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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숲 속의 蒔인
학교 만들기 숲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 살고 있던 많은 동물들은 서로 앞 다투어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크리킨디라는 작은 벌새 한 마리가 그 작은 입으로 물을 떠다가 열심히 불을 끄고 있었습니다. 도망가던 동물들은 벌새를 보고 ‘이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 라며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크리킨디가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이 우화는 시즌2 시작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었던 안덱스 산맥의 크리킨디 이야기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선택했던 이유는 도망가고 있는 동물들이 아닌, 작은 입으로 열심히 물을 나르고 있는 벌새처럼 이 사회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더불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도 찾고 서로 도모하는 이 벌새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학교를 만들었다. 시즌 1이 끝나고 우리는 각자의 詩를 선택해 맘에 품고 그 의미에 맞게 살아가자는 이야기와 함께 더 넓은 밭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중에 8명의 죽돌 들은 자신이 품은 詩를 새로운 학교에서 풀어나가기로 했고 9월 달에 개교를 목표로 학교 만들기 팀을 만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학교는 안덱스 산맥의 우화로 전해져오는 크리킨디의 이야기로서 시작되고, 그 이야기의 뒷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학교가 될 것을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냉담 하는 것이 아닌 기댈 수 있고 의존할 수 있는 하지만, 각자가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시즌 1에서 우리들은 각자의 매체를 가지고 앞으로 뭘 하면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을 해왔다. 1%가 되고 싶어서 안달인 이 승자독식 사회 안에서, 시대, 유행에 맞게 소비하지 않으면 같이 지낼 수 없는 소비주의 사회 안에서, 그리고 많은 탄소배출로 기후변화가 급격하게 빨라진 이 기후변화 시대 안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시즌 1을 마치는 에세이를 쓰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하는 나에게 히옥스가 제안을 하셨다. 앞으로 우리의 두 번째 이야기가 될 크리킨디 이야기와 네가 생각하고 있는 농부 뮤지션을 두 번째 학교에서 함께 이야기 하고 풀어나가면 어떻겠냐고, 우리와 같은 꿈을 꾸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자는 감동적인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함께 할 사람들 중에 내 케이스와 같이 농사와 공동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더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농부의 삶을 꿈꾸고 있었던 내가 학교 만들기를 안에서 어떻게 병행해야 할지 잘 몰랐던 것이다. 학교 만들기 안에서 농부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가지고 있는 꿈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학교의 모토를 생각하면서 책임감을 갖고 해보면서 배우겠다는 생각과 함께 하겠다고 했다. 3월이 되고 이츠데모 다레카가를 부르면서 헤어져도 잊지 않고, 나중에 꼭 만나자는 약속의 노래를 부르며 시즌 1을 마친 뒤 4월을 시작으로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고 싶다.’ ‘이런 모습 일 것이다.’ 가 아닌 자신의 성장된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업그레이드 된 나를 상상해야 하며, 그 안에서 학교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사실 당시 나에겐 농부로서의 미래의 모습은 내 터 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으로 한정되어 상상할 수밖에 없었고 도시에서의 농부는 어떤 모습일지, 내가 농촌에 들어가면서 공동체에 들어갔던 것처럼 외부와의 소통을 끊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것인지. 그럴 것은 아니고 들어가서 한번 해봐야 나도 알겠다는 심정이었고 이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정읍이든 임실이든 내려가서 해봐야 알 것 같다는 것이 그때당시 내 생각이었다. 이 도시 안에서 어떻게 농부로서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 나에겐 너무 큰 질문이었고 고민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의 70%이상이 사실은 이런 문제들이었다. 너무나 막막하고 학교 만들이 이야기 안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몰랐기 때문이다. 너무나 막연하게 먼 꿈만 바라보면서 현재를 어떻게 할 지 고민했던 것 같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미래를 추측만 가지고 너무 불안해하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상상해 보는 것은 중요하지만, 너무 그 상상에만 빠져있다면 곤란하다. 성경에도 나오 듯. 공자님도 말씀 하셨듯이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일이건 쉽게 쉽게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성장은 문제/갈등과 함께 병행된다. 잔잔한 호수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유유히 호수 위를 떠도는 백조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겉보기에는 매끄럽고 아름답지만 물속에서는 엄청난 발길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처럼 4월 달부터 시작한 학교 만들기의 길도 문제와 갈등 속에서 만들어 졌다. 