튕겨져 나가다
처음 나는 어떠한 무리로 되어있으면 모두 공동체인 줄 알았다. 최초로 공동체를 경험하게 된 것은 집(가족), 학교를 통해서이다. 내가 경험한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가 있었고 일방적인 관계였다. 어른과 아이의 관계로서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계들에 불과했다. 나는 아이였고 당연히 어른(엄마, 아빠)의 말을 들어야 하며 그것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경우 난 나쁜 아이였고 어른인 엄마, 아빠에게 미움 받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하는 말들은 나와 함께 나눈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저 어떠한 설명 없이 "~해라" 이었고 나는 왜 그러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어찌하였든 그 말에 따라야 했다. 하지만 난 납득하지 못했으며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복종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미움 받고 싶지는 않았다. 이 둘의 갈등에서 내가 선택하였던 것은 계속해서 숨기려 드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서로에게 솔직한 관계를 맺지 못하였던 것 같다. 난 이러한 일방적이고 깔끔하지 않은 관계가 너무 싫었다.
그리고 학교라는 공동체 또한 일방적인 관계였다. 학교에서는 지향하는 점이 있었고 학교 운영체제는 학교의 지향점을 향해 진행되었다. 학교에서 지향점을 향해 진행되어 가는 과정에서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과정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생태'가 모토였다. 그러면서 늘 하는 말은 "꾸밈없는 삶"이었다. 왜 생태적으로 사는 것이 꾸밈없는 삶과 연결이 되는지 항상 이해를 하지 못했다. 또한 각자가 생각하는 '생태'는 분명 다를 것인데 학교는 그저 학교가 생각하는 생태로만 진행되어 갔다. 그러니 나는 공동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튕겨져 나왔다.
내가 집과 학교라는 공동체를 경험하게 되고 '공동체' 혹은 '우리'라는 단어에 굉장한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다. 괜한 무리의식에 잡혀 있고 공동체에서 지향하는 점에 어긋나는 모든 사람들은 그저 배척될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라는 단어에는 서로 돕고 사는 관계를 생각하였지만 결국에는 일방적인 관계라고 생각하며 그저 겉치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거부감을 느꼈다. 또한 내가 공동체에 들어가는 순간 내 개인이 사라지고 공동체 의식에만 잡혀 사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난 의식적으로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어떠한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러다 메솟과 멜라 캠프를 접하고 나서 나는 다시 공동체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메솟과 멜라 캠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그들은 '우리'와 '공동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였다. 왜 그렇게 '공동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였을까?
내가 만난 사람들은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했고 난민 혹은 불법체류자였다. 그들은 이러한 위치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고 위험에 처해 있었다. 또한 그곳은 독재에 의해 소수민족들이 계속해서 배척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의 민족의 문화, 전통의상, 춤, 음식 등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하고 싶어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알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민족을 말할 때 '우리' 혹은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또한 그들은 계속해서 소수민족이 배척당하고 있는 시점에서 자신은 '리더'가 되어서 자신의 민족을 보호하고 지키고 싶어 하였고 자신의 민족이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 혹은 '공동체'에 대하여 자주 말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상황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질문을 하였다. 그들이 말하는 '우리'는 과연 공동체일까? 멜라 캠프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기 전,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캠프는 하나의 공동체일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들의 원해서 만난 모임이 아닌 난민,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모임이었지만 모두 자유를 원하고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을 위해 다 함께 힘을 합치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상상은 그저 상상에 불과하였고 나의 고정관념일 뿐이었다. 내가 경험한 멜라 캠프는 어떠한 공동체보다는 그냥 하나의 마을에 불과하였고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향하는 것을 향해 함께 도와가는 것이 아닌 재정착을 위한 잠시 동안 있을 곳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을까? 왜 그들은 내 예상과는 달리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지 않았을까? 내가 뭐라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들과 함께 나눴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추측을 해보면 너무나 급박한 상황 때문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향점은 같지만 그것을 위해 함께 어떠한 액션을 취하기에는 너무 위험했고 그것을 하기 위해선 굉장한 각오가 필요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막막했었던 것들도 있지 않았을까?
