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기차를 타면 옆자리는 비어 있기 마련이다.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고 가끔은 음식을 나눠주며 말을 걸기도 한다.
15살 때쯤이다.

어디로 가니? / 지리산이요. 학교가 그 곳에 있어서요. / 학교가 그 곳에 있다고? / 대안학교라고 일반학교와 다른 학교에요. / 그 곳에서 무엇을 배우니? / 일반 지식교과를 배우는데 교과서는 없어요. 농사도 짓고 그래요.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하는 것들이 많아요.

이런 대화가 오고가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아 그렇구나, 흥미롭구나 하며 말을 접거나 아니면 

아줌마는 교감선생님 부인인데 공부 열심히 해야 돼 / 물론 어떤 공부는 되겠다만 그렇게 해서 사회에서 살 수 있겠니 / 요즘에는 대학학력만 따지는 게 아니라 고등학교 학력도 따져서 좋은 고등학교 가는 것도 중요해 /  그래야 결혼을 잘하지 / 어른으로써 충고 하는 거야 / 공부 잘하고, 말 잘 듣고, 나쁜 친구들 따라하지 말고.

대안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후 나는 이런 질문들을 들어왔다. 대한학교? 이러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고 모르는 아이도 제 자식마냥 다독이며 어떤 경험이 있는 어른으로서 조언을 해준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갑자기 대안학교가 무엇이니? 라는 질문을 들을 때 나는 무슨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이지? 라고 생각하곤 했었지만 이것도 한때고 다시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면 그런 것들을 잊고 지내길 반복했다. 작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대안학교인 하자작업장학교로 진학하였고 이제 하자작업장학교를 수료하는 상황에서 나는, 함께 보냈던 시간의 보따리를 풀어헤쳐 내가 바리바리 가지고 있던 시간들은 무엇인지, 이것을 가지고 어디로 가야할지 살펴보려 한다.

내가 대안학교를 가겠다고 말했을 당시를 생각해보자면 나는 그 당시에 섬머힐이라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섬머힐에서 어떤 사건이 있고 그 일에 대해 학생들이 회의를 다루는 것을 다룬 글을 보았다. 학생들이 어떤 사건에 대해 회의하고 자치적으로 어떤 것을 결정한다는 일에 가슴 뛰면서 나도 이런 학교를 다닐 수 없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인터넷으로 찾다가 마음에 들었던 학교가 실상사 작은학교였다. 작은학교의 홈페이지에는 학교를 만들고 학생들이 한 집에 모여 직접 밥을 지어먹으면서 생활관에서 살고 있는 모습의 사진들이 있었고 사진 속 학생들은 즐거워보였다. 나의 초등학교생활은 나쁘진 않았지만 즐거운 일도 없었다.

학교설명회 때 작은학교의 대표 선생님은 대안학교에 대한 판타지라는 말을 하시곤 하셨다. 작은학교는 유토피아 같은 곳이 아니라는 말씀이었던 것 같다. 나의 판타지 또한 학교를 입학하고 곧 깨졌다. 내가 바라던 자치회의 시간에 나는 정작 의견을 잘 내지는 못했다. 생활 패턴이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예전과는 다른 모든 것들이 피곤하고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학교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내가 어떤 학교를 바라며 들어왔는지 생각해보게 되었고 어느 시기엔가 나는 학생회를, 축제 기획을 하고 있었다. 생활도 사람도 공동체도 익숙해졌을 쯤 졸업을 하게 되었고 고등학교를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을 할 때 나는 고등학교를 가지 않기로 했다. 일반학교를 가고 싶지는 않았고 고등과정의 대안학교를 찾아봤을 때 어느 곳을 가야할지 몰랐었다. 당시 나는 생태건축에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 학사를 짓기 시작하여 나는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고 공사판에서 4개월 정도를 지냈다. 그 시간을 보내면서 나에게 지금 누군가가 없이 혼자 배운다는 게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집에 있는 기간 동안에도 나 혼자 계획을 세우고 내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를 찾는 게 어려운 것 같았다. 무언가 제대로 시도하지 못하기를 반복하며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이렇게는 안 되고 나에게 학교가 필요하다는 절박한 심정에 오게 된 것이 하자작업장학교였다.

작업장학교에서는 '그래서 어떻게'가 중요한 질문이다. 생각만, 말만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중이 아닌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주니어 1학기 때 한 save my city는 내가 어떤 도시의 모습을 꿈꾸는지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리산에서 도시로 나의 학습공간을 옮겨오면서 사실 나의 도시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내가 학습하는 곳이 도시가 되었고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도시라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어페어를 통해 나의 삶의 환경을 지키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삶의 터전에서 외부의, 개발 논리들로 인해 소리 없이 쫓겨나고 재정착하고 다시 순환되는 상황에 나 또한 이 굴레에 속해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하며 살 것인가를 질문 받고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나에게 있어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하자작업장학교에 들어와서 길찾기를 했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모습은 행사가 끝나고 쓰레기통을 뚫고 나온 일회용품들이었다. 작은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방문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학교에서 내가 배웠던 것이 작은학교를 나와서는 통용되지 않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다.

