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둘러 싼 세계와 함께 하다

 

prologue

   우리가 하필 이 시대에, 이 시간에 만나 학교를 같이 꾸려가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3월, 시즌 1을 마무리하고 ‘운동’과 ‘움직임’이라는 키워드가 나에게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했을 때, 마침 시즌 2를 같이 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제안이 들어왔다. 집에 가서 이야기해보겠다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하겠다고 결정한 상태였다. 시즌 2의 시작은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막연한 기대와 긴장뿐이었고, 가끔은 강의를 듣고 ‘공익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를 보면서 이게 학교를 만드는 게 맞긴 한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중, 연대에서 ‘문화와 경제‘라는 강의를 들었었다. 그 중 “자본주의의 공간과 일반통행로” 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던 김영옥 선생님의 강의 중 이런 말이 있었다.

“다 부수고 다시 만들어내는 그 것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

“무엇을 실제로 일으켜내고 있는가. - 그것을 어떻게 지속시킬 수 있는가.”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닌, 어떤 조직을 이룰 수 있었으면.”

모두 우리가 하는 말이고 했던 말이다.

다 부수지는 않았지만 기존의 것을 품고 있되 일으킬 수 있는 것을 일으키려고 하고, 창의 서밋의 주제이기도 했던 ‘지속가능’을 이야기했고 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지속시키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과 행동, 각자가 느끼는 평화는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 어디서 터져 나오는지는 다르지만 하나도 빠짐없이 연결되어 있는 문제들이었다.

너구리의 마음을 잊지 않고, 크리킨디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하기위해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우리가 우리 안에서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기를 바랐고, 그 전에 우리 스스로가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을 믿고, 누구에게나 손을 내밀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다.

 

다른 사람들의 서포터가 되고 싶습니다!

   지난 9월, 여덟 명의 신입생들과 학교 만들기 팀 일곱 명은 시즌 2를 시작하는 ‘시작파티’를 열었고, 각자의 각오와 포부가 담긴 글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읽었다. 나는 앞으로 작업장학교에서 이런 마음으로 생활하겠다, 는 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다짐하는 한편 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디 가서도 만나기 쉽지 않은 열다섯 명이 모여 하나의 학교를 만드는 과정을 같이 하겠다고 뛰어든 것이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시작한 학교생활은 어느덧 12월을 맞이했다.

내 속도에 대해 유난히 콤플렉스가 있던 나는 이번에야말로 그 속도를 잘 이용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앞에서 단결력 있게 끄는 것은 잘 못하지만 조금 뒤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뭘 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면서 잘 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리더’라는 말이 나에게 주는 느낌은 으쌰으쌰 하면서 앞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나서야 할 일이 있으면 나서는 것인데, 솔직히 나는 그런 자리가 불편해 다른 사람들의 서포터가 되어야겠다고 했던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아직까지 정말 리더가 되었던 경험이 없어서 리더의 역할은 정말 이끌기만 하는 것인지, 서포터는 뒤에서 받쳐주기만 하는 것인지 잘 모른다. 정말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기에 앞으로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리더와 서포터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매체 이해하기

  지난 4월부터 한참동안 카메라를 손에서 거의 놓다시피 하다가 다시 잡았을 때는 감도 잃었고 그래서 터무니없는 실수도 많이 했다. 내 생각는 내가 영상팀의 역할을 ‘기록’하는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 같다. 어릴 적에 내가 수학자가 될 것도 아니고, 과학자가 될 것도 아닌데 왜 배워야 하는 거야! 같은 생각을 했듯이 한동안은 내가 영상작업으로 밥 벌어먹고 살 것도 아닌데 영상이 뭔지 꼭 고민해야 되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내가 영상팀이긴 하지만 영상팀의 역할에 대해서도 그렇고, 다른 매체들, 프로젝트들과 영상을 연결시켜서 뭔가를 발전시켰던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매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들을 연결시키는 그 특성 자체를 무시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그런지 그 동안은 나와 매체를 이어주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왜 이 매체에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가지고 가려고 하는지, 아니면 또 다른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질문을 받으면 항상 머뭇거리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매체마다 다 다른 특성이 있고, 그 특성들을 녹여내는 방법이 어떤가에 따라 달라지는 작업의 내용들이 있는데 나는 그 동안 무수히 많은 매체와 작업들을 보면서도 그 특성이 무엇인지, 매체들끼리 연결되는 것은 뭐가 있는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번 ‘영상언어의 이해’ 와 ‘디자인 워크숍’을 하면서 그 동안의 태도가 얼마나 좁고 게을렀는지 알게 됐고,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할 때는 개인적으로 봐야할 부분도 있지만 팀으로서 봐야하는 부분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영상언어의 이해

