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辯(변)하기 위해 變(변)한다]
*辯말씀 변, 變변할 변 : 나를 통틀어서 말로든 행동으로든 표현해낼 수 있기 위해 변한다.

간디 졸업이후, 그 땐 어렸을 때부터 원했던 ‘피아노의 길(예고->음대)’을 걷는 것 보단 ‘다양한 경험(또한 배움)’을 접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실력을 키우고 싶었지만, 실력향상만을 목표로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자에 들어왔고 지금, 난 다시 음악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1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일단락을 지으며 하자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어땠는지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내가 겪은 ‘경험’은 무엇인지 정리하고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지를 말할 수 있게 된 내용과 하자에서의 배움을 연결 짓는 정리를 하려고 한다.

[꿈 1 : 피아니스트]

어렸을 때 피아노를 치고 있는 날 보며 ‘넌 어른이 돼서 뭘 하고 싶니?’ 라고 얘기하는 어른들에게 피아니스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래, 넌 아직 어리니까 지금부터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거야. 그럼 넌 성공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을 받았다. 미리 사인을 받아놔야겠다며 웃고 있는 그 어른을 보며, 난 갈등에 빠졌다. 피아노를 치는 것은 즐겁지만, 내게 성공하기 위한 요소들을 말해주며 ‘힘든 연습’을 꼭 거쳐야만 한다는 말을 해주는 그 사람이 무서웠다. 초등학교 고학년쯤부터는 많은 사람들은 피아노를 치는 내게 ‘피아노를 몇 살 때부터 쳤니? 체르니는 다 땠어? 어떤 곡을 연주했니? 지금 세상에 수많은 피아노신동들이 있는데 이들이 이렇게 성공하기 위해 하루에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아니? 장장 ‘12’시간씩 했다. 너도 그만큼 노력해야해. 그러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어’라는 말을 했다. 여전히 ‘현실에서 성공하기 위해 요구되는’것을 말해주는 사람들은 줄지어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피아니스트가 된다는 것이 더 이상 ‘될 거야’라는 막연함만을 가지곤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새겨두어야만 했다.

꿈은 내겐 무서운 존재로 변해갔다. 꿈을 바꾸면 바뀐 이유에 대해 물어보고, 피아니스트라고 말하면 그 꿈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냐고 물었다. 질문을 받으며 ‘준비된 대답’이 없는 상황이 반복되자 꿈 얘기를 하며 받는 질문들이 두려워졌다. 어디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돈 많고 유명한 피아니스트처럼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내가 꿈꾸는 ‘피아니스트’의 상이 없었기에 다른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덩달아 피아노도 무서워졌다. 꼭 거쳐야 하는 ‘고된 연습’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친구’라고 생각했던 피아노는 ‘무서운 선생님’ 같아졌다.

이런 상황들을 겪으며, 꿈을 지속시키려면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공부인진 몰랐으나 음악에 대해서도 필요하고 다른 것들, 하기 싫은 공부(그래서 안 해본)도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솔직히 나한테 너무 화가 나서 다짐했다. 그러고 나서 곧, 간디를 졸업하고 고등과정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그 고민에서 피아노를 빼놓을 순 없었다. 같이 예고나 실용음악학교를 가자는 친구도 있었지만 여전히 '고된 연습'이 예고 되었고, 혼자서 피아노와 단 둘이 있는 시간에 익숙해져야 했다. 예고를 간다면 거기엔 노력파들이 득실 댈 것은 뻔하고, 그 속에서 피아노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 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반납하고 싶진 않았으므로 거절했다. 지루하고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된다는 생각이 들면 피아노가 내 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많은 것들을 알고 배우고 싶었다. 아직은 피아노에 집중하기엔 마음과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까지는 나쁘지 않았으나 그 뒤에 피아노는 저편으로 보내버렸다. 하고 싶은 것에서 해야 하는 일이 주어질 때 난 나를 의심했다. 누가 하라고 시킨다면 수동적으로라도 하기는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힘이 빠졌다. 그때까지 나는 피아노의, 음악의 소중함을 몰랐다. 성공적인 피아니스트의 길 외에도 다른 길에 대한 얘기가 필요했지만 나에게 어떤 공부가, 어떤 얘기가 필요했던 것인지 하자를 오기 전까진 알지 못했다.

