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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과 보리가 자라네.


우리 집에는 내 나이와 같은 행운목이 있다. 행운목은 점점 커져 원래 심어져있던 화분이 비좁아질 정도로 커졌다. 초록색 잎이 누렇게 시들어 가고 비틀어져갔다. 조금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했더니 며칠은 몸살 앓듯이 시들시들하다가 금세 활기를 찾았다.

실상사작은학교에서 하자작업장학교, 대안학교에서 다시 대안학교로 나의 배움을 찾으러 갔다. 일반학교는 진학할 생각을 고려하지도 않았다. 혼자서는 무엇을 할지 몰랐고, 일반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싫어 다시 대안학교를 찾게 되었고, 하자작업장학교를 오게 되었다.

2008년 3월의 미투데이에 "나는 오늘 멍석방에서 쓰레기가 되었다. / 쓰레기를 줍고 멍석방에서 나왔다"라고 썼다. 그날 나는 내가 여태껏 배워왔던 것들이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모두 쓸 수 없는 것인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 하는 활동들이 다 어렵게 느껴져 내 수준이 낮나 싶었고 예전과 다른 생활 리듬을 만드느라 하루하루가 긴장상태였다. 모든 것이 초기화 되었고 나는 새로운 터에서 잘 시작하고 싶었다. 식물이 분갈이를 하면 하는 몸살처럼 나도 그런 것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1.

길찾기 때 행사가 끝난 후 나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작업장학교에서는 행사 후 식사시간에 일회용품을 사용하였고, 그것들이 쓰레기통을 비집고 나오는 광경이었다.

나는 실상사 작은학교라는 생태적 삶을 지향하며 대안학교를 나왔다. 그래서 일회용품이 쌓여있는 모습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여기는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이 오니까 접시 쓰기는 번거롭겠고,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공동체가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시작하여, '하지만 일회용품 사용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머릿속이 온통 복잡해졌다. 그래서 그 당시 나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없었다. 이야기를 하는데 울렁증이 있는 나는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내가 느낀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꺼내야할지 힘겨워 이도저도 못 한 채 답답해했다. 그리고 주니어가 되어 페이퍼 타올과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실천은 자신이 마음이 나야 하는 거라 생각했고 괜히 이런 이야기 하면 다른 사람 간섭하는 것 같아 하기 싫었다. 그래도 혼자서라도 실천하니 자연을 파괴한다는 죄책감도 떨칠 수 있었고, 적어도 나는 잘못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한동안 도시에서 살지 않는 사람처럼 생각했다. 어디를 가나 조용한 데가 없었고 높은 건물은 나를 압박하는 것 같았다. 지하철에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끼어 다니는 것도 싫증났다. 도시에서의 삶은 나를 짜증나게 했고 도대체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save my city를 하면서 도시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save my city는 동, 서, 남, 북 4개의 팀으로 나뉘어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업이었다. 그 당시 나는 글로벌학교에 있으면서 버마의 이주노동자 부타씨를 만났고, 이주노동자 분들과 영상, 퍼포먼스 등의 작업하며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상황을 알리고 있는 믹스라이스, 도시의 높은 빌딩들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물었던 유니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상황이 한국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주노동자의 상황, 재개발이 일어난다는 사실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나 그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며 이 이야기들이 만화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라는 것, 그리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인데 모든 상황들이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도시의 현실들을 눈으로 접하고, 도시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지리산의 생활이 좋았고, 자연친화적 삶을 살길 바라지만 내가 보고 있는 일들을 보기 싫다고 등 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도시에서 자연친화적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살수는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2학기가 되고 나는 유리, 세이랜과 함께 기후변화시대의 living literacy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진행 하게 되었다. 주니어가 된 이후 환경이슈에 관심이 있었고, 고민하던 나에게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처음 내가 이 프로젝트를 하며 기대했던 것은 하자작업장학교의 종이컵과 이면지 등 자원을 절약하는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 프로젝트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게 단순히 실천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프로젝트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하자작업장학교 전체가 모여 영상 혹은 텍스트를 읽고 토론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자료들은 석유가 고갈되고 있다는 oil peak에 관한 다큐멘터리, 생태도시로 불리는 브라질의 꾸리찌바, 한 때 풍요를 누렸지만 인광석의 고갈로 위기를 겪고 있는 나우루 공화국 이야기, 거대 슬럼에서의 사람들의 삶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나의 이상적 삶의 공간과 조건은 무엇이고 도시에서 10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 하고, 하자센터 운동장에 유스호스텔이 생기면서 없어지는 운동장, 그리고 그 곳에 살던 나무들과 풀들, 새들을 잘 떠나보내기 위한 꽃씨파티를 하였다.

