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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S글 수 1,063
혼자만의 꿈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꾸는 꿈으로 1. 불이 난 숲 지난여름 연대 문화학 협동과정 -근대의 장례식을 누가 치를 것인가?- 에서 <청소년이 감지하는 추방권력>이라는 제목으로 히옥스와 르포작가 김순천 선생님의 강의가 있었다. 각자 자신의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로 진행된 이 강의에서는 청소년이 겪고 있는 삶에 대해, 소위 “10대/청소년”안에 있는 다양한 분류에 대해 설명한다. 그것을 통해 두 사람은 우리의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삶의 태도에 기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또, 우리가 겪고 있는 불행을 직면해야한다고. 시즌 1 8개월 그리고 학교를 만드는 5개월 동안, 나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또, 그 사람들의 공간으로 들어가서 질문을 주고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많이 느끼고 고민된다. 뉴스에서 본 것도 아니었고 책도 아니었으며 누가 주목하지 않았던, 존재 자체조차도 아리송한 그런 삶의 공간으로 쉼 없이 찾아다녔다. 너무 “센” 경험들만 골라서 하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두 눈을 감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정선의 탄광촌도 그렇고, 태국의 메솟도, 4대강 공사가 한창인 낙동강도, 팔당지역도, 장애인의 신체 자체가 예술이라던 타이헨 극단도, 한 여름 도심 돈의동 쪽방에서도 이렇게 현실과 마주했을 때는 우리가 배워왔고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훨씬 복잡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뭔데? 라며 자책 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세상이었다. 2. 움직이는 학교 메솟으로 현장학습을 갔을 때, 미국 GED를 준비하는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한 친구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교를 졸업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질문하게 되었다. 졸업반이었던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었는데, “가능한 빨리 이곳을 떠나서 다른 삶을 살고 싶어.”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예전 나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그곳을 떠나면 다른 삶이라는 게 가능 할까? 오히려 그 너머의 삶이 가능한가? 다시 되묻고 싶었다. 내가 학교에 있었을 때, 나는 학교에서 주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도 싫었고, 그 좁은 공간에서 오로지 대학만이 살길이다 생각하거나 아니면 난 아예 끝나버렸고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섞이지 못하다가, 이 갑갑한 공간만 벗어난다면 다른 삶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학교를 나와서 바로 선택했던 또 다른 학교인 작업장학교에서 나는 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보이지 않았던 곳으로 발길을 이끌었고 다른 것과 부딪히며, 자기 존재를 스스로 확립하게 했다. 그렇게 지난 2월에는, 심지어 메솟에 있는 난민 캠프에서 그곳 청소년들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에 당혹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도 모든 게 불가능 할 것만 같은 난민이라는 현실과 타협할 수 없는 꿈에 좌절 하지 않는 여러 NGO와 활동가들을 만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난민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불행한 운명을 바꿔줄 한 사람의 영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각자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저마다 꿈꾸기를 게을러 하지 않는 시인으로서 세계를 구해야 한다고 말이다. 자신의 위치를 세상 속에, 사회 속에 의도적으로 올려놓는 과정이 나에게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주었기 때문에 작업장학교의 시즌1을 수료하고, 시즌2의 학교 만들기 팀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불이 난 숲에서 도망가지 않고 단 한 방울의 물을 옮기는 크리킨디라는 새의 이야기라는 단서를 가지고 새로운 학교를 구상하던 중, 이번 여름, 종로구 돈의동에서 “폭염이 서울시 쪽방촌 독거노인에게 미치는 건강영향 조사”라는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의 취약계층은 도심 속에 있다고 하는 쪽방촌 독거노인을 만났다. 시작은 기후변화이니, 일단은 하겠다고 선뜻 마음을 내어놓았는데, “쪽방촌” 이라니?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상상하게 하는 도심 속 존재 자체가 아리송한 이 공간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조사원으로서 온도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뜨거운 땡볕아래서 나는 삶의 다양한 굴곡과 형태, 시대라는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 개인의 나약함 혹은 무기력 그 자체를 떠올렸던 것 같다. 