 이번 학기 준과 함께 했던 ‘영상언어의 이해’ 라는 프로젝트는 지난 학기 영상팀에서 했던 프로젝트와는 조금 달랐다. 지난 학기에는 실제로 움직이면서 촬영을 했고 편집과정에서도 끝없는 회의와 각자 맡은 책임이 확실했던 반면에 이번에는 팀으로써 움직이는 것보다는 영화사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실제로 어떤 영상이 만들어지는지를 많이 보았다.

내 생각에 ‘언어’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나의 언어를 찾고, 그 언어로 표현하는 것’ 과도 연결 지을 수 있는 맥락인 것 같다. 우리가 소리 내서 말하는 방법도 있지만 만약 말을 하지 못 한다고 했을 때는 어떤 것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까?

소리일 수도 있고, 그림일 수도 있고, 행동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 나의 언어가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영상언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영화를 만들 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Scene이나 Cut, Shot에 대한 개념들을 배웠고,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그런 개념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알았다. 대부분의 작업들이 다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영화 역시 그 시대의 상황을 많이 담고 있고, 장르 또한 다양했다. 우리는 고전영화에서부터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까지 시대를 넘나들며 여러 영화들을 봤다. 비슷한 시대에 만들어진 영화라도 감독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배우가 누군지, 어떤 장소에서 찍었는지, 그 당시에는 어떤 배우들이 영화에 많이 출연했는지, 어떤 효과들이 사용됐는지, 같은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서 영화 내용이 확 달라지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화면이나 소리같이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어떤 감독은 어떤 감각이 뛰어난지도 알 수 있었다.

이번 학기의 결과적 목표는 각자의 Self- Portrait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보이는 방식은 ‘영상의 형태’이지만 각자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주제까지 이르렀는지 사람마다 그 과정도,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도 달랐다. 영상을 그저 나는 말도 잘 하는데 이건 그냥 한 번 보여줘 보는 거야, 라고 생각하면 잘못 된 태도이다. 다른 매체들도 그렇지만 영상을, 그림을, 사진을, 음악을 표현 가능한 ‘언어’로써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작업을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Self- Portrait는 각자 작업을 한다. 내가 계획을 짜고 필요한 장면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는 보여주는 사람의 입장이 강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관객들의 시선이나 반응을 살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팀에서처럼 같이 의논을 하고 역할을 나눠서 만드는 것이 아닌, 혼자서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부담이 되는 한 편, 홀가분하기도 하다. 내용 또한 자유롭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드러내는 작업이라서 어떻게 보면 관객들에게 불친절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영상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는 것이 있기에 어떤 부분에서는 말로 하는 것보다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상대방에게 더 잘 전달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디자인 워크숍

