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DF Salai 선생님 강연

 

59min 영상 설명

사라이선생님 아버지 시대 , 사라이 하고 형의 시대가 88년 시대겠죠. 그리고 사라이선생님 형 아들, 2007년 대학생의 시대가 나올 것 같아요.

 

57min-43min

우선 제 이름에 대해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제 이름이 사라이라고 알고 있지만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은 아아메입니다. 대학교에 다닐 때도 아아메라고 하지만 88년 민주화 봉기 참여하면서 바꾸게 되었습니다. 사라이란 것은 이름입니다. 하지만 저는 친 민족 출신이 아니였습니다. 저는 버마민족 출신인데 왜 이름에 가져가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대학교다닐 때 제 주변에 소수 민족들이 많습니다. 카렌족 친구들도 있고 친족 친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친족 친구들이 더 많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 고향이 친지역에 있으면서 친족 사람들이랑 많이 친했습니다. 그 친도 북쪽 친하고 남쪽 친하고 있습니다. 저는 남쪽에 있는 친족 친구들이랑 많이 친했습니다. 제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그랬습니다. 아버지 친구 아이도 제 친구가 되었습니다. 대학다닐 때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대학교에서 문학 운동할 때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1988년 봉기가 일어나지만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였습니다. 2008년에 학생과 동네사람이 싸움할 때 경찰이 개입했습니다. 그때 경찰에 개입으로 학생 한명이 죽었습니다. 그 학생이름은 폼보라고 했습니다. 폼보가 총맞고 죽은 날이 3월 17일입니다. 그 날은 우리가 버마 인권의 날이라고 학생들이 인정해서 인권의 날 기념식을 해왔습니다. 1988년 민주화 봉기 일어날 때 저는 대학생 마지막 학기입니다. 저는 대학교 전공이 역사입니다. 역사 같이 다니는 친구들 중에서도 친족출신 친구들이 있습니다. 민주화 봉기가 일어날 때 역사 전공하는 학생팀, 무슨 전공하는 학생팀, 팀별로 많이 있습니다. 저는 역사 전공하는 팀에서 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한테 친구들이 대장을 맡아 라고 제안하면서 제 이름도 만들어졌습니다. 오늘부터 너 이름은 사라이 하라고 이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사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민주화 운동을 해왔습니다. 사라이 선생님이 계속 길게 설명해주신 것은 민주화봉기가 일어날 때 그때 선생님은 대학 기숙사에 있었습니다. 그때 대학교 안에 있는 학생들, 시내에 집에서 통학하고 있는 학생들도 기숙사에 와서 민주화봉기를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군인들이 와서 우리에게 기숙사에서 내려오라고 했는데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 대학교수님들과 총장님 이런 분들이 모여서 오고 ‘학생들 내려와라‘ ‘걱정하지마라‘ ‘우리가 있다‘ ‘우리가 보장하겠다‘ ’계속 있으면 너희들이 총 맞을 지도 모르겠다’ 교수님과 총장님의 이야기를 믿고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밑에서 군인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군인들이 ‘우리는 체포하는 게 아니다’ 우리이름, 아버지 이름하고기록해가지고 우리에게 집으로 보내겠다 버스에 타라고 해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보냈습니다. 군인들이 우리이름하고 아버지이름을 기록하고 집으로 보내주었습니다. 그냥 보내준 줄 알았지만 다음날부터 군인들이 학생들의 집에 찾아와서 체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소식을 듣고 저는 도망갔습니다. 그때는 1988년 5,6월정도입니다. 저는 지방으로 도망가다가 지방에 있는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서 우리는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지금 체포당하는 학생들도 감옥 안에서 고생하고 있다. 이 학생들이 석방을 위해 우리는 어떤 운동을 해야하는 것 아니냐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계속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해보자 지방에 있는 친구끼리 서로 연락해서 준비해왔습니다. 6, 7월에 내내 서로 연락하면서 준비하면서 1988년 8월에 민주화봉기가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시 시작할때는 아침에 시작하는게 아니라 밤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밤에 시내에 있는 학생들이 시내에 모였다가 감옥쪽으로 걸어가면서 외쳤습니다. ‘학생들을 풀어줘라’ 학생의 자유, 시민의 자유를 요구해왔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정부가에서 민주봉기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88년 8월에 민주화봉기가 일어나면서 9월에 다시 쿠테다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저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우리 평화적으로 의도하면 안된다, 무장투쟁 해야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나왔습니다.

