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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니치 신문
무라카미 하루키, 카탈루냐 국제상 스피치 원고 전문 (상) http://mainichi.jp/enta/art/news/20110611k0000m040017000c.html (하) http://mainichi.jp/enta/art/news/20110611k0000m040019000c.html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 자치주 정부가 국제 인문과학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상을 보인 인물에게 수여하는 '카탈루냐 국제상'을 수상했다. 하루키의 수상소감이 트위터와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어 공부를 위해 번역해 봤다. 1:1 직역보다는 뉘앙스를 살리고자 조금 의역해서 결과물은 원문과는 좀 다를 수도 있음. 지난 금요일 (상)을 번역하고, 그 아래에 이어 (하)를 번역. [비현실적인 몽상가의 한 사람으로서] 평안히 잠드소서. 잘못은 반복하지 않을 테니까요. 멋진 말입니다.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이 말에는 이런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핵이라고 하는 압도적인 힘 앞에서 우리는 피해자이기도, 가해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 힘의 맹위에 노출돼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고, 그 힘을 이끌어 낸 점에서는, 또 그 힘의 행사를 막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는 우리는 모두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원폭이 투하된 지 66년이 지난 지금, 후쿠시마 제1원전은 3개월 동안 방사능을 방출해, 주변의 토양과 바다와 공기를 계속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멈출 수 있을지는 아직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이건 우리 일본인이 사상 두 번째로 체험하는 방대한 핵피해입니다만, 이번에는 누군가 우리에게 핵폭탄을 떨어트린 것이 아닙니다. 일본인 스스로 밥상을 차리고, 스스로의 손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스스로 터전을 잃고, 스스로 생활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전후 오랜 기간동안 우리가 품어왔던 핵에 대한 거부감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요? 우리가 일관적으로 추구하던 평화롭고 풍요로운 사회는 대체 무엇때문에 상실되고, 일그러져 버린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효율' 때문입니다. 원자로는 효율이 높은 발전시스템이라고 전력회사는 주장합니다. 즉, 이익이 올라가가는 시스템이라는 겁니다. 또 정부는 오일쇼크 이후 원유 공급의 안정성에 의문을 품고, 원자력 발전을 국책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전력회사는 막대한 돈을 광고비로 지불해서 미디어를 매수해, 원자력 발전은 어디까지나 안전하다고 하는 환상을 국민들에게 심어 왔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니, 일본 발전량의 약 30%를 원전이 담당하게 됐습니다. 국민들이 잘 모르는 사이에, 지진 많은 길쭉한 섬나라 일본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원전이 많은 나라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일단 일이 터지면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미 일어난 '기정 사실'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원자력 발전에 걱정과 두려움을 품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러면 당신은 전기가 부족해도 좋다는 거죠?"라면서 협박 비슷한 질문을 마구 퍼붓습니다. 국민들 사이에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원전에 기대야 하나봐."라는 기분이 퍼져 나갑니다. 고온다습한 일본에서, 여름에 에어콘을 쓸 수 없게 되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깝습니다. 원전에 의문을 드러내는 사람들에게는 '비현실적인 몽상가'라는 레테르가 붙여집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 우리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효율적라고 하던 원자로는, 마치 지옥의 뚜껑을 열어버린 것처럼 비참한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원자력 발전을 추진하던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현실'은 현실도 다른 그 무엇도 아닌, 그저 표면적인 '편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걸 그들은 '현실'이라고 하는 단어로 치환해서 논리를 대체해 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이 오랜 시간에 걸쳐 자랑해 왔던 '기술력' 신화의 붕괴인 동시에, 이런 식의 대체를 눈감아 준 일본인의 윤리 규범의 패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전력회사를, 정부를 비난합니다. 그건 물론 당연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스스로를 고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엄격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어딘가에서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겠습니까. 평안히 잠드소서. 잘못은 반복하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는 다시 이 말을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 개발의 중심에 섰던 사람인데,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일으킨 참상을 알게 된 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대통령님, 제 양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군요." 트루먼 대통령은 깔끔하게 접혀진 하얀 손수건을 주머니에서 꺼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이걸로 닦으시게나." 그러나 말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많은 피를 닦아낼 수 있을 만큼 청결한 손수건 따위는 이 세계 어디를 뒤져도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일본인은 핵에 대해 '노!'라고 외쳐 왔어야 했다는 게 저의 의견입니다. 우리는 기술력과 지혜를 모으고 사회적 자본을 투입해, 원자력 발전을 대체하는 유효한 에너지 개발을 국가 차원에서 추구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설령 전세계가 "원자력 만큼 효율이 좋은 에너지는 없다. 