 처음 작업장학교에 입학했을 때 디자인팀으로 들어왔었다. 그 때는 디자인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까 다른 팀보다 디자인팀에 들어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결정한 것이었다. 이번 학기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하신 달갱과도 그 동안 여러 번 워크숍을 같이 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주니어 2학기 정도까지도 디자인을 떠올렸을 때는 뭣도 모르고 그냥 그림을 그리고 뭔가를 꾸미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시즌 2를 시작하기 얼마 전부터 우리는 달갱과 디자인 워크숍을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디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같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디자인 수업을 하면서 보게 된 ‘디자인의 디자인’ 이라는 책에는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정의하거나 상세히 적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때로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전혀 모르는 것으로 가정하고, 그 실체에 도전해 보는 것이 대상을 조금이라도 더 깊이 인식하게 해 준다.” 라는 말이 있다. 요즘 들어 늘 생각하긴 하지만 그 동안 내가 디자인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 데이북이 부담이 되고 숙제처럼 느끼게 되었고 스스로 그런 사실들을 느끼면서도 한동안은 부정했었다. 데이북으로 쓰는 공책을 바꾸면 되려나, 하면서 바꾼 공책도 세 권이나 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공책이나 재료의 문제가 아닌 내가 데이북을 데이북으로써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내가 내 블로그에 들어가 거의 매일 뭔가를 끄적이는 것처럼 데이북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데이북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데이북의 목적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스크랩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한꺼번에 많은 양을 채우는 것도 아니었다. ‘매일매일 꾸준히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지만 평소에 내가 하던, 그리고 싶을 때 아무 종이에 그리고, 어떤 의미나 방향 없이 무의식적으로 그리는 방식으로는 데이북을 하는 것이 쉽지가 얺았다. 데이북을 하려고 하면 왠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꽤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텅 빈 종이를 보면 겁이 나면서 내 머릿속도 같이 비어버리는 이상한 증상이 데이북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러다보니 그 넓은 종이위에 작고 깔끔한 것만이 남게 되었다. 달갱은 늘 내 데이북을 보면서 좀 더 지저분하게 해도 좋다고, 낙서처럼 시작하라고 했지만 잘 되지가 않았다.

나는 주로 나 혼자 작업을 하고 그게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협동 작업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렇지만 협동 작업 자체는 즐겁게 잘 해도 작업을 하면서의 과정은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생각이 시즌2를 준비하면서 만들었던 45보드를 떠올리면서 들었다. 그 때도 보드 자체를 완성해나가는 것을 즐거웠는데 돌이켜보면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것과 디자인을 하는 것은 별개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 두 가지를 어떻게 연결 할 수 있을지가 지금 내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다.

 

북카페 - 공간의 이해, 사람의 영역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이랑 함께 있는 시간이 길었고, 어디를 가더라도 책이 있는 공간이 제일 편안했다. 내가 세상에서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책이다.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책이 없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극장을 좋아하지만 도서관은 그보다 더 좋아하고, 문구류 사 모으는 것을 즐겨하지만 그보다 사고 싶었던 책을 샀을 때의 그 느낌을 더 즐긴다. 어떤 때는 책만이 나의 유일한 상대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하는 일도 책을 집어 드는 것이었고, 화장실 갈 때는 책을 들고 가면 안 된다고 그렇게 혼나면서도 화장실에 있는 그 몇 분을 가만히 있지 못해 몰래몰래 책을 들고 화장실에 가고는 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고 책만 읽는 삶이 찾아오기를 그 때부터 지금까지도 바라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도서관’ 이라는 그림책이 있는데, 주인공은 한시도 책과 떨어져 있지 않고, 심지어 책을 읽다가 사려고 했던 다른 물건들은 못 산 것은 개의치 않아하고 읽고 싶었던 책을 사서 읽은 것에 만족할 정도로 책을 좋아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책을 읽다 어느 낯선 곳에 떨어져 그 곳에서 집을 사고 그 집을 도서관으로 만든다. 나는 이 책을 보고 나서부터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난 학기에는 하자 북카페에서 사서를 하기도 했는데 하루 중 사서를 하러 가는 시간이 제일 기다려지고는 했다.

그런데 지난 3,4월에 걸쳐 하자 안에서 전반적인 공간이동이 생기면서 원래 있던 북카페는 임시로 작업장학교 방으로 옮겨졌고, 북카페라는 공간이 사라진 것은 아쉬웠지만 책과 매일 붙어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신관이 지어지면서 북카페를 신관으로 옮기려던 계획은 무산됐지만, 북카페에 대한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북카페를 다시 살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어도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하자에서 북카페는 쇼케이스와 카페 그래서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공간이었다. 하자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네 분들도 많이 오셨고, 북카페에 있다 보면 어떤 사람들이 주로 오는지, 누가 어떤 책을 주로 빌리는지, 사람들을 관찰할 수도 있는 재밌는 공간이었다.