이제는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맞으며 씨를 뿌리는 시기가 아닌 뜨거운 햇빛의 열기처럼 자신의 열정을 자신을 위해 혹은 타인을 위해 불태우는 시기 20대에 접어들면서 사회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었고 우리 또한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문제와 더불어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함께 하지 못하고 그만 둔 죽돌도 있다. 우리가 한 팀을 생각하고 어디서든 모였을 때 어떤 일이든 한다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팀을 이야기 했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이런 개인의 슬픔 속에서 자신도 구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세계를 구해. 라는 좌절감도 맛보았다. 1. 의미 있는 학교 시즌 1을 마치면서 나는 모종낼 蒔를 선택했다. 나는 이제는 더 넓은 밭으로 나가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그리고 하나의 모판을 키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의미를 품고 있었다. 학교 만들기를 하면서 크리킨디 이야기와 너구리 마을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蒔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꼭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라도, 우리와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과연 이 학교를 만들면서 나에게, 혹은 함께 만들었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정말 우리가 만든 이 학교가 모두에게 의미 있는 학교였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라는 말과 작년 festeza의 슬픔을 넘는 축제의 의미를 담고 ‘음악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작은 용산현장 이라고 불리는 두리반에서 51+자립 음악가 파티를 했다. 사실 우리는 이 안에서 하나의 band로서 공연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팀들이 참여했고 스텝으로 함께 해달라는 요청에 그 안에서 우리는 스텝으로서 함께 참여했다. 그리고 제3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식량난 이전에 우리와 함께 이어져 있는 한 민족이었던, 같은 조선의 혈통이라고 이야기 하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식량, 의료, 교육 시설을 지원해 주는 어깨동무 단체에서 했던 후원의 밤.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평화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활동 하고 있는 walk9의 사람들과 함께 준비했던 평화음악회.(나름 의미는 좋았던.) 이런 크고 작은 일들을 되돌아 봤을 때 내가 함께 참여 할 수 있었던 것은 ‘감동’ 이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이 그렇게 거창하거나 스펙터클한 일들은 아니다. (하지만 더 크고 멋진 일들을 꿈꾸고 있다.) 생각해 보면 어떤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느낄 수 도 있을 것이다. 자서전이나 유명한 소설에서 감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당연한 이야기에 감동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처럼. 그리고 반면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일에 긍정적이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느꼈던 감동도 사실은 이와 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단순히 우리가 했던 일들은 감동에서 멈추지 않았다. 단순히 감동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감동으로서 힘을 낼 수 있고 나에게 의미가 생기며 동기를 가지고 우리는 움직였다. 나는 무브먼트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단순한 감동이나 느낌은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이야기 하는 크리킨디의 이야기 또한 같은 이야기 같다. 크리킨디의 행동을 보고 감동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저 감동에서 멈춘다면 그 숲은 불타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봤을 때 너무 의욕만 충만하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도 없다면 분명 나중에는 허탈해 할 것이고, 그 일을 그만 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만 두기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다. 크리킨디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그래서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의미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우리가 했던 정말 많은 일들을 모두 의미 있게 하기에는 개인적으로 못했던 부분이 크긴 하지만 시간도 부족했고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앞서 말한 active들이 단순히 active로서 끝나면 안 된다는 생각은 매번 하게 되는 것 같다. 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의미와 해보고 나서의 깨달음은 대해서 생각해 봐야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많은 활동들은 우리에게만 의미 있는 학교가 아닌 우리와 함께 했던 사람들과 우리를 보고 느낀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일들을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생각 다른 모습을 상상하며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2 .evaluation of making school team. 