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 실천문학사 일을 보던 소설가 김영현이 본 고정희의 마지막 모습은 종로에서 있었던 국민대회 대 거리에 가득한 최루탄 속에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었다.

- 고정희는 놀랄만한 다산성 시인이면서도 결코 어느 하나 함부로 창작해 내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오직 ‘시를 쓰기 위해서 살았던’것 같은 그에게 시는 존재의 결과이자 이유였고 구원이었다.

- 시와 삶이 거의 일치한 보기 드문 시인이었다.

- 그의 시는 사유나 관념을 통해서 창작된 것이 아니고 현실 생활을 통해서 창작되었고 그래서 늘 살아 움직여 역동성과 다양성을 지녔던 것이다.

- 춥고 어두운 겨울의 무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희망과 용기를 간직하는 것만이 오직 어둠을 이기는 비경이라고 생각했다.

- 한국적 전통의 계승과 남도 가락의 재현을 시인으로서 부여받은 최대의 과제로 인식했다.

- 우리의 전통적 가랑을 오늘에 새롭게 접복시키려 한 관심사의 결과였다.

- 부당한 역사에 대한 회개에서 치유와 화해에 이르는 씻김굿을 그 주요한 창작의 근간으로 삼고 있으며

- 5월의 광주를 절규하거나 새기는 많은 시인들이 있었지만 그 상처와 한을 역사 속에서 이름도 없이 희생당하고 숨져간 민중여성과 관련시킨 예는 없었기 때문이다.

- 8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그의 시에서 처연한 슬픔과 절망, 고독이 점차 짙어지고 ‘불기둥’으로 서기 보다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 바다’에 침잠함을 볼 수 있었다.

- 그에게 광주는 마음의 고향이었고 그래서 광주의 고통은 뼈저리게 다가왔다.

- 송현호 교수는 고정희의 시가 서정시 중심의 우리 시단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여 우리 시의 폭을 넓혔다고 그 의의를 평가하였는데 이는 고정희에게 지리산과 고향인 해남, 어머니가 늘 자리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진다.

- 고향의 주인이신 어머니는 고정희에게 있어서 영원한 안식처이자 우주의 자궁이며 해방사화의 이상적인 인간형이기도 하다.

-그의 시에서 어머니는 눌림받은 여성의 대명사이며 잘못된 역사의 고발자요. 증언의 기록이며 동시에 치유와 화해의 미래이다.

< 시 >

지리산의 봄1

- 뱀사골에서 쓴 편지

                                                    고정희

 남원에서 섬진강 허리를 지나며
갈대밭에 엎드린 남서풍 너머로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 한 자락이 따라와
나의 갈비뼈 사이에 흐르는
축축한 외로움을 들추고
산목련 한 송이 터뜨려놓습니다.
온몸을 싸고도는 이 서늘한 향기,
뱀사골 산정에 푸르게 걸린 뒤
오월의 찬란한 햇빛이
슬픈 깃털을 일으켜세우며
신록 사이로 길게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아득한 능선에 서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레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앞서가는 그대 따라 협곡을 오르면
삼십 년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이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내리고
육천 매듭 풀려나간 모세혈관에서
철철 샘물이 흐르고
더웁게 달궈진 살과 뼈사이
확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 소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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