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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의 living literacy글 수 603
누가: HPS 죽돌(14명), 호사, 판돌(3명), Mette 언제: 11월 11일~ 11월 14일 어디서: 경기도 이천시 율면 오성리 무엇을: 농활체험(마늘심기, 양파모종심기, 콩 베기, 소원종이
태우기, 운동회) 어떻게: 버스(25인승) 대절 왜: 농사일 보조, 휴식 11일, 평화워크숍 회의를 마무리 짓고 5시가 넘어서야
모두들 짐을 챙기고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추적 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눈도 붙이고, 심심한 사람들끼리 놀기도 하면서 한 두
시간 정도를 버스 안에서 보내고는 지난번에 경유했던 한식당에 들러 저녁을 해결했다. 다시 차를 타고
조금 더 달려 오성리의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콩세알N의 날씨와
나은, 그리고 처음 보는 곤과 다음 날 일정을 간단히 확인한 뒤
Buy Nothing Day 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11시가 넘어서 회의를 마치고
남자아이들은 모두 콩세알N 집으로 이동했고, 남은 사람들은
마을회관에서 잘 준비를 했다. 다음날 아침, 8시까지는 콩세알N 집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가야 했었지만 모두들
조금 늦게 일어나 씻고 준비하면서 조금씩 늦어지는 바람에 서둘러야 했다. 나는 잠을 잘 못 잔 탓인지, 한쪽 눈이 충혈되고 뻑뻑해져 있었다. 모두들 멍한 채로 아침인사를
나누고, 둘러앉아 무브와 히옥스(히옥스는 3일 내내 식사 준비를 하셨다.)가 차려준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 마당에 모여 짧은 오도리 시간을 가졌고, 9시 정도가 돼서는
할 일을 나눈 뒤 각 팀으로 흩어졌다. 나와 오피, 동녘
그리고 빈은 마늘과 양파 밭을 따듯하게 덮어줄 짚을 모으는 일을 맡았다. 넓어 보이는 노란 빛의 밭
한 귀퉁이에서부터 두 명씩 짝을 지어 짚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서툴렀지만 자꾸 하다 보니 구력이
붙어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듯 했다. 안개 때문인지, 잔뜩
젖어있는 짚이 자꾸만 엉키고 설켜 짚을 빗질할 때 마다 흙이 딸려와서 애를 먹었다. 그러다 결국 다들
진흙을 던지며 잠시 놀기도 했다. 어느 정도 짚은 모은 후 우리는 마늘 심는 것을 도와주러 갔다. 다른 아이들이 있는 일터로 가보니 몇몇은 콩을 베고 있었고, 또
다른 아이들은 마늘을 심고 있었다. 뒤늦게 온만큼 열심히 밭을 고르고,
마늘을 심고 흙으로 잘 덮는 작업을 마친 후 모아온 짚으로 다시 한번 마무리 해주었다. 점심
시간이 되었을 때 모두들 콩세알N 집으로 내려와 휴식시간을 가졌다. 계속
불편한 오른쪽 눈 때문에 신경이 쓰여 한 방(날씨의 방이라고 했다.)에
들어가 햇볕으로 데워진 방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잠시 눈을 붙였다. 방안 가득히 울려 퍼지던 음악이
흐려질 때 즈음, 점심 준비가 끝이 났다는 소리에 부스스 잠을 떨쳐내고 꿀 같은 식사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모두들 식사를 마친 후 오후엔 다시 일을 하러 흩어졌다. 나와
오피, 동녘과 빈은 다시 짚을 모으러 갔다. 두 번째로 갔을
때는 짚이 다 말라있었는데 먼지가 너무 많이 나서 차라리 젖어 있는 게 일하기 쉽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짚을 긁어 모으며 시간을 보내다 모아둔 짚을 경운기에 싣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양파모종을 심으러 갔다. 양파심기는
마늘심기 보다 더 쉽고 재미있었다. 모종을 뽑을 때만 조심하면 일하는데 별 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양파심기는 해가 질 때 즈음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돌아가기 전
다른 밭의 돌을 골라내는 일을 조금 하다가 마무리를 짓고 내려왔다. 하루 종일의 농사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우리에게 7분간의 샤워시간이 주어졌다. 저녁준비를
하는 사람들과 샤워순서를 기다리며 하루간 있었던 일과 느낌을 나누는 사람들로 콩세알N 집은 북적거렸다. 저녁으로는 삼치와 꽁치를 구워먹었는데 연기 때문에 눈이 더 빨개졌지만 짭짤한 그 맛은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또 약간의 여유를 즐기다 작업장학교 죽돌과 판돌, 그리고
호사와 메데는 마을회관에 모여 회의를 했다. 처음엔 회의 내용이
BND에 관한 거라기에 의아해 했지만 곧 그날 하루를 돌아보는 리뷰로 회의 방향이 전환되었다. 전날과
비슷한 시간에 끝난 회의를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하루 일정은 끝이 났고, 다들 피곤했는지 베개에 머리를
뉘자마자 잠이 들었다. 율면에서의 두 번째 아침은 훨씬 따듯했다. 첫 번째 밤의 추웠던 경험으로 보일러 온도를 더 높여놓아서 더 수월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아침 준비도 더 빨리 마치고 콩세알N 집으로 이동했다. 아침식사를 하고 9시에 노인회장님 댁 마늘 심는 팀과 콩세알N팀 마늘 심는 팀으로 나뉘어져 일을 시작했다. 홍조, 센, 오피, 무브, 동녘과 나는 노인회장님 댁의 마늘 심기를 도와드렸는데, 마늘을 심는