 

40min - 38min

저는 1964년에 태어났습니다. 무장투쟁할 때 나이는 24살입니다. 민주화봉기가 일어날 때 쿠테다가 일어나기 전에 대학교에서 퇴학당했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학년인데 퇴학당했습니다. 그 퇴학당한 것에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장투쟁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랑 카렌민족이 무장투쟁하는 곳으로 가자고 했어요. 저는 그냥 이 무장투쟁하려 갈 때 그냥 도망 오는거가 아니다 우리 대학교에서 카렌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한테 이미 카렌 무장투쟁단체에 대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카렌 무장투쟁단체로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학생들이 무장투쟁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맨 처음에 저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먹는 것부터 자는 것까지. 무쟁투쟁하려고 교육을 받아야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였습니다. 그래도 이미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나는 끝까지 하겠다고 생각해서 흔들리지 않고 계속 참여해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맨 처음에 참여할 때 내가 하는 이 투쟁이 22년이 지나면서까지 하게 될 줄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1, 2년 이전에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 투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38min - 37min

24살에 무장투쟁을 시작하면서 20년이 지났습니다. 제 젊은 시대가 투쟁해서 정부시대가 지나갔습니다. 아직까지도 민주화가 성공하지 않아서 계속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37min - 33min

Q. 사라이씨 외모 보고 지금도 무장투쟁을 하고 있는 건가요?

A. 버마친구들이 그걸 잘 모르는 것 같다. 단체 사무실은 여기에 있고 대부분 활동가들은 분쟁지역에 있다. 어떻게 싸우고 있다를 길게 설명하는 거에요.

 

29min - 26min

Q. 무장투쟁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

A. 군에서도 그렇고 메솟에서도 그렇고 무장투쟁하는 사람들이 정치범들과 관계 맺기를 피해하는 일이 있었던 거에요. 우리 관계에 대해 군부에서 알게 되면 위험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와의 관계로 위험할까봐 걱정해서 안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오늘까지 투쟁하고 있는 것은 우리 뒤에서 관계맺고 공식적으로, 비공식적으로 여러 가지로 관계맺는 사람들 덕분에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26min - 22min

Q. 저번에 방문했을 때 들었던 얘기 중에 사라이 선생님도 평화적으로 투쟁하고 싶지만 평화적으로 해봤는데 그게 안되서 무장투쟁을 시작하게 됬다 라고 말씀하신게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 말씀하셨듯이 무장투쟁을 시작했는데도 젊은 시절을 다 받쳤는데도 군부독재는 계속 되고 있잖아요, 평화적으로 하는 것을 포기하고 무장투쟁을 시작했을 때 차이점이 중 어떤 점이 더 필요한지.

 

A. 처음에 평화적인 시위이나 운동을 해오고 군부에 무장투쟁을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어서 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1989년 그때 시작할 때 나는 무장투쟁 외엔 버마민주화를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20년이 지나고 이날에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생각하자면 아직까지도 무장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장투쟁으로 성공여부는 정확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 민주화의 길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 정치적인 운동으로 평화적인 운동으로 민주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어떤 나라에서 무장투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나라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버마는 한 가지 투쟁만으로 민주화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평화적인 투쟁도 필요하고 정치적인 투쟁 운동도 필요하고 무장투쟁도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함께 해야 민주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2min - 9min

Q. 우리 카렌민족 대부분 사람들은 버마사람들이 너무 미웠습니다. 사라이 선생님은 무장투쟁을 하면서 있는 것은 또 다른 분위기 잖아요. 그래서 카렌지역에서 20년 내내 운동하면서 카렌시민들과 관계, 카렌시민들이 사라이 선생님을 싫어하지 않느냐라는 질문.

