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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이라는 것이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시인들이 시를 가지고 시인을 만나러 간 여행. 내게 시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고정희 추모 기행은 지속적으로 여러 해 동안 또문과 함께 갔던 여행이었다. 나는 작년에도 가본 적이 있지만 작년과 이번 여행은 많이 달랐다. 다른 곳의 일정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 여덟 명 모두가 해남에서 보내고 싶은 프로그램을 짰다. 우리는 우리 관점을 가지고, 뜻을 가지고 갔었다. 떠날 때는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여섯시 까지는 미황사에 도착해야 해서 적어도 12시 땡 치면 출발했어야 하는데 렌트카도 예정보다 늦게 도착했고 심지어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새 차랍시는 렌트카 뒷바퀴가 찢어졌다. 그래서 타이어도 갈아 끼우고 하다 보니 어느새 1시간 30분이 지나가있었다. 그래서 졸이는 마음을 가지고 다시 출발을 했다. 차타고 갈 때 생각했던 건 이번 여행은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떻게 지내볼까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비와 함께 떨어져 뭐가 나온 것도 없이 지워졌다. 8시 40분, 미황사에 도착하고 나서 약간 씻고 바로 계획에 있던 poetry night시간을 가졌다. 빗소리와 기타소리, 낭송하는 소리와 해남이라는 장소가 내게 안정감과 따뜻함을 주었다. 그래서 난 보답하듯 시를 읽고 이야기를 했다. 고정희 생가에 도착하고 나서 같이 추모할 사람들을 기다리며 고정희 시인이 봤던 풍경들 앞에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이 때 혼자 고정희시인 무덤 앞에 가서 무언가 했더라면 1:1 마주함이라는 일찍 온 자만의 특권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인데 안타깝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오고 무덤가에 가서 고정희 시인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술도 한 모금씩 돌려 가며 시간을 보냈다. 원래 여기서 우리들이 준비해온 고정희시인에게 드릴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람’을 부르려고 했는데 비가 와서 악기를 꺼낼 수 없는 사정으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대신 생가에 돌아와서 다시 여러 사람과 고정희시인의 18번이었던 곡을 회상하며 나누었다. 갑자기 비가 그쳐준 덕분에 무덤가에 가서 우리 14명과 고정희시인만의 듀엣을 불렀다. 딱히 무덤 앞이라고해서 고정희시인의 얼굴이 스쳤다던가 하는 건 없지만 계속 고정희시인을 의식하게 되었고 비가 그친 것도 우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다. 갑자기 비가 그쳐서 노래를 한 것이고 노래 하고 나니 다시 비는 다시 내리고. 계속 비가 내리던 여행이었다. 시인으로서 고정희시인을 만난 건 처음이지만 시를 가지고 갔던 여행, 가슴이 따뜻했던 여행은 아주 좋았다. 일찍 일어나는 일정 때문에 무척 피곤하긴 했지만 말이다. 시를 더 읽고 써봐야겠다.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지만 그 분에 대해 들은 이야기 만으로 정이 가는 분을 다시금 조금 더 짙어진 시인의 모습으로 마주하고 싶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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