매일 매일이 가난과 폭력과 음주로 생사의 경계에서 아슬 아슬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정말 우리 인간의 삶이라는 게 죽음 외에 벗어 날 자리가 존재 한 건지? 그리고 그들을 죽음의 궁지로 몰아내지 않고 같이 산다고 생각 할 수 있었나. 누구인가? 흔히 그곳 사람들은 “이곳(쪽방촌)은 법도 미치지 않는 곳” 이라고 말 한다. 누가 이 사람들을 만들었고, 또 누가 돌보는 거야? 그리고 이 모든 사람이 정말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는 걸까? 함께 산다는 것은 뭘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우리가 시인으로서, 한 마리의 크리킨디로서, 구해야 할 세계는 어디까지인지, 우리가 꺼야 될 불이라는 게 어느 정도 인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때 당시 나는 마음 붙이기 이후를 상상하기 어려워 혼란스러웠고, 생각을 진전시키기 힘에 부쳤다. 그런 면에서 아예 전혀 다른 종류의 만남이 있었는데, 그것은 극단 타이헨과의 만남이었다. 기존에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딘가에 능력이 결여된 상태였다면, 타이헨에서는 장애인이 기본적으로 가진 가치로서 컨트롤 되지 않는 몸을 내세우며, 그것 자체를 예술이라고 하면서 내게 정말 장애인인가? 신체표현 전문가인가?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타이헨의 예술에 대한 것과 더불어 나의 흥미를 끈 것은 Backstage 영역에서 유일하게 “비장애인”이 타이헨 예술에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인 구로코라는 역할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라는 뜻의 구로코는 타이헨 예술에서 꼭 필요한 역할이면서 그렇다고 단순히 활동보조도 아닌 정말 “구로코”로서 무대에 어둠과 같이 있으면서 없어야하는 것이다. 서로의 힘을 모아서 함께 타이헨의 예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고,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전혀 다르게 존재를 인정하고 재해석하는 것, 이제까지 나의 사고의 전면적인 전환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한다. 그런 구로코라는 역할이라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하려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함께 하는 삶의 시작도 타이헨처럼 서로의 삶도 서로가 조금씩 돕게 되면 타이헨의 예술이 보여주는 것처럼 지금과는 다르게 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관계 맺으며 나누고 함께 하는 삶의 방법을 배워야한다. 3. 마음 붙이기의 다음 여정 아직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 정말 신기한 것은, 그런 일들을 해오면서 조금 달라진 나 자신이다. 하면 할수록 “열정”이라는 것이 어디선가 꿈틀한다. 나는 죽어다 깨어나도 그렇게 될 일이 없으니 불쌍한 사람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착한” 봉사활동이 아니다. “만약에 저 일을 내가 겪었다면?” 이라고 생각했다. 또는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주는 것이다. 다른 존재와 친구 맺고 따뜻한 마음으로 노래하고, 보듬어주는 것. 사실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면에서는 단단히 마음먹고 기꺼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고민은 가지고 있었다. 생각과 마음은 딱 동요되었는데, 새로운 학교와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나의 학기를 계획하는 것은 또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계기가 있었다면,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밥벌이”의 맥락에서 <두리반>이라는 굉장히 특수한 공간에서 열렸던 51+자립음악가대회와 캠페인의 맥락과 할 수 있는 일로서 메솟 친구들을 돕자고 시작한 텀블러와 수저집 창업 활동이었다. 남을 돌보기 위한 일과 나를 돌보는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 한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정말 개인적인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함께 나눠야 할 것이었지만 두 가지를 같이 고민하여야 했다. 개인적 삶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사회적 삶에 손을 뻗어야 했고, 다시 사회적인 삶은 개인적 삶에서 사고 해봐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먹고사는 일과 학교를 따로 놓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문화작업을 하는 게 자신의 자립과 굉장히 별개라고 생각할 수 있던 게 아닐까? 라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들은 혼자 일 때 보다 더 창조적이고 생산적일 수 있으며 나뿐만 아닌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보탬이 된다. 이런 일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생기고 지속가능한 형태로 우리 옆에 자리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나는 창의 노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창의 노동은 조용한 혁명이다. 삶의 전반적인 모든 것을 재구성하는 것.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이다. 세계를 구하는 시인이 되겠다던 사람이 먼저 지쳐 나가 떨어져 버리면, 결코 세계는커녕 당장 내 눈앞에서 벌어진 돌발 상황에 올바르게 대처 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졌을 때, 그래 이것은 현실이다. 