어느 날 히옥스가 나에게 “너의 도서관은 여전히 크고, 서가가 잔뜩 있고, 바코드를 찍는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그런 도서관의 모습에 반해서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 했고, 앞으로 내가 만들 도서관 역시 그런 모습일 것이라는 것에 추호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도서관의 형식은 뭘까? 생각해봤는데 아직 나한테 도서관은 커다란 서가에 둘러싸여있고, 바코드를 찍고,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사락사락 들려야만 할 것 같다.

북카페를 다시 살리고 싶은 마음을 불태우면서, 우리가 했던 Poetry night나 필통 번개, 내가 항상 하고 싶었던 ‘영화 읽는 목요일’ 같은 프로그램도 우리끼리만 하는 것이 아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하자 사람들이나 작업장학교를 수료, 졸업한 사람들을 초대해서 모임을 갖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도서관에서 진행될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생각이 나지만 도서관의 형식이라는 것은 아직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나 혼자 갖고 있는 것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도서관이라는 것 자체가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것이다 보니 사람들이 책을 빌리고 반납하기도 하고, 그 공간에서 책을 읽기도 하는 상황들을 모두 고려해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예전 북카페를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인 동시에 조용히 해야 하는 약속이 있었기에 개인적인 공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하자에 새롭게 만들고 있는 북카페는 카페 그래서, 쇼케이스와 걸쳐 있기에 책을 조용히 볼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집중해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 북카페라는 공간이 때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있으면 공간도 늘 있고, 텅 빈 공간도 어떻게 만들어나가고 생활하느냐에 따라 그 분위기가 달라진다. 앞으로 북카페가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지,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더 고민하면서 북카페를 통해 ‘공간’ 이라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좀 더 알고 싶다.

 

‘공익 활동’/ ‘불편한 진실’ - 누구를 위한 진실인가.

 우리가 하는 ‘공익 활동’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원봉사처럼 보이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그런 활동들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냐는 질문들을 많이 받는다. 처음엔 나도 '공익‘이라는 말이 뭘 뜻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괜히 불편함을 느꼈었다. 이런 활동들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금방 바뀌는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이 행동들이 우리가 학교를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되는 건지,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했거나 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 마음을 내는 것이 쉽지 않고, 설사 마음이 있더라도 마음만 가지고는 하기가 어려운 일들이 대부분이다. 앞에 나서서 해야 하는 일들도 많아서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나로서는 불편한 점도 많았다.

지난 8월, 우리는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함께 여름철 폭염이 독거노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돈의동에 있는 쪽방촌에서 2주일동안 조사를 했던 적이 있다. 골목마다 술에 취해계신 분들이 많아서 늘 긴장상태를 놓을 수가 없었다. 돈의동 쉼터에 계시는 선생님들은 쪽방촌 분들이 말을 걸어도 무시하고 지나가라고 하셨지만 그러는 것이 쉽지가 않았고, 늘 어떤 문제에 부딪쳤다. 2주일 동안 우리는 동정,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분노를 느끼기도 했는데 항상 그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해하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어리둥절해하고, 내일도 가야 한다는 사실에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미 살고 계시는 쪽방촌 분들이나 쉼터에 계신 선생님들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2주라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어서 지나갔으면 하고 바랐다.

어느 날 감정이 극으로 달했을 때는 그렇게 삶을 이어가시는 분들을 만나봤자 지금 당장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도 못 하는데 도대체 이런 온도는 왜 재고 있는지 싶으면서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던 사는 게 뭔지, 사람으로서 대우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머릿속에서 떨칠 수가 없는 문제들이 자꾸 비집고 들어왔다.

4대강 문제 또한 비슷한데, 우리는 민욱의 ‘손의 무게’라는 4대강 관련한 작업에 참여도 했고, 재판에도 가봤으며, 문수스님의 추모제에도 참여했었다. 뜻을 같이 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4대강 공사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렇게 얘기했지만 공사를 멈출 기미는 없어보였다. 우리가 아무리 4대강 공사를 반대하는 콘서트를 열고 정신 좀 차리라고 말하고, 공사 현장에 드러누워도 정부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죽어야 공사를 중지할 것인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 혼자 잘 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 함께 평화롭게 잘 살아가기 위함인데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도 평화가 성립이 되나 싶었다.