이들을 만나고 난 다시 내가 경험하였던 공동체를 생각하게 되었고 공동체가 무엇인지 내가 왜 공동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다시 되짚어 보게 되었다. 내가 경험하였던 공동체와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를 비교하게 되었고 이전에 내가 경험하였던 공동체가 아닌 대안적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에서야 나의 언어로 다시 정의해본다면, 공동체란 공통된 생각이나, 상황들을 계기로 어느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사람들이 그저 하나의 무리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 그 지향점을 이루기 위한 과정을 함께 맞추어 나가고 그것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공동체에 대해 다시 나의 언어로 재해석 해낸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모든 공동체가 결국에는 일방적인 관계로 이루어져 있고, 괜한 무리의식에만 잡혀 자신들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배척해나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다시 이렇게 정의 내리면서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공동체와는 다른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이것은 공동체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튕겨져 나가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내가 다시 공동체에서 튕겨져 나가게 되고 공동체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어버린다면 세상에 '공동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그저 사람들의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며 비난하였을 것이다. 또한 어느 곳에도 난 소속되어 있지 않고 어떤 누구와도 만나지 않을 것이며, 나의 세계에만 갇혀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주위에 어떠한 것에도 시선을 가지지 못할 것이 뻔하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이며 대안적 공동체는 절대 하나의 집단이 아니다. 하나의 개인들이 모여 이루고 있는 형태이다. 이때 다양한 개인들의 공통점은 지향하는 점이 같으며 이 지향하는 점을 풀어가는 과정을 함께 해나가겠다는 동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개인을 존중해주고 개인마다 지향하는 점을 다양하게 풀어나가지만 결국 원초적인 것은 모두 같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공동체에서 튕겨져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일방적인 관계 때문이지 않았나. 상호적인 관계와 동시에 '존재의 부딪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상호적인 관계일 때 존재의 부딪힘도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존재의 부딪힘'은 겉으로만 같이 다니는 친구나, 같은 공동체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싸고 돌봐주는 관계가 아니다. 옛날에는 새벽에 스스럼없이 전화해서 불러 낼 수 있는 사람과 날 위해 나와 주는 친구와 존재의 부딪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나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과 내가 나에 대해 어떠한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존재의 부딪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지금도 변한 것은 없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이것들이 너무나 중요하다. 공동체에서 튕겨져 나가고 거부감을 가지게 되면서 더욱 '개인'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중요시 여겼다. 그만큼의 나의 세계에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것 자체에 불쾌감까지 느꼈고 처음부터 방어 자세를 갖추었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힘든 티를 내거나 눈물을 보이는 소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을 뿐 더러 그것에 대해 두려워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이런 모습들을 어떠한 복잡한 생각 없이 진심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 또한 그것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봐주는 사람과 존재의 부딪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관계들이 있기에는 일방적인 관계가 이루어질 때는 힘들다고 생각이 든다. 또한 공동체에 어떠한 벽이 있는 것이 아닌 진심이 있는 관계가 있어야 해야 함께 어떠한 지향성을 향해 맞추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럴 때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도 가능 하지 않을까.
무작정 공동체를 비난하고 계속해서 거부만을 하게 되었다면 지금 이 글에서도 공동체에 대해서 아무 말도 못했을 것이다. 메솟과 멜라캠프를 다녀오고 거부감이 들어 절대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공동체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 것은 어쩌면 내게 아주 큰 의미일 것이다. 계속해서 공동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더라면 어떠한 누구와 함께 맞추어 나가겠다는 생각보다는 또한 누군가와 '존재의 부딪힘'을 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끝끝내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나의 세계를 침범당하는 아주 끔찍한 일이라고만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 난 나의 세계에만 갇혀 있었을 것이고 어떤 무언가 에도 시선을 가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나만의 세계에만 갇혀 있게 되었으면 계속해서 피해의식에만 갇혀 있었을 것이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라는 생각을 계속 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다시 공동체를 들춰보면서 나까지 들춰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더라면 내가 피해의식에 갇혀 있었던 것을 인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에 있는 나를 만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관심조차 없었을 뿐더러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닌 그저 불평을 늘어놓기만 했었다.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나는 그냥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아서 나 혼자 즐겁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떠한 문제에도 쿨하게 대응하였고 이런 복잡한 문제들 때문에 즐겁게 살고 싶은 나의 계획에 착오가 생가는 것 같았다. 또한 어떠한 문제에 섬세하게 살펴보며 어떠한 것이 문제인지 인식하는 것이 아닌 겉으로 보았을 때 왠지 나쁜 것만 같았고 그것이 나에게 피해로 오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저 정부만 욕했었다. 어떻게 보면 피해의식이었는지 모른다. 정부는 너무 강했고 나는 어떠한 힘도 내지 못하는 약자라고 생각하며 정부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면 그저 짜증만 냈었다. 하자에 들어오고 나서 피해의식에 갇혀 어떠한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언론플레이에 놀아나며 그저 불평만 늘어놓는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인정하고 나니 이제 불평만 늘어놓는 것을 그만 멈추고 싶었다. 겉으로만 꿀 발린 소리였고 그러했기 때문에 어떤 누구에게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일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난 지금까지도 항상 난 돈이 부족하였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는 항상 부족하였다. 그것으로는 나의 모든 욕구가 충족되어지지 않았다. 항상 돈이 내 인생에서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아니라고 머리로는 생각을 하였지만 이 세상에서는 무엇보다 돈이 중요하다고 계속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돈이 부족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도 하였다. 또한 이 문제는 내가 십대이기 때문에 더 하다고 생각하였다. 십대가 알바를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하거나 아니면 나이를 속일 수밖에 없었고 경제적으로 십대가 자립할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며 불평을 하게 되었다. 난 내가 느끼는 욕구를 만족시키기에는 돈이 너무 부족하였고 이 만큼의 돈을 부모님은 충족시켜주지 않았고, 사회 또한 이것들을 막는다는 막연한 불만이랄까.
