소년들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건, MaeLa나 Maesot이 Burma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청소년들이 국경을 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 대부분이 교육을 받고 다시 Burma로 돌아가 지식을 나누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영상 Activity를 함께한 LMTC 친구 중 한 명은 그것이 자신의 의무(duty)라고 얘기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가질 책임감의 무게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졌다. 자신의 의지로 넘어와 자연스럽게 헌신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투지에서 나는 한편으로 존경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시민문화 워크숍 에세이에 이야기한 기여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나의 주니어 과정을 통해 내가 지속하고 싶다고 다짐한 것 중 하나는 문제 상황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이다. 나는 그 용기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 내가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것을, 시민문화 워크숍을 통해 나를 구하는 것이 세계를 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헌신하는 마음이 없다면 기여를 지속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수료를 앞둔 시점에서, 대학을 생각하는 시점에서, 그것도 NGO 단체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시점에서 용기와 헌신을 생각하니 참 막막하다. 페미니즘 공부를 하며 ‘왜 공부한 것이 현실에 반영되지 않지?’라는 질문을 던지듯, 내가 ‘하고 싶다’, ‘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실천할 수 있는 기동력내지는 원동력을 지속적으로 품을 수 있을지 질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질문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혼란스러움의 원인일 수도 있겠다. 이 혼란을 통해 질문해보는 건, 내 입장에서 대안적인 삶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것이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15일이라는 긴 여행 또한 내 삶을 낯설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를 설명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불편한 진실에 기죽지 않고 당당히 권리를 주장하려 하고, 스펙 쌓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말하되 현실성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지금까지 내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안을 주장하는 것과 삶에 대안이 녹아들어있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대안을 주장하는 내가 그 대안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면, 그 현실을 어떻게 슬프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하자를 수료했다고 내 삶에서 대안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자를 수료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대안을 내 현실에 적용하고 싶다. 나는 그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너무 대안이라는 단어를 막 쓴 건가? 그건 아닌데) 내가 존경을 느낄 수 있던 이유는 과정이나 상황이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에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난민 캠프라는 플랫폼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Burma 권력에 있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했다. (한국의 대안교육-Maesot과 MaeLa의 청소년들과 이야기하며 헌신과 기여를 이야기하는 것이 LMTC나 CDC의 주입식 교육이나 한 명 한 명의 교육받은 사람들이 인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야기라는 것을 점점점...) 그래서 나는 CDC와 LMTC의 아이들에게 너와 나의 현실이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 세계가 공존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할 것인지 다시 한 번 질문하고 싶다. ‘세계를 구하는’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에 눌려 ‘나 하나가 어떻게’라는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다. 그 질문에 대해 지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말 그대로 세계를 구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문장을 잇고 싶은데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누구와 어디서 일할 것인가, 누구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제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2. 끝없는 타자화와의 싸움, 작업 대상과 대화 상대를 구분하지 않기 위하여. 이것은 수료 에세이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하자에서 10대, 10대 외치던 그 과정을 정리할 때가 왔다. 주니어 1학기 때 청소년 창업 기고 코너를 기획하고, 2학기 때 10대에 대한 영화를 찍고, 3학기 때 휴학하면서 프로젝트 <얘. 너. 나>를 기획한 것, 정선에서 영원히 10대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 Burma 기록 영상을 Youth들과 나누고 싶다고 이야기 한 것을 정리할 시기다. 내가 영원히 10대로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건 내가 10대라서 느낀 문제 상황의 원인이 되는 어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권리를 주장함에 있어 ‘누구의 입장인가’를 말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여성주의에서 말하는 권리, 그 외침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권리 모두 입장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서로의 논리가 부딪치는 것이다. 또, Maesot의 NGO들이 말하는 교육은 10대의 입장을 반영하고자 노력하기에 긍정적이지만, Burma의 군사주의 교육은 철저한 정치적 편협함이 있기 때문에 거부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또, 하자의 교육은 죽돌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말하고 판돌이 그 요구에 맞춰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때문에 입장을 함께 한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한국의 정형화된 입시위주 교육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나는 각자의 입장을 함께 할 필요가 있고, 불편하다고 느낄 때 자신의 입장을 말해야 그 불편함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변화를 말하는 Burma 청소년과 한국 청소년이, 비록 상황은 다르지만 어떤 권리를 주장하고자 하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얘. 너. 나>를 기획할 때 가진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방황하는 10대를 ‘탈선 청소년’이라는 골치 덩어리로만 보는 사람들에게 이 청소년들이 하나의 덩어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 그 이름이 다 다르고 살아온 경험이나 생각이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참가자들과의 멘토링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과정을 내가 필요로 하는 이유를 확실히 해두지 않았던 것 같다. 때문에 목적 없는 대화는 같은 자리를 맴돌았고, 나는 나에게 큰 실망을 하고 프로젝트를 끝마쳤다. 다시 하자로 돌아와 정선 프로젝트를 할 때도 10대와 만나겠다는 포부를 표현했지만, 실제로 만나는 것조차 하지 못했고 ‘고한고교에서의 사색’이라는 제목으로 10대 챕터를 마감했다. 그러나 LMTC의 10대들과 만날 때는 조금 더 나아간 고민을 해볼 수 있었다. 