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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우리 집에는 내 나이와 같은 행운목이 있다. 행운목은 점점 커져 원래 심어져있던 화분이 비좁아질 정도로 커졌다. 초록색 잎이 누렇게 시들어 가고 비틀어져갔다. 조금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했더니 며칠은 몸살 앓듯이 시들시들하다가 금세 활기를 찾았다. 실상사작은학교에서 하자작업장학교, 대안학교에서 다시 대안학교로 나의 배움을 찾으러 갔다. 일반학교는 진학할 생각을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 곳에서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집에서는 나 혼자 계획을 짤 수 없었다.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무엇이든 배워야할지 알 수 없었다. 혼자서는 무엇을 할지 몰랐고, 일반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싫어 다시 대안학교를 찾게 되었고, 하자작업장학교를 오게 되었다. 2008년 3월의 미투데이에 "나는 오늘 멍석방에서 나는 쓰레기가 되었다. / 쓰레기를 줍고 멍석방에서 나왔다"라고 썼다. 그날 나는 내가 여태껏 배워왔던 것들이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모두 쓸 수 없는 것인 것만 같았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투성이 이고, 하루하루가 긴장상태였다. 모든 것이 초기화 되었고 새로운 터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식물이 분갈이를 하면 하는 몸살처럼 나도 그런 것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자작업장학교의 공간은 내게 새로운 곳이었다. 작은학교 때는 볼 수 없었던 비디오카메라가 있고, 노트북도 개인으로 사용한다. 인터넷이 없으면 과제하기도 힘들고 빔은 거의 매일 사용한 것 같았다. 센터의 모든 곳이 무선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배움의 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다루는 것은 재미있어한 것 같다. 또한 예전의 환경과 또 달라진 것은 일회용품 사용이었다. 예전에 나는 지리산에서 생태적 삶을 살았다. 그런데 작업장학교에 왔을 때 종이컵과 페이퍼 타올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행사가 끝나면 휴지통에 넘쳐있는 일회용품을 보면서 충격적이었다. 내가 배워왔던 것과 살아왔던 삶이 어디서나 통용되지 않은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느낀 것을 누군가들에게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마음속에서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었다. 주니어로 올라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 혼자 페이퍼타올과 종이컵을 쓰지 않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것 또한 작은 실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학기에 한 save my city는 내가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지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고 도시라는 곳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지리산에서 도시로 나의 학습공간을 옮겨오면서 사실 나의 도시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내가 학습하는 곳이 도시가 되었고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어페어를 통해 나의 삶의 환경을 지키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삶의 터전에서 외부의, 개발 논리들로 인해 소리 없이 쫓겨나고 재정착하고 다시 순환되는 상황에 나 또한 이 굴레에 속해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하며 살 것인가를 질문 받고 고민하게 된다. 또한 내가 살고 있었던 농촌이라는 공간과 도시라는 공간의 조건의 차이가 있다는 것, 비교적 자연과 가까운 조건인 농촌에서 사는 사람들 또한 무조건 자연친화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 도시에서 자연친화적인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시작했다. 전시를 위해 처음으로 공동 작업을 해보았다. 그 때 나는 글로벌학교 소속이었지만 디자인팀, 힙합팀, 영상팀이 모두 섞여 동, 서, 남, 북으로 나뉘어 작업하였다. 그리고 A4용지로 동서남북을 만들어 전시공간을 꾸미기로 하였다. 틈이 나는 데로 동서남북을 만들었다. 그런데 종이접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 히옥스께서 새A4용지로 만드는 게 낭비가 아니냐고 하셨다. 그리고 작업장학교에서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나'라면 이런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면지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을 민감하게 느끼지 못한 것에 대해 답답해하면서도, 내가 환경에 대해 관심이 있다 말할 때는 무엇을 할 때에 깨어있으면서 해야 한다는 것을. 주니어2학기가 되어 기후변화시대의 living literacy를 하면서 처음에 나는 하자작업장학교 안에 하루에도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종이컵이나 페이퍼타올에 대해 이야기 꺼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실천에 대한 영역만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사는 시대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고민에 대해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알게 되었다. 처음에 꾸리찌바, 11번째 시간, peak oil에 관한 다큐멘터리들을 보면서 현재 한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 환경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슬럼에 관하여 봤을 때 처음에는 왜 슬럼과 기후변화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몰랐다. 슬럼은 save my city때 생각했던 것의 연장이었다. 재개발로 인해 쫓겨나고 점점 바깥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거대한 거주지를 만든다. 이곳에서 또 삶을 지속하기 위해 (돈을 벌기위해) 시스템이 갖춰지지만 또다시 쫓겨난다. 쓰레기 때문에 강은 오염된다. 삶의 조건이 열약한 상황에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하루를 살아가는 문제 외에 어떤 것을 집중하여 생각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시대가 오게 된 것은 사람들의 생활, 소비 패턴, 인식하고 있는 상태와 관련이 있었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많이 나왔던 이야기들은 자신의 생활방식에 대한 자책감과 그래서 자책감에서 멈추지 말고 행동하자는 이야기였다. 홍콩창의력학교와의 유스토크는 이것을 작업장학교의 고민으로만 끝나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진행했다. 