불만은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난 돈을 버는 생산자가 아니었다. 그저 소비자에만 불과하였는데 소비하는 양이 굉장했다. 난 항상 돈 좀 아껴쓰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엄마, 아빠와 항상 맞닥뜨리었다. 그래서 '내 용돈'이라는 타이틀로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때 나는 십대이기 때문에 더 어려움이 많다는 생각을 가지고 십대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세워놓고 시작하였었다. 또한 내가 여성이기에 다른 여성들과 하나의 공감대를 느끼고 싶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십대와 여성이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자주 사용하였던 것 같다. 사실 십대와 여성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자주 사용하기는 했지만 어떠한 학습을 시작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런 단어들을 의식적으로 사용을 하게 되어서일까. 집에서 아빠에게 느끼는 불만들이 나에게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서 엄마와 내게 집안일을 요구하는 것이나,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항상 할머니나 엄마만 일하고 아빠나 삼촌은 쉬고 있는 것이 짜증나게 느껴졌다. 이때 마침 하자에서 '페미니즘 모임'이 생겼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모임에서는 서로의 경험을 말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래서 공부모임이 아니라 친구들끼리 모여서 수다를 떠는 정도로 멈추어진 것이다. 사실 공부하기를 많이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허무하기도 하였고 굳이 시간을 내서 이렇게 이야기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나의 불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되지 않았고 더 쌓여가기만 하였다. 더 이상 이렇게 불만들만 늘어놓고 싶지 않았기에 다른 방식의 공부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을 하였다.
하지만 내가 어떠한 모임을 주체적으로 스스로 원해서 만들었던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많이 서툴렀던 것도 있었다. 지금까지 학급반장이나, 전교회장, 학생대표 등의 여러 대표를 해보았던 경험은 있었지만 얼떨결이었고 그래서 더욱 많은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내가 좀 더 학습을 원하며 모임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집한 만큼 많은 리더십과 책임감도 필요했고 그 만큼 많이 느껴졌다. 그러나 서툴렀기 때문에 모임 안에서 어떠한 문제가 있는 것이 느껴지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다. 그래서 2개월 정도는 우리가 어떻게 학습을 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좋을지 토론하는 것으로 흘러갔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조금은 단축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토론은 내게 좋은 공부가 되기도 하였다. 어떻게 공부를 하는 것이 좋고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모임 안에서 토론을 한 것이었지만 다시 내게 돌아오는 질문이었다. 무엇을 위해 모임을 만들고 이런 개인주제를 잡게 되었는지 계속 되물어봤었다. 이 경험이 지금까지 내 학습을 지속하게 해준 하나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처음의 기대 또한 학습을 많이 하는 것이었지만 굳이 시간을 내서 모임을 가지는 만큼 수다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 이런 부담감들이 내게는 '책임감'이라는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게 해주었다.
나 혼자 속도를 내거나 줄일 수도 없었다. 함께 조율해야 하였고 서로의 상태에 대해서 계속해서 살펴봐야만 했다. 그만큼 각자의 고민도 계속해서 나눌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존재의 부딪힘'을 하면서 학습을 하였던 첫 번째 경험이었다. 머리로만 필요하지 않을까? 라며 상상만 하였다가 직접 경험을 하게 되고 확실하게 느꼈던 순간이었다.