여러 가지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자 우리는 이장님 산장을 치우러 발걸음을
옮겼다. 설거지도 돕고, 점심때 먹을 쌈 재료들은 얻고, 마당을 쓸고, 장작을 옮기는 것을 도우며 바쁘게 움직이다가 센, 망구, 쇼와 나는 점심 준비를 도우려 산장을 내려왔다. 풍성했던 점심 식사를 마친 후 2시부터는 모두들 운동회 준비로 다시
분주해 지기 시작했다. 차를 나누어 타 율면 초등학교로 향했다. 미리
와있던 율면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과 정식으로 인사하기도 전에 남자아이들이 축구경기를 했다. 공 하나 가지고 참 즐겁게도 노는 게 신기했다. 시간이 꽤 흐른
후 모든 사람들이 모이자 무브의 진행으로 율면 운동회가 시작됐다. 일 팀과 이 팀으로 팀을 나누고, 첫 종목인 발 야구의 포지션을 정했는데, 나와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야구에 문외한이어서 게임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래도 나중엔 모두가 함께 즐기고 웃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단체 줄넘기를 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긴 줄을 넘으려니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조금씩 수월해 지긴 했다. 다만 줄넘기를 거의 해보지
못한 호사는 번번히 줄이 발에 걸려 난감해 하다 결국 자신은 빠지겠다며 줄을 나와버렸다. 하지만 이기는
것 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운동회였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들은 계속 호사를 응원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른 뒤, 단체 줄넘기를 마지막으로 아쉽게 운동회의 일정은 끝이 났다. 그 다음 잠시 율면 학생들과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며 놀다가 다시 팀을 나눠 이장님의 산장으로 이동해 다 함께
먹고 즐길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율면 학생들과 이장님 가족, 또
지난 농활 때 뵜던 어른들도 오셔서 따듯한 불을 피고, 한쪽에서는 고구마를, 또 다른 쪽에서는 고기를 구우며 율면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만들었다. 시끌벅적한
식사를 어느 정도 마친 후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우리가 학교에서 가져간 악기들 보다 노래방 기계의
소리가 더 커서 약간 시끄럽게 느껴졌다. 함께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고 즐길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장님께서 사오신 폭죽으로 다 함께 놀다가 나와 몇 명은 먼저 내려가 씻고 잘 준비를 마쳤다. 조금 있으니 남은 사람들이 차례로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각자 시간을 보내다 잠자리에 들었다. 율면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저물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짐을 챙기고 콩세알N의 집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우리가
일을 했던 콩세알N의 밭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 일과 소원종이를 태우는 일을 하러 모두 함께 길을 나섰다. 밭에 도착한 우리는 마늘을 심었던 곳에 일렬로 쭉 늘어선 다음 손을 잡고 눈을 감은 채 밭이 빛으로 가득 차는
상상을 하며 농사가 좋은 결실을 맺기를 소원했다. 그 다음으로는 아무것도 심지 않은 빈 밭으로 내려가
달맞이 축제 때 받은 많은 사람들의 소원종이를 태우기 시작했다. 두 줄로 서서 한 명씩 종이를 태우며
소원종이를 대신 태워주는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차례로 종이를 태웠다. 마침내 율면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각자 지난 3일간 지냈던 곳을 청소하고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학교로 돌아가는 길은, 율면으로
향했던 여정과는 다르게 조용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나른한 잠에 들거나 조용히 앉아 음악을 들으며
버스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 도착한 후 우리는 간단한 일정체크와 마무리 인사를 한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작고 소소한 일상생활에 감사할 수 있었던, 참으로
노곤하고 행복한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나의 두 번째 농활체험 리뷰, 끝. ![]() 당신과 내가 잠시나마 함께일 때의 기억.
