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시각/영상글 수 646
미디어 비엔날레 동녘 더글라스 고든 - 내 당나귀와 함께 한 고행 임민욱- 손의 무게 ------- 전체적인 느낌과 감상: 일단 작가들의 이야기도 각각 달랐던 것 같고, 그 방식이나 그것이 주는 느낌도 제각각으로 독특했던 전시였다. 비엔날레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부터 찾아야 하겠으나... '미디어' 라는 말과 내용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좀 생각을 해봐야겠다. 가령 아피챠퐁 위라세타쿤의 프리미티브를 보지는 못했으나, 민욱의 손의 무게는 온갖 중장비들로 파헤쳐진 '들어갈 수 없는' 4대강 공사 현장으로 사람이 탄 버스가, 고수가 북을 울리며 버스를 출발시킨 것은 차가움만이 감도는 밤의 현장을 열게 하는, 일종의 의식적인 퍼포먼스였던 것 같다. 도착해서 사람들은 어둡고 차가운 현장에, 온기의 흔적을 남기며 전진하고, 움직인다. 손의 무게의 촬영 당시 현장에 있었지만, 그 때는 열감지 카메라로 촬영한다고 해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편집되어 작품으로 나온 것을 보니 열감지 카메라는 그 특유의 강렬한 색으로 살아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너무나 극단적으로 구분해냈다. 살아있는 것들은 마치 무언가 타오르듯 끊임없이 움직이고 빛나고, 그렇지 않은 하늘과 같은 빈공간 뿐만 아니라 포크레인, 공사 현장은 어둡고 미동도 하지 않는 無의 형태로 보여진다. 그 강렬한 대비가, 어떤 존재의 흔적도 없이 공허한, 아무런 희망없고 생기없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4대강 공사현장을 침투하는 듯이 보였다. 결국 그 4대강 공사 현장인 이포교 위에서 반대의 뜻을 펼치며 온 몸의 존재 그대로 부딪혔던 것도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http://blog.naver.com/jump_arko?Redirect=Log&logNo=80113235439 한국문화예술회 블로그 인터뷰 자료 http://www.minouklim.com/main.htm 임민욱 홈페이지 더글라스 고든의 내 당나귀와 함께 한 고행은 중세시대에 태만과 무지함의 상징으로 금기시되던 존재인 당나귀를 중세 풍의 돌 기둥, 돌 바닥, 돌 장식으로 이루어진 중세를 상징하는 공간에 자유로이 풀어놓고 지켜본다. 당나귀들은 다그닥거리며 공간 안을 울리며, 어떤 눈치도, 신경도 쓰지 않고 그저 돌아다니고 가끔씩 달리거나 히힝하고 울고 마지막엔 소변도 본다. 중세의 엄격한 교리와 규율이 팽창되어있는 사회 속에서 당나귀라는 상징은 일종의 악이다. 그러나 작가는 오히려 선을 대표하던 공간의 그런 악들을 풀어놓음으로서 절대적인 선이나 악이 무엇인지,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내러티브 없는 영상으로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묻는다. 그 공간을 거니는 당나귀들의 발굽 소리는 하나의 일침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뭐 의도야 어쨌건, 당나귀는 그냥 자기들끼리 열심히 공간을 맴돈다. 유난히 크게 울리는 발굽소리도 메아리치며 공간을 메운다. 그 당나귀의 문제에 대해 오히려 무심함, 신경쓰지 않음이 과거 선악의 구분과 경계를 얼마나 무의미하게 만드는지, 아니 그것은 뭔가에 반한다기 보다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관념으로 마땅히 넘어서야 할 것을 넘자는 그런 말일 수도 있겠다. 꽤 긴 러닝타임인데, 그저 당나귀들이 걷고, 가끔 클로즈업도 해보고 그러다가 달리고 마지막에 갑자기 히히힝 하더니 난데없이 소변을 보고 영상이 끝난다(...) 사실 중세풍의 건물, 당나귀 정도가 이 영상에서 나오는 것들인데 그게 오히려 이상하게 커다랗고 약동감있는 존재감으로 다가오는게 꽤 실험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http://www.artnet.com/Galleries/Artists_detail.asp?gid=414&aid=7209 아트넷 갤러리 더글라스고든 페이지 http://blog.naver.com/eungeecn?Redirect=Log&logNo=120001472839 <아름다운 계절> 네이버 블로그 인용 전체적으로 이 두 작품을 자세히 보았다. '미디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사회와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면, 그것이 마땅히 가지는 발언(메세지)과 예술가로서 그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가지는 연결성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커미트먼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그것은 필히 예술가라 칭하고 대중에게 자신을 내보이는 사람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미디어가 대중에게 보여주고 무언가 전달하고 그만큼 파급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악용하면 통제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쉬우니까. 요즈음에 필요한 미디어라는 것은, 조그맣고 소소한 이야기더라도 대화를 건네고 숨은 이야기를 건져내고 풀어내서 밝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예술가라고 대중이 알아듣기 어렵게 작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좀 말이 안된다, 그야말로 지극히 예술가 당신들과 보는 우리들이 직면한 이야기들, 둘러 싸고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게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나 엄청 실험적인 작품도 괜찮다, 그렇지만 그 안에 말은 굵고 간결하고 강력히 하자. --- (미디어에 대한 생각은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