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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아직 완성은 덜 되었어요. 중간중간에 안 맞는 부분도 있고. 마무리하고 처음도 덜 되었어요
-------------------------------------------------------------------------------------------------------------------------------------------------------------------------- 1. 다름. 메솟에 가기 전, 나는 내 또래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직접 버마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학교 졸업 후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메솟에 가서는 직접 C.D.C나 L.M.T.C 학생들도 만나고 그들과 함께 디스커션 하는 시간도 있었고 팀별 워크숍을 하는 시간도 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나누는 이야기도 있었다. 디자인팀 워크숍 시간에 만난 퍼투와 루루는 ‘카렌을 위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가난하고 힘든 상황이기 때문. 우리가족은 모두 멜라 캠프 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버마에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다. 버마는 지금 우리에게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많은 친구들이 ‘너희에게는 기회가 있고 운이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며 얘기를 했다. 전혀 몰랐거나 예상치 못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순간 나는 가슴이 탁 막히는 게 있었다. 그 얘기를 마지막 날까지 들었는데, 갑자기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하려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내가 만난 친구의 현실이 나와 너무 다르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기 전에 서로의 ‘다름과 차이’만 알고 오지 말자는 얘기를 했었고 나도 그 말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날쯤 되니 덜컥 겁이 나더라. 사람들을 만나면서, 디자인 팀 워크숍을 하면서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은 막상 나에게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이곳에 와서 내가 원하는 것이 뭐냐’, ‘디자인하는 게 어떤 것이냐’라고 말을 하니까 내가 지금 그들과 만나고 얘기하고 워크숍을 하는 게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게 되었다. 친구들이 다르다고 얘기했던 것, 내가 다르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은 삶의 조건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거나 하고 있는 디자인과 그들이 알고 있는 디자인이 조금 달랐던 것 역시 그 조건이 어떠하냐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그 조건이라 하면 이동, 표현의 자유, 장소 - 재정착 - 꿈이 떠오르는데, 그들에게는 이동, 표현, 재정착, 꿈에도 제약이 따른다. ID카드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이 이동하는데 꼭 필요하다. 우리가 만난 C.D.C학생들 역시 원래 메솟 시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게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은 학생이기 때문에 그나마 이동이 좀 (그에 비해)자유로운 것이다. C.D.C친구들과 디스커션하는 내가 있던 팀은 평화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한 친구가 얘기하기를, 자유롭게 말하고 쓸 수 있어야한다는 얘기를 했다. L.M.T.C 4학년들과 이야기 했을 때도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지만 태국 정부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이제 멜라에서는 재정착제도가 없어진다. 재정착을 하게 되면 보통 제3세계로 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재정착을 위해서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신청을 하는데 그 제도가 사라진다면 그들은 계속 멜라 캠프 안에서 살아야하는 것이다. 캠프라고 하는 것도 안심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일생을 보장할 수는 없다. 꿈 역시 그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미래라든가 되고 싶은 것은 있지만 그것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상황은 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다르다고 느낀 데에는 나의 맥락이 있기 때문에 다르다고 느낀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곳, 그 곳에서의 이동, 표현하고 있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풀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나는 올해로 스무 살이 되었다. 작년에는 열아홉 살이었는데, 막상 스무 살인 지금보다 더 스무 살 같은 고민을 했다. 보통 스무 살이면 이제 대학에 가는 나이다. 그리고 일도 나이제약 없이 일도 할 수 있는 나이. 게다가 이제 얼마후면 나는 소속도 없어지니 독립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다.
이런 구체적인 상황들이 나와 정말 ‘다른’것인지 한 편으로는 조금 의문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저 상황들이 다른 것은 ‘삶의 조건’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 조건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한국의 상황, 조건과 메솟의 조건을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내 옆에 앉아있는 친구의 조건과 나의 조건으로 나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나와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에 대한 확인은 아니다. 내가 처음 메솟에 갔을 때 느끼고 확인한 것도 ‘다름’은 아니며 오히려 ‘사람 사는 곳 어디든 비슷하다’는 느낌이었다. 그 의문점을 글을 쓰다보면서 발견을 했는데, 그것이 정말 ‘다름’으로 연결되나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가기 전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맥락 아래 우리의 메솟 여행을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홍콩에 가서 다양성 얘기를 했었다. 다르다고 해서 모두 다양한 것은 아니고 반대로 다양하다고 해서 모두 다른 것은 아니다.