여전히 '우리'는 아니지만, 당신과 내가 함께
2010.11.22 03:09:36
음... 씨오진의 일기를 훔쳐본듯한 이 느낌은; 그치만, 작고 소소한 일상생활이라던지, 행복한 여행이라는 마지막 말은 조금 더 설명해주었으면 하네. 콩세알에서 하는 일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게 많은 얘기를 들었잖아. 나도 올려야하는데... 힝 (아직 못 끝냄)
2010.11.23 03:30:25
1.
나는 농촌생활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어서 책에서 읽었던 "농부의 부지런함"이란 것이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농부의 부지런함이란 것이, 나에게는 유일한, 농촌생활에 대한 로망이었다는 점... 그런데 그 농부의 부지런함을 칭송하는 것은 일하지 않는 양반들의 요구였던가, ...아닌가. 부지런하게 땅을 개간하고, 씨앗을 심고, 더 많은 작물을 거두고, 더 많은 부를 쌓고 등등... 어렸을 때는 농활을 무슨 극기훈련처럼 얘기하는 사람들도 봤지만, 실제로 농부들의 "일상의 생활"이란 것은 그렇게 죽기살기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랬을 시절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죽기살기라든가 1차산업의 빈곤함과 상관없이 농촌의 라이프스타일이 보여주는 '게으름' 또한 존재한다. 라오스의 청소년들이 "우리 부모들은 idiots!!"라고, 절대로 닮아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부모 세대는 전쟁과 사회주의와 "최빈국"이란 오명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또한 그렇게까지 극심한 '기아'에 시달려본 적이 없는, 초근목피할망정 주변산간에 먹을 것이 그런대로 존재하는 아열대지역의 농촌사람들이었다는 것. 관광객들이나 NGO활동가들을 보면서, 그리고 또 인터넷으로 접한 "세계". 그 청소년들의 조바심을 부모세대는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았다...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사라져가는 이 즈음 '절박함'은 어떤 형식으로 있을까? 농촌의 인심은 여전히, (콩세알N의 우리 친구들조차도) 풍성하고 느긋하고 따뜻한 점이 있긴 하지만, 농한기에는 walk9 순례 등 여행을 떠나고, 사람들과의 일을 할 시간이 있었다는, 사회적 문제도 절기상으로 일하게 되는 라이프스타일이란 것도 이상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농촌사람들의 그 느긋함과 인심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을 간혹 만나지만 '숲의 화재'가 농한기에만 일어나는 위급은 아니지 않은가... 2. 율면에도 청소년이 있고, 지역마다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들이 있지만, 여전히 율면캠프(캠퍼스)에 대한 상상을 해보라는 요구를 생각해보면서 모임만 했다하면 술마시고, 담배피고, 그냥 그런 문화말고는 다른 즐거움을 찾기가 어려운, (서울 아닌) '지역'에서 작업장학교캠프를 마련한다면 작업장학교의 약속들(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을 어떻게 지키자 제안할 수 있을까. 원주민들의 우정과 환대 이전에, 이방인들의 '눈치보기', '끼어들어가 살아보기' 이런 일들을 재밌고 즐겁게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콩세알N의 젊은이들이 대단하다 생각한다. 간혹 나는 이 쉬지않고 '눈치보기'를 해야하는 삶의 형식이 거추장스럽고 피곤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때가 생겼거든. (내공의 몰락). 암튼 율면청소년들이 하자젊은이들과 hps학생들 사이에서 다른 꿈을 꾸면 좋지만, 흔들리고 부추겨지고 들쑤셔지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전히 귀농한 또래(나의 또래나 선배)그룹에게는 "허공에의 질주"를 꼭 보라고 말해주고 싶고... 지역 스스로 주인이 되지 않은 채로 지역캠프는 여전히 난제 중 난제라고 생각한다. 3. 양파, 마늘...은 아직도 걱정인데. 잘 자라길 바라며...