[자책 1 : 책임감]

길 찾기 때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열심히 했던 ‘주말작업장’이란 타이틀 안에 있는 ‘밴드’와 촌닭들 워크숍에서 배운 악기와 음악을 주니어 때도 계속 하고 싶었다. 주말작업장은 사라졌지만 공연 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른 장르의 음악을 편식하지 않으려는 점과 혼자가 아닌 ‘함께’ ‘공연’을 하는 자체가 너무 기대되어(남들 앞에 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시도’이자 ‘기회’라고 생각한 것도 있었다) 들어갔다. 그렇게 원하던, 즐겁게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면서 어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다른 죽돌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 웃을 때 내가 그 순간을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 공연 팀에 들어갔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행복하거나 즐겁지 만은 않았다. 그건 자책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워크숍을 받는 입장이 아닌 팀원이기에 ‘즐거운’ 건 당연한 것이고 합주를 하는 음악이니 ‘잘’할 필요도 있었다. 방학을 이용해 한 달 정도 기존 멤버들에게 배운 것을 토대로 지금 막 주니어를 들어온 새내기들로만 팀을 꾸려 ‘쇼하자(했던 것을 보여주는)’를 준비했다. 리듬순서나 브레이크를 어떤 순서로 할 것인지 자체 회의도 여러 차례하고 우리만의 브레이크 동작이나 패턴도 만들어봤다. 물론 개개인의 소리가 중요하지만 합주기 때문에 어우러짐이 중요했다. 난 정말 즐겁게 자체적으로 준비했다. 미흡했지만 쇼하자를 준비할 때부터 즐겁게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연습을 시작했던 덕인지 기존 멤버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 긴장의 땀을 흘리게 된 상황이 만들어져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존 멤버들의 반응은 좋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칭찬을 들어서 의기양양해져 자만하지 않고 더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다행이었지만 더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음악을 즐기는 마음보다 앞서서, 얼만큼 잘하고 싶은지보단 무조건 칭찬을 많이 받고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번져버렸다. 어떻게 하면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을지 멤버들을 찾아가서 물어보고 난 뒤 손을 이 모양으로 했다가 저 모양으로 했다가 이렇게도 쳐보고 저렇게도 쳐봤지만 그건 그저 공연 팀의 일정 때일 뿐, 연습시간을 스스로 낸 적도 잠시, 부족한 부분을 커버하기엔 시간과 연습량이 턱 없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연습시간이 되면 혹여나 나 때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 까 조마조마했다. 처음 들어올 때, 준비하는 과정 또한 의무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느끼고 즐겁게 임하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집중시키지 못했다. 자책이 생기고 연습할 의욕을 점점 잃어갔다. 더 하면 됐는데, 이상하게도 문제를 해결하려하기보다 피하려고 했던 날 볼 수 있었다. 회의조차 이들에게 떠맡겨버렸다. 그런 점에서 팀원들에게 미안하다. 점점 팀원들과 얘기를 하지 않다보니 할 얘기도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적었다. 팀에서 튕겨 나온 것처럼 혼자 외부인이 된 기분이었다. 날 계속 자책하는 상황에 버려두지 않으려면 내가 날 이끌어야 했다. 핑계거리를 만들고 도망치는 날 잡을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하지만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게 나든, 하자든, 나와 관계 맺는 누구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 도망치고 싶은 상황이기에 핑계를 댔고 그러고 나면 죄책감으로 변했고 상황은 더 악화됐다. 악순환 속에서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책임감을 회피하려 한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싶고 반성한다.

