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3주간의 쪽글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저마다 3주간의 영상 관람을 통해 느낀 것들이나 생각해볼 것들에서
크게 크게 다가와서 그 생각의 중심에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고,
자연스레 그것으로 연결,
대략적인 키워드로 분류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의식' 과 '조화'에서 갈등하다가 결국에 조화를 이야기해보는 모둠으로 옮겼다.
그 이유는, 의식과 조화 둘 다 조금 넓게 보면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고,
이왕 그런 것 좀 더 실천적인 것이 좋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에서 조화를 이야기해보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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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면서 '조화란 대체 무엇일까' 라는 저마다의 생각을  나누었다.
환경, 생명과의 조화.
꾸리찌바 영상을 본 후 나왔던 얘기 중의 하나가
인간의 도시만을 영상에 내비쳐주고 있는데 다른 동물들의 생태계는 어떻게 되는건가라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그것에서 이어져온 생각을 말한 것이 아니었을까.
꾸리찌바는 인간이 환경, 자연 친화적으로 살기에는 뭐랄까,
유토피아 라고 표현할 수 있을만큼 (물론 영상 그 이면에는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꾸리찌바를 한번 찾아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언젠가 한번 계획을 잘 짜서 가봐야겠다.) 이상향이었다.
그러나 새, 짐승 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환경적 도시라는 겉포장 뒤의 이면으로 밀려난 것일까.
만약 그랬다면, 정말로 그게 인간과 환경의 '건강한' 조화라고 보아도 될까,
아니 그 전에 조화 라고 볼 수 있을까.
인간은 여태껏, 그리고 지금도, 계속 환경을 '이용'해먹었다.
88올림픽 때 평화의 상징이라면서 수를 불려왔던 비둘기를 이제와서
배설물 등이 아스팔트 부식의 원인이 된다면서 잡아 죽이려 하지 않는가.
우리의 조형물에 조금 손상을 입힌다고 해서 그렇게 무자비하게 굴어도 되는 걸까.
더군다나 그 조형물은 원래 살던 그들의 땅을 뒤덮고 쌓아 올린 것인데?
오만한 게 아닐까.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 거들먹거리면서 이렇게 만물을 생각치 않아도 되는 걸까. 우리는 폭군이다.
넓은 평야에 도로를 깔아놓고는 전부터 그 길을 지나왔던 동물들이 쾅 쾅 치여죽이곤 한다.
좀 더 그들을 배려하는 정책이 있었으면 한다. 개인의 노력이나.
1Km당 1마리.
로드킬 당하는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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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일상의 환경적 조화.


꾸리찌바 영상을 보면서 도시 도처에 솟아나있는 나무들, 심지어 옥상에도 나무가 있다.
도시 전체가 푸르고 푸르다. 상록일 것만 같다.
우리나라도 이상론이겠지만 그런 녹화 사업을 좀 하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좀 더 가까이서, 잦게, 더 많은 자연을 접하는 사람들이 환경과의 조화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신경써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담이지만 청년실업 시대에 시 차원에서 낙엽 등을 치우는 청소부, 수목 관리 같은 일자리를 만들어서 실업률을 줄이는 이른바 '그린 뉴딜' 을 상상해보았다/
참, 건물의 그린 디자인 얘기에서
꽃씨파티로 하여금 하자 건물 내 유일한 야외인 흡연실 바닥에 잔디를 깐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흡연실 가봤는데 굉장히 넓던데, 정말 그러면 싱그러울 것 같기도 하다.
하다못해 벽이나 문, 가구 등을 좀 푸르게 푸르게 바꿔봐도 좋을 거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국민대 교수 윤호섭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은 일요일마다 인사동에서 시민들이 가져온 흰색의 헌 티셔츠에 친환경 페인트로 그림을 그려주신다. 거기서 생각난 건데,
친환경 페인트 같은 것으로 조금 바꿔바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꼭 화분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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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같이 노력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개개인의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이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포디는 버스를 타면 문득 죄책감이 들곤해서 하자까지 3시간안에 걸어올 수 있는 길이 된다면 걷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이처럼 작은 의식들이 실천이 되면 그 실천들은 곧 조화를 이뤄낼 수 있는 작은 밑거름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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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 Hour
시작 하기 전에 짧은 영상을 보았다.
한남자가 나무가 무성한 별의 나무가 무성한 산 위에 나무 한그루를 베어서 집을 짓고 한적하게 살고 있는데 한 두명 씩 사람이 몰려들더니 그 산은 건물로 꽉차고, 그 별에는 나무가 발 디딜 곳이 없어지는, 그런 애니메이션이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발 끝에서 머리 위까지 소름이 쫘악 돋았다.
마치 지구를 닮은 것 같았기 때문일까.
그 별의 모든 건물에는 주구장창 불이 켜져있어 언제나 백주대낮이었다.
그 모든 불을 잠시라도 끄고 있는다면 그 별은 그 시간만큼 더 버틸 수 있을까.
이윽고 하자의 모든 불이 꺼졌다. (경비실 TV....ㄷㄷ)

우리는 어둠 속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평소 밝은 불 아래서, 티비를 켜놓고, 컴퓨터를 켜놓고 보내던 한시간이었지만,
어두움 속에서 그 같은 한시간을 보내니까 그 밝았던 한 시간의 흐름의 빠르기와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어두움 속에서도 아무렇지않게 잘 지낼 수 있는데도 왜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지구를 밝히고 있었을까.
일상에서의 나의 라이트를 조금 줄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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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에 대해서 이야기 할 당시에 시간이 부족해서 소비와 생산에 대한 이야기를 미처 하지 못했다.

우리, 즉 현대인은 소비와 소비, 그리고 소비가 연속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소비자본주의에 물든 이 사회는 소비가 미덕이라고까지 말하며 소비문화를 칭송하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과연 얼마만큼의 생산을 하면서 소비를 해오고 있을까.
아마도 소비가 주를 이루지 않을까.
우리는 하다못해 소비의 일부를 생산으로 되돌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재활용 포장을 사용해서 다시 그 것을 재활용하고 , 다시 쓰고...
그러던 도중에 종이 포장이라는 것도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너무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생각도 했다.
현대 생활에서의 리사이클링이 조금 더 활성화되면 소비와 생산의 균형이 약간은 비슷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