<홍콩 : 다양성> - 정리 안 됨
퍼투와 루루의 얘기를 듣고 내가 답답하고, 먹먹하고, 무기력해졌던 것은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과 나는 다른 공간에 살고 있지만 같은 세계,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게 인식하게 된 것까지에는 나도 나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려서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정말 ‘나’가 가장 중요했을 때의 나의 세계엔 나와 ‘너’뿐이었다. 나와 가족, 친구 그리고 학교가 있었다. 그러나 그 가족이 머무르고 있는 집, 친구를 통해서, 학교 안에는 또 그것들을 통한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는(이상한 표현이다.)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 청소년카드라는 것을 만들어야했고 컴퓨터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드나들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과목들이 있었지만(아름다운 말과 글, 민주시민 등) 밖에 나가 뛰노는 것에서 이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와 친구들의 고민도 점점 넓게 바뀌어갔다. 지금은 작업장학교에 와서 디자인 그리고 나는 어느덧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야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직접 돈을 버는 일을 해보기도 했다. 나와 내 주변에 생긴 많은 일들과 변화를 겪으면서 그것들은 계속 밖으로 가지치기를 한다. 내가 사람들을 더 만나고, 얘기를 나누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고, 직접 다른 공간에 가보기도 하고, 디자인 작업을 통해 무얼,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면서 내 주변 세계는 점점 넓어졌다. 그렇게 넓혀지고 있는 세계의 지금, 나는 메솟에 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메솟의 경험은 전혀 뜬금없거나 다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이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 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생길 수 없는 것 - 인식>
2.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하자작업장학교의 디자인팀에 있다. 길찾기 과정을 끝내고 주니어 과정을 지원하면서 디자인팀을 선택(?그때 나에겐 선택이었다.)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연 팀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영상은 예전에 관심이 있어서 도시 속 캠프 같은 것을 하기도 했지만 그 관심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디자인은 예전부터 패션디자인에 관심이 높았고 실제로 옷을 만들기도 했었기 때문에 별로 의심의 여지 없이 디자인 팀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작업장학교에서 하는 디자인이 옷을 만들거나 포토샵 넘버원이 되는 기술을 배우지 않는 곳이라는 것은 길찾기 생활을 통해 알고 있었다. 지원을 하면서 당시 디자인 팀 담임판돌이셨던 세이랜에게 디자인 팀에 관하여 몇가지를 질문했었다.(기억으로는 디자인팀에서는 주로 어떤 것을 하느냐는 질문과 함께 디자인 팀 내의 관계 같은 정말 이상꼴리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그때 나에겐 ‘관계’라는 것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으므로.) 세이랜은 사람들이(물론, 나도 포함) 디자인하면 떠올리는 매우 고정된 이미지를 얘기 해주시면서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을 목표로 하는 곳’이라는 언뜻 모호하고 어려운 얘기를 해주셨다. 그렇지만 그 말은 지금은 알 듯 모를 듯하기도 하면서 지금 내가 공부하고 고민하는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1학기 때는 갈팡 질팡이었다. 어떤 사람의 말로는 그 시기가 바로 ‘길찾기 2학기’라고 하더라. 적절하군. 학교에서 하는 프로젝트나 디자인 팀의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이 ‘나의 디자인’이 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에세이로 마지막날까지 부랴부랴 완성하며 나는 길찾기 2학기를 수료했다. 본격적인 1학기, 주니어 2학기를 지원하면서는 고민을 많이 했다. 지난 1학기를 돌아보면서 내가 한 게 뭔가 싶기도 하고 개인적인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 동생인 구나가 1학기를 지원하면서 그동안 걔는 내 1학기를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으로 지원을 했을까. 나랑은 다른 사람이기는 하지만. 스무 살을 앞두고 앞으로 뭘 할지, 먹고살 걱정과 맞물려 지원 마감일을 몇 시간 지나서 원서를 냈다. ‘이번에는 탱자탱자 놀지는 말자, 뭐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생각해보니 그건 참 막연한 각오다. 그 각오는 ‘그래서 뭘 할 건데?’라는 질문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학습 계약서를 쓰면서, 개인연구주제를 정하면서 나는 ‘삶 디자인’이라는 주제를 물었다. 삶 디자인. 이것만큼 막연하고 모호한 주제가 어디 있나. 이것은 시민문화 워크숍인 ‘기후 변화 시대 : LIVING LITERACY’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을 하면서 생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하는 질문과 동일하기도 하다. 그렇다.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 고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오던 질문도 ‘장래희망이 뭐야? 커서 뭐 될려고 이런 거 하니?’에서 ‘뭐 하면서 어떻게 살고 싶니?’로 바뀌었다. 그런 고민 와중에 연장선으로 메솟에 갔다. 다녀와서 생각하는 건, ‘생각의 지속’이었다. 어쨌든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든, 새롭게 하게 된 생각이든 그 생각의 끊을 놓지 않는 게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실천도, 작업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솟 현장학습을 예로 들면, 한국과 메솟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내가 디자인팀에서 내 매체가 생기면서 그 매체를 통해 삶을 디자인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는 것이 수료 후, 어떻게 지속해야할지는 앞으로도 더 생각해봐야하는 것이다. 그 방향을 잡는 것이 지금 시기 나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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