사실 나는 우리가 시작한 ‘학교 만들기’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현재도 우리가 만든 학교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초기에 우리에게만 의미 있는 학교가 아닌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었고 나눠야, 하는 그런 학교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내가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이 학교가 나에게 어떤 학교였는지다. 솔직히 학교를 만드는 것은, 그리고 어떤 일을 할 때에 먼저 하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에게 어떤 의미도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은 그저 시켰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안에서 그냥이란 말은 나올 수 없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에게 원동력과 의미를 주는 것은 감동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작년까지 나는 공동체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 해왔고 공동체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깊이 내려가 봤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공동이란 단어에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with 라는 단어가 좋다. 어떤 일이나 상황이 혼자를 원하게 할 때도 있지만 내가 서울에 나온 이유도 함께 하는 것이 좋았고,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때는 혼자 살기 싫었고, 앞으로도 혼자이긴 싫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살짝 다르다. 혼자서 있고 싶을 때도 생겼고 개인, 그리고 나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지금은 간간히 졸업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내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졸업할지 그 시기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사실 그때마다 어떤 모습으로? 라는 질문도 하게 되고 그 시가가 과연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의 배움 들을 놔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그리고 이런 공익사업, 의미 있는 일, 재미있는 일들을 지속하고 싶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했던 일들을 우리가 주최가 돼서는 못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는 거의 만들어진 판에서 놀았던 것 같고, 생각해 보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도 힘들어서 급급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만들어진 판에서 노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이야기, 그리고 일당 100이 되는 사람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은 약간 두렵다. 내가 정말 서로에게 있고 나에게도 의미 있는 판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아직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두 번째로 평가해 보게 되는 것은 팀으로서 어땠는지에 대한 평가다. 우리가 학교를 만들면서 어디서든 모이면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팀이 되자는 이야기를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나도 우리가 그런 사람들, 혹은 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넘어지는 횟수가 많았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 2끼를 함께 먹는다고 해서 상대방에 대해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하루 12시간을 같이 보낸다고 해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지금까지 거의 2년이란 시간을 보내왔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믿고 그 안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한다고 했을 때 어디까지 자신의 문제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도 관계에 있어서는 나에게 화두였다. 학교 만들기 초기에 학교생활도 관계에서도 너무 낯설고 힘들었던 나에게는 관계의 갭들이 너무 컸었기에 나에겐 중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문제로서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했던 방법은 통하는 것을 찾는 것이었다. (나중에 히옥스께서 따로 말씀해 주시긴 했지만) 우리는 안테나라고 표현했는데, 안테나는 송신과 수신에 반응한다. 얼마만큼 자신의 안테나의 범위를 개방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타인의 안테나에 ( )를 두고 있는지. 하지만 서로의 안테나를 돌아보는 것, 그 안에서 통하는 것을 찾는 것 또한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 안테나를 개방하는 것조차 힘들었으니까. 어떨 때는 이런 힘든 상황 속을 기피하고 싶다는 생각에 내 관심 속에만 머물렀던 적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노력중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했지만 이 안에는 흥미, 관심의 이야기도 들어가고 자기 매체와 다른 매체와의 경계지점도 보게 됐다. 내 매체와는 다른 매체를 다룬 다는 것이 단순히 흥미와 관심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사실 지금도 내 매체를 뛰어 넘고, 또 다른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이 힘들다.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 안에는 작업장학교에서 말하는 3가지의 매체가 동시에 표현된다. 음악/공연, 영상과, 디자인. 