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드만은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키이츠의 사랑의 충동은 공감과 연민이라는 아주 인간적인, 아마 기사도적인 감 정이라고 하겠지만 도피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초월적인 차원이 결여되어 있다. 엔디미언은 인도 처녀의 슬픔을 견딜 수 없고, 글라우코스는 키르케의 거짓 눈물 에 의해 속는다․․․키이츠의 상상력은 사랑의 이중적인 본질이 재융합되는 감 각과 공감의 혼합에 의해서 점화된다. 하지만 공감은 감각보다 훨씬 더 중요하 다. 사랑은 감각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지만 공감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 리고 키이츠의 일부 주인공들은 공감에 의해서만 동기가 부여된다. 이것은 우리 가 그의 작품에서 사랑과 시, 그리고 죽음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 한 차원을 부가한다. 왜냐하면 시는 본질적으로 공감 행위, 즉 인간의 구원 행위 이기 때문에 시는 키이츠에게 풍부한 죽음과 같은 황홀한 경지를 뚫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만일 이러한 순간들을 인간의 고통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해석한다 면 이 순간들을 전적으로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이런 순간들은 인간의 곤경에 대한 공감적인 일체감의 의심할 여지없는 표징이다. 


(김종숭의 글, 키이츠의 정치적 로망스 "엔디미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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