[자책 2 : 변하자]

공연 팀이 이름을 바꾸며 우리만의 음악을 하기로 하면서부터 혼란 속에 빠졌다. 기존의 촌닭들이 어땠는지 잘 모르기에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자주 거론되는 주제들(예를 들어 환경이나 소수자, 인권 등)을 두고 토론하기엔 주어진 정보만 볼 뿐 내 입장에서의 내 얘기는 부족했다. 점점 입을 다물고, 말을 해야 할 상황에선 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부연설명 없이 본론만을 얘기하고 단어를 잘못 선택해서 듣는 사람들이 내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를 사기도 했다. ‘너의 얘기를 하라는 말’에 붙잡혀 그동안 내가 한 말은 내 얘기가 아니었나? 하며 내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표현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생각이 더 이상 안 이어지기도 했고 생각을 안 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에 봉착하면 난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하기 전에 혼자 노력하려고 했다. 하지만 노력이 지속되지 않자 계속 이렇게 마음은 안 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기만 하다면 차라리 하자에 나가지 않는 게 나에게도, 작업장사람들에게도 나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10월 말 쯤, 개인 연구 과제로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난 당연하게 음악을 연구 과제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마땅한 주제가 생각나지 않자 ‘기본’을 잡겠다며 코드외우기와 이론공부를 주제로 내놓았다. 그러자 히옥스께서 ‘왜 너가 여기서 굳이 지금, 작업장 학교 사람들이랑 같이 그 주제를 나누고 싶은 거야? 스킬? 음대가면 다 하는 건데, 지금 하려는 건 너에게 무슨 의미야?’ 라고 하신 얘길 듣고, 평상시 질문하지도 않던 내가 음악과 관련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개인 주제를 어떤 내용으로 하면 좋은지 구체화시키기 위해 내 고민을 나눴다. 하지만 피아노를 가지고 뭘 해보고 싶은지 상상도 내용도 나는 부족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막연히 기다림으로써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어떻게든 무엇이든 되겠거니 했던 생각은 그 무엇은 뭔지, 어떻게 할 건지가 나오지 않는다면 생각의 진전 없이 그대로 머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내 고민거리였던 주제로 바꾸기로 했다.

그 고민거리에 대해 잠깐 설명을 붙이자면, 사람들이 무엇을 제안하거나 어떤 결정을 내렸다고 알려줄 때 난 왜? 라는 질문을 자주 던졌었다. 난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으나 내 질문은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에겐 불편한 질문이었다. 내 질문에 대답이 돌아온 경우보다 ‘화’가 돌아온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난 더 이상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고, 돌아보는 계기로 거꾸로 다른 사람들의 질문으로 인해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해 알아보고 감정적으로 호소하기보다 나름의 대답을 해보는 작업을 주제로 해보려 했다(그 때 한창, 내 주위사람들이 대안학교에 다니는 나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도라고 말하면서 내가 느끼기엔 결국 자기의 생각을 내게 주입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지금 대안학교를 다니는 것보단 대학교가서 하라는 식과 너 지금 사회에 나오면 엄청 힘들 거고 출세할 수 없을 테니 한국에서 요구하는 ‘기본’은 해라 등). 개인 연구 과제를 하기 위해 브레인스토밍과 마인드맵을 그려보고 내가 느낀 ‘불편한’ 질문, 시선, 말들을 적어보며 리스트 업 했다. 지금으로써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리스트 업을 한 토대로 나름의 대답을 적어봤다. 하지만 내 개인연구과제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나름’의 대답을 가지고 다시 그 불편함을 마주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보기 위한 연습을 기회 삼았지만 질문을 가지고 답을 써보는 걸로 연구를 했다고 하는 건가? 싶어졌다. 또, 대답에 꼬리 물어 질문들이 많아지다 보니 어떻게 이어나가야 하는지 너무 혼란스러웠다. 결국 주제로 피아노를 하려고 했던 것도, 내 고민거리를 하려고 했던 것도 모두 엎어버린 게 됐다.