그곳 청소년은 정부에 대한 반발심이 강했고,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서, 나도 함께 입장을 외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했다. 그 때 나는 내가 10대를 만나고자 하는 이유가 함께 연대하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만남과 대화는 정보를 얻는 과정보다 서로가 empower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10대를 만나면서 해온 실수, 권리를 주장하거나 입장을 표명하려 하지 않는 청소년들에게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케이스만 가져오려고 했던 지나친 타자화를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대상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10대이고, 그것을 구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고민이 생긴 건 내가 여행을 가기 전 준비한 두 가지 질문, ‘자신의 세대를 정의한다면’과 ‘아웅산 수지 여사에 대한 생각’을 누구에게 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LMTC에서 4학년들과 공개적인 토론을 할 때 현재 같이 있는 10대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는 질문을 했지만, CDC의 학생들과 이야기할 때는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힘들었다. 사실 CDC 학생 중 인권이나 정치를 얘기하고자 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 아이들에게 질문할 수 있었지만 내가 계속 같이 있던 아이들은 정치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 때 내가 우정을 나누는 사람과 주제가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해두고 있다는 한계를 느꼈다. 수료학기 학습 계획서에 쓴 목표는 ‘이상적인 관계를 상상하고 구현한다’이다. 내가 Maesot에서 느낀 문제점을 한국에서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관계는 대화를 나누는 관계이다. 좀 더 설명하면, 역할이 구분된, 파편화된 목적 위주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페미니즘 공부모임 사람들과 여성 인권을 이야기하면, 하자 밖 친구들과는 흥미 위주의 만난다는 것이다. 두 만남 모두 의미 있지만, 어떤 사람과는 흥미 위주의 대화가 가능하지 않고, 어떤 사람과는 공부 얘기를 할 수 없다. 그 할 수 없음이 싫기 때문에 이상적인 관계에 좀 더 욕심을 내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관계 맺는 모든 사람과 내가 만남의 방법이라고 나눠둔 것을 모두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이 생각은 아직 풀리지 않고, 진전되지 않고 있다. CDC 친구 영진, 미진, 혜진, 윤지와 나눈 우정을, 토크 때 Peace를 함께 얘기한 파치나 Aungaung의 이야기, 그 두 가지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고민되는 것이다. 내가 만나고 싶은 10대를 계속 이렇게 두 가지로 분류해서 나눌 것인지도 고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10대의 불안정하고 무기력한 현실을 계속해서 고발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비록 나는 함께 연대하여 이 상황을 고발할 사람과, 우정의 교류를 하지만 현재 10대의 케이스를 읽어내게 되는 사람을 분류하고 있지만, 이 사람들 모두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10대가 일어나서 저항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Maesot의 어떤 단체가 인권침해를 당하고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인권침해다’라고 알리고 있다는 이야길 했고, BWU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여성주의를 자신의 생각으로 가져가야 하지는 않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말하는 입장 정도만 교육한다고 했다. 나도 어쩌면 그 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내가 10대로서 겪은 문제 상황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래서 내가 타개하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3. 객관적이지만 주관적인 매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맺은 관계를, 나눈 대화를 잊지 않기 위해 영상팀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사실로 보여주되 제작하는 사람의 입장을 어느 정도 반영한 작업이다. 주니어 1학기 때 웹진 하자로를 기획하며 기사를 많이 썼는데, 그 때 나는 사실을 보여주되 내 입장도 담을 수 있다는 것, 객관적이지만 주관적인 이중성에 큰 매력을 느꼈다. 주말영상학교에서 영화를 한 편 찍었는데, 그 때 나는 논픽션과 픽션이 복합적으로 섞인 영화라는 장르에 오해를 하고 있던 것 같다. 시나리오는 내가 만든 이야기인데 어째서인지 너무 사실만 보여주고 ‘뚝’ 끝나버리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포함되지 않은 플롯이 되어버렸다. 한참을 후회하다가 결국 추가 장면을 덧 찍어서 편집을 통해 영화를 다시 한 번 더 만들었다. 그 때 나는 편집의 힘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청소년들의 희망 직종 중 연예인 비율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TV를 많이 보는 시간에 하는 프로그램에는 모두 연예인(아나운서 포함)이 나오고, 그들은 모두 현재 미의 기준으로 예쁘고 잘생겼다. 여가시간을 질문하면 대부분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한다고 답한다. 비슷비슷한 스토리 라인에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배우만 다른 드라마는, 전 국민의 30%이상이 보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대충매체는 이미 사람들의 일상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런 한국의 상황에 문제가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던 찰나, Maesot 아이들이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서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아이돌 가수가 되어 유명해져서 사람들에게 Burma의 정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어쩌면 그 방법이 매우 똑똑한 저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아이가 저항을 얘기한 건지는 모르지만, 매체의 조작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시도를 하면 아이돌 가수가 주는 고정된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가수는 꿈일 뿐이고, 현실적인 직업은 다른 거라고 말했다. 그 때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 벗어나보는 상상을 할 수는 없을지 질문해보기도 했다. 그 꿈을 듣고, 처음에는 ‘아니 민주주의는 어떡하고!’라는 오지랖으로 매체의 책임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이돌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TV=바보상자’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또, 내가 매체 작업을 원하는 만큼, 그리고 매체가 주는 효과를 실감한 만큼 그 책임감에 대해 다시 한 번 다져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CDC 학생이 한국을 방송에 나오는 이미지로만 생각하게 된다면, 다른 나라에 대한 판타지 때문에 자신의 국가를 미워하게 될 수, Maesot에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을 싫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 판타지에 사로잡혀 ‘평범한’ 삶의 기준을 매체가 말하는 기준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매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언어로 사용하려 하는 영상 매체는 정확한 사실과 제작하는 사람의 입장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지금 영상팀은 Maesot과 MaeLa에서 찍은 약 50개의 테이프를 편집하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고 한다. 보았으면 하는 사람, 다시 들여다봤으면 하는 이야기 같은, 의도하고자 하는 것은 하자작업장학교의 영상팀이기 때문에 의도되는 것이다. 그 의도들과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사실이 잘 조합해 다큐에 반영할 것이다. -마무리와 에필로그, 서론은 좀 더 다듬는 것이 필요.- ![]() ㅎㅎ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