2010.11.23 03:44:09
"술 안 마시기" 약속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 예전에 아침모임 시간에 율리아가 술을 마셨다는 얘기에 대부분이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술 얘기는 암묵적으로 금지단어가 돼버렸고 처음 율면에 갔을 때도 막걸리를 마셨던 여러 사람이 이번에는 눈치 보며 술을 마시지 않았지.(마시고 싶다는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가끔 작업장학교에서는 왜 술을 마시지 않냐는 질문도 받는데, 설명 한다고는 하는데 사실 내 설명이 히옥스가 말하는 '약속'에 미치지 못하는 설명이라. 술 얘기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율면에 가서 율면중고 학생들이 바로 옆에서 술을 마시는데도 결과적으로 우리는 아무도 마시지 않았는데 마시고 싶은데 마시지 않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마시지 않은 것인지, 마실 수 없던 것인지 짚고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2010.11.23 05:37:17
율면에 가서 대표적으로 한 일들을 세 가지 뽑아보자면 놀기, 일하기, 먹기다. 율면에 가면서 미리 계획되었던 것도 이 세 가지. 운동회를 계획하고, 식단표를 짰고, 일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놀기 율면 운동회를 하려고 학교에 도착하니 율면중고남학생들이 먼저 축구를 하고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몇은 바로 뛰어들어 함께했다. 공 하나가지고 이렇게 재미있게 논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수, 효과음이 모두를 웃기게 했다. 발야구나 줄넘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Mette가 알려준 줄넘기는 한 네 번 시도해봤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어려운 것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보기도 했다. 운동을 할 때 율면중고의 학생들이 끼리끼리 단결을 하는 바람에 약간 애먹은 것도 있었지만 모두 체력을 소진하고 쉴 때는 뭔가가 평화로운 느낌이 들었다. 평화라는 단어를 쓴 이상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면 인간이 체력을 쓰고나면 쉰다는 게 너무도 당연한 것, 인간다운 것을 했던 것이라서 좀 기뻤다고나 할까. 어쩌면 평화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처음 떠오른 단어가 평화여서 잠깐 써 본 것이다. 일하기 콩세알n의 밭도 있지만 이웃의 밭일도 도와주었다. 남의 밭까지 가서 일을 해준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엔 달랐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서울과는 달리 앞집, 뒷집에 누가 사는지도 다 알고 서로 도와주면서 의존하면서 살아가니까 말이다. 어른을 보면 인사도 하고 밤에는 조용히 해야 하는 콩세알의 당부가 시골에선 당연히 해야하는 것들이라고 느껴졌다. 나쁘지 않았다. 먹기
2010.11.23 06:21:04
시골에선 당연히 해야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참 훌륭하다, 오피.
그래도 나는 성미산아이들의 하소연 - 공동육아시절부터 내내 그 '동네'에 있었던 아이들이, 일거수일투족 동네어른들의 관심밖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어른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 "진심으로 싫고 싫고 또 싫다"던 얘기에 어- 그랬겠구나, 힘들었겠구나 그런 생각. (내 친구도 반포에서 중학교때부터 최근까지 그 동네 살면서 비슷한 경험... 반포도 아파트단지이긴 해도 이사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거든) 게다가 12년제학교라니 더 힘들겠구나 생각했었어. 그러면서 아이들은 어른들 눈치보고, 어른들 말씀 잘 들어야 하는데, 어른들은 왜 아이들 눈치 안보고, 아이들 배려해주지 않나 그런 생각 많았지. 그러니까 아이들은 곧 그 동네 떠나고 싶어 안달이고, 또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그렇더라는 것. 그래도 성미산은 언젠가 아이들이 돌아오겠지? 율면아이들은 어떨까? 그리고 말이지, 율면의 된장국은 정말 최고였어! 콩세알N의 근대며 아욱이며 그렇게 풍성한 대접, 너무 좋았다.
