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알고 '나'를 보다

‘세계’를 알고 ‘나’를 보다

 

 

_ 도로시(이지수/디자인/주니어1학기+)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이라는 시민문화워크숍 타이틀을 보며 ‘세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에게 세계? 세계하면 커다란? 커다란 무엇? 이라는 물음표들이 생겼고 나에게 세계는 광대하고 넓었다. 나에게 ‘세계’란 커다란 무엇이다. 커다란 무엇에 나는 살고 있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동안 너무 나 혼자 편하게만 살아 온 것 같다. 아무 노력을 하지 않고 당연하게 펼쳐져 있는 길들을 밟아왔었다. 하지만 당연하게 펼쳐져있는 길에서 그만큼 내가 배우게 되었고 새로이 알게 된 것들도 있다.

내가 당연한 길을 밟기 시작한 곳은 우리 집에서부터였다. 그 속에서 나는 소위 친환경적이라고 일컫는 생활을 해왔다. 이는 엄마의 강력한 삶의 스타일에서 기반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엄마의 삶의 방식은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물건을 새로 사기 전에 정말 필요한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기존에 있는 걸 재활용하거나 재사용을 하면서 소비할 일들을 줄였다. 그리고 매일 아침 거품이 일어나지 않는 친환경 샴푸와 치약을 쓰고 린스대신 식초로 머리를 헹구고 화학성분이 없는 로션과 스킨을 사용했다. 그렇게 나는 이런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리고 엄마의 삶의 방식은 나의 진로를 선택하는데 당연하게 작용했으며 자연스럽게 나는 대안학교라는 길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왜 대안학교에 다니는지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대안학교를 선택할 때 나에게는 꼭 다니고 싶은 그런 절실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면 나는 대안학교라는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먼저 간 오빠의 뒤를 따라 너무나 당연하게 따라 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나에게 가족의 영향을 벗어나기 힘들게 하였고, 스스로 내가 다른 선택을 해보거나 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다니게 된 대안학교, 실상사 작은학교는 어머니 산이라고 불리는 지리산의 전기를 받으며 나는 그 곳에서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생태적인 삶을 배울 수 있었다. 사실 이 학교에서 추구한 생태적인 삶이라는 것은 그 이전에 내가 엄마를 통해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실상사 작은학교에서는 좀 더 내가 스스로 생태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이나 조건이 다르게 배치되어 있었다. 자치살림이라는 수업을 하면서 밭은 일구고 씨를 뿌리면서 내가 먹고 싸고 생활하는 것들이 순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자연에서 나온 많은 먹을거리를 찾아서 먹고, 그것이 다시 먹을거리를 키우는 거름이 되는 그 순환적인 가운데에서 생활을 했었다. 나는 그런 삶을 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주변에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자연과 모두 같이 살아가는 것, 나는 나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자작업장학교에 들어와서도 그런 배움은 계속 이어졌다. 기후변화시대 living literacy를 하면서 동시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고민을 했었다. 나는 먼 북극에서부터 관심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개인주제로 가지고 가면서 많은 정보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극 곰을 살리기 위한, 기후변화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관련된 글들이나 책들은 많았지만 내 생각들을 정리하기란 어려웠다. 나와 북극을 연관 지으라면 지을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세계를 너무 덥석 물어버렸는지 그 객관적인 정보들 이상의 나만의 생각들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고 나서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정말로 구해야 하는 세계는 무엇인지, 바꿔야 할 세계는 무엇인지 말이다. 정말 내게 절실하고 구하고 싶은 ‘세계’란 게 있긴 있는 건지. 있다면 구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메솟과 멜라 이동학습에서 나는 ‘세계를 구하는’ 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처음 나는 ‘세계를 구하는’ 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시민문화워크숍 시인들께서 얘기해주시는 경험과 상황들에서 겪은 세계/세상/사회에 대한 내용들이 어떤 세계를 어떻게 구한다는 건지 잘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왜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고 듣고만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와는 동떨어진 얘기들로만 들었었고 내가 아닌 누군가가 다 알아서 해결하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나 외에 다른 세계와 상황들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메솟과 멜라에 있던 내 또래 아이들의 상황이 절박하다고 느꼈고 그 동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선 그 아이들과 같은 절박함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들과 다르지만 어떤 절실함, 절박한 상황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유가 더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이동학습에서의 또래아이들 상황의 절박함을 보고 느꼈을 때 ‘세계를 구하는’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 같다.

