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짧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한번도 이야기 안 한 사람도 있고, 이야기가 불어나면 그만큼 해석이 불어나고 그건 그것대로 유익하겠지...라는 생각에서 글을 올립니다.

모두 댓글을 늘려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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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자료를 찾다가 이 연극에 관한 기사문을 읽었는데 "듣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고 끔찍한 고문과 폭행에 대한 묘사는 자칫 관음증 적으로 소비될 수 있기 때문에 피했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야기는 김태룡 씨 실제 본인이 무대 위에 올라와 정신과 치료 의사인 정혜신 씨가 대화를 나누며 풀어낸다. 김태룡 씨는 당시 이야기와 복역 후에 달라진 현실, 지금 자신의 위치와 살고 있는 모습, 그리워하는 것들, 가족들 그리고 자신의 작은 소망까지 관객들에게 천천히 전했다.작가가 앞서 인터뷰한 것처럼, 얼마나 끔찍하게 당했냐는 자극적 사실보다 한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진솔히 관객들에게 털어놓는 방식으로 인해서 오히려 그것이 한 시대와 국가에 의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던 '사람'을 느끼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타인의 고통의 차원이 아니라 사람의 일, 우리 주위의 일처럼 진실을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열감지 카메라를 사용하면 온도가 있는 것과 없는 것, 그러니까 살아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보인다. 화면에 비추어지는 온도에 따른 색들은 실존한다는 무게를 갖는 것 같다. 바깥에서 펼쳐지는 도주와 저항, 검은 차와 제압에서도 움직이는 온도를 통해서 지금 제압당해서 강제로 차에 타는 사람이 뜨거운 온도를 가지고 움직였다. 관객들을 비출 때, 무대 위로만 밝혀진 조명 바깥의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들은 온도를 통해 그곳에서 살아있는 사람들로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나갔다. 위에서 검은 천이 관객들의 손을 타고 내려왔을 때, 그 천은 갑자기 내 위로 지나가면서 관객 모두를 덮었다. 얇은 천 너머로 보이는 스크린에는 검은 천으로 인해 온도의 붉은 색을 잃고 마치 텅 비어버린 듯한 검은 공백만이 남았는데, 그 자리에서 이야기 듣던 존재들이 한 순간에 사라진 듯한 그 느낌은 무섭기도 하고, 옆 사람을 쳐다보면서 '이게 뭐지? 이게 뭐지?'하게 만들었다. 

어떤 이야기와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무언가 보이지 않게 커다란 것에 의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머리 위에서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소리를 내고, 검은 자동차에서 사람들이 내려 누군가를 잡아가는 식의 폭력에 의한 감시가 존재했고 현재에도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일까.


연극이 상연되었던 그 공간은 전 기무사 수송대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위 '빨갱이'를 잡아나르며 고문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 공간에서 한 개인이 자신의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상처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수많은 고통들이 있어왔던 공간에서 한 사람의 고통과 상처의 마음을 조금은 덥힐 수 있는, 이야기를 듣는 온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위로의 공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