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_발제 : 게스


"미술이 무엇일까?"


온 : 이 책을 읽으면서 미술이라는 범위가 애매해지는 걸 느꼈다.


미난 : 아담의 창조는 누군가 시켜서 미켈란젤로가 그린 것이기는 하나, 그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었다고 한다. 


홍조 : 나에게 확 이해가 되고 이 책에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종교벽화나 천장에 그려진 그림들은 스케일이 엄청나고 지금 봐도 '엄청나다'라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게 엄청난 건가?' 싶기도 하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그것보다 더 리얼한 이미지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들이 당시 '엄청나다'라고 다가왔던 이유는, 당시에 접할 수 있는 이미지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궁전의 신비함을 더하기 위해 그렸던 (저것이 신이다, 라고 믿을 수 밖에 없게 하는)벽화들도 우리가 지금 이해하는 것이랑 그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의 갭이 컸을 것이다. 


온 : 그럼 그 사람들은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주님 : 그냥 벽화가 아니었을까?


게스 : 만약 박물관에서 유명한 전시물을 보면 괜히 그 앞에서 아는척하기도 하고, 사람들은 굉장한 미술작품을 서로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홍조 : 분홍색 책의 82p를 보면, 아까 우리가 언쟁을 하고 논쟁을 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주님 : 이 책에서 계속 우리가 지금 미술이란 개념이 생겨나기 전의 작품을 미술이라고 칭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기간, 미술이란 개념이 생겨나기 전의 시대와 지금 사이의 기간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 우리의 시각으로 봤을 때 우리는 '미술'이라는 말을 칭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미술'을 칭하고 우리의 가치로 판단을 하는 것일까? 미술이라는 것은 근대에 생겨난 개념인데 우리는 왜 그 전의 작품들까지 '미술'이라고 칭하는 것일까?


온 : 자본주의의 영향이 아닌가?

네덜란드가 자본주의화가 되면서 그림이 굉장히 많이 매매되었다고 한다.


홍조 : 자본주의는 모든 가치를 '자본'으로 바꿔버리는 것인데, 책에서 '이데올로기'란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선호 : (이데올로기에 대해 책에서 언급하면서) '옛날에 여자들에게 투표권이 없었다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란 이야기를 한다.


미난 : 음악도 밴드 음악이 있고, 여러 다양한 음악들이 있는데 모두 "음악"이라 칭한다. 낭만주의, 사실주의 그림도 모두 '미술'이라 칭하는데 그런거랑 똑같은거 아닌가? 이 책도 '작가의 주장'이 아닌가?


홍조 : 사실 우리가 1장밖에 안 읽었고 모든 것을 다 배웠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질문하고 있는 것들을 계속 질문하게 될 것이고 책에서 쭉 세분화되서 다뤄질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한번 해보면 좋겠다.


게스 : 지금 여기서 미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가 정의를 내려버리면, 오히려 우리는 미술의 개념에 대해 모호하게 생각해버릴 것 같다.


공룡 : 그렇다.


온 : 정말 왜 '미술'이란 말을 쓰는 걸까?


영서 : 청각이 중요한 감각이었는데, 시각이 더 중요한 감각이 되면서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


온 : 영상기술이 발달되던 시기에는 '미술'을 생소하게 접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영상이라는 매체 자체가 익숙한 세대이기에 그런 종류의 매체들을 모두 '미술'이라 인식하는 게 아닐까?


홍조 : 산업화가 되고 기술발전이 되면서 '복제술'이 생겨났다. 우리가 접하는 미술작품들은 아주 '흔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 책에서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이것을 미술이다, 이것도, 이것도, 이것 마저도."라는 말을 한다. 복제한 다음부터 '이것은 미술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난 : 그런데 그게 왜 '복제'와 연결되는 거지?


플씨 : 이 책을 읽다보니 생각난 것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골목이 있는데 그곳에서 밤마다 청소년들이 그래피티를 했다. 그런데 주민회의에서 그 그래피티를 다른 그림으로 덮어버렸다. 고구려의 온달장군 등의 이미지로. 그러면서 내가 등교할 때마다 그래피티를 덮고 벽화가 그려지는 과정을 보게 되었는데, 언젠가 벽화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본적있다. 만약 라스코동굴벽화를 회손시키지 않기 위해 복제하고, 보존하고. 복제품을 사람들이 '구입'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고구려벽화'가 그려진 것이 아닐까 싶었다.