이동학습 중에서 메솟의 CDC SAT(학생회)친구들과 함께 인권/교육과 관련된 NGO 단체들도 만나고 서로의 상황을 알아가는 활동을 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나는 그 시간동안 우리와 함께 한 시간들이 그 아이들에게 당연한 일상일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메솟에 가서 새로운 경험들을 해서 좋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그 친구들의 상황이 어떤지, 얼마만큼 제한되어있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디카드조차 없는 불법체류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고, 돌아다니다가 경찰에게 붙잡혀갈 것을 예상하여 항상 얼마의 돈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 등. 실제로 그런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니까 감옥에라도 갇혀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답답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들의 상황에서 그나마 희망을 품게 해주는 것이 있다고 믿었다. 바로 ‘꿈’이 아닌가 생각했다. 꿈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말은 ‘지도자’였다. 지도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다른 꿈들도 많은데 왜 하필 지도자가 되는 게 꿈인지 궁금했었다. 처음 지도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왠지 낯설면서도 거부감이 들었다. 지도자라는 게 왠지 어감부터 강인하고 ‘내가 대장이니까 다들 내 밑으로 따르도록’같은 느낌이 풍겨서 잘 와 닿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지도자’라는 말은 매우 익숙한 말이었고 꿈을 대신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민족을 위해서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지켜내고 싶다고 했고, 바꾸고 싶어 했다. 그 아이들이 말한 ‘지도자’ 는 ‘구하다’라는 말과 연관되는 것처럼 느꼈다. 더불어 민족을 통틀어 얘기하는 것을 보고 ‘바꾼다’는 것을 넘어서서 ‘구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내게 던진 물음은 ‘그 아이들처럼, 내가 살아가 있는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였다.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하는 세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꾸다’라는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홍콩 MaD 컨퍼런스에서 외쳤던 Change start with you와 하자에서 우리가 해왔던 wake up, act now, save my city 같은 you can do it역할을 하는 문구들이 떠오른다. change maker라고 하시는 분들이 말하는 change가 내게는 세계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죄책감이 아니라 책임감으로 마음을 바꾸라는 말로 들렸다. change maker들의 상황과 경험을 통한 얘기들 속에는 변화해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바꾸다’라는 말이 희망으로 느꼈다. ‘변화’라는 말은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변화/바꾸다’의 의미와는 다르다. 예를 들면 ‘변화와 바꾸다’는 자기 자신이 바꿀 수 있는, 세계는 변화하지만 그 변화는 내가 변해야만 바꿀 수 있는, 바꾸면 되돌릴 수 있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면이 있는 반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안에서는 더 이상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 있다. 그래서 ‘변화와 바꾸다’라는 것에서 더 힘차게 ‘구하다’라는 말로 연결하여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내게 ‘세계’라는 말이 들어온 지 몇 달 되지 않았다. 그 동안 주변을 보지 못하고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지금껏 걸어왔던 길에서 세계를 구하려고 하는 일이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었는데 이동학습을 하는 순간순간 그리고 에세이를 쓰면서도 하나씩 알아가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관심 밖에 두고 있었던 세계를 계속해서 ‘나’와 적용시키며 그 세계 속에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세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 내가 세계라는 걸 알게 되고 어떠한 실천들도 시작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구하는 한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내게 하자에서는 모든 게 첫 경험 같았다. 알고 있었던 것을 새롭게 다시 알기도 했고, 정말 모르고 있었던 것은 새롭게 알게 되면서 ‘처음이었다.’ 라는 말을 나의 경험들을 말할 때 자주 쓰이게 되었다. 하자에 들어오기 전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서 어설프게 알고 있던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꺼내며 얘기를 하면서 면접 날 횡설수설 했던 때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나는 디자인이라는 게 마냥 꾸미고 만들고 그리면 되는 줄 알았었다. 하지만 디자인팀을 하면서 그런 작업들을 하기 전에 진짜 중요한 ‘기획’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길찾기 때 포스터, 명함, 동화책 같은 것을 하면서 좀 더 개인작업 위주로 스스로 기획을 해보고 구성을 짜보는 걸 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길찾기 주말작업장 디자인팀에서 했던 ‘명함’만들기는 내게 참 특별하게 다가왔었다.

처음으로 나의 명함을 만들면서 비록 명함이란 게 작은 종이지만 나를 복잡하게 말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나의 정보들을 넣어 보여주는 것만으로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어디에 소속되어있는지 등.