꽃씨파티는 4월쯤 되어 하자센터 사람들이 꽃씨를 심고 봄맞이를 하던 행사다. 매년 해오던 행사인데, 이번 꽃씨파티의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하자센터의 운동장에 유스호스텔이 생기면서 운동장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던 동식물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집이 파헤쳐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운동장에 있던 식물들 중 일부는 옮겨 심어 3층 베란다에 정원을 만들었고, 그 외의 식물들에게는 그리움으로 상징되는 노란색리본을 달아주며 이별의 블레싱을 했다. 조금 씁쓸했던 것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재개발들, 그 중 삶터를 이루고 살던 사람들을 내쫓는 모습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그동안 신경을 쓰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이 아닌 자연의 생물들이 운동장에 자신의 삶터를 만들고 유지 했을 텐데 하루아침에 영문도 모르는 채 자신들의 집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재개발을 할 때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심사숙고하여 개발을 진행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거기에 사람은 없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도 그렇다. 몇 천 년이 걸려서 만들어 졌을지 모를 생태계를 사람들은 몇 년 만에 파괴해버린다. 생태계를 파괴하고 다시 복원하려고 한다면 다시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들것이다. 그것은 이따금 자연재해로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오기도 한다.

녹색은 곧 국가 간 경쟁력이 되지만 자연과 사람의 공존은 여전히 뒷전이다. 나는 그들에게 리본을 묶어주면서 미안한 마음도 함께 묶었다.


 프로젝트를 하며 내가 중간에 빠뜨렸던 것은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기후변화'시대'를 읽어 보려는 시도였다. 프로젝트의 이름처럼 literacy(읽고 쓰고 이해하는) 한다는 게 내가 어떤 사실을 듣기만 하는 것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해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행동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매 시간마다 작업장학교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편으로는 세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지와 혹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이런 사실들이 인지에서 끝나지 않게, 죄책감만 가지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자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홍콩창의력학교와의 유스토크를 준비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왜 환경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 문제가 왜 나에게 왜 중요한지,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은 무조건 친환경적 삶을 사는지에 대해 나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 받으며 다시 한 번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자라온 환경, 유달리 시골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 지리산에서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삶을 살고 배웠다는 것들이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개발은 곧 발전이 당연한 논리 같이 들리는 세상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곳들이 더 이상 파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조금만 불편하게 살면 더 이상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작업장학교 전체가 기후변화시대 문제에 고민을 했고 나 혼자 고민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머그컵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작업장학교 안에 생기고 프린트 할 때도 이면지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작업장학교에서 이야기 하던 것이 조금은 한 몫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나의 혼자만의 행동이 아닌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같이 행동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기후변화는 개인의 실천이 중요하지만 소수의 실천만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시간을 정리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었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작업장학교 사람들의 지금 상황에 대한 인지였는데, 프로젝트가 끝난 후 프로젝트 진행을 잘했다, 못했다는 내가 진행하는 자세나 준비태도에 대해 잣대를 대면서 이 프로젝트에서 한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었다. 그 동안의 시간을 정리하기 힘들어 하자작업장학교를 떠나고 싶었고 문제를 피하고만 싶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작업장학교에서 기후변화에 관련하여 행동들이 시작되려고 하는 것 같아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럼에도 염치없다는 생각들에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다시 학교에 오게 된 것은 유리가 아직 나와 더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고 이야기 하신 것이 작업장학교에서 조금 더 있고 싶다는 마음에 힘을 보태주었다.


2.