그리고 각기 다른 방법과 전개를 통해 그 주제에 맞는 작품 혹은 모습들이 들어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3가지가 다르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통합되고 3가지로 설명되어야 한다. 이 안에서 나는 많은 힘겨움을 느꼈다. 우리가 만드는 일들 속에서 어떻게 다른 매체에 대해서 코멘트를 해줘야 할지 몰랐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몰랐다. 사실 그래서 이런 갭들을 줄이기 위해서 3가지의 매체 공부를 모두 했다. 하지만 그래도 잘 안 되는 부분들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안 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코멘트 하고, 그 것에 좀 더 귀 기울이고, 참여하는 부분에서. 내 것 만큼. 그래서 일단은 참여하고 노력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는 것이 결론이다. 좀 더 해보고 그 안에서 배우면서 찾아보고. 최소한 그 안에서 또 다른 이야기들 안에서 이야기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과연 내가, 우리가, 불타는 숲속의 詩인들로서 숲속에 난 불을 잘 끄고 있는 것임과 동시에 우리 자신도 잘 지키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 학교가 시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시인으로서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는 학교일까? 3 .변화의 99%는 노력이다. 학교 만들기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어려웠던 표현과 표출이었다. 길찾기 과정에서는 이것을 자신감이라고 이야기 했다. 나는 공연하는데 좀 더 자신 있게 하고 싶고, 사람들 앞에서 좀 더 자신 있게 잘 말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주니어를 마무리 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젠 자신감 있게 표현할 수 있고 남들에게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주니어를 수료하고 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지냈던 것일까? 사실 학교 만들기 과정이 나에게는 소태를 씹는 것처럼 쓰고 고통스러웠다. 사람들하고의 관계부터 학교를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이 자체가 너무 괴로웠다. (사실 생각해 보면 기본이란 생각을 한다.) 심지어 한동안 아무 말도 안하고 지낸 적도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주니어를 수료하면서 배웠다고 했던 자신감, 그리고 성장하고 싶다고 했던 그때의 그 변화는 그저 그때의 내가 배웠다고 생각하고 싶어서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과연 나를 보여준다는 것이 무엇일까? 주니어 과정동안 나는 내 밑바닥을 봤다고 생각했다. 떨어지는 나를 보면서 어떻게 올라갈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내 밑을 보게 됐던 것은 이번 4월 달 부터였다. 모두가 함께 모여 글로비시를 배우고 어떤 학교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이해한 바를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괴로웠다. 내가 못한다고 생각하고 못하고 있는 것들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싫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고 (모두 알고 있었겠지만.) 내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사람은 절실해지고 급박해 지지 않으면 쉽게 나태해지고 사실 생각해 보면 나는 답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각자가 책임감은 갖고 생활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과 같이. 내가 변화하고자 한다면 원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원하는 것은 그냥 오지 않는 것 같다.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 지지 않는다. 정말 원한다면 최소한 움직이기라도 해야 한다. 현재의 내 모습은 그저 딱딱하고 각진 사각형이나 삼각형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굴러야 한다면 구르고 깎여야 한다면 깎아내면서 좀 더 내 모습을 둥글게 만들고 싶다. 세계를 구하는 시인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한 사람인 만큼 둥근 원처럼 주도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하게 세계를 향해서 굴러가고 싶다. 평화 워크숍 이번 학기동안 내 머릿속에서 활발하게 움직였던 키워드 중에는 평화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사실 내 케이스 경우엔 지금까지 평화란 단어, 평화적인 상황들 그리고 그것들과 대립되는 상황들에 대해서는 참 많이 듣고 경험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많은 상황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번 평화 워크숍을 하면서 힘들어 했던 죽돌중 한 사람인 것 같다. 평화 워크숍 안에서 내 머리를 뒤 흔들었던 것은 그렇다면 평화롭지 못한 상황이 없다면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사실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도 문제가 없다면 그것이 평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그렇다면 그 평화롭지 못한 상황은 무엇이며, 어떤 방법을 통해서 평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와 같은 질문들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다. 어디서든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평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진행되어온 많은 일들은 절대로 평화라고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많았다. 2001년(확인좀) 미국 쌍둥이 빌딩 테러부터 비롯되어 평화라는 이름으로 이라크에 전쟁을 선포한 미국. 