홍콩창의력학교와 유스토크를 하고 발제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태까지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들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었고, 실천했었다면 이제는 환경문제, 기후변화 문제가 내가 주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되었다. 나에게 중요한 나의 삶의 환경이 파괴되고 없어지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내가 바라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지금 내가 사는 세상과 바라는 세상을 일치시켜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 나의 삶을,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보고, 쓰고, 말할 것인가가 기후변화시대의 living literacy의 제목이었다는 것 또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작은 실천에 앞서 내게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간과 자연은 공생관계라는 사실과 지리산에서의 3년의 시간과 그 곳을 파괴하려는 거대한 어떤 것들과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살지에 대해 생각했다. > 아웃풋이라고 했을 때, 시각영상처럼 나오는 아웃풋을 생각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뚜렷한 매체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냥 피하고만 싶었다. 작업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하자작업장학교라는 학교의 이름처럼 영상, 디자인, 공연 등 자신의 매체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정보를 찾고, 글을 쓰고, 실제로 어떤 것을 생산해내면서 학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곳에 속해있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움직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3학기가 되어 기동력을 갖추고 싶다는 것을 학기의 목표로 가져갔다. 글로벌학교, 시민문화팀에 있다가, 영상팀에 속하면서 예전과는 다른 경험을 했다. 정선으로 현장학습을 가면서 영상팀은 팀 프로젝트로서 틱틱틱 캠페인 영상을 만들게 되었다. 글로벌이슈인 기후변화문제가 하자작업장학교만의 움직임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영상으로 그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일단 정선에 갔을 때 몸을 T,C,K 모양으로 만들어 찍었고, 찍었을 때도 재미있게 촬영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지구마을 행사와 4대강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낙동강에 가서 촬영을 했는데 그 때마다 영상의 메시지가 달라졌다. 정선에서 촬영한 것은 코펜하겐 회의가 오면서 우리의 결정의 시간이 오고 있다는 메시지 였고, 지구마을은 한국에 있는 10대들도 기후변화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다라는 메시지 였고, 낙동강은 우리의 강을 지키자는 메시지였다. 담고자 하는 메시지는 많았고 그 영상을 하나로 묶어 영상을 만들고 나서 한참 후에 영상을 다시 보았다. 그랬더니 내가 봤을 때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생각들 중 내가 가장 전달하고 싶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라는 게 고민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은 것은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의 어른들을 만나면서 확고해졌다. 그 때 오셨던 분들 중 하승창 시민운동가께서는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 생각과 행동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된다는 사실에,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되었고, 그래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동했다. 작은학교에서는 세상보기라는 기간이 있다. 이번 현장학습은 세상보기를 한 시간이었다. 약 2주 동안 다녀온 홍콩과 태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홍콩에서는 Make a difference 라는 컨퍼런스를 했다. change starts with...라는 문구를 걸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들의 권혁일 이사처럼 기부문화에 변화를 꾀하는 것. 기부문화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 하는 일, 쉽지는 않은 일로 들렸었는데 매력적이었다. 우리가 방문한 태국 메솟은 버마 군정부를 피해 온 사람들, 대부분 불법체류자인 사람들이었다. 그 곳에서 다시 민주화에 대해 꿈꾸고 움직인다. 버마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다시 이런 일들을 겪지 않길 바라며 평화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민주화를 바라니까 미래에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게 중요해지고 그래서 미래의 지도자인 청소년들에게 교육한다는 것에 대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안학교도 문득 교육에 다른 흐름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이라는 목표와 입시공부 때문에 점수가 낮으면 자살하는 아이들이 뉴스에 나오곤 한다. 그 사람들에게는 좋은 대학을 들어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십대의 시간을 반납한다. 그런데 좋은 대학에 가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사는 것 같지는 않다. 30대가 되어도 자신의 길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대학을 가면 잘 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배움의 끝이 있을까? 현재를 살지만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대안학교에서는 계속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묻는다. 이전에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없고, 꿈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중요하다고 알고 있었던 가치들이 있었고 그 가치들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게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 보니까 어느새 내게 중요해졌다. 나는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사람이면 지켜야 할 당연한 가치들을 지키는 것이 예전에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다. 