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실제 고문 피해자가 주인공인 연극 ‘불의 절벽’
글 박경은·사진 김영민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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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부당한 고통이 남긴 생채기… 무대 위로 끄집어내다

고문은 인간이 자행하는 인권과 존엄성에 대한 말살이다. 고문이 끝나도 육체와 정신에 남겨진 상처는 피해자가 세상을 딛고 일어서서 소통하는 것을 차단한다. 고문에 의해 파괴된 한 인간의 일상성과 미래의 삶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다음달 5, 6일 이틀간(오후 8시)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불의 절벽>은 관객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지며 교감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등장하는 배우는 2명. 고문피해자 김태룡씨와 정신과전문의 정혜신씨다. 연극이라는 예술 형식을 빌렸지만 등장인물과 텍스트는 모두 실제 상황인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김씨는 1979년 삼척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일가족과 함께 잡혀가 큰 고초를 겪었다. 고문을 당하며 간첩으로 누명을 쓴 그는 19년을 복역한 뒤 1998년 출소했다. 가족, 친지, 자식 등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경험과 고통의 기억을 말하지 못했고,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가 세상과 만날 용기를 갖게 된 것은 고문피해자들이 보상금을 모아 만든 재단 ‘진실의 힘’을 만나면서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처럼 ‘조작된 간첩’을 고문 후유증에서 이끌어내고 있는 정씨를 비롯해, 다른 고문피해자들을 만나 공감과 소통의 힘을 느끼게 됐다. 

연극 ‘불의 절벽’을 준비하는 3인. 왼쪽부터 예술기획자 임민욱, 간첩혐의로 장기간 복역한 김태룡,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

그의 표현을 빌리면 “꽃이 핀 것은 아니지만 꽝꽝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 녹아내리고 있는 중”이다. 그가 당했던 고문의 기억은 지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몸서리쳐지는 고통이다. 억울한 19년이 지난 뒤에도 대한민국에 그가 편히 설 자리는 없었다. 빨갱이로 낙인찍혀 내팽개쳐져 있던 그가 다시 만난 세상은 집도 터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뒤바뀌어 있었다. 

“처음에 잡혀 가면 잠을 안 재우는 것부터 시작해요. 그리고…”. 기억을 들춰내다가 몇 차례 멈춰서는 그의 말에는 악몽이 남긴 짙은 그림자가 언뜻 비친다. 그는 “처음엔 내가 무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염려되긴 했지만, 세상에 나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고맙다”고 말했다. 

#연출자 임민욱씨는 “듣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고 끔찍한 고문과 폭행에 대한 묘사는 자칫 관음증적으로 소비될 수 있기 때문에 피했다”면서 “대신 우리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이뤄졌고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일 뿐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끔찍한 현실이 ‘언제든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정혜신씨는 “우리는 여전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대학생들이 잡혀가는 일이 벌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면서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당하고 분노할 만한 고통의 흔적과 모순이 예술의 형태를 통해 덜 자극적인 방식으로 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무대인 백성희장민호극장이 갖는 상징적 의미도 크다. 극장은 몇년 전까지만해도 소위 ‘빨갱이’를 잡아 나르며 고문하던 기무사 수송대였다. 

국제다원적인 예술축제 ‘페스티벌 봄’ 프로그램의 하나로 마련됐다. 러닝타임은 60분. 관람료는 2만원이다. (02)730-9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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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we meet a desert, make it a gar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