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t go on, but I'll go on."


<  이 텍스트는 내가 버마와 태국의 국경지대인 메솟에서 10일 동안 머무르며 들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다. 나는 그곳 메솟과 멜라에 머물며 버마에서 피난을 온 난민의 신분인 사람들을 포함해 학생과 버마 관련 운동을 하고 있는 NGO단체들을 만났다. 때문에 내가 간 곳이 버마는 아니지만, 메솟에서 만난 이들의 경험과 정보들을 통해 버마의 상황을 인식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들려준 그곳의 상황은 나에겐 충격으로서 마음이 아프기도, 이해하기 힘든 비민주적이고 비동시대적인 상황이 있었다. 때문에 나는 아직 이 상황과 경험을 설명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파편으로 단상처럼 맴도는 그곳의 상황을 다시 그려보는 봄으로써 내 이동학습의 경험을 정리하고 다른 이들과도 나누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너희는 행운아들이야. 

-자유롭지 못한 상황.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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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행운아들이야. 너희는 이곳으로 이렇게 올 수가 있잖아.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내 고향은 버마의 카렌 지역이야. 그곳은  SPDC (버마 군사 정부 이하 'SPDC')와의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었어. 나는 그것을 피해 이곳 난민캠프로 피난을 와있는 거야."



 "너는 좋은 거야. 너는 너희 부모님이 네가 배우는 거나 생활하는데 있어서 지원해주잖아.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있고, 나에 대한 지원은 내가 알아서해야해. 나는 나를 지원해줄 단체들을 찾아다니면서 나에 대해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이야기해야 돼."


 "나는 ID카드가 없어. 때문에 자유롭게 어딘가를 가기에는 위험하고 불가능해. 그래서 혹시라도 외출 할 때에는 일정한 돈을 가지고 다녀. 그렇게 경찰에게 잡혔을 때에 비리를 해서 풀려날 수가 있거든."


"나는 맑스를 공부하고 싶어. 그렇지만 이곳에서 맑스를 공부 할 수 있는 책을 구할 수가 없어. 만약에 네가 영문버전의 책이 있다면 나에게 보내주라"


<나는 럭키한 걸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내 삶의 조건들을 행운이라고 설명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부모님 얼굴을 못 본지 꽤 됐어. 가족들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파."



 "태국어를 배운다는 건 내가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하나를 얻는 거야. 태국어를 잘 하면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거든. 영어 역시 중요해 그래야 내 생각을 사람들이랑 나눌 수 있고, 내 상황에 대해서 알릴 수 있잖아." 



 "미국은 정말 나쁜 놈이야. 버마에는 미국과 한국의 군인들이 들어와 우리 민족을 착취하고 학살했던 역사가 있어. 지금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는 빈부격차를 만들어내고 있어. 지금도 한국과 미국은 엄청 친한 걸로 알고 있는데?(나를 발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훑는다)"


-실제로 버마의 노동력을 소비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은 인권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고 있다.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거둬들인 모든 이익은 군정에 돌아간다고 한다. (-버마 민주시민 단체 '대안 아세안 네트워크') 또한 군사정권에 무기를 제공한 인도 중국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대기업 '대우 인터네셔널'은 2002년부터 2006년 10월까지 버마에 불법으로 포탄 제조 공장과 설비기술 수출하며, SPDC로부터 1억 3천 3백여만 달러를 받기로 계약한 혐의가 있다.(-2006년 12월 서울 중앙지검)



"나는 열심히 공부해 미국에 가서 미용사가 될 거야. 그래서 버마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진 돌아오지 않고 싶어"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은 대통령이지만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엔지니어를 직업으로 갖고 싶어."


"고향인 버마로 돌아가는 것은 위험해, 그렇지만 나는 언젠가 선생님이 되어 그곳으로 돌아가 우리 민족을 교육하는데 돕고 싶어."


"난 우리 민족의 지도자가 될꺼야. 그래서  SPDC와 맞서고 민주화를 이루고 싶어."


