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죽었지만 시는 죽지 않았다.

해남하면 떠오르는 여러가지 중에 단연 떠오르는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시인. 고정희이다. 
'시'를 나 자신에게 의미화 시켜도 보고, 다양한 시인의 모습을 관찰하는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었는지, 단지 '시인 고정희'를 찾고 기리는 
여행 뿐은 아니였다. 쓰여진 시와 품고 있는 '시'를 읽고 나누는 것이 시와 함께 하는 것이고, 우리가  지난 시간동안 경험해본 결과. 
그렇게 시와 함께 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새롭게 이 여행을 준비했고 시인의 고장 따뜻한 남쪽마을로 떠났다.

도착 한 첫날 Poetry night를 시작으로 하여, 쏟아지는 비와 함께 조금은 여유롭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원래 작업장학교의 일정에 비하면 
파격적인 일정이었다!) 

생가는 1년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마 그 집을 청소하고 시인의 옛 물건을 들인 이후 부터 그곳은 줄 곧 변함없이 그대로였을것만 같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김없이 그 곳에 드나든다. 새로운 사람도 똑같은 사람도 어떤 이유에서든 시인과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람들은 생가에서 그 변함없음에 감탄하고 의례적인 방명록을 (시인이 볼리 없지만) 시인에게 남기고 간다. 나 또한 시인을 마주 하는 방법이 그러했고, 아마 많은 사람들도 같은 방법으로 시인을 생각하고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올해로 19주기를 맞으며,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회고사를 들으며 내가 느낀것은,  무덤 속에 있는 시인 빼고는 모두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무덤가 앞에 있는 저수지 마저도.  

우리는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는 시인에게 우리는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생전 시인의 애창곡을 선물(노래)로 준비하고 무덤 앞에서 선사했던 것들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살아서는 만날 수 없었던 시인을 그 이후에 시로써의 만남을 더욱더 의미있게 생각하고 있었다. 
죽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말이 될 수 있을까? 그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은 어떤 이유인지 궁금해졌다.
시인과 시, 기억 속에 있는 사람과 현재 숨쉬고 있는 사람의 말, 죽은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 
풍부한 시언어와 함께여서 재미난 상상을 할 수 있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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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we meet a desert, make it a gar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