지난 학기, 우리가 메솟에 갔다 오지 않았더라면 버마가 처해 있는 상황을 잘 몰랐을 것이고 몰라도 잘 살았을 것이다. 4대강 문제도, 쪽방촌 문제도 뉴스에 나오긴 하지만 내가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이상 몰라도 모르는 대로 잘 살아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실을 알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실천하려고 한다. 작업장학교에 있으면서 많이 느낀 것은 아무리 불편하고 어려운 문제라도 우리 삶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움직이려고 하고, 일단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고 정말 움직인다. 나는 항상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지 늘 걱정해서 결국 움직일 타이밍을 놓치고 후회하고는 하지만 어떤 문제들은 일단 움직이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 히옥스의 말씀에서 정리되지 않은 말도 일단 말을 하면서 정리되기도 하는 것처럼 어떤 행동들도 일단 움직이다보면 정리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일을 보고 대단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그 사람들과 같은 입장이었어도 대단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처한 문제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문제인 것이다. 관심을 갖는 것이 움직이는 것의 시작이지만 그 관심을 계속해서 가지고 가는 것 또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생각해본다.

 

평화워크숍 - 평화? 그냥 평화로운 게 평화 아닌가?

 ‘평화’라는 말을 언제부터 들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꽤 자주 들었던 말이라 그렇게 큰 부담감도 낯섦도 없었다. 그런데 평화워크숍 첫 날, 나는 평화가 그렇게 광범위한 것인지 처음 알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평화인지도, 내가 평화롭다고 느낀 적은 언제였는지도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평화는 그저 평화로운 것이지, 도대체 평화롭다는 것 말고 뭐가 더 분명해야 해야 싶었다. 머릿속에 온통 멍해진 채로 끝이 났고, 평화가 뭔지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매 워크숍 때마다 나온 얘기지만 ‘평화’라는 것은 정확한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확실한 모양새가 있는 것도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보니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질문만 생기고 왠지 확실한 것을 찾아야 할 것 같고 어찌해야 할 바를 더 모르게 된 것 같다. 평화워크숍 첫날 적어두었던 메모에는 ‘도대체 뭐가 평화고, 왜 우리는 평화를 바라는 것이고, 그게 우리한테 뭘까?’ 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아마 ‘평화’가 무엇인지를 얘기함으로써 내가 가지고 있던 평화로움이 너무 쉽게 무너지는 것에 당황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나와 우리’라는 평화단체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조진석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날, 선생님은 남과 북의 상황에서부터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언제든지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분단국가라는 특이한 상황 속에 살고 있고, 어릴 때부터 평화에 대한 책들을 그렇게 읽었으면서도 나는 그 상황이 평화와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던 적이 없다. 정신대 할머니들은 지금도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 집회를 하고 계시지만 사실상 사과다운 사과를 받은 적은 없다고 하신다. 사실 할머니들의 고통이 얼마나 괴롭고 끔찍했을지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 뿐,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라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 한편, 어쩌면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었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조진석 선생님의 이야기와 지난 번 오셨던 평화박물관에서 일하고 계시는 김영환 선생님의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가 일본의 전쟁피해국가인 것처럼 베트남도 우리나라 군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베트남에는 ‘증오비’라는 것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일본에 사과를 바라는 것처럼 베트남 또한 우리나라가 사과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전쟁피해국가인 줄로만 알았는데 우리 또한 다른 누군가의 평화를 망치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사실에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다.

김영환 선생님은 사죄만 한다고 해서 끝날 문제는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진상규명을 하고, 보상도 해야 하지만 사죄를 누가,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같이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역사’는 사회책에서나 보는 정도로만 남아버리는데 그렇지 않게 교육에 힘쓰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평화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갔을 때 제일 눈에 띄었던 것은 ‘사회적 기억운동 - 평화의 가치를 확고하게 하는 사회적 기억운동입니다.’ 라는 글이었다. 그 글을 읽는데 이런 곳에서 ‘운동’을 만나니 뭔가 뜻밖인데 반갑다, 싶으면서도 ‘기억운동’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그 순간에는 잘 몰랐는데 생각해보니까 사람들이 평화에 대한 생각을, 우리가 겪었던 평화가 필요했던 상황을, 그리고 앞으로도 평화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학기에 그렇게 내 마음을 흔들었던, ‘운동은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였다.