나를 인정하다
사실 하자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오고, 싫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공동체와는 다른 구조의 새로운 공동체였다. 단순히 같은 반의 학급친구가 아니었고 언제나 선생님은 말을 하고 학생은 듣기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도 아니었다. 그래서 인지 '선생님'이라는 단어 조차 어색했던 공간이었다. '또한 여기서 난 동료작업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난 하자에서 '시민'에 대해 생각하고 사회에 주파수를 세우게 되었다. 나뿐 만이 아니라 죽돌들도 각자의 '시민'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단지 다른 것은 개인이 그것을 자신의 맥락으로 어떻게 풀어내고 작업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료작업자'라는 말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처음에는 '동료작업자'라는 것에 큰 어려움을 느꼈다. 처음 겪어본 관계였기 때문에 이것을 '동료작업자'라는 말을 인정해버리는 순간 어떻게 내가 이곳에 맞추어 갈 수 있을 것인지 막막해졌다. 이 막막한 감정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몰랐고 신선한 감정보다는 낯선 감정에 두려움을 느끼기기도 하였다. 그때는 이것을 나만의 언어로 정의내리지 못해서 더욱 막막해졌던 것 같다. 이 막막함을 섬세하게 바라보며 풀어나갈 생각을 하기보다는 익숙한 것이 그리웠고 그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물론 '동료작업자'라는 관계뿐 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복잡한 일에 시선을 가지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것을 단순히 아이돌 이야기나 주고받는 친구가 아닌 다른 '동료작업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나의 언어가 필요했지만 나의 언어가 무엇인지 몰랐고 그것을 찾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의 언어가 아직 없었고 그래서 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나의 탓보다는 그들이 작업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다는 그들의 탓으로만 변명을 하였던 것도 있었다. 이런 것들을 느끼게 되면서 모든 것들이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어떠한 것도 귀찮았고 짜증났다. 마음 편하게 어떠한 생각도 필요 없는 무인도로 사라지고 싶었다. 어떠한 학습을 하는 것에도 시작부터 회의감이 나를 찾아왔고 그렇다고 노는 것 또한 귀찮게 느껴졌다. 내가 이 모든 것들을 인정을 하고 나는 순간 이 공간에 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마음은 이미 내가 익숙했던 곳에 가 있었고 이 공간에 와도 나는 나만의 세계에 갇혀 아웃사이더에 불과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여러 힘든 일들을 계속 겪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나는 그저 이런 형태의 공동체에 맞지 않는 체질이었고 그렇다면 내가 손을 씻어버리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결국에는 도망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건너 온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어릴 때부터 난 쿨하고 시크하고 차갑다 등등의 말들을 자주 들어왔고 이 말들은 내가 어디에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따라 다녔다. 어떻게 보면 나의 근본적인 성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이렇게 믿어온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계속해서 무의식적으로 '더 쿨하고, 더 차갑게'라며 요구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들어오고 또한 내게 요구해왔던 '쿨함'은 무엇이었을까? 어떠한 것에도 감성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무감각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었고 어떠한 일에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또한 아무리 거대하고 심각한 문제가 있어도 어떠한 흔들림도 없는 것이 '쿨함'이었다. 작든 크든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일 때문에 내 일에 지장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런 것 모두 신경 쓰지 않고 내 일만 잘 하면 되었고 나 혼자만 잘 잘면 되었다. 한 마디로 '어떠한 감각도 없는 것'이 쿨함이었다.