모르고 섣불리 말로 내뱉어 버리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려고 한 건데 난 점점 무슨 말이 와도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다. 내 책임감에 대한 자책은 공연 팀에서부터 하자작업장 학교로 이어져갔다. 길 찾기 때도, 주니어 때도 죽돌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만들어가고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키워드를 갖고 얘기할 거리가 생겼으면 했지만 뭔지 모르는데 기다릴 순 없겠다 싶어 키워드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죽돌들의 관심사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닌 게 많았고 키워드조차 맞추려고 했던 날 보고 화가 났다. 하자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 하자에서 얘기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그 때 좀 뜬금없이 평상시에 잠시 미뤄둔 피아노 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가서 앉았다. 피아노 건반을 닦고 연주곡들에 대해, 재즈에 대해, 뮤지션들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뭐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자책하기보다 내가 관심 있는 것부터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고 할 수 있다면 ‘음악’을 가지고 하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비록 용기내서 얘기해본 적은 적었으나 그제야 할 얘기를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festeza]

공연 팀이 항상 불편했던 건 아니다. 공연 팀에 들어오고 악기를 배우면서, 팀원들과의 호흡도 중요하지만 악기와 친해지는 것도 관건이라는 걸 알게 됐다. 공연 팀에 새로 들어온 단원들은 악기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도 배웠는데 브라질 춤을 우리끼리만 하지 말고 영상 팀, 디자인팀과 다함께 해보면 어떻겠냐는 히옥스의 제안으로 시작 된 ‘오도리’프로젝트를 같이 만들어갔다. 포크댄스나 간단한 춤도 추면서 브라질 춤을 병행했고 점심시간 전 공복의 상태로 30분은 몸을 움직이기에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그러기 전, 우리도 서로 배우고 진행도 돌아가면서 해보고 노래를 정해 새로운 동작도 만들고 배운 것들을 넣어보며 오도리 프로젝트를 만들어갔다. 때때론 바투카다 공연 때 우리가 리듬을 치면 리듬에 맞춰 작업장학생들이 모두 나와 오도리시간에 배운 춤을 보이기도 했고, 우리가 파고지공연을 할 때 모두 무대로 나와 뭉게구름을 합창하기도 했다. 팀별로 나뉘지 않고 작업장학생들이 다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든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다 같이해서 더 의미 있는 공연이 된 것 같다.

festeza의 이름과 의미를 만들며 우리에겐 퀄리티가 중심된 목표는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페미니스트가수 지현과 함께한 보컬워크숍은 festeza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건 역시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방법을 그저 기교로만 가르쳐주지 않으셔서이다. 곡을 선정하고 매주 불러보고 서로 코멘트도 해주고, 어떤 생각을 하며 노래를 부를지 고민하고 노래의 분위기에 맞춰 각자 상상해보기도 했다. 악기든 노래든 ‘잘’ 한다는 건 ‘얼마나 테크닉이 좋은가’가 아니라 ‘얼마나 교감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공연을 할 땐 관객과의 교감도 중요하고, 또한 팀과의 교감, 악기와의 교감, 음악과의 교감도 중요하다. 보컬워크숍에선 우리가 악기를 칠 때 곡에 맞춰 리듬과 밸런스를 맞추듯이 ‘노래’에서도 연결시켜볼 수 있었다. 노래든 악기든 춤이든 개인연습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인연습 할 때보다 팀 연습 할 때 더 실력이 좋아지는 것 같다. 같이 맞춰볼 때 코멘트하면서 힘들 때 서로 격려도 하고 음악에 심취하면서 더더욱 집중하게 된 것 같다. ‘음악’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모인 festeza 팀원들의 개성과 장점을 연주나 노래에 넣어 보기도 하고 노래도 화음을 나눠 같이 맞춰보면서, 악기를 치며 애드리브도 넣어보며 서로의 바람으로 공연구성도 짜고, 팀원 각자의 얘기를 들어보면서 팀으로서 더 성장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꿈 2 : 계속 음악을 하는 사람]