2010.11.26 10:12:31
이름은 미처물어보지 못 했지만(토요일에 오면 물어봐야지)
우리가 봤던 율면아이들의 대다수가 이천 토박이들이라고.. 유치원 때부터 친구들이였답니다. 공연팀쇼하자가 끝난 날 돌아가는 길이 같은 방향이라 함께 집에가면서 이천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어요. 듣자하니 율면의 또래 청소년들이 농촌라이프에 반감을 느끼진 않는 듯 하나 부족한 놀이 문화에서 진저리를 느끼는 것. 놀것도, 놀 수 있는 곳도 없는 시골이라고 하는 입장.. 다 같이 모여 놀 수 있는 장소라고 해봐야 밤 율면에 딱 하나 있는 노래방? 그 정도인 듯. 하지만 너무 늦은 밤에 열고, 어른들이 술에 취해 오는 곳 등 놀기에 적합하지는 않으나 그곳이 아니면 별달리 놀러 갈 곳이 없더라는.
2010.11.25 09:31:14
여러 생각과 질문만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기만 해서 어찌 담아야 할지....고민하다가. 짧기도 하고 성의도 없어보이네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다. 첫 번째는,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흙을 보며 감탄하는 우리들은 어떤 모습일까? 라는 건데, 젊어서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신 이장님을 보면서, 돌아갈 고향이라는 것과 일굴 땅이 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삶과 먹고 사는 일이 동떨어지지 않게 살고 싶은데 무엇을 어떤 것으로 부터 고민해야하는지? 콩세알N팀이 얘기하는 우리들에게는 만들어야할 (미래의 고향)마을부터 일까? 과연 내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고 이곳은 더 이상 살 수 없는 (없게 만드는)곳이기 때문에 문제점을 돌파 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의 거처로 마을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 그렇다면 나에게 이상과 같은 마을이라는 것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존재하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었는가? 콩세알N의 몇몇의 청년들이 각자 자신의 삶을 고민하며 마을로 들어와 농사를 지으며 살기로 결정했고, 마을에서 정말 낯선 서울청년들로 들어와 약간의 노동력과 활력을 보충해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을 속으로 들어가는 것 주변사람들과 타협도 해가면서 말이다. 자신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결정, 그리고 몸으로 실천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인것 같은데, 나는 어디서 시작 할 수 있을까? 나는 물론이고 율면 청소년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길까? 자기는 선택하지 않았다고, 그들에게는 풍요롭고 인정 넘치는 우리 동네가 아니라, 지긋 지긋한, 벗어나고픈 곳이었으면?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 할 수 없지만 그 이전에 내가 어떤 입장과 위치로 율면의 마을과 사람들을 보고 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질문들과 답을 그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2010.11.25 09:41:27
11월 14일 율면에서 돌아오는 날에 쓴 시인데, 별 건 아니고... 콩밭에서 허리를 숙여 바스락, 마른 콩 대를 움켜쥔다. 무딘 낫이 닿기도 전에 토도독 꺾인다. 올 해 콩은 다 여물지 못했다. 토독 토독 콩 대가 꺾이면서 할아버지 허리도 같이 꺾인다.