"난 카렌 군인이 될거야. 그래서 SPDC와 맞서 싸울거야 .난 평화를 원해 "

 

 "(학교 달력을 보여주며 학생들을 얼굴을 짚어가며 ) 얘랑 얘는 재정착을 했어. 나 역시도 할 수 있는 건 재정착이라고 생각해.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부고, 재정착을 한 곳에서 카렌에 힘이 될 수 있는 것들을 기르고 싶어. 재정착을 해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 그래서 카렌을 위해 카렌 땅을 지키고 싶어." 



 <이제 곧 난민 캠프의 재정착 제도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에겐 더 좋은 생활환경과 꿈을 만들어갈 기회가 제한되는 것을 의미했다. 내 또래의 꿈. 그 꿈을 꾸게 만든 경험과 현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유롭게 꿈을 꾸고 만들어 갈 조건이 되지 못해 자신은 좌절한다며 나에게는 '럭키'라고 한다. 또한 한국의 일제식민 당시에 겪었던 '피해자'입장 그리고 재개발로 인한 철거민과 이주노동자의 맥락을 알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을 이해한다고 함께 피해자로서 끌어안을 수만은 없다. 난 그들에게 막연한 연민을 품고 대상을 바라보는 위치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마주하는 내내 생각했다. OECD에 속한 국가에서 '세계를 구하는 시인'이라는 꿈을 꾸는 나와 열악한 상황을 경험하며 민족을 구하는 꿈을 꾸는 그들. 

   '나는 이들과 어떻게 나누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 '>



국경 - 국경이라는 깊고 넓은 벽

버마의 독재상황 

내 옆에 친구에겐 아픔이 남아 있는 강 너머

갈 수도 없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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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국경역할을 하는 강이고 다리에요." 


"원래 이 국경지역은 버마도 태국의 소유도 아니라서 범죄자나 난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에요. 저렇게 대나무로 만든 움막집에서 말이에요. 근데 며칠 전에 SPDC가 불을 질러서 그 집들을 다 태워버려서 지금은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아마 몇 주 뒤면 다시 생겨나겠죠."


"버마를 갈 수 있는 3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이 다리를 건너 ID카드와 돈을 내고 가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돈만 내고 보트나 튜브를 이용해 강을 건너는 거예요. 둘 다 없다면 그냥 헤엄치면 되요. 그렇지만 그렇게 건너간 뒤에 버마에서의 일은 장담 못해요." 


"외국인이 무조건 버마로 들어갈 수 없는 건 아니에요. 버마로 들어가더라도 외부 인이 머물 수 있는 기간은 단 하루뿐이에요. 무조건 24시간 안에 이 다리로 돌아와야 해요. 수도나, 도시까지 로는 보통 3~4시간은 가야해요."


 "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때 기억은 지금 다시 상기하고 싶지도 않은 기억들이야. 난 너무 가난했고, 배고팠고, 환경이 너무 열악했어. 그래서 내가 이곳 (LMTC)로 온 거야.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의 과정은 너무 힘들었어." 


“어느 날 우리 마을에 군인들이 들이닥쳐서 불을 지르고 주둔했어요. 지금 돌아간다면 저는 죽을 지도 몰라요.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국경지대에서 일하고 싶어요.”


 <태국과 버마의 경계 역할을 하는 국경다리에 간 적이 있다. 오후 5시에 강물 위로 떨어지는 햇볕은 강을 아름다워 보이게 했다. 그렇지만 그 강물을 마냥 아름답게 감상 할 수가 없었다. 내 옆에서 그 좁은 강물을 벽처럼 느끼며, 고향으로 건너가지 못하는 내 친구의 경험과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강에는 내가 머물렀던 몇 십분 동안에도 십 수 명의 사람들이 보트와 튜브를 타고 여권 없이 넘나들고 있었다. 그리고 태국과 버마의 국경이라는 것을 잊은 듯 아이들은 천둥벌거숭이마냥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강은 누구에겐 떠올리기 슬픈 벽이기도 놀이터이기도 돈만 있다면 건너기 쉬운 다중의 통로였다. 심란했다. 내 옆에서 눈물 짖던 친구의 기억에 강 너머의 모습. 그것은 나와 같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공유하고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것이었다.>



