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고정희 기행은 두번째다. 작년에는 서밋을 하면서 유리가 추천해준 고정희 시인의 지리산의 봄이란 시집을 접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시집이었고 그렇게 크게 생각해보거나 의미를 두고 갔던 여행이 아니었고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이번 고정희 기행은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되는 여행이었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는 계속해서 시인, <영화 시>, 삶과 죽음, 그리고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면서 여행 중에도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었던 키워드였던 것 같다.
19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모두가 기억해주고 매년 찾아가고 그 곳에서 시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참 가족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번에도 각자가 생각하는 공동체와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하자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리고 완성된 글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기도 했다. 또 한편으론 매번 가는 이 고정희 시인의 기행이 하자 마을 맥락 안에선 이 마을의 문화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하자 마을 안에서 주민이란 범위가 얼마나 될 지는 아직 상상 중이지만 하자 마을이라고 했을 때는 거리가 멀고 시간이 오래 되었어도 어떤 공간과 시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부분은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는 입촌자와 퇴촌자의 경계가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하자 마을과 같은 문화는 그렇게 보여지지 않는다.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와 마을에 대한 이야기에 연장선으로 두고 이번 고정희시인 기행에서 고정희 시인도 하자의 한명의 마을주민이라고 한다면 이 마을이 품고 있는 마을 주민과 그 범위는 얼마 만큼일까? 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故 고정희 시인을 어떻게 추모하고 길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기행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생전 고정희 시인의 18번이었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곡을 준비해 가기로 했다. 모두가 악기를 치고 모두가 노래를 부르면서 여행을 준비했다.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낙동강때가 많이 떠올랐다. 당시 바투카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오면서 그때 우리의 관객은 누구였을까? 우리는 누구에게 그 노래를 들려준 걸까? 했던 그때를 회상해 보게 되었다.
이번 고정희 여행을 그리 즐거운 여행은 아니었다. 첫날을 기점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까지 바가 오는 바람에 여러모로 전체적으로 일정에 변동이 있었다. 그래서 고정희 시인의 묘에 갔을때는 비가 오던 중이었고 우리가 준비해간 공연을 못할까봐 걱정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가로 돌아오고 나서 비가 그쳤고 우리는 다시 묘로 가서 시인의 눈으로 그 앞에 있던 나무와 밭과 산 그리고 호수(저수지)를 보면서 시인에게 노래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하자를 마무리 지으면서 각자 마음에 품었던 詩를 이번 여행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모종낼 蒔의 의미는 이제는 밭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이야기 하고 싶었고 하나의 모판을 키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시의 의미를 계속해서 생각해 보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매체를 가지고 참여하겠단 이야기를 계속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위치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큰 일이 아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