주니어를 진학하고 환경문제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주니어 2학기 때 기후변화시대의 living literacy를 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 나에게 환경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들은  바운더리 안에 있는 작업장학교에서 에어컨이나 종이컵 등 자원이 낭비되는 것들에 대해 절약하는 것, 왜냐면 그것들은 조금만 신경 쓰면 줄일 수 있고 그러면 덜 파괴되고, 덜 오염된다는 사실들이 생각나면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기후변화시대의 living literacy를 하며 영상도, 책도 찾아보기 시작했고 기후변화의 문제는 전 지구적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문제시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북극이 녹고, 발전을 위해 자원은 낭비되고, 삶의 조건이 나쁜 곳은 계속 나빠지고, 생태계는 혼란스러워진다. 자연이 없으면 사람 또한 살 수 없는데 당장 먹고 살기 빠듯한 일상일수록 이런 사실들을 의식하기가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 문제를 하자작업장학교만의 질문이 아닌 홍콩창의력학교와도 같이 고민하며 유스토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학기가 끝날 때 쯤 13가지의 약속들을 정하였다. 지구온난화가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캠페인도 다큐멘터리도 많이 하고 있어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를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바뀌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기만 해선 안 되고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생각과 말과 행동을 동일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3학기가 되어 나는 기동력을 갖추고 싶다는 것을 학기의 목표로 가져갔다. 알고 느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행동까지 하는 것이 내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 학기에 한 STUDIO 시간의 워크숍들은 내게 재미있게 작업한 경험이다. 성보씨와 한 시나리오 제작 워크숍과 프레드와 한 포스터 워크숍에서 나의 경험을 이야기로 만드는 경험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영상, 이미지로 전달한다고 했을 때 고려해야 하는 것과 그 것을 어떤 형태로 직접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까지 과정이 내게는 무언가를 한다고 했을 때 턱 하고 막혀버리는 부담감 같은 부분이 해소되는 시간이었다.

워크숍의 기운을 가지고 정선에 있는 고한읍과 사북읍에서 하는 감동프로젝트 틱틱틱 캠페인 영상을 영상팀 안에서 기획하였다. 고한과 사북은 한국 근대의 경제성장에 원동력이었던 광산이라는 장소와 지금 현재 거대자본이 움직이는 카지노라는 장소가 공존하면서 과거와 현재가 극단적으로 나누어진 듯한 곳이고, 실제로 그곳에서 시간이 박제된 듯한 공간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T,C,K를 몸으로 만들어 영상을 찍었고, 그 이후에도 지구마을, 낙동강에서 한 것을 추가적으로 편집하였다. 그러나 영상을 만들고 나서 영상팀 모두 우리가 만든 영상에 없는 것을 코멘트 받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영상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분명치 않아졌다. 실제로 하고자 하는 마음은 정말 많았지만 생각하던 이야기들을 다 모아보니까 어느 이야기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하나의 영상으로 만들어 낸 후에야 보였다. 학기 초에 말한 기동력을 갖춘다는 것이 생각에서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 내게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 것이었다면 영상을 만든 이후에는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내게는 기동력 갖추는 것과 함께 숙제가 되었다.

이번 현장학습에서는 열망하는 것을 위해 저항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났다. 다양한 소수민족이 한 나라로 있던 버마는 영국의 식민지 생활에서 해방 이후 군부가 정권을 받아 지금까지 독재 정권이 이어지고 있다. 소수민족을 폭력으로 탄압하고 합의 없이 버마에서 미얀마라 국호를 바꾸는 등의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메솟에는 다양한 NGO단체가 버마의 민주화를 주장하며 활동하고 있었다. 그 중 중요하게 하고 있는 것은 다음 세대인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어느 사회든 완벽한 사회는 없고 그래서 결핍된 어느 부분을 채우기 위한 움직임들이 일어난다. 하자작업장학교도 한국의 경제적 위기와 탈학교현상이 생기고, 학교를 나왔지만 배움을 지속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모여 만든 학교이다. 마웅저 선생님께서는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일을 해오셨지만 어느 순간 교육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지고, 학교를 만드시려고 생각하신다. 가치관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어떤 가치가 개인에게 중요하게 되는지가 달라지기 때문에 결국 학교를 만드는 것 또한 민주화를 위한 움직임이다.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워크숍의 강의를 해주신 하승창 선생님께서는 시민의 한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고 하셨다. 예전에 나는 네 말도 맞고 내 말도 맞고 하는 것이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내게는 지리산에 댐을 지으려는, 케이블카를 지으려는, 소통 없이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 폭력으로, 공포로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이런 상황을 보고 화가 날 때 잠자코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와 싸우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고, 생각했었지만 그렇다고 다툼을 아예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있는 것 또한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왠지 모르게 싸운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느껴지고, 말이 잘 안 나오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하자작업장학교에서 고민하고 있던 행동한다는 것에 대해서. 버마의 민주화를 바라며 NGO단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AAPP(정치범 관련)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버마 군 정부는 우리를 함부로 할 수 없다.
-기록 하는 것은 군 정부에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다시 당하지 않길 바라면서 하는 것.

HREIB(child solder) 아이, 청소년은 미래의 지도자 이다.

시인이 이야기 했던 한 시민의 생각과 행동이 세상을 변화할 수도 있다. 버마의 사람들 또한 민주화를 바라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래서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을 만들고 그 곳의 아이들은 어떤 리더가 되거나,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와 함께 자신의 상황들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여행을 가기 전, 예전에 다녀왔던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은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다. 그 곳과 한국의 상황이 다르다. 라고 들었다. 궁금했었던 것은 버마가 민주화가 된다면 이라 가정했을 때 어떤 모습을 꿈꾸는지?첫날 마웅저 선생님께 누군가 질문, 잘 생각해본 적이 없으신 거 같다라고 하신 후 누군가에게 질문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민주화를 위한 움직임들. NGO, 청소년 교육.
커뮤니티에 자신이 어떻게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의 방법은 기술을 가지기,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
하자작업장학교 : 메솟의 청소년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공부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메솟청소년 : 어디론가 재정착 하여 공부를 열심히 하고 다시 자신의 커뮤니티로 돌아가 일을 하는 것. 최선의 방법

메솟 청소년 : 학교를 나가고 나면 길이 보이지 않는다.
조건은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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