2010.11.25 19:49:10
1. 평소 깨어있는 시간이 많은 나는 하루 세끼를 먹어도 배고픈 일이 많아서 카페 그래서나 편의점에서 무언가 사먹을 때가 꽤 있다. 평소먹는 밥이라고는 아침은 패스, 혹은 영등포구청역 토스트나 던킨 도너츠 치즈인베이글이고 점심은 하모니식당 급식이며 저녁은 매식이다. 내가 아침을 밀가루빵 종류로 사먹는 것을 봐서 그게 딱히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고, 점심에도 하모니식당의 급식은 조미료를 쓰지는 않지만 가끔보면 메뉴에 있는 치킨너겟 같은 것은 괜찮은 것 같다가도 탁 걸리는 부분이고 매식은 사실 음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조미료가 들었는지 무슨 재료를 썼는지 통. 그런 점에서 우리가 공동의 식탁이라고 해서 토요일날 점심을 재료사다가 만들어먹기 시작하면서 매식에 대한 고민도 시작하자고 했지만 어쩌다보니 직접 만들어먹은 횟수도 많지는 않게 되었다. 그래서 의식주에서 '의'와 '주'는 그럭저럭 해결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식'만큼은 대단히 문제의식을 느끼면서도 무뎌지지 않으면 당장 뭘 먹어야 좋을지 모르겠으니 가끔은 그냥 어쩔 수 없이 생각 안하려 애쓰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율면에 가서 직접해본 것들 중에 중요했다고 생각한 것은 식사를 직접 챙긴 것이었다. 연관이 있는줄은 확신할 수 없지만 율면에 있는동안 인스턴트 식품을 거의 먹지 않은 나는 피부가 더 나빠지지 않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도시에서 지금처럼 생활하면서, (시장의 한 가운데에서) 매식을 피하기는 불가피하고 '되도록이면 로컬푸드'하기도 쉽지는 않은 것이란 걸 안다. 꼭 먹는 것의 문제가 아니어도, 소비로 내 생활을 아슬아슬하게 지탱하는 느낌이 든다면 난 이 느낌이 좋지는 않다.그냥 기우인걸까? 나는 내 삶의 어떻게 책임을 지며 살아갈 수 있을까? 식에 관한 것에서는 혼자 자급자족하기가 힘들다면 가령 콩세알같은 그룹에도 참여해서 여러 명이 상부상조를 도모할 수 있지는 않을까-생각된다. 하지만 사실 내가 더 걱정인 것은 불규칙하고 불안정한 내 도시 생활의 자율성에 대해서 어땠는지를 먼저 생각해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 환경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고, 최대한 내가 이 찌든 생활의 느낌을 벗고 이 안에서 안정감있게 살면서 나름대로 내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려면 나는 스스로 몸을 챙기는 것(책임)부터 연습해야겠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겠는데 나는 스스로도 집에 있는 것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마치 길 위에서 지내는 사람인냥 생각하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
2010.11.28 21:49:03
평화 워크숍이 끝난 5:00경 우리는 25인승 버스를 타고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율면 콩 세알로 향했다. 저번 서밋을 마무리 하고 홍콩에서 온 친구들과 처음으로 율면 콩 세알에 방문했고 그 뒤로 두 번째 방문이었다. 이번 목적은 서밋 때와 다르게 농활과 농촌/콩 세알 탐방 그리고 운동회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날씨는 우중충 했고 비도 추적추적하게 내리고 있었고 날씨도 꽤나 추웠다. 벌써 겨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날씨였다. 하지만 기분만은 좋았던 것 같다. 집에 간다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보다는 행선지 없이 여행을 간 것처럼 들떠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9:00가 다 되어 도착한 후에야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도착 했을 때는 역시 시골답게 적막함과 어둠이 마을 전체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잠이 참 잘 올 것 같았다. 마을 회관으로 들어가 다음날 있을 이정에 대해서 듣고 buy nothing day에 대한 간략한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흩어졌다.숙소로 돌아온 뒤 씻기 전에 율면에 오기 전에 했던 평화 이야기들이 많이 생각났다. 공동체 부족 마을. 뭔가 이어질 것 같으면서 알 수 없는 듯한 기분이 영 찝찝했다. 부족은 어떠한 하나의 일념이나 관습으로 이루어져 있는 다수가 하나가 되는 마을을 의미한다. 여기서도 마을이란 단어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어찌 보면 공동체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을이란 단어는 또 다른 의미들을 품고 있는 것 같다. 부족이나 공동체처럼 어떤 일념을 가지고 사는 하나가 되어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이런 일념을 갖고 모인 이들과 또 다른 이들이 함께 살 수 있는 터전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어찌 보면 지금 하자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마을이야기도 여러 가지 사회적 기업과 다양한 커리큘럼과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학교들이 모여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어떤 다른 가능성(이렇게 말해도 되는 건지)을 반대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스토리를 품고 있는 율면이라는 마을에 있으면서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율면에서의 아침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매우 추울 것을 예상하고 두툼한 옷들을 챙겼지만 내 예상은 틀렸다. 아침엔 약간의 비가 오긴 했지만 차츰 개이더니 나중엔 멋진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아침으로 뜨끈한 된장국을 든든하게 먹고 일 배정을 받고 흩어졌다. 오전일은 마늘밭을 만들고 심는 일을 하였다. 농사경험을 가장 많이 했던 단양에서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보고 배웠던 방식을 되살리면서 한편으론 재미있고 즐겁게 했던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오전에 있었던 마늘심기는 즐겁게 했다. 오후일정은 뜻밖에 콩꺽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나와 홍조 그리고 무브는 마을 어르신의 일손을 거들어 드렸다. 메모는 아니었고, 더 이어서 쓸게요...