평화는 우리 삶과 아주 가까운 문제이고,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고 김영환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가까이 있기는 하지만 저마다 바라는 것이 다르고, 나타나는 방식이 다르고, 상황이 다를 뿐 평화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과연 ‘싸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헷갈렸다. 싸워야 한다면, (설사 그 싸움이 온 몸을 부딪치는 것이 아니더라도) 싸움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은 너무 격렬한 것이라서 그렇게까지 애써야하고, 치열하게 행동해야만 얻어지는 것이 평화인가, 그렇게 해서 얻어낸 평화가 평화일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 강의가 끝나고 노트정리를 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가족이 죽어가고 내가 누리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가는 상황에 처해있다면 분명히 온 힘을 다해서 그 모든 것들을 되찾기 위해서 ‘정말’ 싸웠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는 평화고 뭐고 앞뒤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행동이겠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이유는 위험에 빠진 소중한 사람들을 구해서 다시 평화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번 춘천 집에 갔는데 ‘평화를 위한 어린이 동요대회’ 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그 옆에는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북한을 응징하자!’ 라는 또 다른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어린이들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동요대회를 여는 마당에 어른들은 우리나라와 북한은 한민족이라고 그렇게 얘기하면서 왜 서로 으르렁대고, 싸우려고 하고,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상황을 만드는 걸까? 우리 오빠는 지금 최전방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연평도 사건이 터지고 요즘 같은 위급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뛰어 나갈 수 있도록 밤에도 무장을 하고 잔다고 했다. 과연 이런 행동들이 평화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행동일까?

요즘은 뉴스나 신문에 평화라는 단어만 나와도 몸이 움찔한다. 평화에 대한 워크숍, 포럼, 세미나, 강의까지 계속 하다 보니 이제는 몸도 같이 반응을 하는 것 같다.

얼마 전, 히옥스랑 얘기를 하는데 우리가 평화, 기후변화, 생태 같은 키워드들을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부분에 있어서 우리의 태도는 수업을 잘 듣고 끝나버리는 것이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 동안 공부한 것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게 우리 모두가, 혹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키워드가 왜 우리에게 중요하게 됐는지, 정말 내 삶에 받아들이고 지속하고 싶은 것인지를 아는 것도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평화워크숍을 하면서 평화는 따로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평화를 원한다면 그 과정 또한 평화로워야 된다. 과정까지도 평화로운 단계까지 가 본적은 없지만, 그래서 내가 평화를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하든 평화는 늘 옆에 있고, 그 모든 것의 바탕이 될 수 있다. 나를 위한 평화, 내가 원하는 평화가 있듯이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위한 평화, 원하는 평화가 있는 것이다.

 

타이헨 극단, 구로코, 신체표현 워크숍 - 몸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다.

 이번 학기에 했던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도 특히 타이헨 워크숍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 타이헨 극단과의 첫 만남은 지난 5월이었다. 연극에 출연할 한국 엑스트라들을 뽑는 워크숍 마지막 날에 가서 무대를 지켜봤고, 워크숍이 끝날 때쯤에는 타이헨 극단은 어떤 극단이구나, 대략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타이헨 극단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서 들었을 때는 약간의 부담감은 느꼈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저 ‘배우들을 막 뒤에서 준비시키고 무대로 내보내고 다시 막 안으로 들여오는 일’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차례의 워크숍이 진행되고 우리가 타이헨 극단에서 하고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구로코’의 역할이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단지 몸을 쓰는, 체력만 가지고는 될 일이 아니었고, 몸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생각도 해야 했다.