솔직히 나는 사람들과 '존재의 부딪힘' 혹은 진심을 다해 관계를 맺는 것에 두려워했다. 내가 언제나 따뜻하고 정 넘치는 사람으로 있으면 계속해서 상처를 받을 것 같았고 이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계속해서 더 쿨해지고 시크해지고 무감각적으로 변하기를 요구했었던 것 같다. 또한 이것들은 친구관계에서 까지도 나타났었던 것 같다. 어떠한 누구도 나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더 패거리를 짓게 되고 계속해서 내 또래들만의 어떠한 질서를 만들어갔던 것 같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해왔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난 자존심 상하지않게 서바이벌게임에서 지지 않고 싶었다. 살아남고 싶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것은 지는 것이고 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나를 방어해나가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하자에서는 계속해서 나에게 '다른 쿨함'을 요구하였다. 또한 여러 가지의 오해를 받게 되었다. '쿨함'이 나의 습관이 되어 성격과 외향적인 모든 것들에서 베어나게 되었고 지금까지 밖에서 어떠한 누구도 나에게 다른 것들을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가끔은 '쿨함'이 나의 매력이라고 들어왔다. 그러나 하자에서 '쿨함'이 여러 오해들을 불러 일으키게 되면서 많은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해를 하고 변하려 하였지만 이해도 되지 않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십대, 여성, 인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학습을 하게 되면서 조금 의식적으로 어떤 감수성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페미니즘 공부모임과 시민문화워크숍을 하다 보니 그저 쿨하고 시크하게 대응할 문제가 아니라고 느꼈고 이것들의 문제를 근본적인 것까지 깊숙이 들어가 보면 그저 단순한 문제가 아닌 사회의 다른 문제들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내가 그저 단면적인 것에만 주파수를 세울 수는 없었고 다양한 것들까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자신감 있게 한편으로는 막연하게 '다른 쿨함'을 만들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상처를 받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으며 내가 두려움을 느꼈을까? 내가 생각해왔던 '쿨함'과 완전히 반대되는 말이었고, 모든 일에 빠르게 반응하고 슬퍼하는 것이었다. 사회에서 어떠한 문제가 일어나면 항상 "아~그렇구나."라며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슬퍼하고 눈물도 나고 그 일 때문에 어떠한 일에도 신경을 쓸 수가 없어서 그 일에 화를 많이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어떠한 것이든 너무나 무감각이었기 때문에 더 극단적으로 생각하였던 것일 수도 있다. 다양한 프로젝트들 속에서 어떤 문제에도 쿨하고 시크하게 대응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 신경이 쓰고 왜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인지 섬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감수성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발견한 '다른 쿨함'은 심각하고 거대한 일에 무작정 덤벼들거나 계속 그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이런 감수성은 원래부터 나에게 존재해 있었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어떠한 일에 괜한 피해의식을 가지며 무작정 욕하는 것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분명 신경이 쓰이는 것은 맞았지만 그러고 나서였다. 신경이 쓰였기 때문에 그 상태로 멈춰있을 수 없었다. 어떠한 제스처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 제스처를 하기 위해선 또 나의 언어로 재해석 할 필요가 있었다. 또 나의 언어로 재해석하기 위해선 남의 언어 또한 들을 필요가 있었다. 서로의 다양성을 느끼며 나의 언어에 더욱 많은 살들을 붙일 수 있었다. 또한 그만큼 귀를 기울여야 했다. 나의 세계 나의 생각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닌 남에게도 시선을 가지고 나의 언어로 사회의 문제를 재해석 해보고 어떠한 액션을 해야겠다는 필요성. 또한 이런 생각은 지금에 와서 내가 생각하는 '다른 쿨함'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정말 어떠한 일에도 무관심하고 무감각적으로 대하는 것이 쿨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관심을 보이는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현실이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계속 어떠한 막에 쌓인 채 자신의 세계나 혹은 막연한 로맨스에 빠져 사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믿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멈추어 버린다면 '쿨함'보다는 '시니컬'에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현실을 인정해 버리고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과 고민보다는 더 현실에 대해서 욕하고 무기력하게 될 것이다. 다시 이전의 나처럼 말이다.
사실 어떠한 액션이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내가 이러한 액션을 한다고 사회가 바뀌고 다른 이들에게 어떠한 도움이 될까? 라는 비관적인 질문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비관적인 생각을 하였어도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아팠기 때문에 그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고 당장에 어떠한 변화가 있지 않아도 어떠한 액션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전에 그저 욕만 하였던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개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어떠한 일을 하겠다는 각오도 하게 되었으며, '언젠가는'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막연한 희망과 동시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변화에 참여하는 용기 또한 생겼다. 이것들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부터 인식하고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참여를 하는.
하자는 또 다른 현실이다
하자에 있는 동안 나는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경험하고 지금까지 나의 잘못들을 인정하는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잘 살기'위한 여러 시도를 해보았다. 사실 이런 경험들을 쉽게 얻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의 한 부분, 한 부분 씩 계속 들춰보곤 그것을 하나씩 인정하기까지는 항상 많은 시간들이 필요했고 인정을 하고 나서도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등의 생각으로 그냥 주저앉고 싶은 마음도 컸다. 또한 너무 크고 믿기 힘든 여러 글로벌 이슈를 접할 때마다 내가 이런 것들을 아는 게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가끔은 회의감이 들기도 하였고 '사회에 대한 희망 또한 없는 것 같아 그저 막막해 도망치고 싶기도 하였다.