그렇게 시작하게 된 3학기에 나는 영상팀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글로벌학교와 시민문화 팀에 속해있던 나는 팀이 없어지면서 다른 팀을 고려해기도 했지만 기후변화시대의 Living literacy를 하면서 기후변화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의 변화와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을 때, 한국에 사는 10대인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귀기울여줄까? 매체는 나에게 힘을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만난 작업자들과 내 주변에서 작업하고 있는 죽돌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내가 고민했던 것들을 영상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라고 조금 의심 하면서도 영상팀에 들어오게 되었다. 왜 많은 것 중 하필 영상에 끌렸냐고 물으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곳을 생생하게 담은 영상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을 시각 및 청각으로 접할 수 있었기에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다른 매체보다 강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학습 계약을 하며 기동력을 갖추겠다는 목표로, 생각은 심플하게, 행동은 가볍게 하자고 생각하며 학기를 시작했다. 학기 초 했었던 STUDIO시간에 했던 성보씨와 프레드의 워크숍에서는 나의 경험을 이야기로 만들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 보여 지는 시나리오, 포스터로 제작하였다. 그리고 작업물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코멘트를 받으면서 내가 의도한 것 중 어떤 부분은 읽히고 어떤 부분은 읽히지 않는 지 경험했다. 말이 아닌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작업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었다.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처음 해보는 것이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는데 일단 시작하고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다보니 무언가 점점 잡히고 머릿속에 형태가 점점 또렷해졌다. 머릿속 구상이 완벽하지 않다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보단 움직이면서 구상을 점점 구체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을 STUDIO시간에 작업하면서 놀이처럼 재미있게 배웠다.


그리고 이 기운들을 이어 tck tck tck이라는 영상을 팀프로젝트로 가져오게 되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은 꿀밤 맞는 장면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이마에 꿀밤을 맞고 있고 거기서 틱소리가 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 것이었다. 꿀밤 맞고 정신 차리라는 의도로 한 것이었는데 이것을 영상팀 안에서 이야기 하고 결국 팀프로젝트로 가져가게 되었다. 여기서 내가 세세하지 못했던 점은 tck tck tck은 이미 있는 캠페인이었다. 이 캠페인은 2009년에 있었던 코펜하겐 회의가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 될 것이고 이 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캠페인이었는데 그렇다면 이런 것도 의식하면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히옥스의 코멘트가 있었다.

조금은 재미로 시작했던 것이 무게가 묵직해짐을 느끼면서 작업장학교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사북읍에서 하는 예술마을 감+동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곳은 시간에 흐름에 따라 필요 없는 공간이 된 탄광과 큰돈들이 움직이는 카지노가 40년의 세월을 지나 만들어진 인공 경석 더미들을 가운데 두고 대립하는 양 보인다. 동원탄좌, 그리고 일터를 잃은 광부들이 일터를 지키는 모습, 그 공간조차 허물어질 위기에 있는 그곳에선 예술가들이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들, 고장 난 것들을 다시 생기 있고, 쓸 수 있게 만드는 작업들을 하고 있었다. 그 장소에 tck tck tck을 찍으면서 나는 시간의 무게에 짓눌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멈춘 공간에서 시간은 점점 흐르고 결정의 순간은 오고 있다는 tck tck tck영상을 찍었고, 개발 논리에 뒤로 밀쳐진 광산산업과 그 안의 사람들, 카지노가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삶은 다시 윤택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들으면서 나는 이곳에서 경험한 것들, 이야기들 또한 영상에 담고 싶었고, 코펜하겐회의에서 국가 간의 올바른 결정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메시지도 담고 싶었다. 처음에 기후변화문제와 사람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던 부분이 사람들의 생활 방식, 사고방식들이 자연을 배제하고 살아가면서 생기는 문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어야 기후변화 문제 또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광부의 삶의 모습과 기후변화 문제가 연결지점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잘 연결되지 않았다.

잘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앞섰지만 잘 만들어진 영상이 나오진 않았다. 잘 만들어지지 않은 까닭은 이야기 하고 싶었던 메시지, wake up, act now가 잘 드러나지 않은 영상이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어디서 상영될지 불분명했던 것 또한 영상에 여지없이 드러나게 되었다.

'생각은 심플하게, 행동은 가볍게' 에 '작업은 정교하게, 이야기는 분명하게'도 더해졌다. 작업물을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가 전달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것이고, 이 외침들이 공허한 소리가 아닌, 현실에서 이야기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3.

작업장학교에 있으면서 내가 살아왔던 시간을 돌아보고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내가 익숙하게 했던 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는 순간들이었다. 유리가 예전에 읽어 준 문장 중 이런 문장이 있다.