 

A. 나는 대학교다닐 때 내가 버마족에서 태어났지만 카렌족 친구, 친족 친구를 따지지 않아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까 누가 카렌족 친구, 친족 친구를 알 수 있지만 친구로 지낼 때 그냥 친구로만 생각해 왔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무장투쟁을 하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무장투쟁하는 시작한지 3개월 뒤에 그때 문제가 생겼어요. 어떤 카렌족 친구가 찾아와서 ‘너희 버마사람들이 나쁘다, 너무나 다수적이다, 우리에게 나쁜 일만 하게 한다‘ 라고 해서 너무 화가 나서 ’너가 뭐냐, 나는 이런 생각해 본적도 없고 내 가족도 생각해 본적도 없고 내 주변에 있는 버마시민들도 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데 너가 왜 나한테 그러냐, 나랑 한판할래?‘ 이렇게까지 되버린거에요. 그런데 다음에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해서 상황이 끝났어요. 저도 왜 그때부터 그 사람들이 내게 이러는 건지 이해가 안 갔어요. 또 시민들이 분쟁지역을 찾아갈 때도 문제가 있어요. 우리 버마사람들한테 카렌사람들이 ’빤요오‘라고 해요.

또 다른 뜻으로 원수에요. 그래서 ‘빤요오’들이 왔다 라고 하면 사람들이 도망가요. ‘왜 도망가냐 빤요오라는 뜻이 무엇이냐?‘ 라고 물었을 때 ’빤요오’라는 말뜻과 이러이러한 상황이다를 버마말을 할줄 아는 사람들이 설명해주었습니다. 종종 무장투쟁하면서 버마군인들이 소수민족에 와서 나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누나한테, 어머니한테, 이모한테 그 사람 그 아이 앞에서 강간하고 죽여버리고, 아버지를 총쏴버리고 그런 아이들은 버마사람들이 미울 수 밖에 없었어요. 아들한테 딸한테 강간하고 죽여버리고 아버지나 할머니마음에 버마사람들이 미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저도 알게 되었어요. 그런 문제들을 나는 대학교 안에 있으면 아예 몰라요. 버마군인들이 이렇게 하는 걸. 이 시민들도 이건 군위에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든 버마시민들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모르는 것도 우리가 문제가 있는 것이고, 분쟁지역에 시민들도 이것도 버마시민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런 문제들이 많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해요.

 

9nim - 8min

 

사라이 선생님이 20년 넘게 분쟁지역에서 운동하면서 시민들에게 이 문제는 우리문제가 아니라 군인들의 문제라고 설명하고 염두해 왔습니다. 20년이 지나고 지금 상황을 보면 20~30%는 이 문제를 조금 해결하고 있는 것 같은데 70~80%는 아직까지 남아있다. ‘카렌분쟁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우리를 미워하는 것 같다‘ 이건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국가적으로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역사를 조금 고칠 수 있다라고 생각해요. 이런 역사를 고치는 일이 저도 해야하는 일인데 현재 젊은 사람들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한테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그 나머지 70~80%문제는 여러분이 맡아서 해결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해요.

 

Q. 버마민족에 학생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텐데, 버마민족 학생들에게 그것은 버마군인들의 문제이다라고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 아니에요? 생각하기 어려운 점은 이것이 민주화의 문제인가 민족의 문제가 너무 많이 섞여있어서 한국사람이 생각하기에는 이게 민족의 독립문제인지 민주화의 문제인지 민족간의 문제인지 생각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학생들은 중립적인 입장이였을텐데 어떻게 이 문제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인지 단순히 카렌족에게 이것은 버마민족 문제가 아니라 군인의 문제다 라고 하는 건 불충분한 것 같거든요. 민족들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를 것 같아요. 이 운동의 방향을 어떻게 설명하실 것인지.

 

A. 3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독립문제, 민주화문제, 민족간의 문제. 저는 돌림문제에 대해 많이 느끼지 않았습니다. 민주문제와 인권문제와 민족간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동시에 해결해 나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20년이 지났는데 성공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 투쟁이 민주화와 인권만 아니다. 민족간의 화해문제도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