원자력을 사용하지 않는 일본인은 바보다."라고 비웃어도, 우리는 원폭 경험으로 체득한 '핵 알레르기'를, 꿋꿋이 지켜왔어야 했습니다. 핵을 사용하지 않는 에너지 발전을, 일본 전후 행보의 중심명제로 뿌리박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숨진 수많은 희생자들에 대해, 우리 모두가 책임을 지는 방법이었을 겁니다. 일본에는 그런 식의 튼튼한 윤리 규범이,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가 필요했던 겁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일본인이 세계에 정말로 공헌할 수 있는 커다란 기회였을 겁니다. 그러나 급격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효율'이라고 하는 안이한 기준이 흘러넘친 탓에, 이렇게 중요한 이치를 우리는 깨닫지 못했던 겁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아무리 비참하고 심각하다고 해도 우리는 자연재해의 피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 시련을 극복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이 더욱 강하고 깊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그렇게 할 겁니다. 부서진 도로나 건물을 재건하는 것은, 그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의 일입니다. 그러나 손상된 윤리 규범의 재생을 시도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우리는 죽은 이들을 애도하고, 재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이 받은 고통과, 상처를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 작업을 시작합니다. 작업은 수수하고 묵묵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수작업이 될 겁니다. 활짝 갠 봄날 아침, 어느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들판에 나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처럼, 모두 힘을 합해 이 작업을 진전시켜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각자가 가능한 방법으로, 그러나 마음은 하나로 합쳐서 말입니다. 이 대대적인 집단 작업에, 말을 전문으로 하는 우리들, 즉 전업 작가들이 엮여 들 부분이 있을 겁니다. 우리는 새로운 윤리 규범과, 새로운 단어를 연결해야 합니다. 그것은 '씨뿌리는 노래' 처럼, 사람들을 위로하는 율동을 가진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 작가들은 일찍이, 같은 방법으로, 전젱으로 폐허가 된 일본을 재건해 왔습니다. 그 원점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서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는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덧없이 흘러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생명은 태어나고, 단지 흘러가고, 예외없이 소멸해 갑니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무력합니다. 이 덧없음을 인식하는 것은 일본문화의 기본적 이데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라지는 것에 대한 경의와, 위험으로 가득한 세계에서도 생생하게 살아가는 것들에 대한 조용한 결의, 그런 긍정적인 정신도 우리는 갖추고 있을 겁니다. 제 작품이 카탈루냐의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 이런 훌륭한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사는 장소가 멀리 떨어져 있고, 쓰는 말도 다릅니다. 문화도 서로 다릅니다. 그러지만 동시에, 우리는 같은 문제를 짊어지고, 같은 슬픔과 기쁨을 끌어안고 있는 세계 시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 작가가 쓴 이야기가 몇 권쯤 카탈루냐어로 번역되어, 이곳 사람들의 손에 오르기도 하는 겁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모두에게 공유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꿈꾸는 것은 소설가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중요한 일은, 사람들과 그 꿈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 공유가 없다면, 소설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카탈루냐인들이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때때로 가혹한 일을 당하면서도 강하게 살아남아, 풍요로운 문화를 지켜 온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희들(일본인) 사이에는 함께 나눌 것이 분명히 많을 겁니다. 일본에서, 그리고 이곳 카탈루냐에서, 여러분과 우리들이 함께 '비현실적인 몽상가'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면, 국경이나 문화를 뛰어넘은 '정신적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그것이야말로 최근 이런저런 심각한 재해나, 비참하기 짝이 없는 테러를 통과해 온 우리들의 재생을 위한 출발점이 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꿈꾸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발걸음이 '효율'이나 '편의'라는 이름을 가진 재앙의 앞잡이들을 따라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힘찬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가가는 '비현실적인 몽상가'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인간은 언젠가 죽고, 사라져 갑니다. 그러나 '인간성(Humanity)'은 살아 남습니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계승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인간성의 힘을 믿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상금은 지진 피해와 원전사고의 피해를 입은 분들께, 의연금으로 기부하고 싶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카탈루냐의 여러분과, '자날리스타 데 카탈루냐'의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 며칠 전 로루카 지진에서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도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바르셀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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