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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영상글 수 646
제목 : 미정 인트로 :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다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페이지2 땅의 사람들 3 (고정희) 팔레스티나의 영가 하늘문이 열렸는데 다 어디 갔는가 동구밖 허공을 찌르는 호곡소리 하늘문 열었는데 다 어디 갔는가 기고만장한 엄동설한 속에서 뽕나무 숲을 후리던 바람이여 어머니와 아버지의 옷을 벗기고 형제들의 알몸을 매질하던 채찍이여 거미줄만 무성한 폐옥의 마당에서 서쪽을 향하여 때 아닌 올리브꽃이 시들고 우리들의 지적인 밥사발을 마주하여 늙은이가 젊은이의 시체를 매장하는 이 거대한 해골 골짜기에 하늘문 열었는데 다 어디 갔는가 사진 [페이지3] 팔라웅 유스 센터 : Ta'ang (소제목미정) Ta'ang (TSYO)민족이라는 버마와 중국의 국경지대의 소수민족이 있다. 그들은 버마 내에서 팔라웅이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이름은 Ta'ang이다. 그들은 고유한 언어가 있고 집터와 일터, 삶의 이야기가 있는 자신들 땅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현재 고향도 땅도 마약농사지역으로 유혹적인 양귀비들이 번져가고 있다. 향긋했던 차(라페)밭이 양귀비 밭으로 변하면서 그들이 겪은 변화는 양귀비꽃과 찻잎의 차이만이 아니다. 차가 중요한 산업이었던 땅에는 댐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그들은 자신의 땅에서 피난민이 되었다. 버마 군부에서는 마약밀매를 비공식적으로 돕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 농사를 짓다가도 결국 마약농사로 일을 바꾸게 되는 상황이다. 주요 산업이자 그들의 문화일부였던 차 생산이 군부독재정권과 그로인한 마약밀매로 변질되고 있다. 2010년에는 버마에 두 번째 댐건설이 될 예정인데 그들은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르는 채로, 그리고 언제 어디로 떠나야할지 모르는 일시적 공간에서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군부독재정권 아래 탄압 받고 있는 Ta'ang민족은 소수민족이라는 위치로 인해 표현의 자유를 더 억압 받으며 문화와 언어, 그들의 고유한 전통들을 빼앗기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사라지는 것을 지키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사라져가는 고유한 언어를 기억하려고 한다. 현재 팔라웅 유스 센터에서는 청소년에게 타앙민족 언어를 교육하고 있으며 마약밀매로 영향 받는 개개인과 문화를 기록해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총 4개의 지부가 태국, 일본에서 팔라웅 상황에 대한 운동을 하고 있다. [페이지4] Ta'ang민족에게서 사라지는 것은 그들 자신의 것이요 더불어 버마사회의 것이다. 그들은 군부독재정권 아래 인권탄압과 개인, 민족의 문화, 언어를 빼앗기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름 'Ta'ang‘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것이 나는 Ta'ang민족을 지키는 일이자 SPDC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군부독재정권 아래 Ta'ang 민족은 자신들의 이름을 기억해냄으로써 버마의 민주화를 말한다. 사라짐의 내용은 물리적인 공간만을 담지 않는다. 장소의 맥락에 따라 사라짐의 내용과 주제가 달라진다. Ta'ang민족은 그들 자신들이 사라짐의 대상이다. 그들은 차밭이 양귀비 밭으로 번져가며 생기는 변화를 직접 겪고 있으며 언어와 문화의 사라짐을 직접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 사라짐을 느낀다. 이곳 서울에서는 가끔 오로지 하늘만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점점 높아지는 건물들 밑에서 시야에 하늘만 담으려니 높은 옥상 모서리들이 삐죽 보이더라. 도시화가 진행 중인 서울의 사각형 높은 건물들을 보면 가끔 레고도시가 연상되기도 한다. 도대체 어디까지 더 높아지고 더 넓어질 것인지 알 수 없는 재개발이 때로는 폭력으로 느껴진다. 고유했던 것들은 획일화되고 오래된 것은 낡은 것으로 취급되는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나는 내 주변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사라짐의 과정을 볼 수 있는 계기는 포크레인이 있는 공사현장을 보면서이고 그밖에 사라짐의 과정을 목격하기란 어렵다. 사라짐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는 적다. 재개발이 단순히 도시의 선진화를 위한 맹목적인 변화라면 그것이 누구를 위한 변화인지 잠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그런 도시에 사는 나는 점점 내 기억이 남아있는 곳들이 기억과는 다르게 변하고 있다고 느낀다. 사라짐은 내 기억이 남아있을 틈도 없이 순식간에 진행되어 버린다. 내 기억은 단순히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사회의 기억 속에서 작용하기에 나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까 고민한다. 버마의 군부독재정권과 한국의 도시화를 견주어보기란 어렵다. 하지만 버마와 한국 모두 어떤 부분에 대한 대안과 해결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과 그에 답하는 군부의 폭력, 그리고 재개발로 인해 자신들의 땅을 잃어도 폭력에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대안과 해결책이 필요하다. 소위 높은 위치에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변화 아래 사라짐은 순식간이다. SPDC가 만들어내는 의도적인 사라짐은 Ta'ang민족에게 생계위협이기도 하다. 그들의 땅에서 양귀비꽃이 지고 다시 차밭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그들의 고유한 언어도, 문화도 고향도 모두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언어와 문화를 지키려 하고 팔라웅유스센터 활동을 통해 뜻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그리고 타국의 땅인 메솟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그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참여도 할 수 없이 과정이 없는 사라짐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기억’의 작용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사라짐이 자꾸 생겨나는 상황에서 내가 지켜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공간과 사물뿐만이 아닌 기억과 사람이다. 개인의 기억은 사회 속 기억의 매개물이다.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관계에서 생겨나기에 나는 사라짐이 많은 시점에서 나와 연결된 관계에서의 기억을 하고 싶다. 메솟에서 나와 버마 사람들의 만남을 기억하고 싶으며 나는 그 만남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지난 과거는 기억의 대상이다. 때문에 나는 사라짐의 과정이 없는 미완된 기억을 어떻게 채우고 지켜갈까 고민하고 있으며 기억을 함으로써 미완성된, 또는 열려있는 과거를 채워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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