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매년 고정희시인의 기일에 해남에 내려가는 일정이 있었다. 내가 제일 처음으로 갔을 때는 내가 길찾기였던 2008년이고 그 후 2009년 그리고 올해까지 총 3번 참가하였다. 처음 고정희 시인을 만나러 여행을 떠났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냥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그저 남도의 풍경이 익숙하였고 마음 편안하게 하였다. 그리고 3번에 와서 지금 고정희 시인을 만나러 간다는 게 나에게 어떤 것일까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이번 여행은 순탄치 못한 출발로 시작하였다. 자동차 바퀴의 펑크와 렌트 문제 등 시간이 지연되면서 앞으로 갈 길이 막막하였다. 하지만 수도권을 빠져나오면서 건물들이 하나둘 씩 낮아지고 푸르른 논과 산들이 내 눈 앞에 하나둘 펼쳐질 때 왠지 모르게 마음에 안정감이 찾아왔다. 이맘때쯤 남도로 찾아갈 때 볼 수 있는 풍경들은 여전하였다.

저녁 늦게 도착한 미황사에는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고 우리가 포잇트리 나잇을 할때는 비가 많이 왔다. 우리는 각자 준비한 시를 읽고 음악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번 여행에는 산과 땀, toto, 왕양도 참여하여 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듣기도 하였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내 이야기는 쉽사리 꺼내진 못하였다. 히옥스는 내년에도 다시 이곳에 올지에 대하여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다.

나는 포잇트리 시간에 고정희 시인의 남도행을 읽었었다. 나는 그 시를 읽을 때 고정희 시인이 버스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 때 고정희 시인은 어땠을까. 그리고 내가 창밖으로 봤던 풍경들이 겹치면서 그 느낌이 좋아 시도 좋아졌다. 처음 내가 고정희 시인을 알게 되었을 때는 죽은 시인이라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엄숙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또문 동인분들에게 고정희 시인의 생전 이야기를 듣다보면 무거운 느낌은 누그러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매년 고정희 시인을 찾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조상이 죽으면 모시는 것은 한국의 전통이다. 고정희 시인을 찾아뵙는 것은 그런 전통을 따른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 내어 하던 것도 형식적으로 되어 습관처럼 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소녀들의 페미니즘에서 고정희 시인은 cultural hero 였다고 한다. 나는 처음에 학교 일정을 따라 가본 것으로 시작한 이 여행이 아직도 그 수준을 넘지 못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어떻게 고정희 여행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일까, 서로 통한다는 게 쉬운 일일까, 나는 고정희 시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들을 해본다.

우리는 고정희 시인이 좋아하던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선물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고정희 시인이 좋아하셨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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