이러한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건들을 봤을 때 우리가 정말 평화라는 단어를 이런 상황들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생각해 객관적으로 봤을 때 미국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이런 사건을 사건이 아닌 평화적이라고 말 할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했다. 철저히 객관적인 시선에서. 머릿속에서 이런 알 수 없는 일들,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두 가지 상황들이 내 머릿속에 너무 많이 겹쳤다. 도저히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한 가지 상황에서 머물기에는, 한 가지 상황 속에서 평화라는 이야기를 하기에는 다른 상황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평화 워크숍을 하면서 이런 문제를 보기 위해선 개개인의 문제를 따기지 전에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이번 평화 워크숍에선 더 큰 문제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머물렀던 것 같고, 계속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전까지 내가 갖고 있었던 평화는 나부터 출발했다. 내가 먼저 평화로워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나를 이루는 다른 사람, 혹은 동물 자연까지도 평화로워 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사실 이 생각의 전개는 아직 남아있다. 평화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평화는 절대로 한 사람의 생각, 기억, 추억으로 이야기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큰 힘으로 작용될 때는 더욱이. 사실 평화의 상을 생각하고 그것에 향해 움직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방적인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같은 상황은 다른 이야기들을 철저히 무시되고 진행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화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로 정의 될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이번 서밋기간에 진행되었던 마시키 선생님의 평화 이야기에서도, 부르노와 함께한 평화 워크숍에서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더 많은 사람과의 나눔이었다. 하자 안에서도 모두가 평화의 상이 다르고 방법 또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것이 생각난다. 처음의 생각은 내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을 필요로 했지만 지금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평화에 대한 이야기에서 멈추고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이야기 하면서 내 이야기를 더 넓게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다. 지금 사회는 너무 많은 것을 변화 시킨 것이 문제지만 한편으론 다른 변화에 두려움을 갖고 배제 시키는 것 또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꿈꾸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 꿈은 현실화 된다고 말씀하신 마사키 선생님과 함께한 평화 포럼에서는 어떤 액션이 중요한가 보다는 나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줬던 것 같다. 사실 평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더 큰 힘을 봐야 하고 어떻게 평화로운 상태를 만들고 함께 일하자 라고 말할 때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행동은 해야 하는데 라는 막막함만 품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나는 어떤 액션을 취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어떤 꿈을 꾸는 사람이 될 것이다. 라고 정하기 전에 내 바운더리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우선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평화는 가까이, 가깝게 생각할 수도 크고 멀리 볼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지점을 정하는 것, 그리고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정하는 것이 내 몫 인 것 같다. 큰일이 아니어도. 그러기에 때문에 너무 큰 것부터 생각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평화가 내가 꾸는 꿈속에서 함께 커져 갈 수 있도록. 타이헨 워크숍 타이헨 극단은 제일교포 이신 김만리 선생님으로부터 창설 되었다. 중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이 극단은 장애에 대한 추함을 추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추함을 긍정하고 일반인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예술로 승화시켰다. 하지만 이 극단에는 쿠로코라고 하는 배우들이 연기에 몰입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하지만 절대로 보여서는 안 되는 연출자들이 있다. 한자로는 黑子라고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이 역할은 중추 장애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한다. 사회적으로 항상 약자로, 비평등 대우를 당했던 장애인이 레오타드라는 ![]() 蒔
2010.12.20 08:25:31
굵은 글씨는 일부러 그런 것?
참, 여성환경연대에서 옥상농원 전문가들은 많은데 가르칠 학생이 없다고 그러길래 우리 학교에서 좀 해보라고 했는데. 어떻게 좀 2월쯤 시작해볼까? 정말 그것의 PD 맡아볼 생각이 있어?
2010.12.20 09:11:50
홍조, 얼른 자고! 동녘은 얼른 마무리를...!
농원은 적당한 장소를 새로 알아봐야지. 어디 뒷마당이라도. 사실 나는 본격적으로 하우스라도 (겨울농원)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만. 그건 내년 가을쯤 계획을 세워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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