홍조 : 미술계라는 것이 '그들이 사는 세상'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서도 복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이 미술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가 아는 미술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생겨난 개념이며 미술관에 전시되고….(중략) 미술관, 박물관 등에 미술이 내포되기 시작하면서 미술의 중요성이 알려지기 시작'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평창동 같은 갤러리에서도 '경매'를 한다. 갤러리들이 돈을 내고 구입을 해간다. 어떤 작가의 그림을 얼마만큼 사고,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이며, 어떻게 평론을 할 것인지, 또 평론은 누가 할 것인지 등등.. 계획된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술계에 비리가 많고 '그들이 사는 세상'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온 : '미술'이란 말이 없었을 뿐이지, 그 당시에도 '미술'을 보는 기분은 비슷했을 것 같다.


구나: 타지마할 같은 것을 보면, 지금 기술이 많이 발전한 시대에 살고 있는데, 미술이라는 것을 봤을때, 지금 작품을 보는 시각이랑 그 때 당시에 작품을 보는 시각이라는 다른 것 같다. 지금 시대에서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은 좀 다르게 해석되고 그 당시 사람들이랑 다르게 말이다. 


미난 : 지금 시대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랑, 옛날시대 사람들이 보는 시각의 공통점은 있을 것 같다.


홍조 : 생각해보면 지금 미술에서 'HOT'한 그림이라는 것, 최신상의 미술들, 지금 나온 작품 같은 것들. 우리는 그런 것을 보면 '그냥 만화같은데?'라는 평가를 할지도 모르지만 평론가가 본다면 '이 선은 어떻고, 색감은 어떠하며.. 저것은 무엇을 형상화한 것이다'라고 해석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아 그런가보다' 하는 식으로 미술을 이해하게 된다.


망구 : 조선명탐정을 보면 화가가 나오는데 그 화가가 그린 그림 자체만으로 값어치가 정해진다. 피카소가 아무 생각 없이 평론가들은 '피카소가 했으니 _______란 의미가 있겠지'란 식의 의미를 갖다 붙인다. 


미난 : 평론가들은 화가의 어린시절 등에 대해 공부를 하고 그런 조사의 과정을 거쳐서 '그림'에 대해 해석을 한다고 한다.


홍조 : 해석이 좋은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이미지를 보고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오로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얘기다. 시대의 아이콘, 작가의 의도 등에 의해. 


미난 : 여기서 우리가 정확히 공부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플씨 : "미술이란 무엇인가!!!"


홍조 : 기본은 게스의 발제고.


망구 : 약간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게, 평화워크숍 때 우리가 '정의'에 대해 너무 치우쳐 고민했던 거랑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겉에서 맴돌면서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 했던 것처럼.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게스 : 우리가 처음 이야기하는 시간이니, 이런 얘기에서 시작을 해도 될 것 같다. 책을 더 읽고 더 많은 질문들이 생기면 얘기가 더 풍부해질 거라고 생각.


선호 : 책을 보면서 공감되었던 부분은, 내가 어렸을 때 '아담의 창조'가 벽화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것이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이 아니라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이바지하는 역할이었다는 것, '그런데 어떻게 똑 떨어져 액자에 걸려있지?'라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 책에서 조금 답을 해준 것 같다. 작가도 나와 비슷한 궁금증을 품은 것 같아 동지감이 들었다. 미술이라는 것이 '조각'으로 된 것도 있고 '회화'라는 것도 있는데, 그런 액자나 조각받침대 같은 것들..그런 상징이 어디까지 변형되고 허용될 수 있을까?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룡 : 이 사람이 자신의 생각대로 쓴 책인데 그럼 반대되는 책도 있나?


홍조 : 그렇게 정치적 색이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첫장에서는 미술이라는 용어가 어디서부터 생겨났고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해갈지는 책을 봐야 알 것 같다.


게스 : 나는 작가가 '현대인들의 미술을 보는 시선'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현대인들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별 : 나는 책을 읽긴 읽었는데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억지로 만들어서 미술이 아니라고 말 하는 게, 그러니까 저자가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알지 못하는 채로 "미술이 아니다"라고 평판하는 것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구나 : 그런데 미술이 아니다, 맞다라는 기준은 '작품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맥락에 따라 그것을 어떻게 칭할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홍조 : 그것은 작가의 의견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고, "엄밀히 따지면 그때 당시 그것은 미술이 아니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미난 : 그때 당시에만 미술이 아니었다는 거 아닌가?


게스 : 저자가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책을 끝까지 읽는 게…


미난 : 그런데 이 책에서 다뤄지는 주제가 (쪽수는 많은데) 한가지 밖에 다뤄지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플씨 : 지금 루이14세 초상화는 미술작품으로 팔리고 있나? 이 책에서는 '미술이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망구 : 근데, 누군가 책의 첫머리가 너무 쎄게 나온다는 말을 했는데, 책의 특성상 저자가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렇게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면서 읽게끔 만드는.