"발견이란 항상 사물들이 우리가 믿어왔던 대로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더 많이 알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미 확립된 지식에 대한 가장 분명한 확신을 버려야 한다."

-프랑스 영화감독 장 업스탱(Jean Epstein)


하자작업장학교에 있으면서 동시대를 살아간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쉽게 하고, 들을 수 있다.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실시간으로 사람이 사랑하고, 이별하고, 병들고, 싸우고, 죽어가는 상황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도 동시대를 산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야기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현장학습 때 방문했던 멜라캠프는 내게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멜라캠프는 군부독재를 피하여 난민으로 온 사람들의 임시 캠프이다. 그 곳에 처음 방문했을 때 느껴졌던 것은 위태로움이었다. 이방인은 그 곳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혼자 돌아다닐 수 없었고, 대나무 집의 지붕들이 내 시야를 가득 매웠다. 아이들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돌아다니고, 개들은 피부병에 걸려 털이 군데군데 빠져 있었다. 물도, 전기도 부족한 멜라캠프 안에는 약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나의 삶의 조건은 어떤 부분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후변화시대의 실천으로 전기 아껴야 하고 물 아껴야 한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멜라캠프는 이 이야기가 적용되는 곳이 아니었다. 기후변화는 전 세계의 문제라고 생각했었고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이야기가 이곳에서 통할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들과 2010년을 사는 것은 맞지만 정말로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변화시대를 살아간다고 이야기 할 수 있으나 그들도 정말 그렇게 느낄지, 삶의 다른 조건들을 보면서 거기서 오는 불편함 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내게 버마의 상황을 알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민주화가 된다면 나는 그 곳에 있던 아이들과 좀 더 다양하고, 희망찬 이야기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내가 그들에게 기후변화시대의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느꼈다. 그럼에도 기후변화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겠다고 생각되는 건 그들과 나는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고, 기후변화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은 같이 행동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민문화워크숍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의 市인 하승창 선생님께서는 한사람의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나의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려 마음이 동했었다. 물론 변화하는 과정이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들으면서 말이다.

이번 메솟여행에서 현지 가이드와 통역을 해주셨던 마웅저 선생님께서는 버마에서 8888항쟁을 겪으시고 한국으로 오셔서 민주화 운동을 하시다가 지금은 청소년 교육에 관심가지시고 태국 메솟에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센터를 만들려고 하시고 있다. 민주화 운동에서 청소년 교육에 관심가지시게 된 것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청소년들의 상황과, 자신이 한국에서 배운 것을 써먹어보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마웅저 선생님께서 새로운 교육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가 생각났다. 예전에 엄마가 활동 했던 동화 읽는 어른모임 어린이에게 좋은 책은 무엇인가를 공부하는 시민단체인데 엄마는 "네가 살 세상은 좀 더 좋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면서 봉사활동도 하고 공부도 한다고 이야기 하였었다. 좋은 대학 가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된 제도권학교의 현실에서 대안학교는 또 다른 교육의 기회를 준다. 예를 들어 생명, 생태에 대한 가치의 존중을 이야기 하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하는 것이 제도권학교와는 또 다른 것 같다.

대안학교 또한 교육운동 중 하나라는 것을 태국 메솟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대안학교에서 어떤 사람이었나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말 잘 듣는 아이였고, 어른들의 말씀에 고개 끄덕이며 다 이해하듯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어른들의 생각은 내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어른들의 말씀들을 내 것으로 재정의 하는 시간이었다. 사회에서는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정답인 것은 없고 내가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는지가 중요하게 된 것이라 생각했다.


하자의 일곱 가지 약속 중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해야 하는 일도 할 거다.'라는 약속이 있다. 나는 마음이 이끌려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경우 보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해서 선택하고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책임감 있고,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작업장학교에서는 책임과 의무도 필요하지만 내 이야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나와 아버지의 닮은 점은 책임과 의무의 무게에 눌려 사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하고 싶은 게 있었지만 결국은 부모님의 반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정말 하고 싶다면 누구의 반대에도 내가 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문제에 관심 갖던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이지만 이젠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가지고 참여와 실천을 하며 살고 싶다. 작업장학교에서 받은 힘을 계기로 계속 움직일 것이다. 작은학교의 교훈이었던 '깨달음은 나무처럼 자라난다'라는 말을 생각하며 나의 깨달음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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