부모를 잘 모시고, 효도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싸우지 않고,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않고, 밥 남기지 않고 하는 유치원에서 배우거나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그 것에 대해 토를 달거나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런 가치들은 나에게 마음에 하기 싫거나 부대끼는 무언가가 있어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작업장학교에 와서 왜, 그게, 지금의, 너에게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올 때 음, 나는 되게 오래전부터 중요하니까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라고 시작하여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 어떤 것들이 없어질 때의 나의 감정들, 없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들, 나의 판단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들로 생각이 흘러갔다. 그랬을 때 그런 판단들은 내가 받은 교육을 토대로 이루어 졌다고 생각한다. 나는 훈련 받아왔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밥을 먹고, 걷고, 말을 하고 하는 것들이 여러 번의 경험이 필요한 것처럼 내가 원하건 원치 않건 의무교육을 받으며 나는 자라왔다. 어떤 점에 있어서는 이미 나는 답을 알고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진전할 수 없었다. 미술사에서 신이 절대적 가치였고, 미는 성스러운 신의 영역이었던 것처럼. 이미 절대적인 것이 있으면 질문 또한 나오지 않고 진리처럼 굳어버리는 것 같다. 나에게는 어떤 것을 뒤집어 생각하거나 질문한다는 게 어렵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생각의 진전에 있어 걸림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그래서 그것들을 시간을 유예하지 않고 지금, 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은 용기를 얻게 된다. 처음에는 내가 그런 것을 할 수나 있긴 한건가?라는 질문이 들었고, 조금씩 시도를 하며 할 수는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좀 더 잘해보고 싶어진다. 시민으로서, 어떤 구성원으로서 나의 생각과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은 달짝지근한 이야기가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좀 더 잘해보고 싶다. 뭔가 아닌 것 같은 것들을 아니다 라고 외치는 것은 솔직히 좀 무섭다. 그런데 가만히만 있고 싶지는 않다. 멜라캠프에서는 불안정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내 생각보다 밝고 재미있었지만 집은 대나무로 만들어져있고, 버마군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고 3국에 재정착하는 것이 언제쯤 될지도 모른다. 그 곳에서 언제 나갈 수 있게 될지 모른다. 내가 한국에서 생각했던 환경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쓰던 단어를 쓰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곳의 상황 조건과 내가 이야기 하는 상황의 조건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말한다면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후변화문제가 글로벌 이슈라고 생각했지만 삶의 조건이 힘든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이야기 되어야 할지,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말만 아닌 행동한다는 것에 대해 배웠다. 사실을 알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들, 충돌들을 답답한 상태로 놔두는 것이 아닌 풀어보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움직이게 되는 것. 나도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것은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자작업장학교에 있으면서 알게 된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움직이기 위한 시도들을 했다. 내가 만족할 만한 시도들은 아직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고민하고 진득하게 움직이는 시간들을 가지고 싶다. 하자작업장학교를 나가고 나서도 사회에 바라는 것, 원하는 것,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을 잃지 않고 나에게 떳떳하게 삶을 살길 꿈꾸어본다. 세상보기, 어떤 세상을 보고 있고 보려 하는가. 세상,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다양한 현상들이 존재한다. 이제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도 분별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매일 인터넷으로, TV로, 신문으로 접한다. 버마(미얀마)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버마가 어디에 있는지 그 곳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는 현장학습을 가기 전까지는 관심 가진 적이 없다. 오히려 미디어에 노출 되는 정보들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 이면에 있는 이야기들은 알기 힘들다. 대안학교에서는 같이 살기라는 키워드가 중요하다. 사이좋게 지내는 것 외에 다른 상황 조건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어떻게 같이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은 어렵다. 나는 학교, 제도를 벗어나있고, 내가 왜 벗어나게 되었고, 사회는 어떤 곳이고 라는 질문들을 하게 된다. 내가 본 사회는 그리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모습 속에서도 긍정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들은 계속 된다. 대안학교도 교육 이라는 키워드에서 일반적인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실험이고, 사례가 된다. 같이 살기라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사는 공간을 넘어 다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 일이 새롭게 일어난 일이 아닌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누군가가 자신, 우리를 강압적으로 다스리려고 했을 때, 왕정이 아닌 시민이 힘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힘, 권력에 대해 대항하고 권리를 찾으려는 것은 순차적인 것 같다. 사람들이 죽고, 두려운 상황에서 그 힘에 눌리지 않고, 주권을 되찾으려 하는 상황들이 어쩌면 역사에서 계속 반복되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버마의 일도 새롭게 일어난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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