그러나 도망치고 주저앉기에는 내게 미안한 일이었다. 전에 내가 관계라든가 너무 거대한 일들을 접하기에는 벅차다는 이유로 도망치려는 나를 붙잡으며 내게 스스로 하였던 말이 있었다. 내가 지금의 나로서 사는 건 분명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일 것이고 그러니 한 번 사는 거 '멋지게 살아보자.'였다. 나의 이런 각오들에 다시 도망치게 되는 것은 나에게 너무 많은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또한 내가 나를 추스르며 일단 많은 일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힘든 시기까지 겪고 어찌하였든 생긴 내가 가지고 있는 기대나 꿈에 미안하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동료작업자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였다.
사실 여러 혼란스러움을 겪을 당시에는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면 그 모든 것들은 지금의 나까지 오게 해준 좋은 거름이었던 것 같다. 다시 추스르며 책임감도 더 키울 수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더 구체적으로 상상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런 혼란스러움이 없었더라면, 그냥 수료까지 참고 견디자는 심정으로 계속 버티기만 했었더라면 지금에 와서 모든 것이 허무하였을 것이다. 그때라도 인정을 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좋고, 싫음을 따지며 언제나 좋은 것들만 하고 싶어 했던 것을 벗어나 일단은 모든 지 해보는 경험을 느껴봤다. 지금까지 필기, 기록에는 소질이 없다며 항상 하지 않았지만 노트를 필수품으로 가지고 다니며 들리고, 생각나는 모든 말들은 모두 적게 되었다. 관심이 없는 일에는 시크하게 돌아섰지만 일단은 집중해서 들어보곤 했었다. 이런 과정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고 여러 고민을 하면서 '멋있게, 잘 살기'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는 거름이 되어 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도망치거나 귀를 막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색다른 관계와 색다른 공동체 색다른 학습 그리고 신선하였던 내가 성장하는 과정들을 모두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경험들을 무시해버리는 비겁한 행동은 더 이상은 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현실성'이라는 것이 나를 따라다니며 이 모든 경험들을 무시해버리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런 색다른 관계를 밖에서도 맺을 수 있을까? '동료작업자'라는 말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을까? 이전에 경험하였던 공동체가 아닌 다른 공동체를 더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돈이 가장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할까? 내가 하자에서 학습하는 것들은 사회에 나가는 순간 쓸모없는 것들로 취급되고 더 이상은 이런 '신선한'경험들을 겪지 못할까봐 막연한 두려움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내가 서서 기다리고만 있기 때문에 드는 두려움이었다. 내가 새로운 공동체를 경험하고 싶다면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다면 어딘가에는 '동료작업자'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내가 하자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 또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어떤 이유에서든 난 탈학교를 하였고 일반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며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는 대학에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괜한 오기였다. 나는 인권과 소수자에 대해 학습을 멈추고 싶지 않고 소수자를 상대로 하는 상담원이 되어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는 지금의 생각이 더 학습을 하고 지식이 생긴 후에는 어떻게 변할 지도 굉장히 궁금함이 생겼다. 이렇게 원하는 것들이 있고 이것들을 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현실과 또 다른 현실을 경험한 지금에서의 생각은, 내가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고 지금과는 다른 체계적인 학습이나 다른 관계들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현실세계가 있을 것 같고 이것들이 기대가 된다.
나의 이런 계획들을 글로벌 이슈에 주파수를 세우고 나의 언어로 재해석 할 수 있는 또한 자신의 분야에서 사회에 참여를 하는 '시민'이 되는 하나의 밑바탕이 되어 줄 것이라 기대한다. 여러 경험들을 겪고 다양한 학습을 할수록 여러 글로벌 이슈들을 해석 하는 것들도 달라질 것이고 나의 언어도 달라지지 않을까? 후에 좀 더 성장하고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 웃고 있는 나를 기대한다. 여러 실수들과 기대들을 가지고 있는 나는 또 다른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 세계에만 갇혀 있는 나를 보게 되면서 그것을 인정하고 나서의 다른 나도 만났던 하자작업장 학교에서의 1년 반의 경험들로 하나의 점을 찍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로 하나의 점을 찍은 만큼 그 다음 이야기들이 궁금해지고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