지금의 내 꿈은 ‘계속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물론 피아노뿐만 아니라 ‘음악’자체를 항상 곁에 두고, 하고 싶다. ‘계속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 하면 내가 사랑하는 피아노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것. 내 꿈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노력은 우선 피아노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한 것과 예고를 가지 않겠다고 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어!’ 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자에 오고 나서, 하고 싶은 일에 마땅히 따라오는 해야 하는 일은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피아노를 하면서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어떤 음악을 계속 하고 싶은지를 구체화시켜보려고 한다.

[내게 힘이 되는 것]

음악을 하며 산다는 미래가 내겐 너무 추상적이었다. 어떤 상상을 할 수 있을지 잘 감이 안 왔지만 길 찾기 때부터, 음악을 하려는 애들에게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칠 생각이고 무슨 음악을 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어떤 음악을 할 건지, 음악을 통해 무엇을 하고픈지, 자신의 음악의 범위를 어느 정도 확장시킬 것이고, 삶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등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죽돌들의 도움을 받아 막연히 추상적인 내 미래를 ‘고민’해볼 수 있게 됐다.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질 때마다, 피아노가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마다 손가락이 너무 근질근질했다. 부풀어 오른 풍선마냥 내 마음엔 피아노라고 쓰여 가득 메웠다. 그렇다고 피아노를 도피처로 삼진 않았다. 피아노를 생각할 때마다 자책을 멈추려고 했다.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때 기존에 관심보이고 집중한 것들을 다 놓아버리기보다 연결하고 쌓아올리는 게 중요하니 피아노에 살포시 앉아 건반을 두드리며 피아노가 노래할 때를 상상하며 그 즐거움과 설렘을 바탕에 깔고 지금 해야 하는 일들을 얹혔다. 그 때 음악이 내게 힘을 준 것이다. 음악과 단 둘이 마주하면 항상 어딘가 쓸쓸하다고 생각했는데 감정적으로 흔들리기도 했지만 책을 보며 이성을 찾듯 음악을 듣고 나서의 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책에 내 상태와 지금의 상황을 적으며 앞으로의 포부를 적고 하나하나 실천하려 노력할 수 있었다. 다시 피아노에 집중하고 싶고 미래엔 ‘계속 음악 하는 사람’을 꿈꾼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계기이다. 이런 상황을 겪으며 마음이 바뀐 건 이젠 ‘즐겁게’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치고 싶다는 점이다. 내가 말하는 ‘잘’ 치는 것은 quality의 중요성이라기보다, 과정을 중요시 여기고 싶다. 스스로 잘 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 과정이 내가 정말 ‘연습’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좋겠다. 재밌을 때 치는 건(물론 중요하지만) 제외하고, 집중해서 연습할 때마다 내가 원하는 목표치를 가지고 이루기 위해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습의 과정이 좋으면 결과도 당연히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에서부터 ‘나’로(태국 이동학습)]