홍조/영서 : 너무 작가에 대해 바라보는 눈이 냉소적인 게 아닌가.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읽어보자. 


게스 : 작가의 생각에 대해 공감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공감하지는 않고 이 책을 보면서 비판도 해보고 싶다. 앞으로 책을 보면서 잘 공부해갔으면 좋겠다. 


히옥스 :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는 우리가 어떤 이야기로 마치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은 이것은 미술이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라고 구분을 해보지만, 1장의 마지막에서는 '근대'의 미술이란 시각미술로 압축된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더 시각미술이 더 강화되는 경향이 있고, 'art'는 '비주얼아트'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가 아니고 'Believing is seeing'이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근대는 그 Seeing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서구의 역사는 '본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근대가 과학의 시대라는 점에서 시각은 더 중요한 진리의 근거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의 핵심은 "실험과 관찰"이다. 이것은 "과학함"의 정의이다. 그런데 실험이라는 것은 우리의 여러가지 "신체적 경험"에 근거하고, 관찰은 "시각"을 신뢰하지 않고서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인간의 경험, 특히 시각경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과학은 성립조차 될 수 없다는 것이고, 그러한 과학주의가 근대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미술이란 무엇일까?

근대미술이 "근대"라고 하는 과학의 시대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면, 우리가 지난 시간에 '시각은 우리를 잘 속인다'라는 이야기와는 어떻게 생각해볼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경험의 한계를 묻는 것은 과학과는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미술의 경험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은 여전히 질문해볼 수 있다. 또 '아담의 창조'같은 벽화가 어떻게 액자속으로 똑 떨어져 들어갔냐는 선호의 질문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좋을까? '아담의 창조'는 무엇을 그린 것일까? 어떻게 그린 것일까?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인상주의의 화가들, 세잔느, 모네, 마네, 밀레나 고흐 등의 그림들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모네의 그림을 보면 시간에 따른 빛의 변화를 그려내려고 했다든가 하는 것들이 눈에 띈다. 원근법이 발명되면서 시각에 대한 과학적인 태도도 그림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과연 뭘 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진짜"는 어떻게 생겼나? 하는 그런 태도들. 그런 질문과 탐구의 과정/내용이 그림에서 보인다. 


근대이전의 그림, 루벤스의 성보의 승천과 같은 그림을 떠올려보자. '플란더스의 개'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네로가 그 그림을 보면서 죽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하늘로 가는, 황금빛으로 가득찬 그림이다. 플란더스의 개의 주인공(네로)는 그 그림을 보고 "웃으며" 죽는다. 네로에게 그 그림은 구원의 그림인 셈. 미술품은 특별한 것을 표현한 것이거나 특별한 것을 담고 있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특별한 힘이 있다. 


그런 것이 예술이 가진 힘이다. 과학적 태도로 표현해내려고 한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그림을 아무나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기가 어려웠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금은 누군가 소유할 수 있다면 나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러한 생각이 자본주의와 연결되면 '돈만 있으면' 누구나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얘기들은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란 50페이지 정도 되는 에세이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복제품, 사진, 프린트 나아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되어 있다. 과학의 시대에는 인간의 경험(실험과 관찰)은 우리를 기만하지 않을 것이며, 미흡한 경험적 내용을 잘 분간할 수 있으면 '인간은 모를 것이 없다' '알 수 없는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지만, 근대이전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다른 영역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아무튼 인상주의 화가들의 예를 떠올리면 그들이 얼마나 캔버스와 사투를 벌였던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귀까지 자를 정도로? 쇠라는 점묘화를 그린 인상파화가인데, 점묘그림이란 것은 상상만해도 상당한 노동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는 한 그림마다 수십장의 습작으로 연습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때로 쇠라의 그림은 그 완성품-결과물보다 그 과정에서 감동이 있다든지, 그 그림은 차라리 퍼포머티브 아트라든지 하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한국인 화가 중에 이우환이라는 분이 해준 얘기 중에 자신이 일본에서 가르칠 때 동경의 아트스쿨 학생을 프랑스로 유학보냈는데, 그쪽의 교수가 편지를 하길.. 프랑스에서 수업을 하는데 일본 학생은 캔버스를 펴고 단정하게 수업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프랑스학생들은 "얘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면서 놀렸고 그래서 그 일본학생이 상당히 충격을 받았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모네가, 쇠라가 그토록 열심이던 그 캔버스가 아니라면, 또 루벤스와 같은 그림이 아니라면 지금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려는 건 뭘까? 무엇을 예술/미술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런 질문들이 이 책에서 전개되는 것일 테고, 게스의 말처럼 이 책의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지, 그에 대해서 각자는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책을 읽는 동안 잘 생각해보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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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발제는 2.3.4.5.6 챕터 맡은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