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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의 living literacy글 수 603
안녕하세요. 저는 이 예지나 라고 해요. 현재 하자작업장학교에 다니고 있고, 작업장학교에서는 ‘고요’라고 불리고 있어요. 입시교육은 하지 않고 있고, 지금 제 공부의 목표는 대학이 아닌, 17살이에요. 저는 보통 한국의 17살이 경험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있어요. 저는 하자작업장학교를 다니기 전에는 밀양의 송전탑반대운동 같은 ‘시위’ 나 ‘세상과의 싸움’ 에 대해서, 현장에 나가서 반대한다! 라고 소리를 쳐야하고, 우울한 분위기에서 결사반대 머리띠를 매고 싸우는 모습을 생각했었어요. 내가 하던 일들을 모두 그만두고 현장으로 나가서 나의 모든 것을 투자해야한다 라고만 생각했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봐왔던 시위란 죄다 그런 것들뿐이었거든요. 그래서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도 선뜻 도와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하자작업장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되었어요. 작업장학교에서는 ‘밀양’이나 ‘탈핵’의 문제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저는 처음에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었어요. 현장에 나가서 싸워야 하는 것이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들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항상 뭔가 더 도와줘야할 텐데 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학교에서 밀양을 돕기 위한 일들을 하고 있지만, 저는 무작정 밀양에 가서 같이 울어줘야만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실제로 밀양을 다녀오게 되면서 제 생각은 바뀌게 되었어요. 10월 17일부터 20일 까지 밀양 상동면 여수마을에 다녀오게 되었어요. 그 곳에서 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감나무농원에서 감을 따는 일을 도와 드리게 되었어요. 제가 만났던 할머니는 정말로 저의 친할머니와 많이 닮으신 분이셨어요. 외모도 성격도 말투도 모두모두요. 친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저의 친할머니가 송전탑반대를 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저의 친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밀양의 할머니를 볼 때면, 송전탑 백지화 송의 가사중의 ‘한 평생을 바쳐서 농사만 짓는데 송전탑 웬 말이냐’ 라는 가사가 어떤 의미인지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 밀양의 문제가 정말 남의 일은 아니구나 하고 느꼈어요. 일을 도와드리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송전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밀양의 할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들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서였죠. 그런데 밀양의 할머니는 제가 생각해오던 그런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냥 보통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어요. ‘밀양의 할머니’를 단편적으로 생각해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느 시골에나 있는 평생을 농사를 지어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는데 그동안 ‘송전탑’문제로 싸우시는 모습만 봐왔기 때문에 특별한 사람들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평범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특별한 할머니, 할아버지로 만든 것은 결국 우리들 이었어요. 전기를 많이 쓰는 건 나와 서울 사람들 이지만 그 전기를 서울까지 오게 하기위해 피해를 받는 건 밀양의 할머니들이고, 그렇지만 마음껏 쓰는 전기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들이었죠.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데모’(할아버지의 표현)를 하러 나가도록, 데모가 일상이 되도록 만들어버린 것이 죄송했어요. 이런 상황들이 정말 안타까웠어요. 그리고 밀양에 갔을 때엔 4개면 문화제에도 참여하게 되었었어요. 지금 밀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식들, 경찰들이 억울한 이유로 연행을 해간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어요. 대부분 안 좋은 이야기였죠. 들으면서는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들이었지만 그 이상으론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저는 밀양을 생각했을 때에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이 되는 일은 공연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문화제에서도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좋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공연 전의 이야기들이 우울한 이야기들이여서 이런 신나는 공연을 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어요. 관객이 있는 곳을 한 바퀴 돌고 무대 위로 와서 놀았어요. 모든 사람이 같이 놀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음악의 힘이란 뭔지 그 순간 동안에는 한 마음으로 즐겁게 놀 수 있었어요. 밀양에 가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몸도, 마음도, 머리도 모두 힘들었었는데 공연을 하는 순간 동안에는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를 보고 즐거워하고 같이 웃으며 노는 사람들을 보면서 밀양에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어요. 밀양에서 서울로 돌아오던 날, 집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은 끝이었어요. 밀양에 있을 때는 내 일처럼 마음아파하고, 하루 종일 송전탑을 착잡한 마음으로 생각을 하다가 집에 도착하니깐 모든 게 그대로라는 사실이 너무 허무했어요. 나의 일이 아닌 그냥 ‘밀양’의 일로 바뀌어 버렸어요. 그 순간 저는 깨달았어요. 밀양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무작정 밀양에 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밀양을 위한 일들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라고요. 저는 작업장학교를 다니면서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밀양에 도움을 줄 수 있었어요. 저는 작업장학교에서 밀양을 위해 노래를 불렀어요. 춤도 췄고, 신나는 악기도 쳤어요. 할머니들 앞에서 힘내시라고 신나게 악기를 쳐드리기도 했고요. 서울의 청년들 앞에서 밀양에게 관심을 갖자고 이야기하면서 춤을 추기도 했어요. 대한문 앞에서 밀양을 생각하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어요. 혼자 일 때엔 무서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던 밀양의 문제들을 작업장학교 학생들과 같이 쉽고 즐겁게 접근할 수 있었어요. 작업장학교에서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밀양의 문제를 접하면서 밀양을 위해 다른 곳에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이런 공부를 하다보면 이 공부를 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이 일들이 정말 소중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분들을 만날 때면 이런 공부를 더 해나갈 용기를 얻기도 했어요. 지금의 세상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당연한 일이 아닌 것으로 변해가고 있어요. 저는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저의 딸에게도, 손녀에게도 이런 좋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은데 지금 세상은 핵의 위험에 둘러 쌓여있기 때문에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버렸어요. 할머니들이 지키려고 하는 땅을 우리세대들도 지켜 가야해요.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도 밀양에게, 핵발전소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하고, 좋은 세상을 위해서 더 공부를 해야 할 거예요. 지금까지 이런 세상을 만들어 온 건 어른들이지만 그 세상을 책임져야할 사람은 청소년들이에요. 청소년들이 움직여야 앞으로의 세상은 더더욱 좋아질 것 같아요. 저는 우리가 이렇게 관심을 가짐으로써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도 좋은 세상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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