작은 종이만으로 나를 대신해줄 수 있는, 나를 말해주는 이 명함이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았고 예를 들어 사람들과 만났을 때 서로의 명함을 주고받음으로서 서로를 알기도 하지만 명함으로 인해 만남의 연결이 끊이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명함이 처음 내 손에 쥐어진 날 나는 우선 디자인팀과 서로 주고받고 가족들에게도 주고 판돌과 몇몇 죽돌에게도 나눠줬다. 명함이 생긴 걸 자랑하기도 하고 주고 다니면서 ‘나’를 나눠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나’, ‘개인’ 관련한 작업들에 더 집중해 있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09년 봄 학기 걸어서 바다까지를 갔다 왔고 다녀온 뒤에 나는 걸.바 총 디자인 제안을 받아 맡아서 하게 되었다. 총 기획자가 되는 거였다. 하지만 워낙 내가 나서서 누군가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는 게 동네 동생들 데리고 다니는 것 빼고 처음이어서 그 역할이 부담스러웠는데 나중에는 잘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생겼다. 그래서 책임감을 갖고 디자인 ‘기획’이란 걸 하게 되었다. 물론 나 혼자서 모든 걸 다 한건 아니고 내가 전체적인 기획 틀을 짜오면 같은 팀이었던 죽돌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기획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걸.바 전시회를 열었었다. 처음엔 모든 짐들이 다 나에게 떠맡겨졌다고 생각을 해서 내가 이걸 어떻게 다 짊어지고 가나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그 짐들을 나누어 같이 들어주는 죽돌들이 있었을 때 비로소 이런 게 동료이자 한 ‘팀’이구나 란걸 느꼈다. 그리고 길찾기를 수료하고 주니어 올라와서는 정말 디자인‘팀’에 들어갔다. 길찾기 때처럼 주말작업장 할 때만 서로 만나는 게 아니라 디자인 방에서 같은 디자인팀끼리 늘 마주하게 되었다. 역시 나 혼자가 아니라 팀이다 보니까 여럿이 함께 할 때는 서로의 의견을 중요시 하고 그 의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했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생각할게 더 많아져서 복잡해지기도 했지만 내가 혼자 할 때보다 여럿이서 함께 고민하고 각자의 역할을 나누고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코멘트를 해주며 어느새 나는 디자인 팀에서 ‘우리’라는 말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았고 ‘개인’ 작업보다는 ‘우리’의 작업이 더 많이 생겨난 것 같다.

 

나는 하자에서 처음으로 많은 글들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끊임없이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하자에서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나의 모습들을 발견했었던 것 같다. 처음 겪는 일들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스스로 나 안에 갇혀있던 나. 뭔가 마음처럼 잘 풀리지 않을 때 자책하기만 했던 나. 하지만 그런 나를 다그치며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꿔보려고 했던 나. 나를 자꾸 꺾어 내릴 때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곤 했던 나. 다른 누구도 아니고 스스로 내가 해결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시간들을 보내온 것 같다. 처음에는 그런 시간들이 익숙해지지 않아서 힘들었었다. 그래서 나는 나름 ‘나’를 넣어가며 글을 썼다고 썼는데 다시 내게 ‘왜’, ‘어떤’ 질문들이 쏟아질 때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생각들이 혼란스러워졌고 글을 쓸 때마다 한 순간 몇 차례씩 감정과 생각들이 섞여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그렇게 처음 겪어 보는 경험에 나는 나와 경험의 사이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면서도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당연할 수밖에 없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일 때 또 다시 슬럼프에 빠져 나의 대한 신뢰, 믿음, 자존심을 꺾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만약에 나의 이러한 모습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갔을 땐 아마도 힘이 들 때마다 피하면서 내 안에서만 웅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에세이를 쓰는 경험들이 나를 끌어내는/잡아당기는 경험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을 발견한 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모습들은 어디선가 또 다른 경험을 통해서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생각해보면 하자작업장학교는 나에게 터닝 포인트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 수동적인 생각과 자세에서 멈춰있을 뻔 했던 길을 터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에세이를 마무리하는 현재까지 합해서 한 몇 차례 정도 되는 혼란스러운 고개들을 넘어 왔고 앞으로도 어떤 길들을 가게 될지 아직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 길과 고개들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잘 넘을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기대한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 속에서 계속해서 눈길과 손길을 주며 또 나에게 끊임없이 ‘왜’, '어떤‘ 이라는 질문을 지속시키며 또 다른 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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