하자에 들어오면서 (지금까지도) 제일 흥미로웠던 건 다양한 걸 체험해보면서 나와 같은 청소년들이 이곳에 모여 미래에 대해 혹은 지금 무엇에 대해 고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이어가고자 이동학습으로 간 홍콩, 메솟과 멜라에서도 나의 길, 너의 길을 다른 얘기처럼 구분 짓는 것이 아닌 동시대에 사는 사람으로서 ‘꿈꾸는 꿈과 목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 과정 안에서 동시대에 살지만 ‘너와 나는 너무도 다른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있다’까지였던 내 생각은 ‘그렇지만 우린 각자 자신의 길을 찾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함께 격려하고 고민할 수 있다.’로 서서히 바뀌어갔다. 그들이 내게 원한 것은 ‘나의 얘기’와 ‘버마의 상황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달라’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상황을 의식하고 기억하며 알리는 것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주위사람들에게 버마의 상황에 대해 알렸지만 버마의 상황은 ‘이렇다’며 얘기를 끝낼 순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버마의 상황을 알리자고 말했다. 메솟의 그들과 나와 맺은 관계가 서로의 미래에 대해 격려하며 고민해줄 수 있는 관계라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확인하고 할 수 있는 일부터 만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부분에선 나 스스로에게도 ‘앞으로’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메솟에서 3일째 되던 날, 마웅저 선생님의 친구 분인 정보임 선생님과의 만남을 가졌다. 정보임 선생님은 ‘어떤 종류의 일이든 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된다. 만들어가는 것이지 준비된 것은 없다.’는 말을 하셨다. 이 얘기를 듣고 나니 결국 자신의 필요성에 따라 선택이 내려지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며 열심을 다 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내가 도전하는 걸 두렵다고 했던 건 그저 도전하겠다고 한 말에 책임을 지며 열심히 지속해 나갈 힘이 없어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힘이 내게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내게 없는 게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힘을 없다고 생각하고 생겨나기만을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속할 수 있는 힘을 필요하다고만 하며 가만히 있지 말고 지속할 수 있는 힘으로 어떤 것이든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나씩 해봐야겠다. 만들어가기 위한 그 무엇은 지금의 내 꿈인 ‘계속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할 수 있는 것(피아노)에 집중하려고 한다.

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분리시키고 자꾸 그 사이에서 정처 없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확신이 없는 채로 무작정 헤맸다. 멜라 LMTC 학생인 히부는 내게 '난 역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역사를 좋아해’라는 말을 했다. 길 찾기 때 나눈(대화), 하고 싶은 것만 하지 말고 해야 하는 일 안에서 하고 싶은 점(흥미)을 찾아보자는 게 곧 ‘필요하니 좋아하는 것’이 될 수 있고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까. 원해서, 혹은 필요해서 오래토록 지속시켜 온 것은 음악.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재즈피아노는 ‘어렸을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하고 있는 건 아니다. 클래식 피아노를 꾸준히 해왔던 나는 ‘다른 장르의 음악’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던 것도 있었지만 ‘즉흥연주’에서의 ‘즉흥’을 얻고 싶었다. 길 찾기 때 말한 ‘흥미 위주로,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부분과는 다르다.

정보임 선생님은 ‘길은 찾으면 있다고 생각 한다.’, ‘길을 만들어간다.’라고 말씀하셨다. 길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놓인 길속에서 파헤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만들어간다.’는 정보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파헤쳐? 원래의 길속에서 이탈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막막함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내가 이 여행에서 만난 이들로부터 저마다의 목표와 그만한 이유, 계획을 들었던 것은 또 다른 경험들을 알 수 있는, 힌트와 시야를 넓히는 기회였다.

[움직이기 위한 준비 :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1)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워크숍에서 개개인의 목소리가 모여 ‘힘’을 이뤄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힘’이 있으려면 내가 스스로의 말을 만들고, 이유를 만들며, 의미를 찾고, 계획을 세워 움직일 수 있는 ‘나의 판’ 이 있어야 된다. 함께 만들 수 있고 이야깃거리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판’이 있기 이전에 (내가 판에 들어갈 수 있기 전에) 나만의 중심이 필요하다. 판과 판이 마주했을 때 생기는 다른 점도 있겠지만 ‘공통의 것’이 생길 수 있으려면 미적지근한 ‘그 누구의 것(이 될 수 있는)’이 아닌 ‘나의 것’이 필요했다. 난 워크숍을 끝내고 리뷰에서 ‘구체적인 판을 만들고 책임의식을 가져야겠다.’라고 적었는데 그 뒤의 4개월 동안 내 다짐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아쉽다. 그것을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움직이고 싶다. 길 찾기를 마친 후 주어진 판에서 노는 사람도 되고 싶지만 욕심을 보태 더 나아가 제안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던 이유도 내가 펼칠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이 생기길 바라며 상상했던 것, 준비성과 끈기, 그것들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힘’이 필요했고 그건 즉, ‘지속할 수 있는 힘’이다. ‘지속하는 힘’이 ‘나의 판’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되길 바란다.