남을 돌보기 위해서는 자신도 함께 돌봐야한다. 내 일상도 새롭게 구상해야한다. 나의 일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할 것 인가? 고민하고, 그러면서 자립과 공생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 정성을 담은 형식(의례, 문화)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 학교가 잘하는 혹은 잘하려고 하는 일중에 하나다. 표현되지 않으면 나눌 수 없기 때문에 형식을 만든다는 것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다. 의견이 잘 생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많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고, 스스로 시작단계라며 더 많은 실험들을 생각해 내고 싶다. 내가 마주 하고 있는 모든 문제가 외면 할 수 없고, 나 자신의 문제며, 그것을 해결할 사람도 나라는 책임 의식과 만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4. 같이 하는 동료로 만나기 위해서 혼자서 빨리 가는 게 아니라 다 같이 함께 한걸음 떼는 것이다. 그러한 열정이 잘 발휘 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학기가 시작하고 간디학교에서 빈이가 올라왔었고, 홍콩에서 온 호사가 지금 같이 하고 있고, 이제 1월부터 영서도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들고 나감이 분명한 친구들을 생각하면 이런 종류의 의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업장학교가 학교라는 큰 팀이 움직이고 그 안에 3가지의 전공매체가 있는 구조로 움직이기를 원했는데, 몇몇의 친구들이 그리고 나간 친구들이 매체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뭐가 잘 안되었던 걸까? 묻게 되었다. 학교 만들기팀이 꾸려지고 나서, 영상, 디자인, 공연 이런 세 갈래에서 모인 우리는 이전에 갖고 있는 분야의 벽을 허무는 일부터 그렇게 다시 새로운 공간에서 서로의 이해와 역할을 다시 세우는 것 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고 앞으로 삶을 꾸려갈 때 내가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동료로 무엇을 생각하고 배워갈지 어떤 일을 기획하고 어디까지 함께 할지 학교는 그런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말이다.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면서 그리고 공연을 다니면서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매체는 아니었다. 병아리가 달걀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매체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그것 너머, 매체가 발현해야할 내용에 집중하게 되었다.
내용에 집중하고 매체에 주눅 들지 않고 잘 써야한다. 그 너머로 보이는 것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정말 도구일 뿐 그것에 집중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프로젝트나 이벤트를 할 때 매체로 나뉜 팀의 장점은 '맥락'을 서로가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전부 '자기 일'이 아니다 싶으면 '쉬는'경향이 있다. 영상과 디자인 작업을 하는 친구들은 가끔은 컴퓨터의 노예처럼 모니터와 씨름 하느라 힘이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한번 생각해야 한다. 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축제로서 저항이고, 축제로의 전환이다. 나는 앞으로 우리가 공연을 좀 더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자기 매체'를 벗어나서 재미있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 이다. 같이 하자와, 할 수 있는 일의 경계를 넘어서 더 많은 경험과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5. 마지막으로 같은 씨앗도 어느 농부가 일궜나에 따라 열매가 다른 것처럼, 같은 프로젝트를 해도 그 의미와 가치들이 어디에 두고 어떤 공부를 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어떤 길을 갈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시즌 2의 준비 팀으로서 시간을 보내고 신입생과 함께 시작한 학교에서 도중에 몇몇의 친구들은 다른 길로 가기를 선택하였다. 나는 작업장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서로가 자주 만날 수 있는 계기들이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조금 더 많은 꿈을 꾸어야한다. 그 꿈들이 시작이 되어 숲속 속에서 어쩔 줄 모르는 다른 누군가에게 까지 닿았으면 한다. 고민과 도전과제들은 함께 할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그 다음을 얘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의기투합해서 하나씩 하면 될 것이다. 하늘만큼 높은 꿈을 꾸는 것, 그 꿈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때, 내게 이런 일과 배움이야 말로 내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이자 의지이다.
![]() When we meet a desert, make it a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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