구로코 워크숍을 할 때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We are not helper. We are KUROKO." "Safely, Quickly, Quietly" 였다. 구로코들은 무대 조명이 꺼졌을 때 살그머니 들어가서 배우들이 막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도움을 드리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대 위에서는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도와드린다고 말하기에는 ‘구로코’ 역할 자체가 가지고 있는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는데, 지금까지 구로코를 하면서도 이 무언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찾지 못했다. 구로코는 우리와 배우들의 몸과 몸이 맞닿아야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렇기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하기 힘들었다. 배우들의 입장에서는 내 몸을 생판 모르는 우리들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기에 걱정이 태산일것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처음 해보는 일이기에 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창의서밋 때 김만리 선생님은 ‘신체표현 워크숍’을 진행하셨고 나도 그 워크숍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구로코 연습의 연장이라고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김만리 선생님은 워크숍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닥에 누워서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몸이 움직이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생각을 안 하려고 하니까 오히려 이것저것 생각이 더 많이 들었고 몸에 집중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워크숍 내내 氣(기)라는 말을 들었고, 바닥에 누워서 약 2시간 정도를 내 몸 속에 흐르는 氣(기)에 집중을 하다가 잠깐 쉬기 위해서 일어나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뻐근했다. 그 때 장애인 배우들이 생각나면서 나는 내 몸에 집중하는 것도 힘든데 배우들은 불편한 몸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활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힘든 일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속도와 움직임을 더 존중해야 하고 구로코로서 일을 한다는 것에는 이미 그러한 마음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만리 선생님은 氣(기) 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셨는데 나는 그 단어와 표현에 대한 어렴풋한 느낌은 있었지만 막상 내 입 밖으로 꺼내려니 쉽지가 않았다. 사실은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바닥에 누워 있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는 내 몸을 느끼고, 내 몸 속에서 피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어느 부위가 갑자기 따뜻해지고 심장이 다른 곳에 붙어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하면서 이게 氣(기)가 움직이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氣(기)가 정말 있는지 없는지 헷갈렸던 상황들이 조금은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워크숍을 떠올려보면 생각하는 것 보다 느껴지는 것이 훨씬 많았고, 어떤 말로써 쉽게 정리하기도 어렵고 표현하는 것도 잘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장애인 배우들의 힘듦을 이해하는 시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무의식과 가까운 상태에서 귀만 열고 어느 순간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는 상황에서 움직이는 내 몸과 氣(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신체표현 워크숍은 나에게 몸, 신체라는 것에 대해 더 알고 싶고 흥미를 불러 일으켰는데, 내가 지난 학기에 계속해서 얘기했던 ‘마음에 따른 사람들의 움직임, 마음이 움직여서 일어나는 변화,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마음’ 과는 다른 맥락에서 ‘움직임’ 자체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김만리 선생님이 프레젠테이션을 하실 때 말씀하셨던 것처럼 장애인들의 몸은 ‘컨트롤되지 않는 몸‘이기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배우들이 전하려고 하는 연극의 내용이나 감정도 중요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관객의 입장 또한 중요할 것 같다. 비슷한 증상을 가지고 있어도 저마다 움직이는 것이 다르고 그 움직임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다. 그 움직임에서 나오는 차이들을 차이로써 받아들이는 것은 배우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의 몫인 것이다. 김만리 선생님은 배우들 스스로도 자신이 어떤 움직임을 취하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공연 때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딱 달라붙는 레오타드를 입음으로써 연극 안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찾고 무대 위에서 배우로서 몸을 내놓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럽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보는 사람들도 처음엔 낯설고 기분이 이상하고, 처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배우를 배우로 대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움직이고자 하는 마음까지도 전달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와 여럿, 그 사이

 이번 학기를 보내면서 중요하게 품고 있었던 키워드는 ‘믿음’과 ‘함께’, 그리고 ‘연결’이었다. 함께 하는 것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도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특히 새로 들어온 사람들과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기억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학교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도 이미 다 만들어놓은 혼자만의 학교를 들고 와서 이 공간에 세우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기에 무엇보다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가 구로코 일을 할 때 배우들이 우리를 믿고 몸을 맡기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가 서로에게 내 몸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9개월 동안 하나하나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많은 일이 있었다. 집중해야 하는 것이 분명히 있었기에 생각의 과정도, 감정의 변화도 그 어느 때와는 달랐다. 내 입장을, 위치를 잘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했다. 잘 굴러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허둥대다가 시간이 지나가기 일쑤였고, 남는 것은 늘 후회와 자책뿐이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는 알아차리는 것도 오래 걸렸지만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의 시간 또한 오래 걸렸다.