2)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손을 놔버린 적이 꽤 많다.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면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부분에선 피아노도 마찬가지였다. 시인들 워크숍 중 밀어붙이고 나서 계기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리뷰에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적었는데, 모르겠으니 안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때보다도 꼭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해보는 것 자체가 주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몰라도 해봄으로써 알 수 있는 것. 내겐 ‘왜?’라는 질문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그 질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하지 않았는데, 질문을 해야 할 때 놓쳐서 코멘트로 받은 ‘왜?’에 대답할 수 없었던 나를 보며 ‘왜라는 질문을 놓치고 있던 부분이 많았구나.’라고 생각했고, 모를 땐 멈춰있는 게 아니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관심 있지 않다고 눈과 귀를 막고, 난 왜 저것에(남들의 관심사) 관심이 안 생기는 거지? 하며 자책하는 건 ‘나의 판’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에 오히려 역효과를 주고 있었다. ‘지속하는 힘’을 가지고 모든 일에 임하고 싶다. 그래서 어떤 작업을 하던 도중에 ‘이거 왜 하는 거지?’하며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그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중단시키지는 않을 테다.

[움직이기 위한 준비 2 : 경험 속에서의 배움]

1) 길 찾기 때 ‘Globish’와 ‘영등포 프로젝트’, 그리고 ‘촌닭 워크숍’과 ‘주말작업장’에 많은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했다. 특이한 케이스는 ‘영등포 프로젝트’인데, 처음엔 너무 하기 싫고 왜 하는지 모르겠어서 손들고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지금 인터뷰하러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도 우선은 나가보자는 단지의 말을 듣고 나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에 팀원들과 밖으로 나갔다. 그 뒤부터 순탄해진 건 아니었지만 팀 작업과 인터뷰가 매우 매력적이라고 느껴졌고 다 알고서 시작하려 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해보면서 알 수 있는 것, 해보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이 프로젝트에서 몸소 경험했다.

2) 하자에서 과정을 보내며 ‘왜?’와 ‘어떻게?’라는 질문을 받았고 이것이 중요한 건 내가 하는 것, 선택하는 것, 계획하는 것에 있어서 정말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동안 취약했던 게 ‘동기’와 ‘목표’였다는 걸 ‘왜’와 ‘어떻게’라는 질문을 받으며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걸 보고 알 수 있었다.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 안에서 ‘왜’와 ‘어떻게’가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또, 상황 판단을 하고 맥락을 읽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 상황 판단 하는 것을 경험으로 배워가며 나 뿐 만이 아닌 주위를 둘러보면서 같이 생각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자각했다. 그건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고 하고 싶은 것은 뭐고,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등 나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하는 것에 의심이 아닌 자신감과 확신이 있어야 한다.

4) 하자에서 코멘트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정말 진지하게 상대에게 코멘트 해주는 게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동료작업자’라는 말을 쓰는 게 어울린다고 느꼈다. 하지만 코멘트를 받고 준비되지 않아 아직 할 말이 없는데도 말을 해야 할 상황은 잦았다. 말을 뱅뱅 돌리게 됐고 말을 순환시키는 게 아니라 하자에서 나오는, 누가 했던 말 그대로를 갖다 사용해버리는 경우가 생겨 골치 아파졌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다른 죽돌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들을 알게 되고 같은 주제를 놓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고 듣는 과정은 내게 매우 중요했다. 그건 다른 생각들과 다른 경험으로 인한 이야기들,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다름과 차이를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닌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오히려 다른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소스들이 많아진 것이기 때문이다.