선거와 마약, 희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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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군사정변 이후 독재정권을 유지해오던 SPDC는 올 해인 2010년 총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1990년 총선을 실시했으나 당시 민주화 운동지도자인 아웅산 수치여사가 이끄는 야당인 NLD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압승을 거두자 정권 이양을 거부함과 동시에 압승을 거둔 아웅산 수치 여사를 '내란죄'라는 죄목으로 구금하고 독재정권을 유지해온 현  SPDC의 공정성과 정당성에 대한 국제적인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2010년 3월 9일자로 현SPDC는 오는 10월 치뤄질 선거의 정당등록법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은 경력이 있는 사람은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고 규정,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는 수치 여사의 선거 참여를 원천 봉쇄한 상황이다.>


 " SPDC는 선거철이 되면 마약에 대한 규제를 풀고 은근히 장려해요. 정말 야비한 방법이죠 ."


"마약으로 마을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


"마약이 총보다 무서워요. 정상적인 생각과 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니까요. 그로 인해 벌어지는 많은 문제들이 있어요. 마약을 생활처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심지어 마약을 하지 않는 남자는 스님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요."



"그들만의 잔치야" 

" 곧 있으면 국민선거가 있기는 해. 그렇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잔치야. 모두소수민족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는 한 선거는 아무 의미도 희망도 없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지 않을거야."


또 다른 화두였던 소수민족이라는 것.

(버마는 135여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로서, 현재 대표적으로 카친, 카야, 카렌, 친, 바마, 샨 이라는 민족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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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은  SPDC에 대항하기에는 소수민족들의 힘이 너무 약하고 , 그렇기 때문에 연대해야한다고 생각해. 근데 SPDC가 물러간다면 나는 카렌의 땅을 지키고 싶어. 각각의 소수민족들에게는 각각의 땅이 있으니 각자 알아서 할거라고 생각해."


"나는 그 이후에도 연대해야한다고 생각해. SPDC가 물러간다고 해서 문제는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아. 분명이 어떤 일들은 계속해서 벌어질 테고 그럴 때는 우리가 잘 연대해두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겠지. 소수민족끼리 좋은 관계를 만드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 




비민주적, 난민의 신분인 그들은 무엇을 하는지,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유엔도 각기 단체들도 계속해서 SPDC의 군사독제를 반대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SPDC가 변하는 건 없어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버마의 문제에 대해 알고 요구를 해도 SPDC는 변하지 않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요."



 "이건 카렌 전통 무늬의 가방이야. 이걸 너에게 줄게. 넌 서울에서 이걸 매고 다니면서 우리 민족을 알려줘"


 "내가 어디로 갈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실한 답은 못하겠어. 아마 내 주소는 계속해서 바뀔지도 모르고, 내가 어디에 있을지 넌 찾기 힘들 거야."


 "우리를 기억해줘. 우리를 꼭 잊지 말아줘."

  "무엇을 ?"

 "모든 것을. 너희가 이곳에 머물며 보았던 이 장소와 우리들을 말이야"

<'그들'이 아닌 '각자'가 정말로 무엇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인지, 내가 한국에 돌아가 무엇을 알려주길 바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버마의 비민주적인 상황을 한국에 알려주길 바라는 것 같다.



메솟에 머물며 난민이라는 내 경험 이상의 상황을 갖고 있는 이들과 마주하며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아프고 분노하는 것에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하려는 것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로서 그 상황을 그려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솔직하게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아팠으면 한다. 아프지 않더라도 내가 마주하고 온 '사실'(불안한 위치에서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동시대 지구인으로서 편하지만은 않기를 바란다.


르포작가 김순천 씨가 철거민과 같은 한국사회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사회적 고통'이라 하였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태평양을 넘어 메솟에서 본 것이 그들의 고통만 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난 그들의 꿈의 시작점은 어디였는지, 그래서 무엇을 꿈꾸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조건에서 살고 있는지를 듣고 보았다. 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을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 고향과 나라를 잃어 되찾을 꿈을 꾸는 내 친구가 된 또래의 10대들을 웃으며 마주 할 수가 있었을까. 아마도 내가 그들과 마주하며 마음이 아팠던 이유 또한 그들의 고통이 그들만의 것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고통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 내 상황과 다른 또 다른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상황이 고통을 머금고  '희망이 없다'라는 것에 먹먹해 마음이 아팠을 때, 나는 무엇을 떠올리고 움직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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