시즌 2를 준비하는 기간부터 거의 매일 밤 열시에 끝나는 일정을 소화해야했는데, 어떤 때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부터 시작해서 내가 열 두 시간 동안 학교에 있으면서 제대로 한 일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자책도 있었고, 아니,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할 거 없지, 까지 생각들의 기복이 심했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바닥으로 꺼지는 듯할 때는 내가 작업장학교에서 배울 것이 더 이상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 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크리킨디는 누구를 위한 크리킨디였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눈앞에 벌어진 힘겨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고, 점점 자신이 없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학기 마무리에 들어서서는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 좋은 날보다 훨씬 많았다. 내 몸 상태와 학교정의 일정을 조정해가면서 생활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좀 아프다고 학교를 빠지거나 할 일을 못 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아픈 것과는 별개로 계속해서 돌아가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도 이번 학기가 돼서야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힘들고 지치는 날들이었지만 지금 생각하기에는 나 혼자가 아닌 그 시간들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 모든 과정을 겪으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이번 학기는 ‘하자를 졸업 할 때쯤에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를 생각해보라고 하셨던 히옥스의 말을 떠올리면서 지내기도 했지만 특히 스무 살을 앞두고 있는 입장에서 더 고민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있었다. 대단한 것을 바라는 건 아니다. 언젠가부터 내 삶의 목표처럼 되었고, 그 동안 들릴 듯 말 듯 이야기해왔지만 정말 ‘할 말도 하고, 할 일도 하는 사람’ 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늘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느라 놓친 것이 많았는데 하자를 떠날 즈음에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눈치 보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으면 한다.

예전에는 스물을 앞둔 친구들의 고민이나 걱정, 불안함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스물이 되도 나는 나고, 내가 만들어가는 세계도 점점 단단해질 것이고, 옆에서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스물이 되기까지 채 2주일도 되지 않은 붙잡을 수도 없는 시간을 보내고, 기다리다보니 그 때의 그들이 느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에 스물은 내쳐지는 동시에 거둬지는 나이 같다. 너도 이제 스무 살이 됐으니 독립해야지, 이제 용돈 안 줄 거야, 같이 나를 더 넓은 곳으로 보내는(내치는) 듯 한 말을 들으며 불안함과 당황스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그와 동시에 이제 내 몸 정도는 스스로가 챙겨야 하는구나, 무엇이 내가 하고 싶은 하는 일을 하는 것과 먹고 사는 것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결정하며 스스로를 거둬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괴리감은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꿈은 꿈이니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꿈과 현실 둘 다인 것이다. 각자가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현실이 다르고 나는 내 현실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당장 내년이 되고 스물이 되어도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급작스럽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낙천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답답해 보일수도 있지만 내 속도를 인정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기다리는 만큼 나를 기다려주기도 하며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같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불과 얼마 전까지도 말로 정리 할 수 없었던 것을 조금씩 정리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편이고 내 속도 또한 기다림에서 만들어진다. 작업장학교에 있으면서 나는 내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시즌 1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내가 누구와 함께 하는지, 그 사람과 어떤 것을 연결시키며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인지, 그 과정들을 찬찬히 보고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 동안 정리되지 않고 말로 하지 못 했던 것들을 툭, 하고 내뱉는 것에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떨칠 수 있었다.

이번 학기를 굳셀 偲(시)를 가지고 시작했다면 학기의 중간을 맞이하고 마무리하는 지금, 나는 믿을 恃(시)와 시험할 試(시)를 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멈칫거리더라도 결코 나 혼자만의 움직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전보다 더 거대하고, 스스로 무력함을 느끼게 하는 것을 만나더라도 지레 겁먹지 않고 부딪치고 싶다. 그리고 내 할 말과 할 일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거짓으로 느껴지지 않게 진심에서, 솔직함에서 나오는 행동들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