2010.11.30 10:49:45
농촌에 다녀오고 나서 '식품'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할머니의 시장=할인마트에서 파는 식품들이 아무리 냉동보관이 잘 된다 한들 이게 정말 신선한 것인지는 늘 의심된다. 좋은 것만 먹이고 싶은 할머니의 심정도 잘 알겠지만 우리집 주변에는 유기농 식품 판매점도 없고, 있어도 비싸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멀리하게 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대량생산이 일반화 되면서 농약 없이 길러낸 농작물들은 뛰어난 품질로 칭해지게 되었고, 적게 나오는 것이니 만큼 비싸게 팔린다. 농약은 왜 치게 되었을까? 아마도 벌레가 먹지 못 하게 만드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유통의 입장에서 보자면 보다 더 깨끗하고 정갈하게 생긴 식품이 보기도 좋으니 말이다. 얼마 전에 김장을 담글 배추를 사러갔었는데 벌레 먹은 배춧잎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벌레가 조금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 키우는 약 10평짜리 유기농 논밭에서는 벌레가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조금이라면. 하지만 사람이 뽑아먹는건 맘이 편하진 않다. 우리 논밭은 대문 밖에 있는데, 도로의 바로 옆이다.(유기농으로 키운다 한들 도시의 매연을 먹고 자라는 것이 미안하긴 하지만..) 얼마전에 누가 큼지막하게 자란 배추를 뽑아갔다. 사실 배추 말고도 고구마, 옥수수, 갓, 파 등 여러가지 심어 놓은 것을 모르는 사이에 뺏긴 적이 있다. 언젠가는 내가 현장에서 목격하면 '지금 뭐 하시는 거냐고요'식의 윽박을 지를 지르리!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할머니의 꿈을 생각하면 그렇게는 못 하겠다. 할머니의 옛 마을은 정든 이웃들이 많아서 나눌 것이 생기면 옹기종기 모여서 함께 먹는 것이 당연했다고 한다.(그래서인지 정수기 아주머니든, 보일러 아저씨든 대접과 환대를 아끼지 않는건가?) 하지만 정말로 도시에서 맘 놓고 키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율면으로 돌아가자. 콩세알은 마을사람들도 다 아는 청년집단이다. 마을을 대학삼고 주민분들을 교수삼아 배우려는 그런 청년들이 어른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하루는 콩을 베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일정에 없던 다른 분 밭의 콩을 베는 일을 맡게 되었다. 어르신의 만류에도 지지 않고 끝내 돕겠다는 콩세알 청년의 강력한 의지가 끝내 일을 벌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기꺼이 하게 되는 계기는 어디서오는가'인데, 농촌에서는 이러한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직종의 공감? 이웃의 연대성? 기꺼이 했던 경험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어도 사실 뭐라 표현하기 애매한 기분이다. 곧 들이닥칠 추위에 더 이상 하지 못 할 올해의 마지막 추수 도우기, 운동회, 다른 이벤트를 위한 회의, 소원종이 태우기까지 겸사겸사 매우 알찬 일정이었다. 특히 토요일의 일정이 좋았는데, 그 이유는 이유는 오전에는 일 하기, 오후에는 놀기, 밤에는 회의하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하고 싶은일 하면서 해야 할 일 하기가 얼마나 잘 이루어졌나 하는 생각도 드는 들면서 그 중에서도 잘 노는 것이 제일 안 되었는 듯 하다. 별로 한 것 없는 운동회였지만 하자의 운동장이 없어져 333마루에서 춤을 추는 것으로 계절마다 대리만족해야 했던 지난 아쉬움을 달래는 정도로는 괜찮았다. 몇 일 안되는 부지런한 생활에 몸이 성치 않음을 다시금 깨닫았다. '이래서야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과 함께 농촌에서 보낸 3년의 중학교 시절이 스쳐갔다. 그땐 건강했지 하면서.. 도시에서 건강하게 잘 살기, 간단히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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