5) 하자에서 뿐만이 아니라 어느 곳에 가서든 기대를 가지고 꿈을 가지고 그것을 이뤄내기 위한 작업을 스스로 하며 계속 수동적인 나로 멈춰있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하자에 오지 않았더라면 생각할 수 없었을 것 같은 부분이 많다). 음악으로 누구와 나눌 것이고, 함께 할 것인지 구체화 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음악으로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까, 무엇을 표현하고 싶을까 +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배웠고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먼저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면, ‘내 언어’를 만들고자 한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내 행동과 일치했으면 한다. 사회와 담을 쌓지 않고 내 주위를 보고, 기꺼이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보며 내 언어와 내 집중거리(키워드)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길을 만나고]

길 찾기 초, 주위에 영향을 받고 상상을 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만들어가고 부딪혀 보며 ‘꿈’을 꾼다는 게 그토록 추상적으로 들릴 수가 없었다. 내가 처음 하자를 들어온 건 정말 길을 찾고 싶어서였다. 그 때, 길은 만들고 찾는 게 아니라 주어져있다고 생각했다. 내 의지가 길을 찾는데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 중 무엇이 더 좋은지 골라내기 위함이었다고 생각이 드니 많이 심난하기도 했다. 일반학교가 아닌 대안학교를 선택하면서 내 마음에 보여 지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간다고 생각했지만 길은 쉽게 만들어지고 선택되지 않았다. 좋아보여서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왜 움직이려고 하는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좀 더 질문해보고 답 해보는 게 중요하다. 결국 내가 나의 생각과 행동의 주체가 되었으면 했던 생각을 이어야 한다. 내가 생각해온 것, 내가 배운 것들을 복사해서 상대의 머리에 입력시켜 줄 수 없다는 게 답답하다고만 생각하며, 설명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었지만 간디에서, 하자에서, 어디서든 이제껏 해왔던 것들을 내 안에만 쌓아두고있지 않으려면 표현할 수 있어야, 내 생각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선 ‘대안학교 학생’으로 불리었고 친척들에겐 ‘미래가 궁금하거나 불안한 친척’으로 보였고, 친구들에겐 ‘부러운 친구’였다. 그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설명이 어려웠고, 그것이 때때로 자책으로 이어졌지만 지금이라면 좀 더 얘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유와 공부를 나누지 않고 수동적과 능동적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강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는 연습에 몰입하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의미 있게 만드느냐가 ‘지금’으로서는 중요하고 그 다음, 무엇을 할 건지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실수해도 모자라도 ‘해보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더 나아가 그 해본 것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면서 다음을 만들어가는 것도 해볼 수 있겠다. 아직 내게 어려운 부분이지만 두려워서 웅크리고 있지 않고 스스로를 책임지고 싶다.

하자를 그만 다닐지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는데 난 꼭 하자에서의 과정을 해내야 한다는 오기보다는 내가 선택했던 것을 도중에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회피하고 싶지 않았다. 무모한 욕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계속 날 자책 속에 가두고 힘들어해도 하루하루 나오면서 스스로 이겨내고 싶었기에 무모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어렵다고 좌절해버리는 건 피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지만 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싶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오히려 필요한 생각들을 더 얻게 되었다. 멈추지 않고 해보며 또 다른 혼란이 찾아왔을 때 쉽게 무너지지 만은 않을 것 같다. 부딪치며 무엇이든 스스로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하자가 힘들어지면서 멈추려고 했듯이, 쉽게 멈춰버리려고 했던 모습이 아닌 앞으로는 다가올 어려움에 힘들다고 또 쉽게 포기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까지 해온 것들, 경험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의미부여를 계속 하고 싶다.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선 의지가 필요하다. 내가 홀로서려는 의지. 그것을 계속 지속하며 ‘꿈’꾸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